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에도 "현모양처(賢母良妻)"라는 말, 자녀를 양육하는 어머니로 어질고 현명하고, 한 남자의 아내로서 착한 아내를 "칭찬"하는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아니면, "현모양처"란 구시대, 가부장시대, 남성 우월주의 시대의 이야기이고, 오늘과 같은 남녀 평등시대에는 맞지 않는 말이고, 그런 여성이 되라고 가르치는 부모도 없는 것 같다.
1.
그런데 최근 법무부장관으로 지명된 대학 교수의 부인되는 대학교수가 딸의 대학과 대학원 진학을 위해서 눈물 나도록 만방에 힘을 쓴 나머지 "입시비리"라는 규탄을 받아 온 뉴스에 반신반의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모르겠지만, 검찰까지 "압수수색"에 나섰고, 기소까지 되었다는 소식에 세상이 소란하다.
요사이 너도 나도 아들 딸 대학 입시가 큰 문제이고 화제가 되고 있는 판에 그 대학 교수 어머니의 피눈물 나는 노력을 "입시 비리"라고 소리 지르며 규탄하고 나설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 이런 어머니야 말로 "현대판" 현모양처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런데 그 장관후보자를 검증한다는 대한민국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야당 국회의원이 장관후보자 딸의 입시 비리에 대해서 고함까지 지르며 "성토"하며 윤리적 도덕적 자격이 없다는 식으로 공격하며 기염을 토하는 것이 텔레비전에 부각되고 있었다. 청문회가 끝나자마자 들려오는 소리가 그 국회의원 아들이 청문회하는 시간 동안 술에 취하도록 마시고 아버지가 사준 몇 억 짜리 외제차를 몰고 가다가 오토바이와 충돌하는 사고를 쳤다는 것이다. 음주운전자 야당국회의원 아들은 천 만 원이나 되는 돈으로 "합의"하자고도 했고, 지인이 갑자기 나타나서 자기가 운전하다 사고를 쳤다고 나서기도 했지만, 사건은 쉽게 마무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 온 아들의 말을 듣고 어머니는 당장 아들을 끌고 관할 경찰서로 달려가 "자수"시켰다고 했다. "아 이런 엄마도 있구나..."하고 이런 어머니를 "현모양처"라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했다. 그런데 이런 일이 벌어진 게 아니었다는 보도가 곧 뒤따랐다. 그런게 아니었다는 것이다.
법무부장관 후보자 아내와 법무부장관 후보자를 공격한 야당 국회의원의 아들 엄마--이 둘 가운데 어느 누구를 현명한 어머니이며 선량한 아내라고 할 수 있을까 싶다. 결국 그 엄마나 이 엄마나 "자식 바보"이긴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2.
옛날에는 "맹모삼천(孟母三遷)"이란 말로 맹자의 어머니를 현모의 상징처럼 말했다. 맹자의 어머니는 아들 맹자가 죽은 사람 장사 지내는 행사 흉내와 곡하는 흉내를 내는 것을 보면서, 아들 교육에 안 되겠다 싶어 산소 근처에서 살면 안되겠다 싶어 집을 옮겼다는 것이다. 어렵사리 이사를 갔는데 시장 바닥이었다. 장사치들이 물건 파노라고 소동을 버리는 시장 바닥에서 아이를 키울 수 없다 하여 다시 이사를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 번째로 이사 간 곳이 학자들이 모여서 공부하는 학자들 동네로 이사를 한 덕에 맹자는 어려서부터 글을 배우고 학문에 심취하게 됐다는 이야기이다.
옛날에는 맹자 어머니 이야기를 하고 들으면서 참 아들을 위해서 희생하는 훌륭한 엄마라고 생각했지만, 요새는 그렇게만 생각하는 것 같지 않다. 자녀의 대학 입시를 위해서 요사이 엄마들은 좋은 학군이라는 지역에 한사코 이사 가려고, 아무리 비싼 아파트라도 애를 쓴다고 한다. 아이를 미국에서 공부하게 하려고 초등학교 때부터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미국으로 가서 아이와 함께 살고, 아빠는 "기러기"처럼 계절 따라 태평양을 건너 오고가야 한다. 이런 엄마를 우리는 "현모양처"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게 해서 미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온 아들 딸들이 한국에 돌아 와서 제대로 취직을 하고, 제대로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고 있는가 묻게 된다. 이름 난 재벌집 아이들이 마약인가 밀수까지 해서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다는 뉴스를 보면서도 그 댁 엄마를 과연 "현모양처"라고 할 수 있을까 싶다.
