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마가복음 8장 14-21절
347. "인간은 한 대의 갈대에 지나지 않는다. 자연 중에서 가장 약한 존재이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하는 갈대이다. ... 우리의 모든 존엄성은 사고 속에 있다. 그것을 가지고 우리는 자기를 높여야 한다."
348. "공간에 의해 우주는 나를 포함하고 하나의 점처럼 나를 삼키고 만다. (그러나) 사고에 의해 나는 우주를 포함한다."
파스칼의 '팡세'에 나오는 말입니다. 사유(思惟)하지 않는 인간은 나약한 갈대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사유를 통해서 비로소 인간은 인간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깊이 생각하지 않는 습성
우리 민족은 대단히 정적(情的)이며, 직관적인 면이 강한 반면 사변적(思辨的)인 면이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즉 사유하는 습성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의 정치나 경제가 돌아가는 것을 보면 깊이 생각하면서 논리적으로 일을 풀어가기보다는 폭로하고 비방하고 권력의 눈치를 보면서 우격다짐으로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기업들의 운영을 보아도 합리적으로 운영되기보다는 무조건 돈을 끌어다가 쓰고 보자는 식의 운영으로 결국 빚더미 위에 올라앉아 부실기업으로 정리되곤 합니다.
그런가하면 가장 합리적이고 깊이 연구하여야 할 학계조차도 이론적인 토론보다는 인맥, 학맥을 중심으로 문제를 풀어 가는 것을 봅니다. 그런 면에서 교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가 있을 때 깊이 연구하고 성경적으로나 신학적으로 타당하고 합리적인 결론을 이끌어 내야 할 텐데 총회에서 즉흥적으로 결정될 때가 허다합니다. 이런 풍토 속에서는 신학이 발전하기 어렵고 교회 개혁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신학자들이나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 교단의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패거리를 이룬 목사나 장로들이 좌지우지하는 풍토에서 새로운 것이 나오기는 어렵고, 그 교단이 개혁되기를 바랄 수 없습니다. 생각하는 진보와 보수의 진지한 신학적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질 때 거기에 새로운 발견, 새로운 신학이 나타날 수 있는데, 무조건적인 수구세력들이 판을 칠 때 그 교회는 발전하지 못하고 쇠퇴할 수밖에 없습니다.
평신도들도 깊이 생각하면서 믿는 신앙이 아니라 무조건 '아멘' 하는 신앙입니다. 부흥사가 욕을 해도 '아멘'하고, 연발하는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라는 말끝에 무조건 '아멘'하는 생각 없는 평신도들 때문에 한국교회가 수는 많아도 그 질이 형편없어 사회로부터 지탄을 받습니다.
독일의 철학자인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가 나치전범인 아이히만의 재판을 보고 쓴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아이히만은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전혀 깨닫지 못했던 자였던 점에 악의 평범성의 특징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아이히만은 자신을 상급자의 명령을 충실하게 이행한 평범한 공무원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생각 없는 충실한 명령이행이 수백만의 유대인을 학살하는 끔찍한 만행의 결과를 낳았다는 점에서 아렌트는 이를 '악의 평범성'이라 하였습니다. "아이히만은 자신의 머리로 선악을 판단하지 않은 무사유적 '인격'이었다." "그로 하여금 그 시대의 엄청난 범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게 한 것은 (결코 어리석음과 같지 않은) 완전한 무사유(sheer thoughtlessness)였다"고 지적하였습니다. 특별한 악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없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거대한 악에 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러한 무사유가 인간 속에 아마도 존재하는 모든 악을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은 대 파멸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사실상 예루살렘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었다."
국가나 단체 혹은 교회의 지도자들은 국민이나 회중을 단순화시켜야 통치가 수월하기에 언론 통제나 설교를 통해서 "언어 자체를 단순화하고 '복수성'이 나타날 여지를 없앰으로써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않게" 만듭니다. 12·12 군사 반란과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집권한 전두환 정권이 '3S 정책'이란 우민화 정책을 폈는데, 국민의 관심을 Sports, Sex, Screen으로 돌려서 반정부적인 움직임이나 정치·사회적 이슈 제기를 무력화시키려 하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교회는, 목사들이 '믿습니까?'를 연발하면서 교인들의 '아멘'을 유도하여 회중의 '복수성'을 소멸하고 단순화시키는 회중우매화 작업에 열중하였습니다. 대형교회일수록 많은 회중을 하나의 틀 속에 집어넣어 다양성을 없앰으로써 목회자가 자기 뜻대로 교회를 이끌어갑니다. 결국 그리스도인들이 생각 없이 '아멘'만 연발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무사유한 인간이 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악행에 협조하고 앞장 서는 불의한 자, 악에 빠지는 범죄자가 되고 맙니다.
