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고 강원용 목사 설교] 영생에 이르게 하는 샘물

2004년 10월 17일 경동교회 설교

구약의 말씀: 창세기 1: 2, 6 ~ 8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 위에 움직이고 계셨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물 한가운데 창공이 생겨, 물과 물 사이가 갈라져라" 하셨다. 하나님이 이처럼 창공을 만드시고서, 물을 창공 아래에 있는 물과 창공 위에 있는 물로 나누시니, 그대로 되었다. 하나님이 창공을 하늘이라고 하셨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튿날이 지났다.

서신서의 말씀: 요한계시록 22:1 ~ 2
   
천사는 또, 수정과 같이 빛나는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여 주었습니다. 그 강은 하나님의 보좌와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흘러 나와서, 도시의 넓은 거리 한가운데를 흘렀습니다. 강 양쪽에는 열두 종류의 열매를 맺는 생명 나무가 있어서, 달마다 열매를 내고, 그 나뭇잎은 민족들을 치료하는 데 쓰입니다.

복음서의 말씀: 요한복음서 4:11 ~ 14
  
여자가 말하였다. "선생님, 선생님에게는 두레박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떻게 나에게 생수를 구해 주시겠습니까? 선생님이 우리 조상 야곱보다 더 위대한 분이라는 말입니까? 그는 우리에게 이 우물을 주었고, 그와 그 자녀들과 그 가축까지, 다 이 우물의 물을 마셨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이 물을 마시는 사람은 다시 목마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영생에 이르게 하는 샘물이 될 것이다."


요새 저는 책을 별로 읽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저를 무척 아끼는 한 분이 꼭 읽어보라고 책 두 권을 주셨습니다. 에모토 마사루라는 일본인이 쓴 ‘물은 답을 알고 있다’ 라는 책이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물에 관하여 계속 연구를 해 온 사람입니다. 맑은 물을 컵에 담아놓고 사랑스럽다, 참 이쁘다, 고마워- 이렇게 이야기하고 나서 현미경으로 바라보면, 육각으로 된 결정이 아주 아름답게 비친다고 합니다. 그러나 물을 향해서 못생겼어, 못됐구나- 이렇게 이야기하고 나서 현미경으로 바라보면, 그 물에 검은 부분이 나타나면서 주위를 마구 공격해 나가는 형상이 보인다고 합니다. 또한 그런 현상은 직접 말로 했을 때 뿐 만이 아니라 글로  적어서 보여 주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고 합니다. 말이나 글이 한국어였건 일본어였건 독일어였건 이탈리아어였건 상관없이 말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우리 제 2부 성가대의 찬양처럼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었을 때에는 틀림없이 아주 아름다운 결정들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반면에 이별곡처럼 슬픈 노래를 들려주면 또 다른 형상이 나타나는 것이지요. 또한 놀라운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저자가 2001년 9월 11일 뉴욕에서 테러단에 의해서 무너진 건물에 관한 사진을, 다음날인 9월 12일 도쿄에서 물에 비추어 주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물속에서 시커먼 바탕에 굽이치면서 얼굴이 나타나는데 눈이 툭 튀어서 나온 흉측한 얼굴이 보였다고 합니다. 책에 그 형상을 찍어놓은 사진도 실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외에도 물의 파동에 대한 이야기와 우주 만물은 다 독자적인 주파수로 진동을 한다는 것, 그것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는 등의 이야기가 적혀 있었습니다.

