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광화문에서 이상한 목사의 이상한 말을 들으며 그 앞에서 아멘! 아멘!을 외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보게 된다. 이들의 경우 종교는 믿는 것이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심지어는 "덮어놓고" 믿어야지 생각하고 따지고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얼른 보아 일리 있는 말 같기도 하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게 "덮어놓고" 믿고싶지만 우선 "덮어놓고" 믿는다는 것이 뭔지라도 알아야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함석헌 선생님은 "생각하는 백성이라 산다"고 했다. 소크라테스도 "검토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했다. 미국의 저명한 신학자 존 캅도 "생각하는 그리스도인 되기"라는 제목의 책을 냈는데, 스스로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이어야 살아 날 수고, 또 이렇게 독립적으로 사고하는 평신도가 많아야 그리스도교가 산다고 했다. 한국말로는 이경호 목사에 의해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이라야 산다"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는데 책 내용에 맞게 잘 옮긴 제목이라 생각된다.
사실 그리스도인들뿐만 아니라 어느 종교인이든 각성도 없고 검토도 없는 믿음을 "덮어놓고" 받아들일 경우 그것은 헛된 믿음일 수도 있고, 또 많은 경우 우리의 짧은 삶을 낭비하게 하는 극히 위험한 믿음일 수도 있다. 보라. 우리 주위에 횡행하면서 사람들을 죽음과 패망으로 몰아넣은 저 많은 사교 집단들을. 그리고 비록 신흥 사교집단은 아니라 하더라도 일부 잘못된 지도자에 의해 변질되므로 그 신도들을 속박하고 질식시키고 있는 저 많은 기성 종교 집단들을. 이렇게 파리 끈끈이 같은데 가까이 가거나 수렁 같은데 잘못 발을 들여놓았다가 패가망신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극히 최근세에 이르기까지 어느 사회나 인구의 절대 다수가 문맹이었다. 그런 시대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부분의 경우 어쩔 수 없이 "덮어놓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어 중세 시대 어려운 신학적 문제는 오로지 성직자들 사이에서 라틴말로만 논의되고, 일반인들은 이들이 그림으로 그려 준 그림책 정도를 보고 그대로 믿고 따르는 "그림책 신학"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 이런 바꾸어진 시대를 반영하여 존 캅은 "일반 평신도들은 모두 신학자들"로서 스스로 생각하고 거기에 책임을 지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고 선언하였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가 모든 사람들이 사제를 통하지 않고 직접 신에게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여 "만인 제사장직"을 제창했다고 하는데, 사실 오늘 같이 일반인들의 지식이나 의식 수준이 높은 시대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만민 신학자직"을 주장해야 할 것이다.
신앙은 '이성을 넘어서는 것'(supra ratio)이지 '이성을 거스리는 것'(contra ratio)이 아니다. 사리를 분별하고 판단하는 일은 건전한 종교적 삶을 위해 필요한 전제 조건이다. 무조건이니 덮어놓고니 하는 말은 사실 인간에게 천부적으로 주어진 독립적 사고력이나 분별력을 포기하거나 몰수당하는 일이다.
종교인이라고 생각 없이 덮어놓고 믿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인일수록 오히려 더욱 깊이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자기 생각에 한계가 있음을 깨닫고 그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것이 참된 믿음이 지향해야할 경지가 아니겠는가.
※ 이 글은 오강남 리자이나 대학 종교학 명예교수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본보는 앞서 필자의 동의를 얻어 신앙성찰에 도움이 되는 유의미한 글을 게재키로 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