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설교] 치유와 선포

한문덕 목사(생명사랑교회 담임)

hanmoonduck
(Photo : ⓒ생명사랑교회 홈페이지(https://www.agapao-zoe.com))
▲생명사람교회 한문덕 담임목사

출애굽기 32장 1-5절, 시편 103편 15-18절, 마가복음서 6장 6b-16절

[예수님과 제자들 그리고 우리 인생의 목표]

오늘 우리가 읽은 신약성서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세상에 파송하는 장면입니다. 마가복음에 따르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복음을 공식적으로 선포하신 후에 제일 먼저 갈릴리 바닷가로 가셔서 그물을 깁고 있던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을 제자로 부르십니다(막 1:14-20).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은 처음부터 공동체 운동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길가에 앉아 있던 세리 레위도 부르시고, 곳곳에 자신의 제자들을 두십니다. 예수님은 홀로 활동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열 두 제자와 누가복음서가 말하는 70제자 외에도 여성 제자들도 있었고, 바리새파와 율법학자들 중에도, 그리고 로마 백부장 중에도, 산헤드린 의원들 중에도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숨은 제자들이 곳곳에 있지만, 특별하게 산에 올라가서 열 두 제자를 세웁니다. 유대 전통에서 산은 하나님이 계신 곳이며, 모세가 율법을 받은 곳입니다. 누가복음서에 따르면 예수께서는 산에 오르셔서 밤을 새우면서 기도하신 후 열 두 제자를 뽑습니다. 열둘은 어쩌다가 모인 사람들이 아니라, 예수께서 기도로 하나님과 상의한 후에 탄생된 공동체이며, 이들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상징하였고, 율법을 대신하는 공동체로, 예수님은 이들과 함께 활동하시며 전체 이스라엘을 회복하고 희망 찬 미래를 열어갑니다.

저와 여러분은 모두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뽑아서 세운 제자들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해야 합니다. 예수를 믿고 교회에 다니는 것의 목표는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실현하는 것입니다. 이 명백한 사실을 잊거나, 소홀히 하는 순간 교회는 타락하고,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들과 전혀 구별되지 않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시편은 인생의 진리 하나를 알려 줍니다.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고, 피고 지는 들꽃 같아, 바람 한 번 지나가면 곧 시들어, 그 있던 자리마저 알 수 없는 것이다.' 지구생명체 전체의 관점에서 개인들을 보면, 인생처럼 허무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잠시 이 땅에 머물다 가는 존재들입니다. 나 하나 없어진다고 세상에 큰 변화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은 늘 삶의 의미를 묻지만, 육체로서의 인간은 그저 생로병사의 과정을 겪을 뿐입니다.

전도서의 지혜자가 일찍이 깨달았듯이, 육체적 인간의 밑바닥에는 허무가 있습니다. 영원히 존재할 수 없고 언젠가는 소멸되기에,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될 뿐입니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도 결국은 사라지고 맙니다(전도서 1:2-12). 사람들은 이 허무함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그 자리를 무언가로 채우려고 합니다. 돈을 많이 주는 직장, 힘을 부릴 수 있는 높은 자리, 취미 활동, 산과 들로 다니며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 때로 가족에게 모든 것을 걸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우리 내면의 바닥 모를 허무를 채워주지는 못합니다. 예술로 승화하고, 사회운동에 나서는 이들도 있지만 이것 또한 때때로 허무와 불안이라는 깊은 강 앞에서 주저앉고 마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오늘 시편의 저자는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만이 영원에서 영원까지 주님의 사랑을 맛볼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교라는 종교가 인간에게 들려주는 구원의 말은 바로 이것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로 태어난 인간의 깊은 허무를 자신이 무언가를 함으로써 극복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돈이든 권력이든 취미든 예술이든 사람과의 관계든 여행이든 무엇이 되었든지, 사람의 빈 마음을 영원히 채울 수 있는 것은 오직 거룩한 하나님의 사랑과 영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지내면서 거룩한 영의 충만함을 맛보았습니다. 예수님과 제자 사이는 단순히 지식 정보를 주고받는 사이가 아닙니다. 율법 해석을 배우면 또 다른 선생을 찾아 떠나는 그런 사이가 아닙니다. 평생 함께 하며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깨달아가며, 예수님의 인격에 감화될 뿐만 아니라, 예수께서 지니신 하나님의 영이 자신에게 스며들고,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와 판박이가 되어 예수님의 길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바로 제자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도, 예수님의 겉모습만 보고 그저 예언자 중 한 사람, 종교적 성인, 기적을 베푸는 자, 랍비, 사회혁명가 정도로 간주해 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함께 했던 제자들은 바로 예수님이 하나님과 하나 되신 분임을 알았고, 그래서 자신들의 허무한 심연을 하나님으로 채울 수 있었습니다.