또한 책에는 물의 ‘흐름’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물은 다른 모든 피조물과 함께 쉼 없이 계속 흐릅니다. 불순한 것을 씻어버리고 다른 모든 것에 생명을 주며 흘러가다가 마지막에는 사라집니다. 그렇게 수증기가 되어서 올라가 구름이 되고, 비가 되어서, 물이 되어서 돌아옵니다. 그러나 만일 흐르지 못하도록 막아놓으면 물은 생명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저자는 물에 관한 이런 이야기들을 하면서 우주 전체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우리 눈에 전혀 보이지 않는 아주 미세한 것들도 하나의 핵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태양을 중심으로 별이 돌아가듯 사람의 몸도 그러하며 우주의 법칙 모두가 그렇다고 말합니다. 결국 이 방대한 우주의 비밀은 나의 이 작은 몸속에도 존재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은 항상 흘러감으로써 생명을 주게 되는데 이 흐름을 정지시키는 것은 피조물 가운데에서도 바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사고를 한 곳에 멈춰놓고서 이것만이 절대로 옳다 라고 고정관념을 가집니다. 그리고 어떤 욕심에 사로잡히면 그것에서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결국 생명의 힘을 잃고 죽음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과학의 신기한 법칙만 알게 되었던 것이 아니라, 깨달은 바가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창세기 1장 2절을 보면 맨 처음에는 완전한 혼돈과 어두움밖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곳에서 물이 생겼습니다. 그 물 위에는 하나님의 영이 운행하셨구요. 바로 그 곳에서 만물의 창조가 시작된 것입니다. 물에서는 이렇게 생명이 나옵니다. 미국에서 가까운 화성을 여러 해 동안 탐험한 끝에 지난 해 화성 탐험에서 무언가를 찾아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오래 전에 물이 흘렀던 자취였습니다. 이 발견을 통해 오래전에 생명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물이 없기 때문에 생명도 없다고 합니다. 이는 물이 있으면 생명이 있는 것이며, 우주의 수많은 별들 중에서도 물이 없는 곳은 결국 생명이 없는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구약에서 언급되었던 신기한 물의 이야기는 신약에서도 이어집니다. 예수님이 서른 살 되었을 때 요단강에서 세례가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물 속에 들어가시고 그 물 위에는 비둘기 모양의 성령이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두 번째 창조입니다. 죄와 죽음으로 지배되는 세상 속에 오셔서 다시 생명을 살리시는 예수님과, 그 역사의 시작이 되고 있는 요단강. 이것이 바로 창세기의 첫 번째 창조에 이은 두 번째 창조입니다.

이러한 사건은 오늘 읽은 요한복음 4장에서도 보여집니다. 예수님이 갈릴리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람이 아닌 개돼지 같은 놈들이 사는 곳이라 하여 사마리아를 지나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곳을 지나가십니다. 지나가다가 수가라는 곳에 이르렀을 때 어떤 여인이 우물에 와서 물을 긷는 것을 보셨습니다. 가서 그 여인을 보고 내게 물 한잔 달라 말씀하십니다. 이 여인이 말합니다. 당신은 유대인인데 어떻게 나보고 물을 달라고 합니까.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에 대해선 대답을 하지 않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도 너에게 물을 주겠다. 내가 네게 줄 물은 다시는 목마르지 않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될 샘물이다. 그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예수님은 이 여인의 물을 마십니다.

교회에서 가톨릭, 개신교, 동방정교회 등 많은 교파가 갈라졌습니다. 이 중에서 가톨릭과 개신교에도 다른 점들이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우리가 말하는 세례와 가톨릭의 영세입니다. 가톨릭에서 받은 영세는 다른 종교에서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만약 우리 교회의 교인과 가톨릭의 교인이 결혼식을 합니다. 그 때 결혼식을 가톨릭에서 하게 되면, 우리 교회에서 받은 세례는 무효가 되어 다시 영세를 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두 곳의 규칙은 다르지만 결국 영세이든지 세례이든지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은 같습니다.

과학자들의 이야기로는 사람이 수정아일때는 99가 물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태아가 되면 90가 물입니다. 그리고 태어나서 사람으로 살아갈 때에는 70가 물입니다. 그러다가 나이가 많아지면 50가 물입니다. 이렇게 사람은 많은 비율의 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속에서 사랑과 평화의 이야기가 오고 가면 해주면 육각형 결정체처럼 아름답게 되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욕설과 욕심과 흑암이 나오게 되면 흉측하게 변해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도 이러한데,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어떨까요.

저는 1962년 한국방송윤리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게 되면서 지난 98년까지 방송과 관계를 해 왔습니다. 그래서 늘 방송을 봅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정말 방송을 볼 수가 없습니다. 방송에서 즐겁고 가슴에 아름다운 무언가를 줄 수 있는 것들이 나오면, 물로 이루어진 저의 마음속에서도 온 몸에 퍼져나가는 아름다운 것들이 나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도무지 견딜 수가 없어 욕설을 하게 되는 것들만 자꾸 방송되곤 합니다. 재미없는 것이라면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욕설하고 싸우는 것들이 등장하니까 볼 수가 없습니다. 저의 속에서 나오는 반응 때문에 견딜 수가 없게 됩니다. 방송뿐입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도 그렇습니다. 소위 민주화가 되었다는 지금 나라 일을 보는 국회가 욕설과 공격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거리에는 노사 데모, 성매매 여인들의 생존권을 위한 데모 등 데모가 연이어집니다. 우리는 이런 사회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뿐만이 아니라 세상이 그렇습니다. 요즘 미국의 대통령 선거를 위해 부시와 케리가 논쟁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걸 보면서 제가 1956년 뉴욕에 살던 때에 아들린 스티븐슨과 아이젠하워가 대통령에 출마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그 때 제가 많은 미국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이번에 누구에게 투표를 하겠습니까 하고 물으면, 사람들은 대부분 글쎄요... 둘 다 좋은데. 그 중에서도 누가 더 좋을까요 라고 대답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부시와 케리 중 누구를 지지하겠습니까 하면, 이 쪽도 싫고 저 쪽도 싫은데 투표는 해야겠고... 글쎄 덜 나쁜 쪽을 뽑아야지 라고 대답합니다. 미국도 이렇게 달라졌습니다.

