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너도 때로는 파블로프의 개들과도 같아서 십자가를 보면 교회라 단정하고 교회라 하면 십자가가 꼭 있어야만 한다고 고집 부린다. 십자가를 달고 있는 교회가 아닌 수많은 곳들을 우리의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는 데도! S교회 주식회사, M교회 주식회사 같은 교회가 아닌 곳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우리는 십자가를 달고 있지 않은 데도 교회보다 더 교회인 곳들도 가끔 볼 수 있는 데도! 바로 지금부터 이야기하려고 하는 한 '카페'가 그렇다.
양수리 산책로 맞은 편 한적한 곳에 위치한 한 카페. 지난 금요일에 작은 일일 찻집을 열었다. 만원짜리 티켓을 200장 팔았다. 그리고 그날의 수익금을 더해 경제적 형편이 녹록치 않은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에게 교복을 선물했다. 이런 후원행사는 이 카페에겐 단발성 이벤트가 아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커피숍이 운영되는 이유 자체가 이러한 기부와 후원을 하기 위함에 있다는 것이다. 모두가 돈벌이에 찌들어 있을 때, 모두가 자기 것 자기 자녀 챙기기 벅찬 우리의 이기적 현실 속에서, 조금은 낯선 사업을 하는 카페를 만났다.
"우리 카페는 분명히 교회는 아닙니다. 하지만 교회의 범위를 넓혀도 된다면 우리는 분명히 사회적 교회이기도 합니다."
이 카페 대표 정인재 목사(이웃사랑실천교회)의 말이다. 이곳은 교회라고 할 모습이 하나도 눈에 띠지 않는다. 여느 카페와 다름없이 아늑한 의자에 몸을 기대고 앉아, 커피 향에 취해, 조용한 음악에 취해, 사랑하는 사람에 취해 한 순간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 십자가는 없다. 하지만 여기는 사회적 교회다.
"우리 시대에 교회는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또 무엇을 해야만 할까 많이 고민했어요. 특히나 우리 시대 교회들의 수많은 문제들을 보면서 교회가 있어야만 하는 이유 자체에 대해서 회의감이 들기도 했지요."
정인재 목사는 고민이 많았다. 대형교회를 보면서 안타깝기도 했다. 그와 동시에 교회들이 카페를 운영하는 모습들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해보았다. 고민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교회는 사회를 향해 그리고 사회는 교회를 향해 서로를 개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바로 그러한 공간이 사회이자 교회인 사회적 교회로서의 카페였다.
"교회는 언제나 힘이 있었어요. 마음만 먹으면 사회를 향해 진정한 교회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죠. 그런데 그것이 잘 안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누구나 살아가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는 것인데, 교회는 그 돈이 있잖아요. 그런데 교회들이 조금은 그 돈을 잘 흘려보내는 것에 서툰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는 사람들에게 기부 혹은 후원을 받아서 그 돈을 카페를 차릴 수 있는 보증금으로 이용하고 카페는 이윤을 남겨서 어려운 이웃에게 그 돈을 흘려 보내드립니다."
여기까지 듣고 나니 의문들이 쏟아졌다. 가장 먼저 든 의문은 사회적 교회에 후원하는 것과 후원단체에 직접 기부하는 것의 차이에 관한 것이었다. "후원단체에 직접 기부를 하는 것도 분명 의미 있는 일이에요. 그러나 후원단체에 기부를 하면 실제로 어려운 이웃에게 그 금액이 100% 전달될 수 없는 구조에요. 후원 자체에 기회비용이 다시 붙는 것이죠. 하지만 저희가 하는 기부 구조는 그와는 다릅니다. 저희는 후원자의 기부금액을 보증금으로 온전히 보존합니다. 그리고 사회 내에서 커피라는 상품을 통해 경쟁하며 이윤을 창출합니다. 그리고 그 이윤 전액을 사회에 환원합니다. 이것이 가장 큰 차이일 거에요. 그리고 기부자는 필요하다면 기부금액을 다시 돌려받을 수도 있겠지요. 그 돈은 보증금으로 보존되어 있으니까요."