바람 한 번 지나가면 시들어 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지만, 예수를 믿는 우리들, 하나님께 부름 받아 세워진 우리들은 다른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코로나 19로 함께 모여 예배하지 못하고, 온라인으로 가정에서 예배하지만, 어떤 환경에서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깊고도 넒은 하나님의 품에 안겨야 합니다. 그 품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 길은 때로 멀고 험하고, 아리송하고, 착각과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길이기도 하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길입니다. 하나님 안에서만 모든 허무와 불안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인생 목표가 무엇이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품 안에서 이루도록 하셔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큰 계획 속에서 여러분을 자상하게 이끄실 것입니다. 쉽게 포기하면 안 됩니다. 우리보다 먼저 그 길을 갔던 신앙의 선배들의 조언을 되새기며 굳건하게 하나님을 찾고 만나야 합니다.

[우상 숭배]

오늘 구약성서의 본문은 하나님을 찾고 만나는 길에서 우리 모두가 쉽게 빠져드는 유혹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증거판을 가지고 오기 전, 지도자의 공백을 견디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상을 만듭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찾기보다는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을 쫓아가는 인간의 습성이 발현된 것입니다. 애굽을 탈출하여 광야의 험한 길을 가는 동안 하나님은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심을 보여 주었는데도, 이스라엘 백성은 그 약속을 신뢰하지 못하고 이웃 민족들이 섬겼던 송아지를 만들고 하나님인양 숭배합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스라엘 백성이 얼마나 우매한가, 비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한국 그리스도교는 이스라엘 백성과 똑같이 우상 숭배를 해 왔습니다. 장로 요한이 가이오에게 편지를 쓰면서 인사말로 한 구절, "사랑하는 이여, 나는 그대의 영혼이 평안함과 같이, 그대에게 모든 일이 잘 되고, 그대가 건강하기를 빕니다."라는 말을 가지고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말 그대로 정말 우리 영혼이 주님 안에서 평안하듯, 우리네 모든 일이 잘되고 늘 건강하기를 바라는 이 인사말을 가지고, 하나님을 잘 믿으면 자동적으로 육체의 건강뿐만 아니라 모든 사업이 성공하는 것처럼 교묘히 부추기면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물질적 축복과 성공으로 등치했습니다. 삯군 목사들은 이것을 이용해서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며 헌금을 강요하고, 목사의 말을 하나님 말처럼 받들라고 잘못 가르쳤습니다. 교인들은 이것이 잘못된 것인지도 모르고, 세상의 물질적 부를 얻기 위해 하나님을 수단으로 삼고서는 그것을 신앙으로 여겼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힘과 생식력의 상징인 수소를 만들고 그것을 하나님이라고 부른 것처럼, 한국교회도 대형건물과 많은 숫자의 교인, 엄청난 양의 헌금을 가지고 마치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은 온데간데없고 욕망이 하나님 자리를 차지하고 말았습니다. 실제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져서 가난한 자들이 복음의 소식을 듣고, 억눌린 자들이 자유를 얻으며, 소외된 이웃들에게 온정을 나누고, 분열과 싸움이 가득한 곳에 평화의 소식이 들려야 하는데, 그 대신 우상이 가득한 교회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서 이루어지지만, 세상이 추구하는 방식하고는 다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꾼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이기에 하늘나라의 가치와 방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마가복음서의 본문에서 우리는 그 일면을 보게 됩니다.

[치유 받아야 할 세상과 치유자의 자세]

예수님과 함께 했던 제자들은 이제 둘씩둘씩 짝을 지어 세상으로 보냄을 받습니다. 제자들이 세상에 나가서 할 일은 두 가지입니다. 바로 오늘 설교 제목인 "치유와 선포"입니다. 사람의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하는 모든 악한 것들을 쫓아내고, 사람들에게 잘못된 생활 습관을 고치고 올바른 삶을 살라고 선포 합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님의 참 제자라면 우리 또한 오늘의 세상으로 나아가 치유와 선포를 해야 합니다. 현대에 병의 치유는 의사의 몫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한국처럼 좋은 의료제도가 있고, 병원이 있고, 실력 있는 의사가 있는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고통과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치유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쫓아내야 할 악한 귀신들은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마가복음 7장 21절에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온갖 나쁜 생각들과 행동들이 나옵니다. 음행, 도둑질, 살인, 간음과 탐욕, 악의와 사기와 방탕과 악한 시선과 모독과 교만과 어리석음입니다. 제자는 세상에 나아가 이런 나쁜 생각과 행동을 치유하고, 사람들의 도덕성을 높이는데 일조해야 합니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탐욕에 빠져 사람의 생명보다 돈을 더 추구하고, 돈을 더 벌기 위해 유혹에 넘어가고, 그래서 패가망신하는 경우들을 종종 보게 되는데, 무엇보다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존경할 만한 이들이 되어야 합니다.