3.
우리 옛날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서예가 한석봉과 그의 어머니 이야기를 귀가 아프도록 들으면서 자랐다. 글쓰기 수업에 성공하고 집으로 돌아 온 한석봉을 어머니 앞에 앉히고, 방안의 촛불을 끄고, 어머니는 도마 위에 가래떡을 올려 놓고 크기가 꼭 같게 자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한석봉의 어머니는 촛불을 켜고 자신의 실력을 과시했다. 그리고 아들에게 필묵을 가져 오라 명하시고, 불을 다시 끄고 글씨를 쓰라고 명하셨다. 글씨 쓰기를 끝내자 불을 다시 켜게 했다. 아들의 글씨 솜씨는 어머니의 가래떡 자르는 솜씨보다 훨씬 형편없었다. 삐뚤삐뚤, 줄도 맞지 않고 서로 겹친 글씨가 있었다.
한석봉 어머니는 사랑하는 아들을 다시 서당으로 돌려보냈고 아들이 당대의 명필이 되기까지 집에 돌아오지 못하게 했다는 이야기이다.
이화여대 명예교수인 당대의 문필가인 이어령 교수는 한석봉의 어머니는 지혜롭고 현명한 어머니 상과는 멀다고 강변한 일이 있다. 이어령 교수는 질문하기를 왜 글씨를 가지런히 정렬을 해서 똑 바로 써야 하냐? 그런 법이 어디 있느냐 항변한다. 왜 불을 끄고 글씨를 써야 하냐? 질문한다. 글씨 쓰는 줄이 삐뚤어 져도 글의 내용만 바르면 되지 않느냐? 왜 글을 자유롭게 쓰면 안 되느냐? 반문한다. ("이어령의 80초 생각나누기--한석봉의어머니: hyala.tistory.com/517)
제대로 된 교육은 아들의 창의력을 기르는 것이고, 자유롭게 표현하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오늘의 지혜로운 어머니는 아들이나 딸이 자유롭게 자기 재능을 탐색하고 자유롭게 창의적으로 자기 능력을 발휘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령 교수의 말을 좀더 발전시키면, 아이들을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틀 속에 가두어 놓고, 꼭 대학에 진학해야 하고, sky대학이 아니어도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해야 하고, 아버지의 직업을 세습하기 위해서 일정한 대학원에 진학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석학들, 과학자들, 발명가들, 재벌들, 대통령들, 반드시 그들의 엄마가 원하는 대로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이에게 자유를 최대한도로 허용하고 창의적으로 살아가게 하다 보면, 대학에 안 갈 수도 있고 못 갈 수도 있을 것이다. 별아 별 꼼수를 써가며, 비리, 불법을 저지르면서까지, 이사를 몇 번이고 다니면서 까지 아이를 낯익은 학교와 친구로부터 띄어 놓으면서 까지 대학진학을 위해서 위장 전입, 위장 전학을 시켜야 "현모"라고 할 수 있을까 싶다.
4.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야 하는 질문이 있다. 자식 양육과 교육에 있어서 왜 엄마 책임만 묻는가 하는 문제이다. 자식 양육에 아버지의 책임은 없는가 묻게 된다는 말이다. 왜 "현모양처"라는 말은 하면서 "현부양부(賢父良夫)"라는 말은 없는가. 자녀 교육, 우리나라 차세대 교육은 현명한 아버지와 어머니 착한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모든 아이가 대학에 가야만 한다는 법이 있는가? 하고 아이가 대학 가는 걸 포기할 때 본인의 자유에 맡기는 것이 "현모"인가? 고민하게 된다. 억지로 우리 집 아이만은 대학에 가야한다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 어떤가? 아이들이 억지로 대학을 가지 않아도, 때가 되면 일자리를 찾고 의식주에 부족함이 없이 결혼 할 때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고 (아니면, 결혼을 마다하고, 독신으로) 행복하게 살아 갈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데 힘을 모으는 것이 참으로 "현모양처"들이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서광선: 이화여대 명예교수. 철학과 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