"커피숍이 망하면 어떻게 합니까?" 급한 마음에 무심코 내뱉은 말이었다. "사업에는 언제나 리스크가 따릅니다. 저는 이런 저런 사업을 해왔고, 그런 위험성을 인지 못하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하지만 보통 사업체들은 자신들이 만족할 만큼 소비할 충분한 돈을 벌지 못하면 사업에 실패했다고 생각하는데 저희는 그렇지 않아요. 이미 저는 저의 인간적인 욕심을 내려놓았습니다. 저의 아내도 그렇고요. 이곳은 사회적 교회입니다. 이곳이 실패하면 제가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이웃을 나름대로 도우려고 하는 그런 실험 자체가 실패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목사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모든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그래서 커피의 질과 좋은 카페의 분위기, 기타 다른 모든 것들을 동원해서 사회에서 경쟁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카페가 성공한다면 그 성공은 우리 이웃들의 성공이 될 것입니다."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이 카페는 분명 실패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만일 이 카페가 실패한다면 그것은 정인재 목사의 실패가 아니다. 그것은 가난한 이웃들의 실패다. 마치 가족의 구성원들이 서로의 성공과 실패를 공유하는 것과 유사하다고나 할까? 문득 말씀 한 구절이 생각난다. "예수께서 아직도 무리에게 말씀하고 계실 때,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와 말을 하겠다고 바깥에 서 있었을"(마 12:46) 때 예수께서 하셨던 그 말씀! "누가 나의 어머니이며, 누가 나의 형제들이냐?"그리고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키고서 말씀하시길 "보아라, 나의 어머니와 나의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마 12:48-50) 이 카페는 가난한 이웃들의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
그런데 다시 의문이 들었다. "교회가, 사회적 교회 카페 어반을 통해, 그리고 앞으로 사업이 활발해지면 분점 될 여러 사회적 교회 카페들을 통해, 자신들이 가진 것을 사회에 흘려보내는 것은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사회는 카페를 통해 무엇을 교회에 흘려보내지요? 한 마디로 사회적 교회는 교회를 위해 무엇을 해줍니까?"
교회는 지금 아프다. 돈은 있을지언정, 물론 그 돈도 부족한 교회가 태반이지만, 교회는 분명 여기저기 아프다. 성도 분들의 삶도, 성직자들의 삶도, 아픈 교회 안에서는 온전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더욱 듣고 싶었다. 사회적 교회는 교회를 위해서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 정인재 목사의 대답을 듣고는 왠지 모르게 가슴이 뛰었다.
"사업을 하면서 좋은 것은 마음만 먹으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모두가 알바를 쓸 때 우리는 정규직 직원을 쓸 수 있죠. 저와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개인적 욕심을 버리면 참 의미 있고 행복한 일들이 마구 일어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만일 우리가 사역자분들을 직원으로 모신다면 사역자분들은 교회에서 무급으로 사역하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그럼 사역자분들이 눈치봐가며 말씀 전하시겠습니까? 이런 문제는 가톨릭에는 없어요. 조직에서 신부님들의 생계를 책임져주시니까요. 하지만 우리 개신교에서는 아주 고질적인 문제이죠. 물론 우리 카페가 이 문제 전체를 해결할 수는 없어요. 우리는 그저 작은 사회적 교회 카페니까요. 그러나 우리는 좋은 일자리 하나하나를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생계의 무게에 눌려 결국에는 하나님을 섬기기보다는 그저 하나의 직업인으로 전락하는 사역자분들의 슬픈 현실을 문제로 부각시킬 수 있어요. 그것도 그 문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며, 경제적 문제로부터 자유롭게 목회를 하시는 사역자분들의 모델을 직접 만들어가면서 일반 교회들에게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줄 수 있어요. 이러한 작은 성과들이 쌓이다 보면 사역자분들만이 아니라 그분들이 섬기는 성도님들도 당연히 혜택을 보게 될 것입니다. 어떠한 경제적 이익보다도 중요한 신앙인으로서의 혜택을 말이죠. 사역자분들을 도와드리는 것은 이렇게 중요한 것이라고 저는 믿어요. 이것이 바로 카페가 사회가 교회에 흘려보낼 수 있는 재원의 한 종류겠네요."
오랜만에 사랑하는 지인들과 서울을 벗어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여유로웠다. 정인재 목사와 이야기를 마치고 양수리의 아름다운 산책로를 사랑하는 지인들과 함께 걸으며 걷는 내내 교회란 무엇일까를 고민했다. 십자가만 지붕 위에 얹어 놓는다고 교회일까? 교회는 어쨌든 이웃을 위한 곳이다. 교회는 감동을 주는 곳이다. 주님의 사랑 내음이 온 가득 채우고도 남는 곳이다. 눈물 나는 이야기, 아름다운 사람들의 담소가 여기저기 새어나오는 곳이다. 그래서 이토록 멋진 카페와 교회는 잘 어울리는 것인가 보다. 그래서 그토록 십자가 없이도 그 카페는 교회 내음으로 가득한 장소인가 보다.
서울로 돌아오는 내내 맛좋은 커피의 향과, 미처 마저 듣지 못하고 나온 일일찻집 음악의 잔상과, 오랜만에 느껴보는 교회의 온기에 가슴 한 켠이 이처럼 따뜻할 수가 없었다. 그 따뜻한 마음으로, 가슴 깊이, 사회적 교회 카페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 끝에까지 이르러 예수님의 증인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