도덕성을 갖추는 것도 만만한 일은 아닙니다. 교만한 마음을 품지 않고, 비뚤어진 시선으로 남을 보지 않고, 분노에 사로잡혀 혐오의 언어들을 쏟아내지 않는 것, 꾸준히 배워서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나도 모르게 나쁜 습관이 내 몸에 배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께서는 항상 기뻐하고, 모든 일에 감사하라고 했지만,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나오는 불평과 불만들을 제어하기란 참 어렵습니다.

제가 향린교회에서 목회할 때, 한 번은 편두통이 심해서 근처 한의원을 찾아 간 적이 있습니다. 한의사가 제 뒷목을 보더니, 목에 주름이 한쪽 면으로 잡혀 있다면서 컴퓨터를 사용하며 앉는 자세가 뭔가 잘못된 것 같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제가 책과 문서를 올려놓는 독서대를 왼쪽에 놓고, 컴퓨터와 독서대를 오가며 하루 종일 작업을 했는데, 바로 그것이 문제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목을 왼쪽 방향으로만 계속 틀게 되었던 것이 쌓여서 편두통을 가져온 것이지요. 그 뒤로는 독서대를 오른쪽 왼쪽 번갈아가면서 놓았고 편두통은 사라졌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잘못된 생활 습관에서 고통과 아픔이 비롯되었던 것입니다.

그동안 인류는 지구의 주인인 것처럼 행세해 왔습니다. 그러나 코로나 19를 겪으며, 인간도 많은 지구생명체들 중 하나라는 사실을 여실히 깨닫고 있습니다. 생명의 비밀을 밝히고, 유전자 지도를 그리며, 4차 산업혁명이 몰고 올 파라다이스를 예찬한 이들도 있지만, 바이러스 하나에 전 세계가 어리둥절하고 있다는 사실은 지난 우리들의 삶 전체를 돌아보게 합니다. 지구화, 도시화, 금융화, 생태계의 수단화로 요약될 수 있는 현대 인류의 삶이 근본부터 바뀌어야 합니다.

아직도 세계 곳곳에는 생명의 존엄성과 인류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해로운 정신적 풍토가 존재합니다. 중국인을 비롯하여 아시아인들에 대한 인종차별, 거짓 뉴스의 남발, 무한경쟁 시스템, 미세 플라스틱과 미세먼지 문제, 디지털 세상이 몰고 올 혼란, 주기적으로 발생할 것으로 보이는 전염병 대 유행 등 거대한 사회 문제들 앞에서 개인은 물론 인류 공동체 또한 이것들을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막막하고 무기력한 처지에 놓여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인 우리들도 혼자 힘으로는 이런 지구적 위협을 이겨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럴 때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치유자가 되어야 하고, 회개하라고 선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 속에서, 이 세상의 유일하고도 참된 주님과 함께함으로써 이 힘들에 대항할 '하나님의 무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이 멈춘 곳에서도 하나님께서는 활동하시며, 인간의 상상력을 넘어서면서도 다시 우리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주님께서 깨끗한 마음을 주시고, 세상을 치유할 창조주의 숨결을 부어주시며, 성령의 손길로 어루만져 주시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고 나선 사람들]

문제는 이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려고 나서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세상으로 보냄 받은 제자들은 생명을 지키고 보호하는 장비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소유하지 않습니다. 신발과 지팡이는 뱀이나 야수의 공격으로부터 지켜 주는 도구입니다. 즉 제자들은 험한 오지나 위험이 있는 곳에도 가야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돈도 없고, 여분의 음식이나 옷, 음식을 담을 주머니도 준비하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보다 물질적 혹은 정신적 장비를 더 신뢰하는 사람은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장비를 믿으면 그들이 전하는 구원의 소식이 신뢰할 수 없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온전히 하나님만을 믿은 방랑자였습니다.