이것은 또한 사람이 사는 사회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태양은 빛을 우리에게 주어서 살아가도록 합니다. 그러나 오존층이 파괴되면서 태양의 빛은 지구 온난화를 가져오는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현상은 누가 만들었습니까. 바로 우리가 만든 것입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공급해주는 공기를 이렇게 혼탁하게 만들어 놓은 것은 누구입니까. 물을 오염시킨 것은 누구입니까. 우리가 가진 욕심입니다. 오늘의 이라크 사태처럼, 또한 한국과 세계의 많은 문제들처럼 모략과 싸움을 가져온 우리들의 욕심 때문입니다.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은 물처럼 흘러갑니다. 그런데 흐르다가 멈춰버리는 피조물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사람입니다. 또한 그 중에서도 제일 많은 사람들이 종교인들입니다. 그 중에서도 기독교인입니다. 창세기가 2400년 전에 유대나라에서 쓰여진 것인데 그것을 펴놓고 2400년 전으로 돌아가자고 합니다. 2400년전에 쓰여진 창세기는 계속해서 역사 속에서  흘러 내려와서 오늘 우리의 21세기 속에서 흘러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고정시켜놓고 그것만은 변함이 없어야 된다고 말합니다. 그건 이미 죽은 글자에 지나지 않으며, 다른 것들도 죽이는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개신교냐 가톨릭이냐 기독교냐 불교냐 그런 문제 이전에 그 종교가 생명을 가졌느냐 생명을 못 가졌느냐 하는 것은 갇혀버린 종교냐 활짝 열린 종교냐 하는 문제입니다. 열리지 못하고 닫힌 종교라는 건 이미 죽은 종교입니다. 그 옛날 처음에 쓰여진 경전을 그대로 펴놓고 고정시켜 놓는 것은 죽었다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신약성경에서 말했습니다. 문자에 매달리는 것은 이미 죽은 것이며 실제로 살아있는 소리라는 것은 영의 힘으로 오늘 내 속에서 오늘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의 신앙이란 한 자리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죽을 때까지만이 아니라 죽은 이후에도 계속해서 흐르는 것입니다. 나라는 한 인간의 70조 되는 이 세포 하나 하나 속에 우주의 법칙 즉 하나님의 법칙이 다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우리의 몸이 정말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물이 되시는 예수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생명을 받아들인 증거는 아름다운 육각형으로 나타날 아름다운 마음입니다. 그 증거는 다시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평화를 만들고 화해를 해가며 사랑하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럴 때 나 자신의 삶은 영원에 이르는 샘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서 교회에 와서 새벽기도를 아무리 해봐야 그 신앙은 죽어있는 신앙일 뿐입니다. 마태복음 10장에 쓰여 있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보잘 것 없는 한 사람에게 냉수 한 그릇을 주는 사람은 결코 그 상을 잃지 않는다.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냉수 한 그릇을 주는 지극히 작은 행동이 오병이어 같은 하나님의 기적으로 역사 속에서 나타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사랑을 베푸는 삶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 창조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이 세상 속에서는 그러한 생명에 이르는 물은 거의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오늘 읽은 요한계시록에 쓰여 있는 말씀입니다. 생명수가 흘러갑니다. 그 양 좌우에 있는 나무들이 생명의 열매를 맺습니다. 바로 그 모습은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이 부활하는 세상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준 광경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미래를 향하여 오늘 이 시간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과거가 현재 여기서 머물러만 있지 않다면 좋은 것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천당도 연옥도 현재의 내 삶속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바로 지금 여기에서 예수님께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샘물을 받아서 살고 있습니다. 만약 그것을 바르게 받아들였다면 내 삶속에서 모든 것이 사랑으로 보이고 아름답게 보이고 감사하게 생각됩니다. 그러한 삶으로 바꿔지는 사람. 그 사람이,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크리스천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 바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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