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에서의 첫 질문은 "왜 산티아고로 떠났나?"였다. 그래서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의미로 "왜 산티아고에서 돌아왔나?"라는 질문에 답하며 서른세 개의 에세이를 마무리하려 한다. 그런데 막상 질문을 적고 보니 답은 너무도 간단했다. 왜 돌아왔냐고? 왕복 티켓을 끊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답하고 끝낼 수는 없는 법, 방금의 질문에 무게를 실어 볼까 한다.
일상에서 떠나, 다시 일상으로의 복귀는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순례 에세이 중 몇 번 인용하기도 했지만, 신영복 선생님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볼까 한다. 그는 여행의 최종 목적지는 결국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이라며, 궁극적 목표는 여행의 마음으로 일상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행은 떠나고 만나고 돌아오는 것입니다. 종착지는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는 것, 변화된 자기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구조는 비단 여행에서만 확인되는 것은 아닙니다. 생각하면 여행만 여행이 아니라 우리의 삶 하루하루가 여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영복, 『담론』, p.324)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여행의 삼박자를 모두 경험했다. 의미를 찾지 못했던 일상에서 떠났고,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현장에서 다양한 생각을 만났으며, 이제 이 모든 만남을 끝내고 일상의 자리로 돌아가려 한다. 여행의 최종 종착지는 의미를 상실했던 다시 그 일상일 텐데, 30일이 넘는 시간 동안 이곳에서 경험한 다양한 자극과 깨달음들이 삶을 바라보는 내 태도에 변화를 가져왔을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많은 청춘이 여행을 떠난다. 나는 개인적으로 여행을 굉장히 권장하는 사람 중 하나이지만, 그렇다고 여행에 대한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여행지의 위험에 대한 것은 아니다. 왠지 갈수록 여행이 그저 소비의 형태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 같기 때문이다. 예전에 몇몇 청춘들과 여행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했던 게 기억난다. "여행이 행복하지 않은데 왜 사람들은 자꾸 여행을 떠나라는 건지 모르겠어요."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행복이 뭔지 알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거 아닐까?
돌아보면 산티아고 순례가 그랬다. 순례의 모든 순간이 눈부시게 화려하거나 찬란한 것은 아니었다. 황홀한 순간은 극히 일부였고 더 많은 시간 외롭고 쓸쓸했으며 잠시 즐겁다가도 다시 갈등을 겪고 후회하기도 했다. 여행지에 도착하면 자신의 눈앞에 잘 차려진 어떤 '행복 식탁'이 있는 게 아니다. 미디어는 일상을 떠나 여행지에 도착하기만 하면 엄청난 즐거움이 있을 거라는 환상을 자꾸만 주입한다.
그럼 여행은 왜 가는 걸까? 사람의 떠나고 싶은 욕구는 과연 어디서부터 오는 걸까? 혹시 그건 떠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게 만드는 내 안의 어떤 조절장치가 말을 건네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떠나고 싶다는 건 삶에서 무료함을 실컷 맛보았다는 말이 될 테고, 이 말은 곧 자기 존재의 의미를 상실했다는 말과 같은 것이 된다. 사람이 자신을 잃은 상태에서 일상을 이어가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수많은 현대인은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만병의 근원이 바로 여기에 있는 건 아닐지 생각해보게 된다.
사람은 의미를 잃은 삶의 반복과 한없는 익숙함 속에선 자신이 누구인지 또 내가 어떤 일을 즐거워하고 어떤 일에 두려움을 느끼는지 알기 어렵다. 편안함은 때로 우리의 몸과 마음을 회복시킨다. 그러나 편안함은 내가 누구인지를 잊게 만든다. 익숙함이 주는 매력이자 덫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행은 하나부터 열까지 불편투성이다. 그 불편함 속에서 각자 안에 있는 가능성과 한계를 경험하는 것이다. 여행은 결코 편하고 즐겁기 위해서'만' 가는 것이 아니다.
산티아고 순례의 모든 순간이 특별했다. 그러나 또 모든 순간이 그리 특별할 게 없었다. 사실 낯선 이국의 사람들과 언어, 건물, 도로, 음식 등에서 오는 신비감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한 달 이상 스페인 북부를 걸으며 마주한 경치는 매우 아름다웠지만, 그것이 주는 매력 또한 그리 길지 않았다. 벅차오르는 감동과 때론 힘들고 지루하게만 느껴지는 이 길을 걸으며 모든 사물과 상황을 낯설게 보는 것은 결국 내 안에 있음을 발견했다. 내가 어떤 태도와 시선을 갖느냐에 따라 심장박동이 변하는 걸 느낀 것이다. 내 마음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보고 느끼냐에 따라 사람과 사물, 상황은 언제든 다시 살아났다. 부활(reborn)은 아주 가까운 곳의 사건이었다.
내게 산티아고는 그런 곳이었다. 물론 파울로 코엘료가 그랬던 것처럼, 산티아고를 다녀온 후 어떤 '제2의 인생'이 시작되진 않았다. 그리고 산타 마리아 성당에 미사를 드리러 온 농부가 경험한 그런 신비체험도 있진 않았다. 그러나 까미노의 일상은 평범한 날들의 비범한 채움이었다. 여행과 마찬가지로 산티아고에는 특별한 보물이 숨겨져 있지 않았다. 반복해서 하는 말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평범한 것을 평범하게 보지 않으려는 시도, 그 노력 안에 있다는 사실이다. 만나는 모든 사람과 꽃과 나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와 환경을 매일 새롭고 낯선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짙은 색안경이 자꾸 우리 눈을 멀지 않게 해야 한다.
또 하나의 하루이자 또 하나의 일상이었던 Camino de Santiago! 존경하는 선생님이 하셨던 말씀이 생각난다. 여행자는 요구하고 순례자는 감사한다는 말! 일상을 순례자의 정신으로 살고자 하는 모든 영혼에 하늘의 축복이 임하길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