빵을 가지고 갈 수 없었기에, 제자들은 굶주림과 취약한 상태에 늘 머물러야 했습니다. 주머니가 허락되지 않는 것은 당장 먹을 빵 뿐만 아니라 미래를 위한 준비도 금지되었기 때문입니다. 온전히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나머지 모든 것들은 주님께서 다 준비해 주시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세상으로 나아갔습니다. 무엇을 먹고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를 걱정하는 대신,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생명을 살리고, 아픈 이를 고치고, 불안과 좌절, 절망과 체념의 삶을 사는 이들에게 새로운 의미를 주는 일에만 몰두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해냈을 때, 언제나 이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주어졌습니다. 머물 곳도 생겼습니다. 하나님은 제자들의 선교를 돕는 이들을 어디에나 준비해 두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첫 제자들의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세상은 돈이 있어야 된다고 합니다. 능력 있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계획이 필요하고, 전략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 모든 것 밑바탕에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려는 굳센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자발적인 무소유, 무가족, 무주택, 무보호의 정신으로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는 태도와 자세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선교여행을 하는 제자들의 옷차림, 그 자체가 하나의 메시지였습니다. 우리 또한 그래야 합니다. 우리 삶이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헤롯은 예수님의 제자들의 활약을 보고 세례요한이 되살아났다며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오늘 우리들이 활약할 때 예수님께서 되살아나신 것이라고 세상 사람들이 말해야 합니다. 실제로 세상 사람들은 우리들의 활동을 통해 실제적인 구원이 일어나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코로나 19로 생각지 못한 4차 산업혁명이 갑작스레 도래했습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함께 고민해야 하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스마트 폰을 몸의 일부처럼 사용한 인류라는 뜻의 '포노 사피엔스'의 세상에서는 전과 다른 일들이 펼쳐집니다. 우리들이 사용하는 매체는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새롭게 바꿀 것입니다(월터 옹, W. Ong). 이미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합친 세상은 대단히 넓고, 매력적이면서도, 때로는 거칠고, 골치 아플 것입니다. 그러나 그 세상에서도 우리들은 할 일이 있습니다. AI 시대에 교회가 나아갈 길에 대해서 시사평론가 김성수 님은 교회가 해야할 일을 다음과 같은 세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인간이 인공지능으로부터 자율을 확보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지금도 노인세대는 새로운 기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여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우리가 나서서 그들을 도와야 할 것입니다. 둘째, 기술계급을 넘어선 협력입니다. 빅 데이터, 클라우딩, 딥 러닝, 자율 주행 시스템, 사물 인터넷 등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은 빈곤과 소외의 삶을 살게 되기 쉽습니다. 교회가 이들을 도와 함께 협력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생성적 고백 공동체와 기본 소득입니다. 말이 어렵지만 이것은 오늘날 하나님의 뜻을 찾아 새롭게 하나님 나라를 펼쳐가는 공동체를 만들어가면서 그들이 최소한의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기본 소득을 어떻게 제공할 수 있는가를 모색하라는 것입니다. 저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목사는 교회공동체가 주는 생활비로 생계를 유지했습니다만, 앞으로 저는 우리 교회가 삶을 함께 나누는 공동체로서 어떻게 새로운 수익구조를 내면서 더 좋은 선교활동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새로운 길이고, 불확실한 길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도와주시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해 보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시인 정호승님의 봄길이라는 시를 읽어드리고 오늘의 제 설교를 마칠까 합니다.

봄길 - 정호승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저와 여러분이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을 만드는 사람, 사랑이 끝난 곳에서 스스로 사랑이 되는 사람이 되길 빕니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생명과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주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주님의 백성으로 삼아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보내셔서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고, 세상 모든 악한 세력들을 물리치라 하셨습니다.

제자 된 우리가 오늘도 치유와 복음 선포의 사역을 잘 감당하도록 지혜와 용기, 그리고 굳센 믿음과 거룩한 영의 힘을 부어 주옵소서. 지쳐 쓰러지지 않게 하시고, 새로운 상상력을 지니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여 주소서. 그 어떤 것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음을 믿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게 하여 주소서.

길이 끝나는 곳에서 새 길을 내고, 사랑이 끝나는 곳에서 사랑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파송사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어깨를 쭉 펴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당당하게 그리고 힘차게 걸어 나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예수님 가신 길을 따라 올곧게 걸어갑시다. 한눈팔지 말고, 뒤돌아서지도 말고 앞으로 전진합시다.

* 축도

여러분에게 좋은 친구가 있기를, 또한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에게 좋은 친구가 될 수 있기를 빕니다. 위대한 사랑과 따뜻함 그리고 느낌과 용서가 있는 여러분의 영혼 안으로 여행할 수 있게 되기를, 그 여행길이 여러분을 변화시키고, 여러분 안에 있는 부정적이고 차갑고 냉정한 것을 바꿀 수 있게 되기를 빕니다.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사귐이 주님의 제자로 세상을 치유하며 복음을 선포하는 생명사랑교우들 위에, 코로나 19로 애쓰고 수고하는 모든 이들 위에 지금으로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 이 설교문은 생명사랑교회 한문덕 목사의 4월 26일 주일예배 설교 원고입니다. 필자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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