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에서 보수 개신교의 정치 개입은 새삼스럽지 않다. 그럼에도 그 일단이 드러날 때 마다 경악스럽다.
20일 오후 MBC 탐사 보도 프로그램 <스트레이트>는 '목사님은 유세 중' 꼭지를 통해 보수 개신교의 물밑 선거운동 실태를 고발했다. (<스트레이트>는 52분 분량의 방송 시간 동안 대게 두 편의 주제를 다룬다)
방송은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담임목사와 사랑하는교회 변승우 목사의 설교 내용을 집중 고발했다.
설교자는 성서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한다. 이게 설교자의 의무다. 그러나 전 목사와 변 목사의 설교는 하나님 말씀인지 선동구호인지 헷갈릴 정도로 정치적 색채가 짙다.
문제는 두 사람의 설교가 실정법 위반이라는 점이다. 공직선거법(85조 3항)은 "누구든지 교육적·종교적 또는 직업적인 기관·단체 등의 조직 내에서의 직무상 행위를 이용하여 그 구성원에 대하여 선거운동을 하거나 하게 하거나, 계열화나 하도급 등 거래상 특수한 지위를 이용하여 기업조직·기업체 또는 그 구성원에 대하여 선거운동을 하거나 하게 할 수 없다"고 못 박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법조항은 현실에서 종종 무시되기 일쑤다. 교회는 선거철만 되면 공공연히 특정 후보 혹은 특정 정당 지지를 호소했다. 단순히 호소만 하는 게 아니다. 경우에 따라선 적극적으로 현실 정치에 개입하곤 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2017년 대선에서 보수 개신교계가 당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를 지지한 일이다.
이 같은 행태는 4.3 창원성산 보궐선거에서도 똑같이 되풀이 됐다. 이 선거구에 출마한 강기윤 자유한국당 후보는 창원 세광교회 출석 교인이었고, 이에 담임목사와 장로는 설교와 기도를 통해 공공연히 강 후보 지지를 호소했다.
교회의 정치개입은 선거 국면에만 이뤄지지 않는다. 교회에 이익이 될 법한 법안 통과엔 적극 압력을 행사하는가 하면, 차별금지법 등 반대하는 법안은 통과를 막아선다. 차별금지법 입법 논의는 이미 10년 전부터 있어왔다. 그러나 보수 개신교계의 집단행동으로 번번이 무산된 채 표류 중이다.
보수 개신교의 정치 지향은 이단을 정통으로 되돌릴 만큼 강력하다. <스트레이트>가 고발한 변승우 목사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통합·고신·합신·백석대신과 기독교대한감리회·기독교대한성결교회·예수교대한성결교회 등 8개 교단이 이단성을 지적한 인물이다.
그러나 전광훈 목사가 한기총 대표회장에 취임하면서 변 목사를 이단 해제했다. 변 목사는 자주 극우 집회에 나와 문재인 정부에 날을 세웠다. 전 목사도 공공연히 문 대통령을 향해 '간첩'으로 규정하는 등 거친 언사를 내뱉었다. 말하자면 반문재인 정서에서 전 목사와 변 목사는 한 줄기인 셈이다. 전 목사가 변 목사를 이단해제한 건 이 같은 배경이 아니고서는 잘 설명이 되지 않는다.
'구세주' 황교안 맞이한 보수 개신교
교회를 다니지 않는 일반 시청자라면 보수 개신교의 정치적 행태가 생소할지 모른다. 그러나 보수 개신교는 보수 정파와 거의 한 몸처럼 움직여왔다. 이런 보수 개신교에게 기독교대한침례회 협동전도사 시무경력의 소유자인 황교안이 자유한국당 대표로 등극한 건 구세주의 등장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황 대표도 보수 개신교에 적극 구애하는 모습을 보였다. 황 대표는 자유한국당 전당대회 직후인 3월 한기총을 찾았고, 대표회장인 전광훈 목사를 비롯한 한기총 지도부는 융숭히 대접했다.
전 대표회장은 "일찍이 하나님께서 준비해주셔서 자유한국당 대표로 세워주셨고 이 행진이 어디까지 갈지 모르겠지만,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을 잇는 세 번째 대통령이 됐으면 하는 욕심이 있다"고 황 대표를 추켜세웠다. 그러면서 "(내년 총선에서) 200석을 못하면 저는 개인적으로 이 국가가 해체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갖는다"고 덧붙였다.
이뿐만 아니다. 길자연 목사는 "어차피 (자유한국당) 대표가 되셨으면 그 다음은 정권인수를 해야되지 않겠나"고 했다. 이용규 목사도 통영 보궐선거, 내년 총선거, 차기 대선을 언급하며 "모든 문제에 놀라운 승리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실로 낯 뜨거운 장면이다.
전 목사는 자신이 시무하는 사랑제일교회 설교에서 황 대표를 장로로 지칭하며 황 대표가 집권하면 자신에게 장관직을 제의했다고 말했다. 전 목사의 말은 이랬다.
"근데 (황교안) 장로님이 엉뚱하게 나한테 이런 질문을 해요. (황교안 대표가) '목사님, 혹시 내가 대통령하면 목사님도 장관 한번 하실래요?' 내가 장관 갖다가 하려고 내가 이런 줄 알어? 시시한 장관 같은 거 국회의원 같은 거 그런 거 내가 왜 하냐 말이야. 나는 만드는 일만 하지 나는 그런 짓은 안 해요."
그러나 전 목사는 <스트레이트> 양윤경 기자에게 자신의 발언을 부인했다. 황 대표도 해명을 피했다. 발언의 진위 여부는 좀 더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보수 개신교와 보수 정치세력의 공생관계를 감안해 본다면 충분히 오갈 수 있는 말이라는 판단이다.
<스트레이트> 방송을 보니 보수 개신교가 극우로 치닫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공교롭게도 자유한국당도 극우로 치닫기는 마찬가지다.
전 목사에게 당부한다. 그리스도교 신자가 천만인지 여부는 명확히 따져 보아야 한다. 가톨릭과 개신교까지 다 감안해 볼 때, 그리스도교 인구를 천만 수준쯤으로 추산은 가능하다.
그러나 전 목사, 그리고 한기총 등이 그리스도교를 대표한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개신교로 시야를 한정해도 전 목사 처럼 극우적 성향이 강한 신도가 있는가 하면, 스펙트럼이 다른 개신교 성도도 엄연히 존재한다.
무엇보다 한기총은 보수 개신교계의 이익집단일 뿐, 전체 개신교를 대표하는 기구는 아니다. 말하자면 전 목사 말 한 마디에 자유한국당에 몰표를 주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리고 황 대표는 장로가 아니라 전도사다.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는 건 자유지만, 지지 하려면 제대로 알고서 지지하기 바란다.
전 목사는 내년 4월 15일 총선을 위해 '빡세게' 기도한다고, 특유의 호기를 부리며 말했다. 깨어 있는 그리스도인에게 당부한다. 악을 이기려면 악보다 더 성실해야 한다.
보수 개신교는 차기 총선·대선에서 보수 정치세력으로 정권교체를 노린다. 이들을 이기기 위해선 깨어 있는 이들이 전 목사와 그 추종세력들 보다 더 '빡세게' 기도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성스러운 강단을 저질 정치선동구호로 더럽히는 거짓 설교자 무리들을 몰아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