예수를 믿는 두 가지 방법
우리가 예수를 믿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진리를 깊이 몰라도 무조건 믿는 방법입니다. 성경을 읽어도 무슨 뜻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의심하지 않고 그 사실을 그대로 받아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어떻게 내 죄를 대속하는지 잘 모르지만, 어쨌든 내 죄가 대속 된다니 감사하면서 무조건 믿습니다. 부활이 어떻게 가능한지 잘 모르지만 무조건 부활을 믿습니다. 다른 하나는 처음에는 무조건 믿었지만, 그 십자가 죽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부활이 어떤 상태로 언제 이루어지는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할 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하나하나 따져보고 생각하면서 믿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주로 전자의 방법으로 예수를 믿습니다. 무조건 믿고 아멘 하는 태도입니다. 그래서 열정이 있고 교회가 부흥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단자들이 나와서 성경을 멋대로 해석하며 유혹할 때에 그것을 분별할 능력이 없어서 쉽게 넘어갑니다. 무조건 아멘 하고 쉽게 박수 치다보니 자기도 모르게 이단교회에 속하게 됩니다. 교회성장이 무조건 좋다고 생각하면서 열심을 냈는데, 커진 교회가 한다는 짓이 세습이나 아니면 아들에게 교회나 사업체를 만들어 주는 등의 엉뚱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교인들은 그것이 잘못인 줄 깨닫지 못하고 무조건 지지하며 따르고 있습니다. 따지고 캐는 것보다 그저 덮고 넘어가는 것이 교회 평화를 위해서 은혜롭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교회가 개혁되지 못하고 계속 잘못되어 가고 있습니다. 깊이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인지 사람의 욕심인지를 구별하지 못하고 이끄는 대로 따라갑니다. 단순한 신앙은 깊이가 없으므로 다양성을 지니지 못하면서 전체주의에 빠지게 되고 결국 목사의 통제 아래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생각 없는 집단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깊이 생각한다는 것의 의미
오늘의 본문인 마가복음 8장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바리새인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말씀하시자 그들은 엉뚱하게 빵을 가져오지 않은 일에 대하여 걱정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호되게 꾸중하셨습니다.
"어찌하여 너희는 빵이 없는 것을 두고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의 마음이 그렇게도 무디어 있느냐? 너희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기억하지 못하느냐?"
그렇게 가까이 예수님을 모신 제자들도 헛된 정치적 욕망에 눈이 가려져서 예수님의 말씀의 본뜻을 제대로 알아듣지를 못하였습니다. 조금만 생각하여도 그 뜻이 무엇인지 알았을 텐데 정치적 욕망에 사로잡힌 제자들에게 영적인 것을 생각할 능력이 부족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주로 비유로 천국의 복음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제자들로 하여금 생각하도록 훈련시키신 것이기도 합니다. 비유란 이야기를 통해 어떤 진리를 전하는 수단인데, 생각을 해야만 그 뜻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비유를 들으면서 생각하는 법을 배웠고, 오순절 다락방에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미처 몰랐던 하늘의 비밀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성령은 우리의 사고의 범위를 넓혀주셔서 이 땅의 것만을 생각하던 머리로 영의 세계까지 생각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깊이 생각한다는 것은 생각의 범위가 하늘에까지 미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땅의 경험과 논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성령의 깨우치심을 통해 영의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드리게 되면, 그 생각이 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땅의 것만 생각하고 그 논리대로 살던 우리가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이 넓고 신비한 영의 세계에 들어가게 되면, 자연 우리의 생각도 그만큼 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나 중심으로 생각하며 살던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변화되면서 전에 생각하지 않던 하나님의 구원과 그 역사와 은총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 땅의 일도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잘못되기 쉬운데, 하물며 전혀 생소한 하나님과 그 나라의 일은 더더욱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잘못되기 쉽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나 자신을 버리게 되고 하나님의 생명으로 통합되어 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을 알기 전에는 내가 세계의 중심이었지만, 하나님을 알게 된 후로는 하나님 안에서 나 자신을 보게 됩니다. 지극히 작고 낮은데서 나의 삶만을 생각하다가 하나님 안에서 나의 삶을 보게 될 때 그리고 이 땅의 역사를 보게 될 때 그것은 지극히 큰 세계의 한 부분임을 알게 됩니다.
