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마19:21)
영생을 얻는 방법을 묻고자 예수를 찾아온 부자 청년을 근심하며 돌려보낸 예수의 말씀이다. 예수는 부자 청년에게 자신의 소유를 팔아 소외된 자들에게 나누어 준 뒤 자신을 따를 것을 당부하지만 이 재물 많은 청년은 자신이 누리는 기득권을 포기 못하고 끝내 자기의 길로 돌아가고 만다.
마음나눔 3차 바자회를 성황리에 마친 정인재 목사(사회적교회 담임)는 "오늘날 한국교회가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라는 예수의 명령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회의 3대 기능 중 하나인 '디아코니아'가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헬라어 '디아코니아'는 '자선과 구제'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말로써 주님의 몸 된 교회에서 이뤄지는 '봉사'를 의미한다.
정 목사는 성장주의에 예속된 오늘날 한국교회 현장에서 이러한 '봉사' 기능이 자취를 감추었으며 간혹 있더라도 교회의 성장욕망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기능할 뿐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통속적으로 교회들은 교회 안에서의 나눔 활동을 하고 있기에 교회 밖 나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교회 안에서 성도의 쓸 것을 서로 공급하는 나눔 활동을 진행 중이어서 사역이 중복되고 있다는 논리 때문이다. 정 목사는 그러나 부자 청년의 비유에서 나타난 예수의 가르침처럼 '디아코니아' 활동의 경계를 교회 안과 밖으로 구분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차라리 교회 안에서의 나눔 활동은 성도의 교제에 속하는 교회의 또 다른 기능인 '코이노니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정 목사는 이어 "교회의 안과 밖의 경계 짓기가 '디아코니아'를 곡해하게 만들었다"면서 이러한 경계 짓기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대형교회로 대표되는 통속적인 교회의 성장욕망을 재차 폭로했다. '봉사' 마저도 교회의 지속적 성장을 위한 자기 확장의 수단으로 삼겠다는 소유 욕망, 즉 기득권 의식이 교회 안과 밖의 경계 짓기 이면에 똬리를 틀고 있다는 지적이다.
'나눔'을 복음의 본질이자 그 열매라고 보는 정 목사는 "자기를 배불리는 것이 교회의 역할이 아니라 지역사회 소외된 이웃들의 진정한 벗이 되기 위해 자기를 나누어 주는 것이 참된 교회의 존재 이유"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정 목사는 "교회 밖, 즉 지역사회를 대상으로 한 '나눔' 활동을 낯선 시선으로 바라보는 교회의 현주소에 대해 변질된 복음의 형태인 '번영복음' 폐해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지적도 곁들였다. '번영복음'이 복음 안에 내재된 '나눔'의 가치를 퇴색시키고 나눔 대신 '소유' 욕망의 자리를 깔아 주었다는 주장이다.
번영복음의 영향력 아래 '나눔'은 그저 소유 욕망을 채우기 위한 조건부 '나눔'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졌고 이러한 번영복음의 체제 아래서 조건 없이 나누고 돕는 일이 불가능에 가깝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여 정 목사는 "교회의 3대 기능 중 하나인 '디아코니아' 뿐만 아니라 '캐리그마'도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자기 비움'으로 점철된 복음 안에 내재된 '나눔'의 의미를 되살려 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정 목사가 진행 중인 '마음나눔' 바자회는 1,2차에 이어 3차에서도 교회 단위 참여 보다 개개인의 신앙적 결단과 참여가 돋보였다. 가나안 성도인 퀼트 작가가 수년에 걸쳐 제작한 작품들을 내어놓았으며 치킨집을 운영 중인 지역 교회 집사의 헌신적인 참여와 결단 그리고 늘 정 목사 곁에서 한마음으로 기도하고 응원하는 '나눔카페'의 실질적 운영자인 사모의 수고로 3차 바자회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정 목사의 '사회적 교회' 수식어는 '벌어서 남주는' 교회다. 바자회를 통해 나온 수익을 지역사회 소외된 이웃을 위해 전액 기부하고 있다. 3차 바자회에서 나온 수익은 양수리 일대 중등부 학생들에게 어학 연수라는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전액 쓰일 계획이다.
정 목사는 또 '나눔카페' 설립 1주년이 되는 올해 9월부터는 임대료와 인건비를 제외한 수익 전액을 기부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자신들의 작은 '나눔'이 지역사회 이웃의 얼굴을 환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몸소 체험한 이들은 '나눔'을 강요가 아닌 신바람 속에서 실천하고 있다. 교회 안과 밖의 경계선에서 이들은 부자 청년과는 달리 '나눔'의 삶을 실천하며 예수의 말씀을 온몸으로 살아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