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간 74주년 8.15 광복절을 보냈다. 일본 아베 정권의 무역도발 조치로 한국 시민사회가 한창 격앙돼 있던 와중이라 올 광복절을 맞는 의미는 남달랐다.
광복절 당일 문재인 대통령은 기념식 축사에서 "저는 오늘 어떤 위기에도 의연하게 대처해온 국민들을 떠올리며 우리가 만들고 싶은 나라,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다시 다짐한다"고 선언했다. 이날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선 10만의 시민이 모여 'NO 아베'를 외쳤다.
하지만 다른 목소리도 없지 않았다. 광복절 당일 광화문 광장에선 어김없이 극우단체가 집회를 가졌다. 요사이 막말선동으로 '핫한'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전광훈 대표회장, 엄마부대 대표 주옥순 씨, 김문수 전 경기지사 등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이 쏟아낸 막말을 굳이 지면에 옮기지는 않으려 한다. 다만, 일본 아베 정권이 무역을 지렛대 삼아 난을 일으켰고 그 와중에 광복절을 맞았는데, 이에 아랑곳없이 비난의 화살을 되려 현 정부에 돌리는 그 몰지각함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겠지만 말이다.
이제부터 진짜 문제를 다루려 한다. 광복절 직전 주일인 11일 지구촌교회 이동원 원로목사와 남서울은혜교회 홍정길 원로목사는 기념주일 설교를 했다.
이 목사는 일제강점기 하나님이 우리 민족에게 놀라운 선물을 줬다고 했다. 이 목사의 말이다.
"저는 어떤 의미에서 우리 민족의 일제강점기 기간은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기 위한 고난의 스올, 물고기 뱃속 같은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일제강점기 시대, 하나님이 우리 민족에게 주신 놀라운 선물이 있어요. 무엇인지 아세요? 교회에요."
이 목사는 일본이 우리 민족을 삼키는 과정에서 복음이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실로 어처구니 없는 언사다. 국권을 잃으면서 하나님 나라를 바라봤다는 이 목사의 주장은 일제 식민지배가 하나님의 뜻이라는 온누리교회 문창극 장로의 망언과 맥이 맞닿아 있다.
"국권 상실의 궁극적인 책임은 저는 우리 국민 모두에게 있다고 생각을 한다"는 주장에 이르면 할 말을 잃는다. 국민 모두가 국권 상실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말은 결국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이 주장은 무모한 대륙침략 전쟁을 일으킨 일본 전범 세력의 수법과 판박이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일본 지배세력, 즉 전범 집단은 ‘1억 총 참회론'을 들고 나왔다. 일본인 모두 패전 책임을 지고 참회해야 한다는 뜻인데, 일본 전범 집단은 이 논리로 자신들의 책임을 빠져 나갔다. ‘국권 상실의 궁극적 책임이 모두에게 있다'는 이동원 목사의 설교는 이 같은 논리의 연장선상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주장이 교회 강대상에서, 그것도 광복절 기념주일 설교에서 나왔다니 귀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광복절에 뉴라이트 역사관 설파한 원로목사
홍정길 원로목사의 설교는 더욱 가관이다. 먼저 홍 목사는 "지금 우리나라에 가장 무서운 위협은 북핵이다. 우리가 정말로 지금 일본과 다툴 때인지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운을 뗐다.
홍 목사는 이어 "올해 8월 15일은 광복절이면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건국 71돌을 맞는 날"이라고 선언했다. 왠지 귀에 익은 말이다. 홍 목사의 말을 더 들어보자.
"하나님 없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1948년 8월 15일,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이 건국되었습니다. 어떤 분은 대한민국 건국일을 1919년 4월 11일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임시정부 기념일입니다. 임신했다고 생일 안 치르잖아요?"
1948년을 건국으로 보는 시각은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한 뉴라이트 역사관이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조차 1948년을 건국시점으로 보지 않았다. 그럼에도 홍 목사는 거침없었다.
홍 목사는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광스러운 날에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의 증오가 기쁜 날을 슬프고 두려운 느낌으로 맞이하게 한다"며 현 정부의 적폐청산 의지를 폄하했다.
이동원 목사나 홍정길 목사의 언어는 무척 정교하다. 막말로 선동하는 전광훈 목사가 내뱉는 언어와는 수준이 다르다. 게다가 이동원·홍정길 목사는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랑의교회 옥한흠·온누리교회 하용조 목사와 함께 복음주의 4인방으로 불리며 교계는 물론 사회로부터도 존경을 받아왔다. 그러나 이들이 역사를 바라보는 인식은 전 목사를 비롯한 극우세력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이런 이유로 이들의 설교는 더욱 위험하고, 해악도 크다. 무엇보다 일본 아베 정권이 과거사를 빌미로 도발을 한 후 처음 맞는 광복절에서 역사인식의 빈곤을 드러낸 건 실로 어처구니 없다. 어떻게 이런 부류의 목회자가 존경을 받았는지, 한국교회 수준이 개탄스러울 뿐이다.
가톨릭, 개신교, 정교회를 아우르는 그리스도교는 역사 종교다. 역사의 도도한 흐름에서 하나님의 뜻이 실제 역사에 어떻게 투영됐는가를 고민하는 종교라는 말이다. 그런데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왜곡돼 있으면 하나님의 뜻도 왜곡돼 전달된다. 이동원·홍정길 목사의 광복절 기념주일 망언설교는 이 같은 폐단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한국교회의 미래는 있을까? 전망은 암담하다. 그러나 강단에서 망언을 일삼는 목회자들을 속히 퇴출시켜야 한다. 그래야 적어도 어둠 가운데 한 줄기 희망은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