오피니언

[기고] 성령 하나님의 구원사역: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으로"(4)

김승진 목사 (침례신학대학교 명예교수)

편집자 주] 구원 개념은 이미 과거에 받았던 구원(중생)과 현재 받고 있는 구원(성화)과 장차 미래에 받게 될 구원(영화) 모두를 포함한다. 이 세 가지 구원에서 궁극적으로 중심된 역할을 하는 것이 성령 하나님이시다. 비록 죄인인 인간이 회개를 하고 예수를 믿는다고 하더라도, 성령의 감동과 감화, 즉 성령의 역사하심이 있어야만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주로 과거적 구원에 초점을 맞추어서, 성령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셔서 죄인인 인간을 구원하시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VII. 나가면서: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으로"

김승진
(Photo : ⓒ 침례교신학대학교)
▲김승진 교수 (침례신학대학교 교회사 명예교수)

이상에서 살펴본 대로 한 죄인이 자신의 죄인됨을 깨달아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원자(Savior)요 새로운 주인(Lord)으로 모심으로써 구원을 받는 모든 과정에서 주도적이고 결정적인 역할을 하시는 분은 바로 성령 하나님이시다. 죄인의 신분을 가졌던 자가 의인의 신분을 가진 자로 탈바꿈을 하게 되는 것은 전적으로 성령의 역할이다. 성령은 살리는 영(a living spirit)으로서 허물과 죄로 죽었던 죄인을 살리셔서 그에게 영적인 생명을 부여하신다. 한 죄인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성령뱁티즘(Spirit Baptism)을 받아 죄와 자신의 죄악된 삶을 장사지내고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연합하여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가 된다. 성령은 또한 그에게 인(Seal)을 치심으로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 되었음을 확신케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와 권세와 권능을 덧입혀 주셔서 거룩한 삶과 능력 있는 사역을 감당케 하신다. 성령은 죄인을 의롭게 하셔서 하나님의 아들·딸로 입양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가졌음을 확신케 하신다. 한 죄인을 구원해 내는 사역에 있어서 궁극적으로 결정적인 역할을 하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여기서 필자가 꼭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 있다. 극단적인 칼빈주의(Hyper-Calvinism) 신앙체계는 "인간의 전적인 타락"(Total Depravity of Man)을 매우 강조한다.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에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이 첫 번째 명제이고, 동시에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에게는 믿을 능력도 없다는 것이 두 번째 명제이다. "죄와 허물로" 죽어 있는 죄인이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믿을 능력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필자는 첫 번째 명제에는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두 번째 명제에는 수긍하지 않는다. 성령께서 깨닫게 하셔서 그 죄인에게 감동을 주실 때 그 죄인은 회개를 할 수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는 것이다. 인간에게 회개할 능력이 없고 믿을 능력이 없다면 전도(evangelism)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불신자(전도대상자)로 하여금 복음을 듣게 하여, 그로 하여금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도록 하는 것이 전도가 아닌가?

성령께서 죄인으로 하여금 회개케 하시고 성령께서 그로 하여금 믿도록 하시는 것은 사실이지만, 회개하고 믿는 것은 결국 사람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회개하시고 하나님께서 믿으시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한 죄인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성령의 깨닫게 하심과 감동하심을 힘입어, 그 죄인이 진심으로 회개를 해야 하고 그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와 주님으로 믿어야 구원을 받게 된다. 은혜를 베푸시는 주체는 하나님이지만, 회개하고 믿는 주체는 인간인 것이다. 인간이 선행의 공로(merit of good works)를 쌓아야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참 복음도 아니고 건전한 구원신학도 아니다. 인간이 회개하지 않고 구원받을 수 있는가? 인간이 믿지 않고 영생을 얻을 수 있는가? 회개(repentance)와 믿음(faith)이란 일방적인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한 한 인간의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반응이 아닌가?

성경에는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 16:31);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 3:2);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라"(행 2:38)는 등의 말씀이 등장한다. "회개하라" 그리고 "믿으라"는 말씀이 명령형 동사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하기 바란다. 사람이 회개할 수 있으니까 회개하라고 명령하고 있지 않은가? 사람이 믿을 수 있으니까 믿으라고 명령하고 있지 않은가? 또 사도 베드로는 안타까워하는 심정으로 사람들이 회개할 것을 이렇게 촉구하고 있다:

