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기석 칼럼] 눈으로 읽는 종교개혁 신학 이야기

글·김기석 목사(청파감리교회)

루카스 크라나흐의 '비텐베르크 성모 시(市)교회 제단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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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블로그 갈무리)
▲루카스 크라나흐의 종교개혁제단화

10월은 결실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기독교인들에게는 종교개혁이 먼저 떠오르는 달입니다. 교회를 오래 다닌 이들은 종교개혁 어간에 벌어진 루터의 일화를 귀가 닳도록 들었을 것입니다. '오직 ~으로만!'으로 번역되는 'sola ~'도 매우 익숙할 겁니다. 사실 '오직'이라는 말은 많은 오해를 자아낼 수 있는 말입니다. 고백의 언어인 그 용어를 객관적 사실의 언어로 받아들이는 순간 생각이 다른 이들과의 소통은 불가능해집니다. 종교개혁 시기에 개혁 정신을 화폭에 담아냈던 화가가 여럿 있습니다. 알브레히트 뒤러, 한스 홀바인, 피테르 브뢰헬이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한 세기 후의 사람이긴 하지만 렘브란트도 거기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 이야기하려는 루카스 크라나흐(Lucas Cranach the Elder, 1472-1553)만큼 루터의 종교 개혁에 깊이 기여한 사람은 없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크라나흐는 16세기 독일을 대표하는 화가인데 작센의 선제후인 프레드리히가 통치하던 비텐베르크 시의 궁정화가로 활동했습니다. 그는 그림을 매우 빨리 그리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부와 명예를 한껏 누렸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성경과 신화에 등장하는 이야기를 많이 그렸고, 누드화도 많이 그렸습니다. 뱀의 유혹에 넘어간 아담과 이브 그림도 여러 장 그렸습니다. '어울리지 않는 연인들' 연작은 그 시대의 졸부들이 젊은 여인들을 어떻게 유혹했는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풍속화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탁월한 세부 묘사 때문에 사람들은 그림 속에 암시된 서사를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가장 중요한 그림은 종교개혁 신학을 담아낸 것들입니다. 많은 이들이 루터 하면 떠올리는 초상화도 그가 그린 것(1529년)으로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순례자들은 루터가 종교개혁 95개 논조를 게시한 성채교회에 오래 머물지만 실제로 종교개혁에 있어서 중요한 장소는 비텐베르크 성모 시(市)교회(Stadtkirche St. Marien)라고 할 수 있습니다. 루터가 이 교회에서 오랫동안 설교를 했고, 종교개혁 신학의 기초가 닦인 곳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교회에는 크라나흐가 그린 '종교개혁제단화'(Reformationsaltar)가 있습니다. 상부 패널에는 성례전을 나타내는 세 폭의 그림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습니다. 개신교회의 성례전은 세례와 성만찬이지만, 한때 루터는 참회도 일종의 성례전이라 생각했습니다. 아래쪽 패널인 프레델라(predella)에는 개신교회의 중심이라 할 수도 있는 설교에 관한 그림이 등장합니다.

