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평화와 통일에 관한 선언을 선포하면서 분단체제 안에서 상대방에 대하여 깊고 오랜 증오와 적개심을 품어왔던 일이 우리의 죄임을 하나님과 민족 앞에서 고백한다."
1988년 2월 29일 서울 종로구 연지동 연동교회에서 열린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회가 발표한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 가운데 나온 죄책고백이다.
'88선언'으로 불리는 이 선언은 그야말로 기념비적인 선언이었다. 88선언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이 한국교회의 '선교적 사명'임을 적시했으며, 분단 이후 한국교회가 반공 이념을 부채질하며 남북간 갈등의 골을 깊게 한데 대한 죄책고백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88선언은 한민족의 분단을 "세계 초강대국들의 동서 냉전체제의 대립이 빚은 구조적 죄악의 결과"라고 규정하면서 한국교회가 분단체제 하에서 이중의 죄를 범했다고 고한다.
"우리는 갈라진 조국 때문에 같은 피를 나눈 동족을 미워하고 속이고 살인하고, 그 죄악을 정치와 이념의 이름으로 오히려 정당화하는 이중의 죄를 범하여 왔다. (중략) 이러한 과정에서 한반도는 군사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각 분야에서 외세에 의존하게 되었고, 동서 냉전체제에 편입되고 예속되게 되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민족 예속화 과정에서 민족적 자존심을 포기하고 자주독립 정신을 상실하는 반민족적 죄악을 범하여 온 죄책을 고백한다."
죄책고백은 남쪽의 그리스도인이 저지른 죄악을 고백한 대목에서 절정에 이른다.
"특히 남한의 그리스도인들은 반공 이데올로기를 종교적인 신념처럼 우상화하여 북한 공산정권을 적대시한 나머지 북한 동포들과 우리와 이념을 달리하는 동포들을 저주하기까지 하는 죄를 범했음을 고백한다."
88선언의 모태는 1984년 10월 일본 후지산 동남쪽에 위치한 도잔소(東山莊) YMCA 수련관에서 열린 '도잔소 회의'였다. 도잔소 회의는 한국, 일본, 홍콩, 대만, 필리핀, 북미 등에서 온 55명의 교회 지도자들이 참여해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교회의 역할'을 주제로 한 회의였다. 이 회의는 한반도 평화와 분단 극복은 동북아시아를 비롯한 아시아 전체의 평화와 직결된다는 문제의식의 표현이었다. 또 한국이 안고 있는 모순들을 타파하기 위해선 분단 극복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인식도 수반됐다.
도잔소 회의의 문제의식은 '88선언'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우선 88선언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선교적 과제로 정했고, 자주, 평화, 사상·이념·제도를 초월한 민족 대단결 등을 평화통일 운동 3대 원칙으로 정했다. 그리고 정책과제로 분단 상처 치유를 위한 이산가족 상봉, 상호교류, 경제·문화·예술·종교·스포츠 분야 교류 등을 제시했다.
해 아래 새 것이 없다
이 지점에서 왜 이렇게 88선언을 자세히 언급하는지, 그 이유를 밝혀야겠다. 남쪽의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9월 역사적인 '9.19평양공동선언'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산가족 문제 해결이나 문화 및 예술 분야 교류에 관련된 항목들은 88선언을 빼닮은 듯 하다. 비단 민간교류 수준만 아니다. 가장 시급한 현안인 '핵' 문제에 대해서도 '88선언'은 선구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88선언과 9.19평양공동선언 중 핵을 언급한 대목을 살펴보자.
"한반도 비핵화 : 핵무기는 어떠한 경우에도 사용되어서는 안 되며, 남북한 양측은 한반도에서 핵무기의 사용 가능성 자체를 원천적으로 막아야 한다. 따라서 한반도에 배치되었거니 한반도를 겨냥하고 있는 모든 핵무기는 철거되어야 한다."
- 88선언
"남과 북은 한반도를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나가야 하며 이를 위해 필요한 실질적인 진전을 조속히 이루어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하였다."
- 9.19평양공동선언
88선언과 9.19평양공동선언 사이엔 30년의 간극이 존재한다. 핵문제와 관련해서는 북한 핵은 88선언 당시 보다 훨씬 고도화된 상황이다. 그러나 '핵무기 없는 한반도'라는 기본 정신만큼은 놀랄 만치 일치한다. 흡사 88선언이 9.19선언에 영감을 제공한 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사실 88선언이 나왔을 당시 노태우 정부는 처음엔 이 선언을 불편하게 여겼다고 한다. 그러나 88선언이 나온 지 5개월 남짓 지난 7월 7일 노태우 대통령은 '7.7 선언'을 발표한다. 이 과정에 대해 88선언에 참여한 바 있는 서광선 이화여대 명예교수(본지 회장)는 자신의 회고록 <거기 너 있었는가, 그때에>에서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노태우 대통령이 1988년 7월 7일 대북정책을 발표했다. 놀랍게도 북한과의 적대적 관계를 지양하고 '동반자' 관계로 전환한다는 메시지였다. 그 내용은 놀라울 정도로 '88선언'의 정신을 반영한 것이었다.
(중략)
실제적으로 노태우 정권은 집권 시기 안에 북방정책에 성공했고, 남한과 북한의 유엔 동시가입에 성공한 실적이 있다. 한국교회의 '88선언'을 통한 평화통일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평가하는 것은 지나친 자화자찬일까? 한국교회 일각에서 민간인 통일 논의와 통일 운동에 물꼬를 텄다는 자긍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사실이었다."
88선언을 통한 죄책고백에도 불구, 한국교회는 여전히 죄악된 길에서 발걸음을 돌이킬 줄 모른다. 이제 남북은 서로를 적으로 여겼던 과거로 돌아갈 수 없고, 돌아가서도 안된다. 말하자면 남북화해는 불가역의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말이다.
이 같은 시대 변화에 맞게 한국교회도 달라져야 한다. 무엇보다 보수·반공을 내세운 정치세력에 빌붙어 적개심을 고취하던 지난 날의 죄악에서 발걸음을 돌이켜야 한다. 한반도 통일과 관련, 한국교회는 이미 '88선언'이라는 역사적인 문서를 남긴 바 있다. 한국교회가 발걸음을 돌이켜, 새로이 나아갈 방향은 사실상 정해져 있다. 88선언에 담긴 정신을 오늘에 되살리면 된다.
마침 4일은 10.4남북공동선언 11주년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88선언 30주년이고, 도잔소 회의 34주년이다. 매년 맞이하는 주기이지만, 특히 올해는 남다르다. 남북 화해의 기운이 그 어느 때보다 충만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한다. 부디 한국교회가 88선언의 정신을 오늘에 되살리고, 특히 그때의 죄책고백을 되새기며 죄 악된 발걸음을 돌이키기 바란다. "해 아래 새 것이 없나니"라고 한 전도자의 탄식을 묵상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