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젤롯/레자 아슬란/민경식/와이즈베리/정현욱 편집인
독서에도 크로노스가 아닌 카이로스가 분명 존재한다. 정확한 기억이 나지 않지만 몇 년 전 이 책을 사서 전반부를 읽다 포기했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너무 식상했기 때문이다. 신앙의 대상이 아닌 정치적 혁명가로서의 예수 읽기는 진부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목차를 훓어보니 결국 현대 교회가 원래 예수를 망각했으며, 윤색하여 자신들만의 왜곡된 예수를 믿고 있다고 주장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바울에 의해 로마화 된 예수를 현대교회는 '전통'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의 이러한 뻔한 도발은 이미 수많은 학자들의 의해 포기되거나, 변방의 주목받지 못한 이슈로 가라앉아버렸다. 그럼에도 언제나 예수에 대한 도전은 수많은 사람들의 핫 이유가 된다. 특히 보수적 신앙관을 견지한 기독교인들이라면 저자의 도전에 심기가 불편해질 것이 뻔하다. 저자 또한 그러한 결과를 예상했으며, 그렇게 되었다. 출간되지 얼마 되지 않아 이 책은 아마존과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를 쉽게 탈환했다. 또한 순식간에 25개국 언어로 번역되는 기염을 토한다. 그만큼 핫인 이슈이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이 책에 대한 서평과 평을 네 번 정도에 걸쳐 실었고, 인터뷰까지 올렸다고 한다.
어찌 보면 식상한 주제의 책을 왜 다시 집어 들었을까? 발단은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된다. Th.M 신약신학 과정을 밟으면서 신약성경에 영향을 미친 유대 묵시문학을 공부하고 있다. 제2 성정 시기로 알려진 중간기는 구약과 신약의 간극이자, 구약과 신약의 암묵적 연대(連帶)가 담겨 있다. 이 책은 당시 유대적 배경을 주도면밀하게 찾아 나서는 탐색의 여정을 통해 당시 유대인들이 이해했던 메시아로서의 예수를 그려낸다. 그는 현대 교회가 알고 있는 윤색된 메시아(그리스도)는 바울에 의해 로마화 된 예수이며, 본래의 유대인들이 이해했고, 실제의 예수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러한 저자의 주장은 불가피하게 '역사적 예수 논쟁'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고, 제2 성전 문헌들로 알려진 중간기 문헌들에 대한 연구가 뒤따라야 한다. 이 책이 이슈가 되었던 이유는 앞서 언급한 광범위한 문헌 자료와 비평적 성경 해석 등이 따라 주었기 때문이다. 다만 저자가 성서학자가 아닌 종교학자이기에 문헌들에 대한 대략적인 소개 수준에 그치는 점에서 전문가의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이 책은 성경 속의 '역사적 예수'에 대한 고민으로 이끌어줄 뿐 아니라, 야고보를 중심으로 한 유대적 기독교인들과 바울을 중심으로 한 이방인 중심의 기독교의 차이와 변화를 언급한다. 바울 신학 안에서 묵은 논쟁이긴 하지만 일반인들과 다른 전공자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을 줄 수도 있다. 그래서 필자의 최근 관심과 독서의 맥락과 상통하기에 기꺼이 책을 집어 든 것이다. 이제 이 책의 구체적인 이야기 속으로 살짝 들어가 보자.
책은 3부 15장으로 구분되어 있지만 구분은 그리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저자는 젤롯, 즉 '열심'이란 단어에 주목한다. 책은 비록 로마에 맞설 힘도 무기도 없지만 오직 '열심' 하나로 자신의 생명과 삶을 기꺼이 내놓았던 유대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제한다. 예수도 그 많은 열심자 중 한 명인 것이다. 책은 다분히 논쟁적 흐름을 놓지 않지만 글은 비평적 논문이기보다 개요적 평가를 토대로 한 흥미로운 1세기 역사 이야기처럼 꾸며져 있다. 삼백 쪽이나 되는 분량임에도 첫 장에서 마지막 장까지 흐르는 서스펜스는 책을 쉽게 놓지 못하게 한다. 한 때 기독교인이었고, 이란 출신의 종교학자로서 그가 바라본 예수는 어떤 존재일까? '축자영감설과 성서 무오설에 대한 무조건적 믿음'(17쪽)을 가진 보수적 기독교인들에게는 적지 않는 도전을 준다. 하지만, 그의 주장 역시 편협된 주장이라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 자신도 인정하듯 '신약성서 외에서는 인류 역사의 흐름을 영구적으로 바꾸어놓은 이 인물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22쪽)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러한 한계를 인정하면서 당돌하게 신약 성경이 철저하게 예수의 제자들에 의해 덧입혀지고, 윤색된 것으로 주장한다. 제자들이 과연 무엇을 윤색하고 덧입혔을까?
