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독의 통일이 한반도 통일운동에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동·서독 통일 20주년을 기념해 23일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평화재단(이사장 법륜) 주최로 ‘독일통일 20년을 돌아보고 통일코리아를 내다본다’는 주제의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포럼에 앞서 이수혁 전 주독일대사의 축사와 법륜 스님의 기조 발언이 있었다. 이수혁 전 주독일대사는 “작금의 북핵문제가 더욱 더 위기의 국면으로 진입하는 것 같은 불안감과 위기감이 한반도에 감돌고 있다”며 “이러한 시점에서 독일 통일 20년을 돌아보고 남북한은 통일을 위해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에 대해 우리가 새롭게 조명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축사했다.
▲ 평화재단 법륜 이사장이 기조발언을 하고 있다. 북한주민들의 열악한 인권 현실을 목도한 그는 통일운동의 실질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베리타스 |
행사를 주최한 평화재단 법륜 스님은 기조 발언에서 “얼마 전 북한 인근(백두산, 두만강 등)에서 북한 주민들이 겪는 인권 실태를 듣거나 목격했던 적이 있다”며 “21세기 지구상에 특히 북한 주민들이 겪는 인권 실태는 그야말로 비참했다. 북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인권 침해와 얼마나 큰 고통을 겪고 있는지 우리는 알아야 한다”고 밝혔다. 또 통일운동이 탁상공론에 그치게 될 것을 우려하며 법륜 스님은 “이번 포럼이 동·서독의 통일 사례를 분석해 통일운동의 실천적 과제를 제시하는 중요한 모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어 박종화 목사(대화문화아카데미 이사장, 경동교회)의 사회로 포럼 제1마당(독일 통일 20년을 돌아본다)과 제2마당(남북한, 통일을 위해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이 이어졌다. 제1마당에선 유르겐 아레츠 박사(튀링겐주 경제부차관, 튀링거 개발은행 총책임자)와 한운석 전문교수(고려대학교 교양교육실)가 각각 △ 독일 통일의 전제 조건, 과정 그리고 전망 △ 독일 통일 20년의 경험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등을 제목으로 주제 발표를 했다.
아레츠 박사는 강연 서두에서 한반도가 겪는 분단의 아픔에 공감했다. 그는 “한국인의 경우, 독일인에 비해 분단의 아픔을 더욱 뼈아프게 겪어왔던 것이 사실이다”라며 “독일인의 경우, 어렵기는 했지만 서독에서 동독으로의 여행이 가능했고, 뿐만 아니라 40년간의 분단이 지속되는 동안 전화통화와 서신교환도 있었다”고 했다.
독일분단은 세계 2차 대전의 산물이었다. 아레츠 박사는 “서방 점령지역에서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기반을 둔 독일연방공화국이 탄생했고, 소련 점령지역에서는 중앙집권적 계획경제에 바탕을 둔 사회주의 독재체제가 성립되었다”며 “이로서 매우 짧은 시기에 서독과 동독은 국가, 경제, 사회적으로 극적인 차이를 보이게 된 것”이라고 했다.
이어 독일 통일에서 빠져선 안될 인물인 독일의 첫 총리 기독민주당의 콘라드 아데나워를 언급했다. 아레츠 박사는 “아데나워 치하에서 서독은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유럽 내 가장 성공한 국가로 발전해갔다”며 “당시 아데나워는 서독모델이 성공할 경우, 이는 장기적으로 동독인에게 매력으로 작용할 것을 계산하고 있었다”고 했다. 아데나워의 성공 전략에는 소련이 언젠가 동독을 자신의 관할지역에서 놓아 줄 것이라는 계산도 깔려 있었던 것이다.
▲ 유르겐 아레츠 박사가 '독일 통일의 전제 조건, 과정 그리고 전망'이란 주제로 발제하고 있다 ⓒ베리타스 |
아레츠 박사는 또 “서독이 성공국가로 급부상하면서 동독을 상대로 긴장완화정책을 펴나가자 동독은 점차적으로 폐쇄화 되어갔다”고 했다. 아울러 “서방세계의 이러한 긴장완화 시기, 소련은 서방측의 도발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불필요한 군사무장을 강화해나갔다”고 했다. 소련이 새로운 중거리미사일을 배치함으로써 서유럽, 특히 서독에 새로운 군사적 위협을 가한 것.
이에 브렌트에 이어 당시 서독총리로 임명된 사민당의 헬무트 슈미트는 나토 회원국에 힘의 균형을 외쳤고, 나토는 이런 서독의 의견을 수용해 결국 나토이중결의가 체결되기에 이르렀다. 아레츠 박사에 따르면 이 결의는 소련에게 미사일을 폐기할 것을 요구하며 불이행시 나토 역시 미사일 체제를 강화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소련은 이런 나토의 요구에 선동이란 우회적 방식으로 반응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아레츠 박사는 “서유럽, 특히 서독에서는 공산주의 단체와 몇몇 공산인사의 지휘 하에 소위 '평화운동'이 시작되었고, 연일 수십만 명의 시민들이 나토이중결의에 반대하며 '세계평화'를 위한 시가행진을 벌이기에 이르렀다”고 했다. 이들 시위자는 자신이 소련에 의해 도구로 이용당하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레츠 박사는 또 “독일통일 후에야 동베를린 비밀경찰(슈타지) 문서를 통해 이 시위에 공산주의자들이 어떠한 역할을 했었는지가 드러났다”고 덧붙였다.
