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 아웃(burn out)'은 '불에 타서 없어진다.'는 뜻으로 미국의 정신분석가인 프로이덴버거(Herbert Freudenberger)는 <상담가들의 소진>이라는 논문에서 '다른 사람을 돕는 직업을 가진 사람' '높은 이상을 가진 사람'이 지치고 기운이 다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상태를 설명하는 의미로 처음 사용했습니다. 기운이 다 빠져 없어짐을 의미하는 탈진(脫盡)으로도 번역되는 '번 아웃'은 우리 사회에서 공평과 정의, 나눔과 평화 등 사회개혁과 공익을 위해 헌신해 온 활동가라면 한 번 쯤은 스스로 경험하거나 이로 인해 고통당하는 동료의 모습을 지켜보았을 것입니다.
지난 8월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이 희망 있는 세상이라고 믿으며 아동복지 현장에서 나와 함께 15년 가까이를 헌신했던 한 활동가가 아동복지 현장을 떠났습니다. 그가 아동복지 현장을 떠난 이유 중 하나가 탈진과 현장에서 느끼는 실망감 즉 '번 아웃'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나이 차이가 꽤 나지만 늘 늠름하고 씩씩해서 그를 깊이 신뢰하고 사랑하고 또 존경했던 나로서는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었습니다. 그가 더 씩씩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지 못하고 또 그에게 더 견딜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줄 수 없는 무력한 내가 실망스러웠고 그것이 더욱 미안했습니다.
오늘 아침 언론 기사를 통해 또 하나의 비슷한 사례를 접했습니다. 녹색병원 산부인과 과장인 윤정원 선생이 '번 아웃'을 선언하며 병원에 사표를 냈다는 기사입니다. 녹색병원 산부인과 과장이자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여성위원장으로 성폭력 피해자와 성소수자 진료에 헌신하고 낙태죄 폐지운동에 앞장서 온 윤정원 선생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누군가에게 '나도 저렇게 살아야지'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대단하지만 나는 저렇게 못 살아'라는 마음만 남긴 사람이 된 것 같아 조금 우울하다."고 병원을 떠나는 아픈 마음을 표시했습니다. 병원을 떠나면서 하는 그의 말은 물론 기사 중간에 있는 "말해도 될까요. 나도 아프다고"라고 쓴 큰 제목이 윤정원 선생의 마음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웠습니다.
오늘도 우리사회의 곳곳에서 수많은 공익활동가들이 사회개혁과 정의의 실현 그리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윤정원 선생이 그러하듯 '번 아웃'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사회개혁과 정의 그리고 평화를 위해 일하는 공익활동가들을 지치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끝없는 노력과 헌신에도 불구하고 나아지지 않는 현실일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함께 그들의 손을 잡아주고 또 그들의 목소리에 힘을 보태주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엄마는 못하는 것이 없는 전능한 존재로 믿는 것과는 달리 엄마도 아프고, 힘들고, 하루하루가 견디기 어려운 것처럼 공익활동가들 역시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들도 우리처럼 가난이 힘들고 현실을 이겨내는 것이 벅찹니다.
세상은 저절로 나아지지 않는 법입니다. 누군가는 그 무력감은 견뎌내고 사회개혁을 위해 일할 때 세상은 오늘보다 더 나아질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친 윤정원 선생을 대신할 또 한 사람의 윤정원 즉 교체 멤버는 늘 필요한 법입니다. 그리고 '번 아웃'에 시달리는 공익활동가들에게는 아낌없는 격려와 박수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녹색병원을 떠나는 윤정원 선생에게, 또 '번 아웃'을 경험하고 있을 공익활동가들에게 그리고 '번 아웃' 직전에 있음을 스스로 직감하고 있는 나 자신에게 다시 힘을 내라고 격려하며 "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하지 맙시다. 지쳐서 넘어지지 아니하면, 때가 이를 때에 거두게 될 것입니다."(갈라디아서 6:9)라고 하셨던 사도 바울의 말씀을 읽어주고 싶습니다.
※ 이 글은 박경양 목사(평화의교회 담임)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본보는 앞서 필자의 동의를 얻어 공적 신앙에 도움이 되는 유의미한 글을 게재키로 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