1세기는 폭동의 시대였다. 아니 헬레니즘이 시작된 시기부터 여태껏 팔레스틴은 폭동의 시기였고, 자신의 나라를 되찾기 위한 치열한 '열심'의 시대였다. 나라를 회복하기 위해 수많은 메시아가 등장했고, 죽음을 당했다. 그중 한 명이 바로 예수인 것이다. 로마는 이러한 폭동을 처리하기 위해 마지막 방법을 강구했다. 그것이 바로 A.D 70년에 티토스 장군에 의한 예루살렘 함락이었다. B.C. 586년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함락시킬 때와 A.D 70년의 로마군에 의한 점령은 전혀 성격이 다르다. 다양한 차이가 있지만 근본적인 변화는 예루살렘 성 중심부에 자리한 유대인들의 종교적 상징이었던 성전이 완전히 파괴된 것이다. 예수는 제자들이 자랑스러워하는 헤롯에 의해 지어진 찬란한 예루살렘 성전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마 24:2, 막 13:2, 눅 21:6) 철저히 파괴된다고 했다. 예루살렘 성전의 철저한 파괴는 단순한 유대 공동체의 괴멸을 넘어 성전 중심의 유대교가 랍비 중심 체제로 근본적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29쪽).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바로 철저한 유대인들의 멸망은 메시아로 자처하는 반로마적 혁명세력에 대한 로마의 철저한 응징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초대 기독교는 예수를 정치적 혁명가에서 평화의 메시아로 바꿀 필요가 생긴 것이다. 저자가 보기에 복음서들은 바울을 중심으로 한 디아스포라 유대인과 이방인들의 로마를 향한 변증서이다. 저자가 주장하는 다양한 증거들과 논지의 토대는 바로 '나사렛 예수의 생애와 활동에 대한 복음서 이야기는 전부 기원후 66년에 일어난 유대인들의 반 로마 폭동 이후에 저술되었다는 사실'(28쪽)이다. 4년 후엔 기원후 70년 로마가 예루살렘을 멸망시키려 왔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불가피하게 로마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혁명적이고 정치적인 예수에서 이방인 중심의 평화의 메시아로 각색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저자의 이야기를 잠깐 들어보자.
"이 참혹한 사건으로 유대인들이 받았을 정신적 충격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하느님이 약속해주신 땅에서 쫓겨나 로마 제국의 이방인들 틈에서 나라 없는 백성으로 살게 되자, 2세기의 유대교 랍비들은 로마와 벌인 참담한 전쟁을 야기한 급진적 메시아 민족주의에서 유대교를 서서히, 그리고 의도적으로 분리했다. 유대인 삶의 중심에 있던 성전을 토라가 대신하게 되었고 랍비 유대교가 등장했다"(29쪽).
저자는 이러한 자신의 주장을 위해 다양한 근거들을 제시한다. 이 책의 전반적인 그의 주장들은 친로마화를 위한 윤색이라는 관점에 함몰되어 있다. 몇 가지의 근거를 들어보면 이렇다. 먼저 복음서들의 저작 시기가 기원후 66년 이후라는 점이다. 유대인들의 반로마적 성향이 두드러진 시기에 복음서 저자들은 도래할 로마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친 로마적으로 기록한 것이다. 일반 성경학자들이 네로 황제의 핍박 상태에서 소망을 주기 위해 기록한 것이라는 관점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또한 바울의 제자였던 누가에 의해 기록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반유대적이며, 친 로마적이다. 심지어 그는 누가가 '바울이 죽고 30년이나 40년쯤 지나서 스승에 대한 찬사의 글을 사도행전에 썼다'(266쪽)고 말하기까지 한다.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이 저자는 예수를 직접 본 예루살렘의 제자들과 바울의 신학은 전혀 다르다고 주장한다. 아슬란에 의하면 '바울은 살아있는 예수를 전혀 몰랐'을뿐 아니라 '관심도 없었다'(271쪽). 다메섹 도상에서 만난 부활의 예수는 '누가가 꾸며낸 과장된 이야기'(266쪽)로 치부한다. 바울은 제자들이 서툴게 만든 친 로마적 변증서(공관복음서들을 말함)를 전혀 새로운 관점에서 예수를 재해석하여 문제를 해결한다. 이전의 제자들이 생각하지 못한 '완전히 새로운 교리'(272쪽)를 내세운 것이다. 길지만 아슬란이 말하는 바울의 예수를 직접 인용해 보자.
