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인권의 신학으로서의 이주민의 신학
김 형 민 목사(광주 호남신학대학교 기독교윤리학 교수)
재일 조선인의 문제는 인권의 실천과제이다. 재일 조선인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들은 일본 사회 속에서 자신의 기본권을 향유하며 살 수 있는 법적 지위를 획득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다시 말해, 재일 조선인에 대한 질문은 이민족 소수자의 인권실현을 위한 역사적 한 사례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이 시간 소수자의 권리에 대한 법적 역사와 이에 대한 신학적 해석과 교회의 과제를 살피면서 이주민의 신학을 인권의 신학으로 논증하고자 한다.
1. 소수자의 권리
소수자의 권리(minority rights)는 역사와 문화적 제약으로 인해 자신의 권리를 향유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소수인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권리규정이다. 국제법이 공인하는 보편적 인권기준에 따르면, 소수자의 권리는 아직까지 명확한 법적 규정이 이루어지지 않은 생성중의 있는 권리(norm in statu nascendi)이다. 이에 대한 최근논의는 소련연방공화국과 유고슬라비아의 국가사회가 분열하면서 시작되었다. 국가의 분열은 그 땅에 사는 다수와 소수간의 긴장관계를 고조하였고 극기야 소수민족에 대한 다수민족의 파렴치한 인권침해가 발생하고 말았다.
소수자의 권리와 인권의 관계는 매우 복잡하다. 18세기 프랑스 철학자 루소(Rousseau)는 모든 정치적 결정은 다수결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는 가정 하에 소수자들이 단지 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특별한 권리를 가질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민주사회라면 소수인의 이익보다 인민의 일반의지(general will)가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정부는 각 개인의 자연권만 일차적으로 존중해야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오늘날까지 서구 자유민주주의 정치이론의 기초가 되고 있다.
유엔도 1948년 세계인권선언서를 초안하면서 의도적으로 소수자의 권리를 제외하였다. 왜냐하면 자신의 문화를 향유할 권리(제27조)와 차별금지(제2조)를 인권으로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국제사회에서 소수자의 권리를 환기하기에는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소수자의 권리가 오용되는 경우도 있었는데, 나치 독일은 타국에서 소수민족으로 사는 독일인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자신들의 침략행위를 정당화하였다. 이런 연유로, 유엔은 소수자의 권리의 인권적 성격에 대해 유보적 태도를 취했다. 대신 유엔은 ‘차별방지와 소수민 보호에 관한 소위원회’를 두어 이 문제를 별도로 관리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후로도 소수자의 권리의 가능성은 끊임없이 국제법의 시험대에 올랐다. 논의의 주요 쟁점은 소수민의 권리를 인정할 경우 국가의 응집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염려와 외세의 간섭을 조장할 수 있다는 주장 등이다. 하지만 유엔은 점차 소수민을 보호하기 위한 별도의 규정이 필요함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런 노력 중의 하나가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27조로, “종족적, 종교적 또는 언어적 소수민족이 존재하는 국가에 있어서는 그러한 소수 민족에 속하는 사람들에게 그 집단의 다른 구성원들과 함께 그들 자신의 문화를 향유하고, 그들 자신의 종교를 표명하고 실행하거나 또는 그들 자신의 언어를 사용할 권리가 부인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유엔총회는 1992년 12월 18일 ‘민족적 혹은 종족적, 종교적 및 언어적 소수자에 속하는 사람들에 관한 선언’을 채택하였다.
오늘날 소수자의 권리는 법적으로 두 가지 기본권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첫째는 소수자에 속한 구성원의 개인권으로 예컨대, 선거권과 같은 것이다. 둘째는 소수자 집단의 집단권으로서 예컨대, 타고난 고유한 언어로 교육을 받을 권리와 같은 것이다. 첫 번 문제는 많은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후자는 그렇지 못한 상태이다. 어느 지역에 사는 원주민들이 그 땅의 역사적이며 종족적 점유권을 주장하며 자신들만의 집단적 생존권을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티나간의 분쟁에서 보듯 그 해결점은 쉽지 않다. 더욱이 어느 소수집단이 이기적 이유에서 집단권을 주장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이기적 개인권과 같이 이기적 집단권도 인권에 위배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소수자의 인권을 인정할 경우 분명한 법적 조건이 규정되어야 할 것이다.
