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똑...목사님. 안녕하세요. 배고픈데 끼니 좀 떼울 수 있게 돈 있으면 얼마라도 좀 주시면 안될까요?"
통유리로 되어 있는 목회자실에 앉아 업무를 보고 있는 권영종 목사(이수교회)에게 행색이 초라해 보이는 한 남성이 문을 두드리며 말을 걸어왔다. 헝클어진 머리, 낡아빠진 신발에 때 묻은 점퍼를 걸치고 서 있는 이 남성에게 잠시 눈길을 주던 권 목사는 이내 "미안한데 제가 돈은 없습니다. 대신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 줄 수 있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당신을 위해 안수 기도를 해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라고 답했다.
실망한 빛이 역력한 이 남성은 돌아서려다가 추운 날씨에 몸이라도 녹일까 하여 목회자실 문을 열고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권 목사는 재빨리 따뜻한 차를 내왔다. 이 남성과 얼굴을 마주하고 앉으며 권 목사는 물었다. "많이 힘드셨죠? 과거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이 노숙인은 목사의 요청에 선뜻 응하지 못했다. 노숙인들 사이에서는 불문율로 여기는 '자신의 과거'를 입 밖에 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권 목사의 거듭된 요청 끝에 결국 입을 열었다.
목사에게 자신의 기구한 과거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 노숙인의 눈에 언제부턴가 눈물이 맺혔고 이내 그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두시간 남짓 이야기를 듣고 있던 권 목사는 "안수기도를 해주겠다"며 노숙인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이어 그를 위로하고 축복하는 기도를 시작하니 기도를 받던 노숙인이 소리를 내면서 울기를 그치지 않았다. 기도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음을 추스린 노숙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고 나가려 하자 권 목사는 "잠깐만 기다려 보라"며 서랍을 열었다. 그는 서랍에서 만원짜리 한 장을 꺼내 노숙인의 손에 쥐어주면서 말했다. "다음에 또 오세요"
권영종 목사가 노숙인 사역을 시작한 지는 벌써 10년. 권 목사가 처음부터 노숙인 사역을 계획했던 것은 아니다. 노숙인들이 제 발로 교회를 찾아오면서 자연스럽게 진행되었을 뿐이다. 준비된 사역이라기 보다는 우발적인 사역에 가까웠다. 안병무, 서남동 등 민중 신학자들에게 영향을 받은 그는 기성 교회 현장에 몸을 담고 있으면서도 내면에서는 민중 목회의 꿈을 품고 목회 현장에서 민중과 동화되어 민중과 함께 울고 웃는 목회를 지향해 왔다. 하여 권 목사는 젊은시절 노동자,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 가출 청소년 등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하며 그들의 실질적 인권 개선에 힘썼고, 자칫 구전으로 전승되다 사라질 것을 염려해 민중교회 역사를 정리, 집필하는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최근 10년은 노숙인 사역 등에 전념했다. 물론 특수목회가 아닌 보통교회 목회자 신분으로 말이다.
권 목사는 "이들 노숙자들은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며 "목사실로 와서 자기 얘기를 하는 노숙인들은 세번 울고 간다. 자기 얘기를 하며 울고, 기도를 해줄 때 울고, 만원짜리 한장 손에 쥐어줄 때 운다"고 말했다. 권 목사의 따뜻한 배려에 그중에는 3번 이상을 찾아오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면 권 목사는 이들 중에서 복음을 접할 만하고 자립 의지가 강한 이들에게 새벽기도회를 권했고, 새벽기도회에 참석해 신앙생활을 하려는 의지가 있는 이들에 한해서 노숙인 제자훈련 과정에 참여시켰다.
권 목사는 현재 12명의 노숙인을 제자훈련 중이다. 권 목사는 매주 토요일마다 자신의 후배가 시무하는 수도교회 예배당에서 노숙인을 위한 예배를 드린다. 이 예배에 제자훈련을 받는 노숙인들은 '임마누엘 성가대'라는 이름으로 찬양하는 순서를 맡고 있다. 권 목사에게는 소박한 꿈이 하나 있다. 이들 노숙인들을 복음으로 변화시켜 노숙인 선교의 일꾼으로 세우는 것이다. 상처받은 치유자(Wounded Healer)라고 했던가? 상처 입은 자들을 치유할 수 있는 주체가 상처 입은 사람이라면 마땅히 노숙인이 주체가 되어야 할 일이라는 게 권 목사의 생각이다.
