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에 누운 엄마가 병실 문을 열고 들어온 딸을 보고 반가운지 환하게 웃었다 . “소현아∼!”. 몇달 전까지만 해도 기대할 수 없었던 엄마의 목소리였기에 딸은 눈시울을 붉혔다.
도시빈민운동에 한평생을 바친 허병섭 목사(68, 녹색온배움터 총장)와 함께 의식불명 상태에 있었던 이정진 선생이 얼마 전 의식을 회복해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희망을 전해주고 있다.
이정진 선생은 말하는 것이 아직은 서툴지만 의사소통에는 지장이 없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말을 구사해 요 몇 달간 놀라운 회복력을 보여줬다. 하지만 여전히 팔, 다리를 자유자재로 쓰진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허병섭 목사는 아내 만큼 회복세를 보이지는 못하고 있다. 어깨나 팔, 혹은 허리를 약간이나마 움직일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한때 허병섭 목사 부부는 '무동함구' 증세를 보이며 인근 병원에 입원, 간병인의 도움이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는 신세에 처한 바 있다.
1970년대 초부터 ‘수도권특수지역선교위원회’를 통해 빈민선교운동에 뛰어 든 허 목사는 서울 월곡동의 판자촌 일대에서 사회내 약자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꾸준히 활동해 왔다. 특히 88년에는 목사 신분을 뒤로한 채 공사판 현장에 투신해 미장일을 배우는 등 노동자들과 함께 ‘건축일꾼 두레’라는 공동체를 만들었다.
또 생명·생태 운동의 중요성을 인지한 그는 90년대 초에 들어선 귀농 사업을 통해 자연과 인간이 조화되는 세계를 꿈꿨고, 최근까지 녹색온배움터(구 녹색대) 총장직을 수행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