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종말론적 신학의 개념을 도입해 『미국의 묵시록』(아카넷, 2017)을 펴낸 1.5세 한국인 이민 신학자 시카고신학대학원 서보명 교수가 방한했다. 이에 서 교수를 만나 최근 그의 연구활동을 들어보고 한미 간 주요 이슈인 한반도 평화를 둘러싼 교회의 역사적 책임을 논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 자리에서 화두가 된 기생충 신학과 관련해 서 교수는 자기 경험의 뿌리인 한반도 분단의 현실을 외면하고 서구학문의 빌린 개념에만 기생해 온 신학 자체가 기생충 신학이었다는 자기 반성이 필요할 때라고 역설했다. - 편집자주
서광선: 교수님께서 이민을 가서 철학을 배우고 종교를 배우고 1.5세 한국인 이민 신학자가 된 배경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서보명: 저는 한국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어린 이민자로서 정체성과 실존의 고민이 있었고, 그 고민을 삶의 문제로 더 깊게 고민해볼 생각으로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미국 뉴저지에서 감리교 대학교를 다니면서 그 학교의 전통인 신학을 처음 접하게 되었고, 철학적 신학이라는 분야를 공부할 생각으로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신학공부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교회에서도 사역을 하게 되었지요. 교수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공부를 하지는 않았는데, 박사과정을 마치면서 우연히 모교에 남아 가르치게 되었고, 그 일을 벌써 20년이나 하고 있습니다.
서광선: 현재 교수님 소속과 직위 그리고 교수님께서 가르치시는 전공 분야와 가르치는 과목의 취지 등에 대해 설명해 주십시오.
서보명: 현재 제 소속은 시카고신학대학원(Chicago Theological Seminary)이고 title 직위는 Professor of Theology and Cultural Criticism (신학과문화비평 교수)로 있고, 가르치는 과목은 신학과 더불어 철학과 문화와 예술 등을 다루는 과목을 주로 맡고 있습니다.
서광선: 교수님께서는 미국과 한국 사이에 낀 1.5세대 이민 신학자이십니다. 이민 신학자로서 교수님께서 어떤 시대적, 역사적 그리고 교회사적 책임감을 갖고 행동하고 있는지 소개해 주십시오.
서보명: 저는 일찍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그곳에서 오랜 세월 살면서 제가 공부하는 분야 외에 미국의 이민자로서의 정체성을 갖게된 면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을 독특한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미국이란 무엇인가?' 하는 나름 실존적인 질문을 하게도 됐습니다. 그 질문이 제가 그동안 공부한 많은 것의 배경이기도 합니다. 그런 배경으로 2017년 <미국의 묵시록>이란 책도 쓰게 되었는데 실존적인 고민이 학문적인 과제가 된 미국처럼 사람들의 호불호가 분명하게 갈리는 나라는 세상에 없습니다. 미국의 의미를 자유도 아니고 제국도 아닌 종말론이란 신학적 개념으로 찾아보고자 한 책입니다.
저는 미국에서 이민자로 또 신학자로 살면서 미국이 좀더 겸손해지고 지배적인 욕구를 내려놓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또 미국이 되찾아야 할 선한 본질이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바로 이웃에 대한, 타인에 대한 '웰컴welcome'의 정신이라고 보는데, 당연히 현대 미국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상일 겁니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미국'이란 개념에 남아 있고 회복할만한 가치가 있는 이상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미국을 얘기하는 게 미국에 사는 이민자로 또 신학자로서 제가 할 일이란 생각을 합니다.