"바울의 그리스도는 사람과 같은 모습을 했으나, 결코 사람은 아니다(빌 2:7). 시간이 존재하기 전부터 존재한 우주적 존재다. 하느님이 처음으로 창조한 존재이며, 그리스도를 통해 만물이 존재한다(고전 8:6). 그는 하느님이 낳은 아들인데, 육신은 입고 태어난 하느님의 아들이다(롬 8:3). 그는 새로운 아담이다. 흙에서 난 아담이 아니라, 하늘에서 난 아담이다. 그런데 첫 사람 아담이 살아 있는 영이 된 반면, 바울이 '마지막 아담'이라고 부르는 그리스도는 '생명을 주는 영'이 되었다(고전 15:45-47). 간단하게 말하자면, 그리스도는 완전히 새로운 존재이다"(273쪽).
복음서 기자들이 어설프게 변증했다면 바울은 능숙하고 완전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윤색하기에 이른다. 복음서와 바울서신 안에서 일반인들이 감지하지 못하는 긴장이 존재한다. 야고보를 중심으로 한 예루살렘의 제자들과 바울은 초대교회 안에서 권위의 무게가 달랐다. 아슬란은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마친 후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 야고보의 권위에 눌려 어쩔 수 없이 정결의식을 행했다고 주장한다(299쪽). 심지어 사도행전 15장에서 '야고보는 바울이 올바르지 않은 가르침을 전한다는 이유로 그를 공개적으로 망신 주었다'(290쪽)고 말한다. 즉 야고보를 중심으로 예루살렘의 기독교인들이 생각한 예수 그리스도와 바울이 새롭게 만들어낸 예수 그리스도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아슬란은 야고보와 바울이 '대립'(293쪽) 관계로 설정하고, 야고보서가 평가절하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야고보의 지도력이 현저히 떨어진 시기는 기원후 62년 대제사장 아나누스가 그를 처형한 후다(303쪽). 예루살렘 교회는 야고보의 죽음 이후에도 큰 영향력을 발휘했지만 기원후 70년 예루살렘이 완전히 멸망하자 예루살렘과 함께 소멸되고 만다. 이것은 바울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졌다는 것이며, 친 로마적 성향의 바울과 그의 동료들에게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다. 예루살렘의 멸망은 '젤롯 예수와의 고리도, 급기야는 나사렛 예수와의 고리도 끊어'(304쪽)지게 된다. 아슬란은 좀 더 과격하게 예루살렘 멸망 이후의 기독교를 '전적으로 이방인들의 종교'라고 말하며, '유대주의의 편협성에서 벗어난 로마 종교였다'(308쪽)고 주장한다.
"2,000년이 흐른 오늘날, 바울이 만든 그리스도가 역사적 예수를 완전히 집어삼켜버린 셈이다.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제자들을 이끌고 갈릴리를 배회하던 혁명적 젤롯에 대한 기억, 예루살렘 성전 제사장들의 권위에 반발한 매혹적인 설교자에 대한 기억, 로마의 압제에 도전하다 실패한 과격한 민족주의자에 대한 기억은 역사의 뒤편으로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308쪽)
저자는 십자가 죽음 이후의 일어난 혁명당 젤롯당과 '열심'을 가진 초기의 젤롯과 구분한다. 예수는 혁명당이 아닌 '열심'으로서의 젤롯을 가진 자이다.
