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 미국에서 목회할 때다. 미국의 중서부, 그니깐 미시간과 오하이오에서 살 때다. 겨울에는 눈폭풍(snowstorm)과 눈보라(blizzard)가 휘몰아친다. 때론 앞이 안 보일 정도다. 지역의 교장선생님들은 이른 새벽 초초한 눈으로 날씨를 보고 결정을 내려야 한다. "오늘 수업 없음"(school closed) 결정을 말이다. 학부형들은 이른 새벽에 로컬 TV 뉴스를 본다. 화면 자막에 "수업 없는 학교들"의 명단이 알파벳 순서로 계속 돌아간다. 물론 어린 애들은 전날 밤에 침대에 들어가면서 기도를 드린다. "하나님, 내일은 스노우 데이(snow day)가 되게 해주세요. 제발!"이라고. "스노우데이"(snow day)란 폭설로 인해 휴교하는 날이다.
지역교회의 목사들 역시 토요일 저녁 늦게 결정을 내린다. 의사 결정이 복잡하지 않다(뭔 당회까지?). 거의 상식 수준이다. 기상 캐스터들의 날씨 예보를 신뢰한다. 또한 얼어붙는 비(freezing rain)가 내렸거나, 날씨가 사나워 눈폭풍이나 눈보라가 심하게 불면 교회 예배는 자연히 취소된다. 예배 취소 때문에 누가 뭐라 하는 사람도 없고, 또 그런 문제로 침을 튀어가며 신학적 선언문을 내거나 누군가를 비난하지도 않는다. 그런 문제는 고도의 신학적 해석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건전한 상식에 바탕을 둔 판단력에 따르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교인들의 안전이 우선시 된다. 다 살자고 하는 게 아닌가?
그런데 폭설과 얼음판 도로, 앞이 안보일 정도의 세찬 눈보라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걸고 예배를 드리는 교회는 역시 한국 이민교회들이다. 물론 다 그렇지는 않지만 수십 년 전에는 대부분의 한인 교회들이 그러했다. 그들에게 예배를 취소한다는 것은 불경한 태도이고, 믿음이 없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한번은 우리 집 사람이 주일 아침에 정말 무시무시한 눈보라를 헤치고 차를 몰고 교회로 가다가 너무 무섭고 앞이 안보여서 다시 집으로 돌아온 일이 있었다. 그 후 어떤 교인이 농담 삼아, "사모님, 그러면 가시지 말았어야죠! 가시다가 큰 사고로 목숨을 잃으면 순교가 되나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우리 집 사람 왈, "그건 순교가 아니라 개죽음이죠!"라고 한바탕 웃었던 일이 있다.
요즘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인해 예배를 드려야 하니마니 하며 온갖 주장들로 온라인을 달군다. 예배신학을 불러내기도 하고, 신학적 입장을 천명하기도 하고, 서로 옳거니 틀리거니 하면 신학적 펀치를 주고받는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언제 기독교인을 알곡과 죽정이로 나누는 잣대로 임명되었단 말인가? 이럴 때 일수록 보편타당한 상식선에서 생각해 봐야하지 않겠나? 성경구절을 인용하지 않아도 신중하게 상식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것 아닌가? 교인들의 안전과 안녕을 고려하고, 정부(질본)가 제시하는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시민성을 회복해야하지 않을까? 언제까지 무례한 기독교인들로, 광훈이 같은 원리주의자로 일반 사회인들의 지탄이 되어야 할까? 심오한 신학보다 건전한 상식이 더 필요한 시대인 듯 하다.
※ 이 글은 류호준 백석대 은퇴교수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본보는 앞서 필자의 동의를 얻어 신앙성찰에 도움이 되는 유의미한 글을 게재키로 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