서광선: 교수님께서는 한국교회 전통에 대해 배우고 성찰하는 연구소도 운영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연구소 설립 취지와 운영 실태 및 목적에 대해 소상히 설명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서보명: 12년 전 Center for the Study of Korean Christianity한국기독교연구소를 주변의 여러 분들의 도움으로 시작했습니다. 한국기독교의 다양한 신앙과 신학의 전통을 연구하고 나눌 수 있는 장을 만들고자 하는 의도였습니다. 꾸준히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강연회를 열어 이민교회에서 접하기 힘든 한국기독교의 신앙적인 유산과 최근 신학과 문화의 흐름을 소개하고 대화하는 공간을 만들어 왔습니다. 매년 11월에는 한인교회의 현재와 미래를 다루는 <김광정교수 기념강연회>를 열기도 합니다. 고 김광정 교수님은 사회학자로 한인 이민교회와 이민사회에 관해 선구적인 연구를 하셨던 분이지요. 또 연구소에서는 일년에 두 학기 책을 읽고 토론하는 <독서모임>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별한 외부 지원 없이 함께 하시는 분들과 함께 시카고 지역에서 의미 있는 활동을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서광선: 한국교회는 그간 남북 간 평화 문제와 관련해 미국교회에 꾸준히 호소해 왔습니다. 하지만 노력에 비해 호소력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향후 한국교회가 남북 평화 문제와 관련해 미국교회에 어떻게 호소를 하여 연대를 이끌어 내면 좋을지요?
서보명: 지난 1년은 남북 평화에 대해 큰 소망을 품고 살았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영구적인 평화가 정착되기까지 한국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해야할 일이 많겠지만, 교회의 역할도 크다고 생각을 합니다. 남과 북의 평화를 위해서 북미대화의 비중이 크고, 미국의 입장이 중요하다는 것은 현실정치에서 어쩔 수 없는 사실 같습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사이에 합의가 어렵게 이루어진다고 해도, 미국 의회가 어떻게 반응할지 또 미국의 차기 정권이 그 합의를 그대로 인정할지 마음을 놓기 힘든 상황입니다. 실제 일반적인 미국인들이 갖고 있는 한반도 상황에 대한 인식은 매우 낮습니다. 특히 북한에 대한 인식은 안타까울 정도로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신학을 공부하는 학생들도 북한이 미국과 전쟁을 했던 사회주의 국가이고, 독재자의 지배를 받고 있고, 핵무기를 개발해 미국을 위협하는, 믿을 수 없는 나라라는 생각밖에 하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저도 지난 1년 제 수업시간에 또 미국인 교회를 방문했을 때 꼭 북한을 어떻게 보는게 정당한지에 대해 얘기를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기 떄문에 트럼프에 대한 지지와는 상관없이 북미대화는 필요하고 꼭 지지해야 한다는 얘기를 합니다. 대다수의 미국인들이 북한에 대해 매우 왜곡된 정보밖에는 접하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미국이 필요한 만큼, 일반 미국인들의 인식을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에서도 이를 위해 더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미국의 교회들과 소통하는 것이겠지요. 교회협의회 차원에서 미국의 파트너 단체들과 연대해 한반도 평화를 호소하는 노력을 많이 기울여온 것으로 아는데, 그와 함께 투표를 직접하는 미국의 개교회 교인들에게 호소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교단이나 노회 차원에서도 그런 노력이 필요하지만 개교회 차원에서 미국교회와 관계를 맺고 있다면 그들에게 남북평화가 왜 중요한지 북미대화의 결실이 왜 필요한지 그 절실함을 알리고 함께 해주기를 요청하고 기도를 부탁하는 편지나 공문을 보내는 것도 단순하지만 큰 효과가 있을 수 있습니다. 미국교회가 남북의 현실을 몰라서 못 돕는 일은 없어야 하겠지요. 미국의 교회들이 한국교회와 연대해 그 지역의 국회의원에게까지 평화의 목소리를 전한다면 그 자체로 큰 힘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게 선교적 사명을 다하는 교회의 역할이라고 말하면 미국의 보수교회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 생각을 다시 말씀드리자면 미국의 유권자들이 활동하는 좀더 로컬local한 차원에서의 연대를 모색해 보자는 것입니다. 신학대학의 차원에서는 파트너 관계를 맺고 있는 미국의 신학대학의 교수들과 직원들 그리고 학생들에게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함께 하자는 호소를 하는 것이겠지요.
