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샌프란시스코, 일본 도쿄, 영국 런던 등 세계 주요 도시에서 중국(내지 동남아시아)에서 발병한 것으로 추정되는 바이러스가 창궐한다. 바이러스로 인해 사람들이 잇달아 목숨을 잃자 각국 정부는 물론 세계보건기구(WHO)까지 나서 역학조사에 착수한다. 한편 미국 정부는 테러 가능성을 염두에 두면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다. 사람들은 패닉에 빠진다.
안심하자. 현실은 아니고 스티븐 소더버그의 2011년작 <컨테이젼>의 이야기다. 하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창궐하면서 영화 속 이야기는 더 이상 영화에 머무르지 않는다. <컨테이젼>이 그리는 우울한 상상은 전세계가 마주한 현실이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이 영화는 새삼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영화진흥위원회 온라인상영관 박스오피스 집계를 살펴보자. <컨테이젼>은 2일부터 8일 사이 주간 이용건수 36,480회로 6위를 차지했다. 1위에서 5위까지가 <히트맨>, <겨울왕국2>, <남산의 부장들> 등 최신작임을 감안해 볼 때, 비교적 '옛날' 영화인 <컨테이젼>의 흥행기세는 말 그대로 ‘역주행'이다. 이 같은 흥행기세는 코로나19 시국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연출자인 스티븐 소더버그는 코로나19를 예언한 듯하다. 영화 속 장면 하나하나가 코로나19과 너무나도 판박이어서다. 영화 속 MEV-1 바이러스의 발원지가 중국이고, 국가 간 이동을 통해 전세계로 퍼져나간다는 설정이 특히 그렇다.
하지만 소더버그는 인간적인 디테일에 주목한다. 홍콩 출장을 다녀온 베스 엠호프(기네스 펠트로)는 기침과 고열 증상이 나타나고 이내 발작으로 목숨을 잃는다. 베스와 접촉한 아들도 같은 증상으로 숨을 거둔다. 그녀와 접촉한 회사 동료 역시 마찬가지다.
이러자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소장 엘리스 치버 박사(로렌스 피시번)는 에린 미어스 박사(케이트 윈슬렛)를 현장에 긴급 투입한다. WHO도 레오노라 오란테스 박사(마리온 꼬띠아르)를 중국 현지에 파견해 감염원 추적에 나선다.
원인 모를 역병이 창궐하면 사람들은 불안과 공포에 휩싸이기 마련이다. 소더버그 역시 이 같은 불안과 공포에 시선을 떼지 않는다. 그러나, 불안 상황을 바라보는 소더버그의 시선은 놀라울이 만치 무뚝뚝하다. 아예 감정은 철저히 배제하기로 작심한 듯하다.
MEV-1 바이러스를 추적하던 미어스 박사는 자신도 감염되고, 결국 목숨을 잃는다. 참으로 비극적인 상황이지만 소더버그는 그의 죽음을 무뚝뚝하게 처리한다. 다른 장면도 마찬가지다. 베스의 남편 미치 엠호프(맷 데이먼)는 MEV-1 바이러스로 아내와 아들을 한꺼번에 잃는다. 미치는 이 과정에서 아내가 외도한 사실도 '본의 아니게' 알게 된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지만 소더버그는 미치의 감정 동선엔 아무런 관심도 없어 보인다.
무뚝뚝한 전개, 섬뜩한 반전
그러나 소더버그는 마지막 장면에서 반전을 노린다. 5분이 채 되지 않는 반전이지만, 참으로 섬뜩하다.
다국적 기업 에일 엘더슨사는 동남아 일대 삼림 개발 사업을 벌인다. 개발을 피해 박쥐가 사람이 사는 곳 근처로 날아든다. 박쥐는 양돈장 근처 바나나 열매를 먹었고, 찌꺼기를 양돈장에 떨어뜨린다. 이 찌꺼기 일부를 먹은 돼지는 먼저 자신을 요리한 요리사에게, 그리고 에일 엘더슨사 직원으로 홍콩 출장을 나온 베스 엠호프에게 바이러스를 옮긴다.
<컨테이젼>의 마지막 장면은 환경 파괴가 MEV-1 바이러스의 원인일 수 있음을 고발한다. 소더버그의 고발은 하나하나 사실로 드러나는 중이다.
2016년 시베리아에서 75년 만에 발생한 탄저병을 예로 들어보자.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뉴욕 프레스비테리안 병원 의사 맷 매카시는 자신의 책 <슈퍼버그>에서 그 원인을 이렇게 진단한다.
"수십 년 전 탄저균에 죽은 순록들이 영구동토층에 묻혔다. 폭염으로 이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치명적인 탄저균 포자가 지면 위로 노출되었다."
2013년 아프리카 기니에서 발병한 에볼라의 원인 역시 환경파괴라는 설이 유력하다. 최강석의 책 <바이러스 쇼크>의 한 대목이다.
"2013년 12월 아프리카 최빈국 기니. 궤케두 지역 한 마을에서 두 살배기 남자아이가 고열과 설사, 구토에 시달리다 숨졌다. 일주일 뒤 아이 엄마, 누나, 할머니도 같은 증상으로 눈을 감았다. (중략) 전문가들은 이번에도 주범을 찾아 나섰다. 주범은 '가뭄'이었다. 벌목으로 황폐해진 기니는 수년간 가뭄에 시달렸다. 주민들은 먹거리를 찾아 야생동물을 사냥했다. 야생동물에 숨어 있던 에볼라 바이러스가 인간을 감염시켰다."
이제 코로나19 차례다. 코로나19 발병 원인은 공교롭게도 박쥐다. 그런데 박쥐와 환경파괴, 코로나19는 무슨 상관관계일까? 고제규 < 시사iN > 편집국장은 3월10일자 독자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적었다.
"코로나19의 주범으로 박쥐가 지목 당한다. 박쥐는 종범이다. 주범을 찾자면 바로 인간이다. 인간의 탐욕으로 박쥐 서식지까지 침범해 개발하면서 그만큼 박쥐와 인간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박쥐가 가지고 있던 서로 다른 종료의 코로나 바이러스 사이에서 우연히 재조합(섞임)이 일어나 사람에게 감염시켰을 수 있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 보자. <컨테이젼>은 여러모로 예언자적이다. 환경파괴로 박쥐가 인간의 영역으로 들어와 인간에게 바이러스를 감염시켰음을 시사하는 결말이 특히 그렇다.
전세계가 코로나19 공포로 떨고 있다. 하지만, 인류는 언젠가 답을 찾을 것이라 확신한다. <컨테이젼>의 상상도 신종플루, 중증호흡기증후군(사스) 등 대형 역병을 겪은 데 따른 자연스런 결과일 것이다.
다만, 무엇보다 코로나19가 탄저균 혹은 에볼라 처럼 환경파괴에 따른 자연의 역습은 아닌지 반드시 규명해야 한다는 판단이다. 이 같은 규명 노력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자연은 코로나19 보다 더 공포스런 역습을 인간에게 가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