3. 불법경험과 인권의 보편성
소수자의 인권은 필연적으로 보편성에 대한 질문을 제기한다. 인권은 모든 사람의 권리이다. 만약 인권이 자신의 보편성을 상실한다면 한 계급이나 집단의 이데올로기로 전락할 수 있다. 인권은 그 개념 상 보편적으로 것이야 한다. 하지만 인권의 보편성은 철학적 논증의 다양성만이 아니라 종교적이며 문화적인 차이로 인해 이론적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인권의 ‘보편적’ 침해는 인권의 보편성을 반증하는 실증적 사례가 되고 있다. 정치, 문화, 종교 등의 차이에 따라 인권에 대한 이해와 인권침해의 양상이 매우 다양하지만 그 중 하나의 공통분모를 찾는다면 그것은 ‘불법경험’(Unrechtserfahrung)이다. 모든 종류의 인권요구는 불법경험에 대한 도덕적이며 법적 응답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불법경험이 보편적 인권의 실천적 논증을 위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는 근거는 불법경험이 역사와 문화전통이 다른 개인이나 집단 간에 최소한의 인권적 합의를 용이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인간적 고문이 가해지고, 공정한 재판이 거절되고, 신앙과 사상의 자유가 박탈되는 곳에서 우리는 직접적으로 불법을 경험하게 된다. 또한 경제적 불평등으로 인해 배고픔에 시달리고 사회의 구조적 악과 모순으로 인해 자기 발전의 균등한 기회를 상실할 때 간접적으로 불법을 당한다. 혹 내가 이 같은 불법을 직접 당하지 않았더라도 오늘 이웃이 당한 불법경험이 내일 나의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는 인권침해의 가능적 희생자임을 잊을 수 없다. 신학자 몰트만(J. Moltmann)도 “인권은 그런즉 추상적 이상으로 생각될 것이 아니요 인간과 민족과 국가들이 처해 있는 구체적인 고난의 역사와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해방투쟁의 각 맥락가운데서 파악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4. 소수자에 대한 성서적 이해
인류의 역사는 계몽의 역사이다. 계몽이란 인류가 자기의 이웃을 발견해 가는 과정이다. 교부 아퀴나스나 오리겐은 이방인을 동물과 같은 위치에 놓고 영성은 물론 이성도 갖지 못한 존재로 취급하였다. 한때 스페인의 정복자들이 ‘라틴아메리카의 인디언이 인간이냐 동물이냐?’는 논제를 두고 신학적 논쟁까지 벌렸던 것을 볼 수 있다. 오늘날도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이나 어린이는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갖지 못하고 있으며, 유색인을 여전히 인간이하의 존재로 취급하는 파렴치한 사회가 존속하고 있다. 하지만 인류가 피부색이나 종족 등에 따라 차별하는 행위는 인간은 아직 정신적 미성숙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증거이다. 현대사회는 여전히 새로운 이웃을 발견해가고 있다고 하겠다.
피부색, 인종, 성, 종교, 문화, 정치, 출신, 재산 등 인간의 서로 다른 차이에 근거해 소수자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는 근본적으로 인간을 사회적 능력이나 영향력에 따라 위아래로 분리하려는 차별의식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차별을 받고 있는 각 개인이 그러한 피부색과 언어를 사용하게 된 되에는 그들의 책임이 없을 뿐만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바꿀 수도 없다. 그러므로 소수자의 인권을 옹호하려는 교회의 특별한 과제는 첫째, 각각의 민족과 집단의 차이를 넘어 모든 사람이 한 인류의 가족이라는 의식을 분명히 환기하는 일이다. 우리 하나님은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시고 온 땅에 거하게 하셨다. 하지만 둘째로 인종의 문화적 다양성도 인식해야 한다. 하나님은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들어 온 땅에 거하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저희의 년대를 정하시고 거주의 한계를 한하셨다”(행 17:26). 인류는 바벨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흩어지기 전에 이미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축복의 말씀을 받았다. 하나님의 축복 아래 흩어진 백성들은 필연적으로 독특한 자기 문화를 형성하며 살아가게 된 것이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자신들이 소수자의 집단에서 시작하여 소수자라는 이유로 박해를 받았던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애굽의 종살이를 기억하며 자국의 이방인들을 돌보라고 명하신 것처럼 오늘날 그의 교회를 향해 소수자로 박해와 순교를 감수해야 했던 때를 잊지 말고 그들을 내 이웃으로 볼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5. 교회의 역할
오늘날 인권실현을 위한 각종 비정부 민간단체들(NGOs)의 활동은 매우 광범위하고도 활발하다. 특히 각종 기독교 인권단체들과 기독교회는 고난 받는 이웃과 연대하며 이들의 권리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민간단체들과의 연대를 통해서 그 목적하는 바를 효과적으로 이루어 왔다. 그동안 재일 조선인의 인권실현을 위한 한일의 공동노력도 그 결실의 한 축이다. 세계교회협의회(WCC) 및 그 산하단체는 “유엔헌장 71조”에 따라 공인된 민간단체로서 유엔이 설립된 이후 인권보호의 영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정부단체와 비교해 집권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민간단체들은 인권의 실현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많은 장점을 갖고 있다.
첫째, 그 조직이나 프로그램의 실행에 있어 민간단체들은 국가적 조직체보다도 융통성을 갖고 있다. 한 인권문제의 해결을 위해 어떤 압력을 받지 않고 자유스럽게 빠르게 결정할 수도 있다. 둘째, 정부보다 민간단체의 회원들은 적극적인 연대행위를 통해 그들이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더욱 적극적으로 성취할 수 있다. 민간단체는 설립 시 제정했던 목적을 중심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국가정치보다는 더 많은 신뢰성을 얻고 지속성 있게 일을 추진할 수 있다. 셋째, 대부분의 국제적 민간단체는 여러 국가조직들의 연합체이기 때문에 다양한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다. 넷째, 민간단체들은 어떤 한 특별한 문제에 대한 관심을 갖고 모인 집단이다. 그들은 오랜 경험을 통해 국가단체들이 갖지 못한 전문적 지식을 습득한다. 이를 통해 민간단체들은 이 분야에서의 권한과 권위를 갖게 된다. 다섯째, 민간단체들은 간접적으로는 그의 회원들에 의해 대표된다. 이 회원들은 자신의 국가에서는 아직 합의에 이르지 못한 주제나 사건에 대한 의견과 행동의 일치를 이룰 수 있다. 이를 통해 국제적 여론의 조성도 가능하다. 이상의 다섯 가지 민간단체들의 역할은 그동안 한일교회의 협력을 통해 소수자로 살아가고 있는 재일 조선인의 인권실현을 위해 구체적 열매를 맺었다고 하겠다. 이번 만남을 통해 불법으로 고난 받는 이웃을 위한 한일 간의 더욱 긴밀한 대화와 연대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