서광선: '남북 평화' 문제와 맞물려 분단 이데올로기에 기생하는 기생충 이야기도 꺼내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오늘 한국사회에서는 '기생충'이라는 영화가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영화가 남북 분단의 고착화 현실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봅니다. 분단의 현실을 이용해서 기생하는 권력 집단에 대한 성찰 말이지요. 태극기 집회에 참가하여 성조기와 이스라엘 국기를 들고 나오는 이들도 어찌보면 이들 권력 집단에 부화뇌동한 희생양이 아닐까요?
서보명: 당시 뉴스에서 태극기와 성조기와 함께 이스라엘 국기가 등장했다는 기사를 접하고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미국 보수 기독교의 관점에서 이스라엘 국기를 등장시킨다는 건 묵시록의 '제스처' 혹은 '퍼포먼스'입니다. 세상이 끝나는 날 있을 아마겟돈 전쟁이 이스라엘에서 일어난다는 그들의 믿음을 재확인하는 행위인 것이지요. 며칠 전 트럼프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을 때, 미국의 많은 사람들은 묵시록의 전쟁을 떠올렸을 겁니다. 한국의 태극기와 미국의 성조기 그리고 이스라엘 국기를 함께 등장시킨 의미가 트럼프에게 북한을 상대로 묵시록의 전쟁을 일으켜 모든 걸 끝내버리란 요구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서광선: 분단 이데올로기에 기생하는 기생충 신학 연구의 필요성도 제기해 봅니다. 오늘날 미국과 한국에서 남북 분단의 고착화를 가져오는 기생충과 숙주가 각각 무엇이라고 생각하며 이민 신학자로서 어떤 대안을 갖고 있으신지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서보명: 최근 남북평화와 관련된 정치현실을 보면서 한국의 신학은 무엇을 해왔는지 또 무엇을 해야 하는지 반성을 하게 됩니다. 분단이라는 역사의 고난을 넘어서 평화를 지향하는 신학을 실천해 왔는지 아니면 분단의 이데올로기에 기생해 역사라는 자신의 뿌리를 갉아먹는 신학을 해왔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생충이란 말이 최근 화제가 됐지만, 신학자로서 우리가 결국 기생충 신학을 해온 건 아닌지 생각도 해봅니다. 특히 경험으로부터 유린된 개념에 기생해 현실을 왜곡시키는 일을 하지는 않았는지에 대해서요. 저는 신학이 자기가 존재하는 조건에 대해 비판적인 자세를 견지하는 또 그런 의미에서 초월적이고 비판적인 학문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분단을 넘는 평화의 의미를 다시 새겨보는 이 시기에는 현대 신학의 자리가 어떤 것이었는지 자기비판이 앞서야 하겠지요.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신학자로서 저의 감수성은 신학이 서구학문의 개념에 의존해서 우리의 경험을 그에 맞추는 행태에 있습니다. 빌린 개념에 기생해 자신의 경험이라는 숙주가 왜곡되는 과정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그런 신학의 학문적 자기반성이 있어야, 분단의 현실에 기생해 사는 학문과 체제에 대한 비판을 요구할 수 있을 겁니다. 제가 함석헌 선생의 글을 지속적으로 읽고 그 분의 사상을 좀더 현대적인 입장에서 드러내는 작업을 가끔 하는 이유도 바로 그런 경험과 개념이 함께 하는 자기반성적인 신학을 모색하기 위함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서광선: 제 마지막 소원은 평양으로 열차를 타고 북한 교회로 가서 남북한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평화를 기원하는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날에 교수님께서도 함께 자리해 주셨으면 합니다.
서보명: 고맙고 감사합니다. 초대만 해주신다면 그날에 반드시 함께 하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