깊이 생각하려면
따라서 깊이 생각하려면 전에 가졌던 얕은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생각하는 자리가 다르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전에는 땅의 논리로 땅의 일만 생각하였지만, 지금은 하늘에서 하늘과 땅의 일을 함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교훈 하시고 하늘나라의 비밀을 말씀하셨을 때 사람들이 그것을 알아듣지 못한 것은 그 사람들이 땅에 속하였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3장에 보면, 니고데모가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와 대화를 나누었을 때도 니고데모는 철저하게 이 땅에 속한 사고를 하였고, 예수님은 하늘나라의 방식으로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니고데모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습니다. 니고데모는 그 당시 사람으로는 꽤 생각하는 축에 속하였음에도 예수님의 거듭나야 한다는 말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 의미에서 참으로 뛰어난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는 철저하게 이 땅에 속한 율법주의자였으나 예수님을 만난 순간 그 모든 것을 다 버리고 하늘나라의 사고방식을 재빨리 받아드렸습니다. 사도 바울만큼 깊이 생각한 사람은 드물었습니다. 바울의 로마서를 비롯한 서신들은 편지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깊게 그 복음의 진리를 설파하고 있습니다. 그가 그렇게 깊이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과거의 사고방식을 철저하게 버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좇아 새로운 사고의 자리에 올랐고, 거기서 모든 것을 새롭게 보기 시작하였기 때문에 가능하였습니다.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금년 4월 15일 국회의원을 선거합니다. 우리의 주권을 올바르게 행사할 수 있는 대단히 중요한 기회입니다. 이런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하며 어느 당 누구를 선택하느냐 하는 문제는 깊이 생각해야 할 과제들입니다.
우선 오늘날의 정치적 상황들을 살피면서 교회가 어떻게 판단하며 어떻게 대처해야 옳은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교회와 정치는 분리되어야 하지만 그 말은 교회가 직접 정치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지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통치를 이 땅에 실현시켜야 할 선교적 사명을 받았기에 정치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드리도록 기도하고 선교하여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결국 그런 목적을 달성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의 하나가 바로 선거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 곧 정의와 사랑․평화․인권․평등 등을 받아들인 정치인을 선출하므로 정권이 이런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하게 하는 것이 바로 교회가 선택하여야 할 길입니다.
따라서 이를 위해 우리는 오늘의 현실을 깊이 통찰하고 눈에 보이는 현상만을 볼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더 깊은 상황들을 두루 살펴서 바르게 판단하고 바르게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처한 현실만을 볼 것이 아니라 주변 국가의 동향과 세계적 흐름 등을 두루 살피면서 우리의 상황을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즉흥적으로 눈에 보이는, 몸에 와 닿은 현상만을 보고 판단하면 그릇되기 쉽습니다. 기도하면서 깊이 생각할 때 비로소 우리는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남북관계가 잘 풀려가지 않는 상황이며, 미·중·일 같은 강대국들의 압력 속에서 우리의 주권을 행사하기가 쉽지 않으며, 거기에 더하여 신자유주의에 의한 빈부의 격차가 점점 더 심화되므로 사회의 불안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기후위기가 닥쳐오면서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데, 과연 이 때 교회는 여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위기의 때일수록 올바른 정치인들이 선출되어야 하며 그들이 올바로 이런 위기에 대처해 갈 수 있도록 협력하고 밀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날 한국교회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이 이리 저리 흔들리고 가볍게 떠도는 것은 우리가 아직도 이 땅의 사고방식으로 복음을 받아드리기 때문입니다. 경제 성장 논리를 따라 교회성장을 서둘렀기 때문에 오늘날의 교회가 세상의 빛으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치 논리를 따라 교회 정치를 하기 때문에 총회장 선거에 돈을 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업의 논리를 따라 교회를 운영하기 때문에 세습을 하게 됩니다. 교인들이 이 땅의 욕심을 그대로 가지고 복을 받겠다고 덤벼들기 때문에 하늘을 빙자한 엉터리 목사들의 속임수에 넘어가고. 가짜뉴스에 휩쓸려 갑니다.
그러므로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바다같이 깊은 영의 세계를 헤엄치면서 깊이 생각하십시오. 그럴 때 여러분은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신앙을 갖게 될 것이고 위기의 때에 올바른 판단력을 갖게 될 것입니다. 교회의 목사나 정치 지도자들이 사기꾼인지 진정한 하나님의 일꾼인지 올바로 분별할 수 있도록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이번 총선은 특별히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도록 기도하며 깊이 생각하면서 총선에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편집자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이하 NCCK, 총무 이홍정 목사)는 지난 68회기 1차 정기실행위원회 총무보고를 통해 극우보수 기독교세력의 정치집단화로 인해 한국교회의 정치참여 문제가 시험대에 올라있는 상황을 직시했고 이에 교회가 4월 15일 총선에 하나님나라의 가치를 기준삼아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를 권면하는 내용을 담은 설교문을 지역교회에 배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본지는 NCCK가 각 회원교단의 건강한 목회자로부터 제공받은 4.15 총선 관련 설교문을 차례로 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