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암 이장식 박사(한신대 명예교수)가 17일자로 100세 생일을 맞았다. 한국교회 최초의 100세 신학자의 탄생이다. 이 박사는 지금으로부터 꼭 100년 전 경남 진해에서 태어났다. 희대의 석학으로 잘 알려진 이 박사는 일제 식민지배 시절 나라 잃은 설움과 6.25 동란으로 인한 동족 상잔의 비극 그리고 서슬퍼렇던 군사독재와 산업화, 민주화 시대라는 격동의 세월을 한 몸으로 겪어낸 신학자다.
시련과 역경이라는 불협화음 속에서 맑은 영혼의 화음을 이루었던 그의 삶 자체는 한국교회의 입장에서 볼 때 큰 축복이었다. 이장식 박사는 6.25 이후 황무지와 같았던 한국신학교육계에 혜성처럼 나타나 이른 바 교육일념으로 세계교회사와 아세아교회사, 한국교회사, 기독교신학사상사, 고대교회사, 기독교 사관의 문제, 연구 방법론, 어거스틴, 주기철, 본회퍼 연구의 교회사 인물론, 정통주의 합리주의 등 교회사를 중심으로 깊고 넓은 신학 연구활동의 초석을 놓았다.
뉴욕 유니온신학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아퀴나스(가톨릭) 신학원에서 신학박사(Ph.D) 학위를 받은 교회사가 이장식 박사는 특히 한국교회사 뿐 아니라 아시아교회사 그리고 세계교회사 연구로 지평을 확대하는 발자취를 남김으로써 한국 신학계에 길이 빛날 성취를 이뤘으며 교회사를 중심으로 신학적 역사이해의 정체성을 확립해 후학들의 기독교 사관 형성에도 큰 기여를 했다.
제1회 한신 졸업생 교수로써 그는 한신대학교 교수, 계명대학교 교수, 예일대학교 신과대학 연구교수, 영국 맨체스터대학교 신과대학 명예 객원교수, 케냐 동아프리카 장로교신학대학 교수 등을 두루 역임하며 교육 활동을 이어갔다.
은퇴 이후에는 교육자의 부재로 어려움을 겪던 동부 아프리카 케냐 PCEA(Presbyterian Church of East Africa) 산하 장로교신학교의 요청에 좌고우면하지 않고 케냐로 교육 선교를 떠나 14년 동안 미지의 땅에서 교편을 잡았다. 귀국한 후에도 꾸준히 연구활동을 하던 그는 수년전부터는 진보와 보수 신학의 상호동격적 대화주의를 표방하는 '혜암신학연구소'의 초대 소장을 맡으면서 100세를 맞이한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연구와 교육 활동의 횃불을 들고 있다.
그의 교육일념 만큼이나 학문적 부지런함에서 나오는 그의 방대한 저술 활동도 눈여겨 보지 않을 수 없다. 후학들에게 한국신학과 신앙의 전통이라는 유산을 남기기 위해 그는 『기독교 사상사』(Ⅰ,Ⅱ권, Ⅲ권(공저)), 『현대교회학』, 『기독교 신조사 상·하』, 『기독교 사관의 역사』, 『기독교와 국가』, 『아시아 고대 기독교사』, 『젊은 어거스틴』, 『교부 오리게네스』, 『평신도는 누구인가?』, 『프로테스탄트 신앙원리』, 『존재하는 것과 사는 것』, 『교회의 본질과 교회개혁』 그리고 90세에 출간한 『세계 교회사 이야기』 외 다수의 책을 집필했다. 100세를 맞은 올해에는 그의 기념문집 출간도 앞두고 있다. 이 문집에서 그는 자신의 100세 인생을 아래와 같이 짤막하게 회고했다.
"하나님이 내가 백세가 되도록 만족할 만큼 오래 살게 하셨는데(시91:16) 그 긴 세월의 전반부를 회고하고 싶다. 실로 그 세월은 먹구름과 폭풍우가 몰아친 밤과 같은 것이었지만 나를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의 그 크신 은혜를 생각하면 그 세월이 값진 것이었다. 그 때 하나님이 나를 옛 욥에게처럼 등불로써 내 머리 위를 비추시고 인도해 주셔서 내가 어둠 속을 활보할 수 있었고(욥 29:2,3) 시편의 옛 시인에게처럼 가을비로 내 삶의 샘을 가득 채워 주셨고(시 84:6), 또 은혜의 이슬로 때때로 나에게 생기를 불어 넣어 주셨다(잠 19:12). 그리고 종당에는 나의 부르짖은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은 내가 바란 항구로 인도하여 주셨다(시 107:2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