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담이 아니라 다리를

김기석 목사(청파감리교회)

bridge
(Photo : ⓒpixabay)
▲담이 아니라 다리를

달력을 바꿔 달아보지만 시간이 새롭지는 않다. 어제의 해가 오늘도 떠오르고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서로를 권태롭게 바라본다. 이제 새로운 삶의 다짐도 없이 그저 세월의 물결을 타고 흐를 뿐이다. 자유로운가? 그렇지는 않다. 뭔가 미진하고 답답한 느낌이지만 새로운 삶을 시도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손택수 시인은 '탕자의 기도'라는 시에서 '나무는 종교가 없는데도 늘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 같다'며 자기 삶을 성찰한다. 자기 존재를 어쩔 수 없는 무게로 느끼는 것은 인간뿐인가? "풀잎은 풀잎인 채로, 구름은 구름인 채로,/바람은 바람인 채로 이미 자신이 되어 있는데/기도도 없이 기도가 되어 있는데//사람인 나는 내가 까마득하다/가도가도 닿을 수 없는 타향살이다". 시인의 고백이 화살이 되어 가슴에 박힌다.

시간이 흘러도 삶에 익숙해지지 않는다. 생활의 방편에는 곧잘 익숙해지지만 실체로서의 자아는 늘 낯설다. 타향살이 같은 인생길이기에 늘 불안하다. 행복할 때도 불안하다. 불안은 시간 속을 바장이는 인간의 조건이다. 불안과 불확실성을 삶의 조건으로 받아들이고 사는 지혜와 인내가 필요하다. 사람은 자기에게 벌어지는 예기치 않는 일로 인해 '내 인생이 왜 이 모양인가?' 하고 묻지만, 정작 인생은 삶이 제기하는 문제에 응답하는 과정이라지 않던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자기 삶의 길을 정했다는 말이다. 예수는 자신을 길이라 하셨다. 예수는 길이 된 사람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그 길이 참임을 머리로 시인한다는 말이 아니라, 어떤 어려움이 닥쳐와도 그 길을 끝까지 걷겠다는 결의이다. 그 결의를 지켜갈 때 우리 영혼의 근육이 붙는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이 말은 얼마나 장엄한가? 자유를 원하면서도 우리가 부자유 속에서 허둥대는 것은 참 혹은 진리를 견지할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문제임을 알 때, 자신의 부족함을 절감할 때 은총이 스며들 여지가 생긴다.

하지만 연약한 이들보다 더 큰 위험은 자기 확신에 찬 종교인들로부터 비롯된다. 거짓 목자들은 경건의 의상을 입고 사람들의 마음을 도둑질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영'을 심어줌으로 그들을 지배한다. 두려움은 함께 살아야 할 이웃들을 경계해야 할 '타자'로 간주하게 만든다. 두려움은 증오의 뿌리이고 폭력의 아버지이다. 두려움 속에 있는 이들은 담을 쌓는 일에 익숙하다.

혐오와 증오를 선동하는 종교인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예수를 부인하는 자들이다. 예수는 사람들 사이의 막힌 담을 헐어 만날 수 없다 여겼던 이들을 만나게 하셨다. 그러나 증오를 선동하는 이들은 특정한 사람들을 '혐오'의 대상으로 게토화함으로 자기 권력을 유지하려 한다. 무릇 우리가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면 담을 쌓는 사람이 아니라 다리를 놓는 사람이어야 한다. 다리를 놓기 위해 땀을 흘릴 때 시간은 새로워지고, 우리를 사로잡고 있던 비애는 스러진다.

※ 이 글은 청파김리교회 홈페이지의 칼럼란에 게재된 글임을 알려 드립니다.

좋아할 만한 기사
최신 기사
베리타스
신학아카이브
지성과 영성의 만남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AI의 가장 큰 위험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인간의 죄"

옥스퍼드대 수학자이자 기독교 사상가인 존 레녹스(John Lennox) 박사가 최근 기독교 변증가 션 맥도웰(Sean McDowell)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신간「God, AI, and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한국교회 여성들, 막달라 마리아 제자도 계승해야"

이병학 전 한신대 교수가 「한국여성신학」 2025 여름호(제101호)에 발표한 연구논문에서 막달라 마리아에 대해서 서방교회와는 다르게 동방교회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극단적 수구 진영에 대한 엄격한 심판 있어야"

창간 68년을 맞은 「기독교사상」(이하 기상)이 지난달 지령 800호를 맞은 가운데 다양한 특집글이 실렸습니다. 특히 이번 호에는 1945년 해방 후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김경재 교수는 '사이-너머'의 신학자였다"

장공기념사업회가 최근 고 숨밭 김경재 선생을 기리며 '장공과 숨밭'이란 제목으로 2025 콜로키움을 갖고 유튜브를 통해 녹화된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경직된 반공 담론, 이분법적 인식 통해 기득권 유지 기여"

2017년부터 2024년까지의 한국의 대표적인 보수 기독교 연합단체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하 한기총)의 반공 관련 담론을 여성신학적으로 비판한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인간 이성 중심 신학에서 영성신학으로

신학의 형성 과정에서 영성적 차원이 있음을 탐구한 연구논문이 발표됐습니다. 김인수 교수(감신대, 교부신학/조직신학)는 「신학과 실천」 최신호에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안병무 신학, 세계 신학의 미래 여는 잠재력 지녀"

안병무 탄생 100주년을 맞아 미하엘 벨커 박사(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교 명예교수, 조직신학)의 특집논문 '안병무 신학의 미래와 예수 그리스도의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위험이 있는 곳에 구원도 자라난다"

한국신학아카데미(원장 김균진)가 발행하는 「신학포럼」(2025년) 최신호에 생전 고 몰트만 박사가 영국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전한 강연문을 정리한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교회 위기는 전통의 사수와 반복에만 매진한 결과"

교회의 위기는 시대성의 변화가 아니라 옛 신조와 전통을 사수하고 반복하는 일에만 매진해 세상과 분리하려는, 이른바 '분리주의' 경향 때문이라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