(벧후 3:8-9)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any, anyone)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all, everyone)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은 "아무도 멸망하지 않기를" 그래서 "모두가 다 회개하기를" 간절히 원하시며 오래 참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이다. 하나님께서 모든 죄인들이 이렇게 회개하기를 간절히 기다리시는데, 회개할 능력과 믿을 능력이 인간에게 없다고 한다면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 된다. 물론 반복해서 하는 말이지만, 성령께서 죄인의 마음에 책망과 감동으로 역사하셔야만 인간은 회개할 수 있고 믿을 수 있다. 그러나 종국적으로 회개하고 믿어야 하는 의무와 책임은 결국 인간에게 있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제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면서 밀레도 섬에서 에베소 장로들을 만나 고별설교를 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행 20:20-21, 표준새번역) "나는 또한 유익한 것이면 빼놓지 않고 여러분에게 전하고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 여러분을 가르쳤습니다. 나는 유대 사람에게나 그리스 사람에게나 똑같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하고 우리 주 예수를 믿어야 한다고 증언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 체류하였던 동안 장로들과 함께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르쳤고 증언하였음을 회상하고 있는 것이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죄인이라면 어느 누구에게나 회개할 것과 믿을 것을 촉구했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믿음을 동반하는 회개, 그리고 회개를 동반하는 믿음은 죄인이 죄사함 받고 구원받기 위해서 자발적으로(voluntarily) 행해야 하는 필수적인 의무요 책임인 것이다.

기독교 성화 가운데 "문 밖에서 노크를 하시는 예수님"(Jesus Knocking on the Door)을 그린 그림이 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의 말씀을 그림으로 묘사한 것이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 문은 인간의 마음의 문을 상징하는데, 그 문의 가장 큰 특징은 문 바깥에 문고리가 없다는 점이다. 예수님은 강압적으로 문을 열고 쳐들어오시는 분이 아니다. 단지 노크를 하실 뿐이다. 문 안에 있는 사람이 노크 소리와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자발적으로 문을 열면 그에게 들어가신다. 자원하는 마음으로 문을 열어 예수님을 초청해 들이는 자에게 예수님은 들어가신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와 더불어 먹고 마시며 교제를 하신다. 절대주권적인 권위를 가지신 예수님이시지만, 동시에 그 분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존중하시는 인격적인 분이다.

인간에게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자유의지가 있다. 하나님의 형상(The Image of God)으로 창조된 인간이기에 인간에게는 하나님을 부정하거나 배신할 수도 있는 자유까지도 부여받은 것이다. 그래서 아담이 하나님의 금지명령(창 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을 불순종함으로 결국 인간은 죄인이 된 것이고,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르는 불순종의 아들로 전락이 된 것이다. 그러나 복음을 듣게 되고 성령의 감동을 입으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마음 문을 열게 된 죄인은 회개하고 믿는 결단을 하는 것이다. 성경 어디에도 "회개한다, 믿는다"는 말이 수동태로 쓰인 곳이 한 번도 없다. 회개하는 것은 회개하는 것이고 믿는 것은 믿는 것이다. "회개된다, 회개하여진다, 믿게 된다, 믿어진다"는 수동태 표현이 성경에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결국 "믿는다"는 말은 죄인이 성령의 책망케 하심과 깨닫게 하심과 감동하심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겠다고 결단하는(decide to believe Jesus Christ) 것이다.

미국 장로교목사인 제임스 케네디 박사(Rev. & Dr. James Kennedy)에 의해 개발된 "전도폭발"(EE, Evangelism Explosion)이라는 훌륭한 전도훈련 프로그램이 있다. 한국에도 30여 년 전에 이 교재가 번역이 되었고, 한 때 여러 한국교회들이 이 프로그램을 도입하여 풍성하게 영혼구원의 열매를 맺기도 했다. 필자는 미국에서 유학생 신분으로 교포교회를 섬길 때, 이 프로그램을 도입하여 전도활동을 하기도 했고 평신도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전도훈련을 시키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의 가장 좋은 점은 충분한 시간(40-50분 정도)을 가지고 복음의 내용을 자세하게 설명한다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전도인의 간증을 들려주기도 하고 성경구절들을 제시하기도 하고 적절한 예화들을 사용하기도 한다. 복음을 충분히 설명한 후에 마지막 단계에서 전도대상자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하는데, 이를 "결신질문"(decision question)이라고 한다. "이 영생의 선물을 받기를 원하십니까?"라고 묻는다. 전도대상자로 하여금 "예(Yes)" 혹은 "아니오(No)"라고 대답할 수 있도록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복음 앞에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예" 혹은 "아니오"라고 대답할 수 있는 능력, 다시 말하면 인간에게는 반응할 수 있는 능력(ability to respond)이 있다는 전제 하에 "결신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예" 혹은 "아니오"라고 대답할 수 있는 능력(ability to say "yes" or "no"),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ability to think and judge), 반응할 수 있는 능력(ability to respond), 결단할 수 있는 능력(ability to decide), 고백할 수 있는 능력(ability to confess)이 있다고 보는 것을 침례교회에서는 "종교문제에 있어서의 영혼의 유능성"(The Competence of the Soul in Religion)이라고 부른다. 비록 인간이 전적으로 타락하여 스스로를 구원할 수는 없지만, 성령께서 감동을 주실 때 복음과 그리스도 앞에서 인간은 최소한 긍정적으로 반응하여 결단할 수 있을 만큼은 "유능하다"(competent)는 것이다.

