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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새끼 염소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아서는 안 된다."(출 23:19)

심광섭 전 감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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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심광섭 목사 페이스북)
▲이집트의 한 부조. 여기에는 송아지를 우유에 요리하기 위해 어미젖을 짜고 있는 이집트인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기원전 2000년경,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

구약의 종교의식 준수에 관한 규범은 매우 엄격하고 오늘의 우리 관습과 생활에서 보면 이해하기 힘든 부분들이 있다. 본 구절도 그 중 하나다. 금한 이유는 무엇일까?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백종원 표 요리법이라도 알려주려는 것인가? 그 전에는 이런 요리 풍습이 있었다는 말이겠지. 아니면 다른 나라에서 그런 풍습이 있다든가.... 구약에는 이방 나라의 풍습이나 종교행위를 금하는 규범들이 많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학자들은 이렇게 주석한다. 새끼 염소를 그 어미 염소의 젖으로 삶는 것은 아마도 가나안의 풍요제의와 연관된 것으로 짐작되는데, 이스라엘은 이를 금지시켜 생명을 주는 어미에 대한 경외심을 강조한다. 이 규정은 경신례 십계에도 똑 같이 반복되며(출 34:26) 신명기의 중요한 가운데 연설인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규정하는 부분에서 이 맥락에 안 맞는데도 뻘쭘하게 추가되기(신 14:21)도 하는 것을 보면 이 규정의 의미가 유달리 크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본문의 이 금지 규정은 단순히 이방 나라(종교)의 풍습이기 때문에 금지했다기보다는 구약에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어미(부모)와 자식의 천륜 관계로 표현하고 이해한 구절들이 많고 이로부터 연유한 규정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스라엘에서는 생명의 존엄과 생명을 주는 어미에 대한 경외심이 생명의 하나님이신 야훼 신앙의 핵심에서 자란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금지 규정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인간의 상호관계를 부모와 자식의 관계, 어머니와 젖먹이의 친밀한 관계보다 더 끊을 수 없는 관계로 이해하고자 하는 '신적 휴머니즘'(divine humanism)이요 '심층 휴머니즘'(depth humanism)의 발로(發露)이며, 그 생각이 생물도 포함한 것이라 말하고 싶은 것이다.

"어머니가 어찌 제 젖먹이를 잊겠으며,
제 태에서 낳은 아들을
어찌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비록 어머니가 자식을 잊는다 하여도,
나는 절대로 너를 잊지 않겠다. (사 49:15)

※ 이 글은 심광섭 목사(전 감신대 교수)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본보는 앞서 필자의 동의를 얻어 신앙성찰에 도움이 되는 유의미한 글을 게재키로 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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