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신학의 선구자로 꼽히는 죽재 서남동 목사(1918~1984)가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는 가운데 10일 오후 서울 신촌 연세대학교 원두우신학관 예배실에서는 제58회 연세신학 공개학술강좌 '죽재 서남동 목사 탄생 100주년 기념 학술 심포지엄'(아래 심포지엄)이 열렸다.
연세대학교 신과대학·연합신학대학원과 서남동목사탄생100주년기념사업회(아래 서남동기념사업회)가 공동 주최한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 군사독재 시절 정립된 서남동 목사의 신학사상이 오늘날 새로운 상황에서 새롭게 이해되고 적용될 수 있는지를 두고 논의가 이뤄졌다.
서남동기념사업회 고문을 맡고 있는 서광선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인사말을 통해 "병상의 서남동 목사가 내 손을 꼭 잡고 '민중신학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서 목사는 연세대 캠퍼스를 사랑했는데, 연세대가 다시 수 십년 만에 서 목사를 이렇게 환영해 준데 대해 감사드린다"는 뜻을 전했다.
연세대 신과대학 권수영 학장은 서 목사가 '서구 신학의 안테나'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면서 "가장 창의적이고 실천적 신학을 했던 신학자이자 목회자"라고 평했다.
심포지엄은 권진관 성공회대 은퇴교수, 볼커 쿠스터 마인츠대 교수, 연세대 손호현 교수(조직문화신학)의 주제 강연과 광주대 김순흥 박사, 이화여대 최순양 박사, 전주화평교회 이영재 목사의 논찬으로 꾸며졌다. 주제 강연에 나선 세 교수는 서 목사의 신학 가운데 '이야기'를 집중 조명했다.
권진관 교수는 "죽재(서남동 목사의 호 - 글쓴이)에게 이야기는 주로 민담이다. 그러나 한국 민중 고유의 이야기인 민담만이 이야기의 범주에 속한 것은 아니다. 예수의 이야기, 출애굽의 이야기 등 성서의 이야기도 여기에 속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 전래 민담 속에서 십자가의 이야기가 스며 있다고 주장했다. <심청전>이 그 한 예다. 권 교수는 <심청전>과 메시아 사상이 만난다고 적는다.
"심청은 쌀 삼백석이 아니라, 목숨을 내놓아야 민중 심학규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이념 공동체의 심청 살해' 사건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오히려 심청은 고난받는 민중을 위한 메시아였다. 평온하게 보이는 현실은 모순과 차별의 현실이었으며 공양미 삼백석이 상징하는 물질로 해결할 수 없는 강고하고도 무서운 현실이다. 메시아 심청은 이것을 느꼈다."
김순흥 박사는 이어진 논찬에서 "광주5.18 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의 발포 명령을 거부했던 안병하 치안감, 여순 투입에 맞선 14연대 등 한국 현대사에서 있었던 의사, 열사의 죽음도 심청의 죽음과 같은 맥락에서 해석이 가능하다"고 풀이했다.
현실과 허구 간극, 서남동에겐 중요치 않아
볼커 쿠스터 교수는 이야기 속 허구와 현실 사이의 간극에 주목했다. 서 목사에게 허구와 현실 사이의 간극은 중요하지 않다는 게 쿠스터 교수의 설명이다. 쿠스터 교수의 말이다.
"실재 일어났던 이야기나 동시대 문학작품을 고려할 때 질문해 볼 수 있는 건 '허구'와 현실 간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을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서남동에게는 이 차이가 절대적으로 없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민중의 한을 증거하고 있는 증거자료로 선택된 것으로 보인다. 방법론적으로 사회적 분석과 문학작품의 사회학을 충분히 고려하고 있는 듯 하다."
마지막 강연에 나선 손호현 교수는 미래 민중신학의 단초를 '민중신론', ‘민중예술론', '민중성서해석학' 등 세 측면에서 찾는다. 특히 손 교수는 '민중이 하나님 자신'이라는 의미의 '민중 데우스'(Minjung Deus)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손 교수가 탐색한 민중신론은 이렇다.
"이제까지 민중신학이 '민중 예수'에 대한 기독론적 통찰을 발전시켰다면, 우리는 앞으로 민중으로 존재하는 하나님, 곧 '민중 데우스'라는 민중신론도 탐색하고자 한다. 우리는 민중이 하나님의 뜻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존재 방식이라고 본다. 다시 말해 민중은 집단의 개념이 아니라 사건의 개념, 곧 가난의 초월성이 역사적으로 현상하는 신비의 사건인 것이다. 이러한 가난의 초월성이 무시될 때 민중은 집단적 대중으로 전락하게 된다. 대중은 경험적 집단이지만, 민중은 오직 사건으로 존재하게 되는 초월성의 신비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민중이고, 그 역도 마찬가지다."
이 같은 민중신론에 대해 전주화평교회 이영재 목사는 "손호현에게 민중은 더 이상 사회경제적 집단이 아니다. 여성이나 장애인이나 성소수자나 난민이나 이주민, 소종파의 종교인, 더 나아가 지식인까지 민중의 범주에 들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이 목사는 더 나아가 "개념의 경계가 이처럼 폭넓게 되면 민중은 더 이상 사회경제적 범주가 아니다. 죽재와 심원에 빗대어 손호현은 단언한다. 민중은 사건으로 현존한다고"라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