독일 통일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요인으로 아레츠 박사는 1980년 무렵에 일어난 3가지 사건을 말했다. △ 공산국인 폴란드 출신 카롤 보이티야 추기경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로 추대된 것(폴란드 정치야당이 폴란드 공산체제에 저항했고, 나아가 소련 영향권 국가들의 반국가 운동의 표본이 되어 준 사건) △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패전 △ 레이건 신행정부의 강경 정책과 나토의 나토이중결의 실행 등이었다.
아레츠 박사는 “이러한 현대화 과정에서 소련은 어쩔 수 없이 자국의 이해관계를 재정의 할 수 밖에 없었다”며 “아데나워 총리가 이미 수십년 전에 예견했던 상황이 이제 현실로 나타난 것”이라고 했다. 급기야 1989년 가을, 동독국민은 대규모 시위를 통해 독일 정치변화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이렇듯 용감한 동독인의 행동은 서독의 헬무트 콜 지휘 하의 독일 통일로 이어졌다고 아레츠 박사는 전했다.
하지만 경기가 바닥을 쳤던 동독과 서독의 통일 후는 통일 전보다 더 멀고 험한 가시밭길이었다. 아레츠 박사는 “통일이 이루어진 지 20년이 흘렀지만 동독으로의 재정지원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며 “청년층, 특히 고학력 여성들은 아직도 서독을 선호하고 있으며 그 결과 젊은층의 동독이탈 현상은 아직도 심각하다”고 밝혔다.
실제로 독일국민(서독측)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그들 수입, 봉급의 5%가 넘는 금액을 동독재건을 위한 연대세 명목으로 납부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국민들 사이의 불만도 늘어가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아레츠 박사는 “하지만 이런 부정적 측면보다는 긍정적 측면이 분명하게 두드러진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며 “독일에는 더 이상 장벽이 존재하지 않고, 철조망도 없으며 두 대립적 정치진영이 종무장을 한 채 대치하고 있지도 않다”고 했다. 또 “오늘날 독일 국민은 누구나 완전한 인권과 시민권을 보장받고, 젊은이들은 자유로운 의사결정과 자아인성개발권과 함께 크나큰 정신적, 물질적 기회를 보장받으며 성장한다”고 통일 국가 독일을 자랑했다.
▲ 한 독일인 참석자가 통역기를 낀 채 한운석 박사의 강연을 듣고 있다 ⓒ베리타스 |
이어 한운석 박사는 독일 통일에 대한 평가들을 소개하면서 동시에 한반도 통일에 주는 교훈을 찾았다. 한 박사에 따르면 독일 통일에 대해 보수주의적 근대화론자들은 구동독이 남긴 장애물들을 과소평가 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지구화라는 악조건까지 겹쳐 통일 시기에 가졌던 낙관적인 기대가 아직 충족되지는 못했지만 체제이행과 통일프로젝트가 성공하고 안정되어 가고 있다고 평가한다. 반면, 체제이행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은 체제이행 과정의 근본적인 잘못으로서 새로운 공동의 헌법을 포기한 것, 경제 및 통화동맹의 너무 빠른 도입, 보상보다 반환을 우선시한 소유권 문제의 처리, 쇄신과 변화보다는 매각과 청산을 선호한 신탁관리청의 책임을 강조한다고 한 박사는 전했다.
한 박사는 또 독일 통일에 한반도 통일운동에 시사하는 바로 “독일이 큰 혼란 없이 통일 할 수 있었던 데는 서독의 경제력 뿐만 아니라 기본조약 체결 이후 수많은 인적 교류와 협력을 통해 같은 민족이라는 인식과 연대의식 그리고 어느 정도의 상호 이해가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전했다.
아울러 “이러한 교류와 협력의 단계가 없는, 준비되지 않은 통일은 심각한 파국을 낳을 것”이라며 “통일을 준비하기 위해서 우리는 파행적인 남북관계를 하루 속히 청산하고 6.15공동선언과 10.4공동선언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라고 했다.
통일 후의 문제도 언급했다. 한 박사는 “통일 후 북한 지역의 대량실업 문제는 우리 사회에 아마도 가장 큰 도전이 될 것”이라며 “실업자 구제 방안과 노동창출 정책, 직업교육 체계를 대폭 강화하고 확장해야 할 것이며 연금제도 역시 통일 후에 대한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밖에도 “공무원층과 교사들 외에도 다양한 계층의 재교육이 대규모로 광범위하게 필요할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도 새로운 교육연수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점검해 보아야 할 것”이라며 “민주시민을 위한 정치교육센터가 제도화 된다면 다양한 교육사업을 통해서 체제이행 과정에서 북한 주민들이 문화적 충격을 극복하고 새로운 사회·경제 체제의 기능방식을 배우는 데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