상단의 왼쪽 패널은 많은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어떤 사람이 세례반에서 아기에게 세례를 베푸는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평범한 장면처럼 보이지만 이 장면은 두 가지 측면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종교개혁 당시에 급진적인 개혁자들 가운데는 유아세례를 반대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본인의 신앙고백에 근거하지 않는 유아세례는 효력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루터를 비롯한 비텐베르크의 개혁자들은 유아세례는 그 자체로 효력을 발생시킨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사람들은 아기를 들고 있는 이가 루터를 도왔던 멜란히톤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아직 안수를 받지 않은 평신도였습니다. 세례는 반드시 안수 받은 성직자만 베풀 수 있다는 통념을 크라나흐는 깨뜨리고 있습니다. 위급시에는 평신도들도 안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상단의 오른쪽 패널은 참회를 보여줍니다. 중앙에 검은 모자를 쓰고 고해소 앞에 있는 인물은 개신교회 최초의 청빙목사로서 시교회를 담임하고 있던 요하네스 부겐하겐입니다. 그는 손에 두 개의 열쇠를 쥐고 있습니다. 풀 수도 있고, 맬 수도 있는 천국의 열쇠일 겁니다. 그의 앞에는 무릎을 꿇은 채 참회하고 있는 사람과 옆구리에 뭔가를 낀 채 손을 앞으로 모은 사람이 보입니다. 그는 마치 묶인 것처럼 보입니다. 참회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를 드러내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중앙패널은 성찬식 장면입니다. 성찬식 장면은 대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도상을 따라서 사각형 테이블이 등장할 때가 많습니다만 크라나흐는 원탁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짐작하시겠습니다만 원탁은 평등과 소통의 상징입니다. 계급은 지양되었습니다. 크라나흐는 종교개혁 신학이 가르치는 만인사제직을 그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탁자의 한복판에 어린양이 있습니다. 죽임을 당한 어린양 예수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크라나흐는 이 성찬 혹은 만찬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다 비텐베르크 주민들의 모습으로 그렸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품에 안겨 있고 베드로는 한손을 가슴에 얹고 있습니다. '나는 아니지요?' 하는 몸짓입니다. 아래쪽 좌단에 돈주머니를 차고 있는 인물은 유다입니다. 그의 발을 보십시오. 금방이라도 바깥으로 나갈 것처럼 외부를 향하고 있습니다. 오른쪽을 보면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서있는 사람에게 잔을 건네는 모습이 보입니다. 앉은 사람은 루터이고 서 있는 사람은 크라나흐의 아들입니다. 중세 가톨릭은 성찬의 포도주를 평신도들에게 주지 않았습니다. 포도주는 오직 사제계급에게만 허용되었습니다. 일종의 특권이자 차별성의 표시였습니다. 그러나 루터는 모든 이들에게 포도주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성찬에 대한 이해가 달라진 것입니다. 그림을 연구한 사람들은 루터 옆에 앉은 수염투성이 인물이 루터가 번역한 신약성서를 출판했던 한스 루프트라고 말합니다. 사도들의 자리에 세속적인 직업인이 끼어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직업은 하나님이 주신 소명이라는 종교개혁 신학을 이 장면을 통해 유추할 수 있습니다.

이제 프레델라 부분을 살펴볼 차례입니다. 예배당 한복판에 십자가가 서 있습니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이르는 십자가는 마치 교회를 지탱하는 기둥처럼 보입니다. 바람도 없는 데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세마포 옷이 휘날립니다. 십자가의 주님과 부활하신 주님이 둘이 아님을 상징하기 위해서일 겁니다. 설교단에 서 있는 사람은 루터입니다. 그의 왼손은 성경책 위에 올려져 있고, 오른손은 십자가 위의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크라나흐는 '오직 믿음으로', '오직 성경으로', '오직 은총으로'라는 종교개혁 신학을 그렇게 형상화했습니다. 벽과 바닥에 점점이 흩뿌려진 붉은 빛은 그리스도의 보혈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회중석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앉거나 서 있습니다. 노인도 있고 아이도 있습니다. 그들은 루터의 설교에 귀를 기울이고 있지만, 그들의 시선은 다 중앙에 있는 십자가를 향하고 있습니다. 선포되는 말씀을 통해 회중들은 그리스도를 과거의 인물이 아니라 그들 가운데 임재하신 주님으로 경험하고 있습니다. 회중석 맨 앞에 있는 여인은 루터의 아내인 폰 보라이고 그의 무릎에 손을 얹고 있는 아이는 루터의 아들 한스입니다. 신앙공동체는 이처럼 다양한 회중과 복음의 선포자인 설교자로 구성되지만 그들의 사귐과 모든 실천의 중심에는 십자가가 서 있어야 함을 보여줍니다.

크라나흐는 루터의 십자가 신학과 성례전 신학을 가시화함으로써 많은 이들을 넓고 깊은 신학의 세계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소재주의에서 벗어나 신학을 담아내는 화가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 이 글은 청파김리교회 홈페이지의 칼럼란에 게재된 글임을 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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