간략하게 저자의 주장을 비평적으로 생각해 보자. 저자는 이 책이 추론에 의한 것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자료가 희박하기 때문이다. 모든 문제는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극히 미미한 자료들은 보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고, 응용할 수도 있다. 저자는 오직 신약성서 안의 자료들을 분석하며 추론하는 과정에서 철저히 자신만의 관점을 따른다. 예를 들어 최근의 학자들이 예수님의 어록(Q자료)의 존재 여부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에 반해 저자는 그것을 거의 확신하며 말한다. 저자는 서두에서 직접 '예수 이야기의 대체적인 줄거리를 짜는 데 내가 주로 마가복음과 Q자료에 의존한다'(19쪽)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추론은 상당한 흥미를 끈다. 먼저는 신약 배경사와 유대 역사에 무지한 일반 기독교인들에게 저자의 주장은 예리한 칼날처럼 무섭게 다가온다. 그의 신학적 지식과 중간기 유대 문헌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식, 복음서에 대한 저자의 일정 기준 이상의 지식은 쉽게 논쟁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에서 일반 독자들은 저자의 신학적 능력에 호감을 품게 될 수 있고, 전문가들은 저자의 주장에 대한 반론을 정확한 근거를 가지고 제기해야 할 필요가 생긴다. 필자의 호기심을 끌었던 것 중의 하나는 예수의 육신적 남동생인 야고보가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해 '글을 모르는 시골뜨기'(293쪽)라는 부분이다. 어떤 근거에서 말하는지 모르지만, 나사렛이 가난한 자들이며, 당시 문맹률이 97%(76쪽)가 넘었다는 이유로 글도 모르는 시골뜨기라고 말하는 자신감은 어디서 온 것일까? 동일한 갈릴리 어부였던 제자들이 편지(베드로와 요한 등)를 쓴 것도 얼토당토않은 것일까? 또 하나의 의아함은 아슬란은 다소 출신의 사울, 즉 바울을 '진정한 젤롯'(248쪽)으로 소개하면서 갑자기 예수를 실제로 본 제자들과 대립하게 된 이유는 모호하게 넘어간다.
마지막으로 치명적인 약점이 보인다. 예수를 '젤롯(열심)'으로 보면서도 폭력을 사용한 젤롯당과 구분한다. 그런데 마지막 예수의 죽음은 '유대인의 왕'이란 죄목이다. 즉 반란죄로 인한 로마의 처형법으로 제시한다. 그 근거를 강도로 번역한 헬라어 '레스테스(λῃστής)'에 둔다. 아슬란은 레스테스가 일반적인 도둑이나 강도가 아니라 '로마에서 봉기나 반란을 일으킨 사람을 가리키는 가장 일반적인 용어'(27쪽)라고 말한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달린 두 강도(λῃστής)들도 반란자들이었다. 로마법에 따라 반란자들은 십자가형을 구형한다. '유대인의 왕'이란 죄패는 그것이 로마 군인들의 조롱이 아니라 정당한 죄목이라 말한다. 아슬란은 비정치적이고 세계에 관심 없는 예수의 초상은 '완전한 날조'(185쪽)라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는 성경의 표현(마 10:34, 눅 12:51)만으로 예수를 혁명가로 평가할 수 있을까? 아슬란은 아이러니하게 '예수는 인격화된 하나님의 나라'(193쪽)라고 지적하지만, 혁명적으로 보기에는 어색하다.
또한 예수의 나라(하나님의 나라)가 철저하게 '이 세상에 속한 나라'(217쪽)였다고 말한다. 그 근거를 유대 묵시 문학에 나타난 '인자'의 용어에서 찾아온다. 그의 논리는 '예수의 죽음 훨씬 뒤에 저술된 제1에녹서나 제4에스라서에 드러나는 묵시적 표상이 훗날 기독교 운동을 이어간 사람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 주었다'(217쪽)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인자의 개념은 기원후가 아닌 기원전 30년 이전에 기록된 제2에녹서에도 동일하게 '인자'가 등장한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인자' 개념이 1세기 중반에 확연하게 드러났지만 쿰란 공동체와 같은 일부의 집단에서는 이미 사용되고 있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근거를 볼 때 저자의 주장은 때로는 편협하고, 때로는 왜곡되었다.
성경 신학자가 쓴 책이 아니라 종교학자의 눈으로 바라본 역사적 예수에 대한 생각이다. 그렇기 때문에 포괄적이고 다양한 의미에서 예수의 존재를 살피도록 촉구한다. 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그의 논리는 모호하거나, 비약되었고, 왜곡되었다. 이 책은 저자의 주장을 굳이 따라갈 필요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가 주장한 다양한 주제에 대한 연구를 촉구하도록 도발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유용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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