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여, 우리를 구하소서! 우리를 기근, 흑사병, 전쟁에서 구하소서! '
16세기를 사는 독일인의 기도였다. 그들은 늘 죽음과 함께 살아야 했다. 죽음 속에서 삶을, 삶 속에서 죽음을 잊지 않아야 했다. 루터의 삶은 역시 죽음이 늘 곁에 있었고, 그의 찬송 " 내 주는 강한 성이요!"는 이러한 상황에서 불러야 했던 찬송이었다.
루터는 하나님의 허락으로 사악한 영이 공기나 종기를 통해 사람의 몸에 독을 쏘아 흑사병이 온다고 말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 우선적으로 기도해야 한다. 불신, 불순종, 감사치 않음을 내놓고 회개의 기도를 드리며, '하나님, 우리를 긍휼히 여겨, 은혜를 베푸소서! 기도해야 한다. 당시 교회는 이 기회를 회개와 갱신의 때로 여겨 무릎을 꿇었다. 무엇보다 더욱 담대하고 두려워말고, 마귀를 물리쳐야 한다. 악한 영이 전염병에 두려워하고, 벌벌 떨며 무서워하고, 어찌할 줄 모르는 패닉에 빠지면, 좋아라 한다. 그러기에 강한 믿음으로 도리어 그 악한 영이 소스라쳐 놀라 도망치게 해야 한다.
루터는 흑사병을 피해 피난하지 않고, 심지어 환자를 집에 들여 치료하며, 심방하며 영적 위로자의 사명을 다했다. 루터의 품에서 비텐베르크 시장의 아내가 운명하기도 했다. 말할 것도 없이 수도 없이 그러한 자들의 장례식을 치뤘다. 하나님이 진정한 치료자임을 확신하며, 사망의 흑사병에 떨지 않았다. 특히 사명자들이 목사든지, 공무원이든지, '하나님의 종'으로서 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삯군이 되지 말고, 선한 목자로서 양들을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한다고 호소했다.
루터는 공적 예방 소독을 강조했다. 당시는 훈연소독을 말하는데, 집안에 연기를 펴서 공기에 있는 바이러스를 죽이고 정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환자가 필요로 할 때 그의 곁에서 도울 것을 강조했다. 환자를 방치하는 것은 살인죄를 범해, 주님의 심판에서 살인자가 될 것을 잊지 말라고 말한다. 또한 약을 나눠주고, 그 약을 먹으라고 말한다. 그 약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기에 그렇다. 그리고 병든 자와 오염된 지역을 나눠 멀리하라고 하며, 각별한 예방을 강조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 주님이 진정한 치유자가 되시며, 또한 자신이 병들었을 때에, 참 치료자되시며, 의사로서 우리를 낫게 하신다고 믿는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성을 주었기에, 사려깊게 합리적으로 생각할 것을 강조했다.
루터는 흑사병을 즈음하여 두 가지 죄를 말한다. 수동적 왼편 죄와 능동적 오른편 죄이다. 외편 죄는 전염병에 걸린 자를 무서워하고 방치하여 죽게 하는 죄이다. 오른 편 죄는 흑사병을 하나님의 저주로 운명론적으로 받아들여 역시 치료도 약도 주지도 먹지도 않고 받아들임으로 죽게 하거나 죽는 죄이다. 그럴 경우 환자가 조심하지 않아 남에게 전염시키는 결과가 오는데, 큰 잘못이라고 경고한다.
흑사병에 임하는 이러한 종교개혁자 루터에게서 공적 사명, 영적 책무를 다하는 모습을 확인하게 된다. 루터는 영적으로 신앙적으로 그리고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흑사병에 대처한다. 다르게는 교회 내 문제뿐 아니라, 대 사회적 책무를 할 수 있는대로 다하는 루터의 모습이다. 그 책무의 반경에는 한계가 없다. 할 수 있는대로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안과 밖에서 다한다. 아니 루터에게는 이런 구별이 없고, 어떻게 흑사병을 물리쳐야 할 것인가에만 마음을 다한다. 루터는 요한 3:16을 가져와 흑사병에 임하는 바른 주의 종의 모습을 강조하기까지 한다는 점이다. 자기 목숨을 바쳐 죄인을 살려내는 주님의 모습이 원리로 제시된다.
※ 이 글은 주도홍 백석대 명예교수(기독교통일학회 명예회장)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본보는 앞서 필자의 동의를 얻어 신앙성찰에 도움이 되는 유의미한 글을 게재키로 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