사도행전 15장에는 잃어버린 것에 대한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세 번째 이야기가 소위 말하는 "탕자의 비유"(Parable of Prodigal Son)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가 죽은 것으로 치고) 자기에게 돌아올 상속재산을 미리 가불받아, 아버지와 집과 고향을 떠나 먼 나라에 가서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탕진하였다. 그 나라에 큰 흉년이 들어 심히 궁핍하였는데, 돼지들이 먹는 쥐엄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했지만 그것마저 주는 자가 없었다. 둘째 아들은 유대인들이 불결하게 여겨 경원시 하던 돼지의 처지에까지 추락하게 되었고 끼니조차 때울 수 없어 비참하게 굶주리게 되었다. 그에게는 자연히 아버지와 아버지 집이 생각이 났을 것이다. 하인들까지도 아버지의 보살핌을 받으며 배불리 먹고 있는 모습이 떠올랐을 것이다. 이야기 속에는 묘사되어 있지 않지만 성령께서 비참한 처지에 떨어진 그를 책망하시며 깨우쳐 주셨을 것이다.

이 때 등장하는 표현이 "이에 스스로 돌이켜"(눅 15:17)라는 문장이다. 이 표현은 개역한글 성경과 개역개정 성경에서 사용되었는데, 마치 회개(돌이키는 것)를 의미하는 듯하게 번역되어 있다. 표준새번역에서는 "그제서야 그는 제 정신이 들어서"라고 번역했고, 공동번역 성경에서는 "그제야 제 정신이 든 그는"이라고 하였다. 킹제임스역 성경(KJV)에서는 "And when he came to himself"라고 번역했고, 새국제역 성경(NIV)에서는 "When he came to his senses"라고 번역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탕자 그가 돌이켰다는 것이다. 탕자 그가 제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20절에서는 "이에 (그 둘째 아들은-필자 주)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라고 표현되었다. "스스로 돌이킨" 것도, "제 정신을 차린" 것도,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간" 것도 그 둘째 아들이다. 결국 회개(돌이키는 것)와 믿음(아버지를 향해 첫 발을 내딛는 것)의 주체는 둘째 아들이었던 것이다.

서론 부분에서 필자는 날 때부터 맹인되었던 자가 예수님을 만난 후에 했던 두 가지 진술들에 관해서 살펴보았다.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요 9:36) - 이것은 자신의 바람을 진술한 것이지만 신앙고백이라고는 볼 수 없다. "주여 내가 믿나이다"(요 9:38) - 이것은 자신의 입으로 시인한 신앙고백적 진술이다. 전자와 후자 사이에 "영적인 도약"(spiritual leaping)이 존재하는데, 후자와 같은 신앙고백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당연히 성령의 역사하심이 있어야 한다. "주님, 제가 믿습니다"라는 고백이 믿음이고, 믿음의 진술, 즉 신앙고백이다.

한 죄인을 구원시키는 사역은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지만 동시에 회개하고 믿는 것은 죄인의 몫인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 것이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에 긍정적으로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다. 그래서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으로" 받는 것이다. 여기서 믿음은 회개를 동반하는 믿음을 가리킨다. 진정한 회개가 없는 믿음은 "구원하는 믿음"(saving faith)이라고 볼 수 없다. 예수님도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눅 3:8)고 말씀하셨다. 불신앙의 자아와 죄악된 삶으로부터 돌이키고(회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의지적으로 달려나가는(믿음) 결단이 바로 구원받는 길인 것이다. 필자는 구원에 관한 다음의 정의를 좋아 한다. "구원은 하나님에 의해 주어지는 전적인 공짜 선물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인간에 의해 의지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선물이다"(Salvation is an absolutely free gift from God, but which is to be wilfully received by man).

하나님께서 2000년 전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구원의 선물(Gift of Salvation)을 마련해 놓으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든 죄인들에게 구원잔치에 참석하도록 초대장을 발부하셨다. 초대장을 받았지만 그것을 등한히 여기거나 무시하거나 초대받기를 거부하는 죄인은 구원잔치에 참석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불뱁티즘(Fire Baptism)을 받고 영원토록 뜨거운 지옥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 초대장을 받아들고 감사 감격하는 마음으로 예수님께 달려오는 자는 성령뱁티즘(Spirit Baptism)을 받은 자이고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풍성한 구원잔치에 참석하게 될 특권을 얻은 자이다. 물론 이 때 궁극적으로 그에게 책망과 깨우침을 주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이시다.

(히 2:3-4),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such a great salvation)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

(계 19:9-10)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에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언을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언은 예언의 영이라' 하더라."

(요 3:16, 3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끝)

이인기 ihnklee@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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