노숙인을 꺼리는 교회 통념상 시무 중인 교회로부터 적극적인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다행히 권 목사의 뜻과 비전을 함께 나누는 후원자들이 생겨났고 이에 힘입어서 노숙인이 제2의 인생을 준비할 수 있도록 생활 환경 개선을 위해 한달에 30만원씩 하는 주거공간(고시원)을 마련해 주었다. 단 지원 기간을 정해놓았으며 고시원비 지원도 절반으로 제한했다. 고시원비 반은 노숙인의 몫이었다.
노숙인 사역의 특성상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 같은 우여곡절도 많았다. 제자훈련을 받던 이들 중 일부가 갑작스럽게 종적을 감추고 연락이 두절되는 일도 많았다. 그때마다 길 잃은 어린양을 찾는 목자의 심정을 떠올렸으며 십자가를 목전에 두고 배반의 아픔을 겪은 주님의 고통을 묵상하기도 했다.
권 목사는 요즘 일반인과 노숙인 사이의 보이지 않는 경계를 허무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먼저 12명의 노숙인과 후원자가 그 대상이었다. 이들 사이 그 경계를 허물기 위해 권 목사는 후원자들이 노숙인의 고시원을 직접 심방할 수 있도록 했다. 처음에는 서먹서먹해 정적이 흐르는 일이 잦았다. 하지만 심방 횟수가 거듭되면서 비가시적인 경계가 드러났고 또 그 경계를 허물고 새롭게 관계가 구축되는 광경이 벌어졌다.
권 목사는 "어느 순간 후원자들이 노숙인의 고시원을 방문했을 때 먹을 것을 사들고 가는 것은 물론 빨래까지 다 해주고 나오는 것을 보았다"면서 "후원자와 노숙인 사이의 마음의 벽이 무너지니 어느 한 쪽이 쿡 찌르면 눈물이 나는 애틋한 관계가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어떤 이들은 '후원했으면 되었지 심방까지 해야 하느냐'고 불만을 터뜨리는 분도 있다"면서 "그것은 후원자가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길거리에서 눈길 한번 받지 못하는 신세였던 노숙인 역시 일반인 후원자의 돌봄 속에서 받은 사랑을 나누는 존재로 변화되기 시작했다.
자기의 시간과 돈을 나누면서 노숙인 선교를 위해 10년의 세월 힘써온 권영종 목사의 사역은 교회의 외적 성장에 집착하는 통속적인 교회 사역의 모습과는 분명히 달라 보였다. 노숙인을 위한답시고 노숙인을 자신의 특정 목적을 위해 수단으로 이용하려 들지 않았다. 대가 없이 도왔고 어떠한 조건도 달지 않았다. 다만 노숙인이 복음 안에서 건강한 이웃이자 형제로 설 수 있게 끊임없이 그들의 곁을 지켜주며 위로해줄 뿐이었다. 다르게 목회하기로 한 권 목사는 오늘도 노숙인의 친구로 울고 웃으며 조용히 사역의 열매를 맺어가고 있다. 하루하루 커피값을 아껴 서랍에 넣어둔다는 권 목사는 오늘도 어쩌면 찾아올 줄 모르는 노숙인을 위해 서랍을 만지작 거린다. 하루에 많게는 다섯명이 오갈 때도 있단다.
권 목사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난 며칠 뒤 필자는 여느때처럼 지하철을 타고 귀갓길에 올랐다. 오후 9시쯤 신도림 역에서 필자와 함께 올라탄 한 남성이 내 옆을 스쳐지나가자 진풍경이 벌어졌다. 그 남성이 지나는 길이 마치 홍해가 갈라지는 듯 했다. 쥐가 파먹었는지 뜯어진 소매가 인상적인 검정 점퍼를 걸쳐 입은 이 남성. 한 눈에 봐도 노숙인이었다. 사람들은 그와 가까이 하기가 싫었는지 앞다퉈 자리를 피했다. 악취가 코를 찌르자 어떤 여성은 코를 막으면서 다른 칸으로 넘어갔다. 환대받지 못하는 노숙인의 현주소를 보여준 장소였다. 또 노숙인을 그야말로 상대로 마주하는 것이 실제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를 실감케 하는 광경이었다. 일반인에게 노숙인은 그저 상대하고 싶지 않은 대상에 불과했다. 노숙인과 마주 앉아 경청하고 품어 살갗을 맞대는 행위는 여간한 이타심으로 실천하기 어려운 경지로 보였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마태복음25: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