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부터 기독교환경운동연대를 중심으로 하여 전개한 사업이 있다. 급격한 사막화 현상을 겪고 있는 몽골에 나무를 심는 일이었다. 몽골 하면 사람들은 넓고 평화로운 초원과 그 위를 거닐며 한가롭게 풀을 뜯는 가축들과 어두운 밤하늘을 배경으로 무리를 이룬 별들을 떠올린다. 그러나 지난 몇 십 년 동안 아름다운 호수와 숲이 사라지면서 몽골의 많은 지역이 사막으로 변하고 있다. 사막화 현상은 자연적인 요소와 인위적이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세계적인 기후 변화는 몽골에 큰 피해를 가져왔다. 강수량이 줄어들고, 지구 온난화로 인해 토지 퇴화가 가속화 되었고, 해충과 설치류가 많아졌다. 유목을 위주로 하는 산업 구조로 인해 양과 염소 등 가축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초지는 빠르게 황폐해졌다. 광산과 관광지 개발, 연료로 사용하기 위한 산림 도벌 등도 사막화를 부추기는 요인이 되었다.
위기였다. 푸른 아시아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이 이전부터 사막화 방지를 위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기독교환경운동연대가 몽골에 숲을 조성하기로 작정한 것은 일종의 채무의식 때문이었다. 속도와 편리함을 추구하는 우리의 문명이 지구를 황폐하게 만들고 있음을 가시적으로 드러낸 것이 몽골의 사막화였기 때문이다. 그 숲의 이름을 '은총의 숲'이라 한 것은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마음을 드러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무 수 만 그루를 심는다 하여 거대한 사막화 현상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음은 누구나 다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무모한 시도를 했던 까닭은 척박한 곳에 생명의 조짐을 일으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10년을 지속한 지금 약 3만 그루의 나무가 아르갈란트에서 자라고 있다. 가을이 되어 붉은색 열매를 맺는 나무들을 바라보고, 떼 지어 날아온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듣노라면 바로 그곳이 기적의 현장임을 느낄 수 있다.
그곳에 심은 나무 가운데 비술나무가 있다. 느릅나무 속의 비술나무는 수변 지역은 물론이고 건조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 국립산림연구원의 박고은 박사는 비술나무의 수분이용효율과 잎의 단위 면적당 건중량(LMA)과 잎 기공의 형태적 특징을 조사했다. 연구에 의하면 비술나무는 건조한 환경에서는 잎 면적을 줄이고 세포밀도는 높이는 생존 전략을 구사하고 있었다. 척박한 환경 가운데 빠르게 생장하지는 않지만 내적으로 단단하게 자기를 채워가고 있었다는 말이다. 또 비술나무는 수분이용효율이 매우 높았고, 물기 없는 건조한 땅에서는 뿌리를 수 백 미터 뻗어가며 물기를 찾고, 모래 바람이 불어와 줄기가 모래에 묻혀도 기어이 몸을 일으켰다. 꺾인 가지나 뿌리에서도 싹을 틔웠다.
그렇게 강인하게 생명을 이어가는 비술나무를 보면 작은 일에도 비명부터 질러대는 우리들의 몰골이 떠올라 아뜩해진다. 생 텍쥐페리의 어린왕자는 사막을 가로지르다가 우연히 만난 꽃잎이 셋인 꽃에게 사람들이 어디 있냐고 묻는다. 꽃은 몇 해 전에 사람을 본 적은 있지만 그들을 어디 가야 만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바람 따라 돌아다니니까. 사람들은 뿌리가 없어. 그래서 많은 불편을 느끼는 거야." 뿌리가 없어 삶이 고달프다. 마음의 정처를 알지 못해 부평초처럼 세상을 떠돌 뿐이다.
1968년에 세상을 떠난 시인 김수영은 '거대한 뿌리'라는 시에서 남루하고 너절한 우리 삶을 돌아보면서도 현실로부터 달아나기는커녕, 그 남루한 현실 속에 깊이 뿌리를 박겠다고 다짐한다. 그는 "이 땅에 발을 붙이기 위해서는/제3인도교의 물 속에 박은 철근기둥도/내가 내 땅에/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좀벌레의 솜털/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이라고 노래했다. 현실의 언저리를 깨작거리며 사는 이는 차마 할 수 없는 말이다.
삶이 아무리 척박해도 어디선가 생명은 자라고 있다. 저절로 자라기도 하지만 생명을 심고 가꾸는 이들의 끈질긴 노력 또한 간과할 수 없다. 거대한 불모지에 마치 점처럼 선 은총의 숲은 무심코 그 길을 따라 달리는 사람들에게 저 건조한 땅에도 생명이 자라고 있음을, 자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징표이다. 꿈꾸는 이들이 만들어내는 미약한 희망의 몸짓이 거대한 바람이 될 지 누가 알겠는가? 비술나무와 같은 신자들이 많아진다면.
※ 이 글은 청파김리교회 홈페이지의 칼럼란에 게재된 글임을 알려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