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성숙에 이르는 지혜

한문덕 목사(생명사랑교회 담임)

hanmoonduck
(Photo : ⓒ생명사랑교회 홈페이지(https://www.agapao-zoe.com))
▲생명사람교회 한문덕 담임목사

레위기 12장 1-6절, 시편 119편 105-112절, 고린도전서 3장 1-9절

[라인홀드 니버의 기도문]

우리의 아름다운 인생을 위하여, 또는 참된 행복을 위하여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 외에 제 마음에 두고 있는 몇 개의 기도들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미국의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 1892-1971)의 기도입니다.

하나님,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은총과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를,

그리고 그 둘을 구별하는 지혜를 우리에게 주소서.

(God, give us grace to accept with serenity the things that cannot be changed, courage to change the things that should be changed, and the wisdom to distinguish the one from the other.)

솔로몬이 하나님께 일천 마리의 제물을 드리며 지혜를 구했듯이, 니버 또한 지혜를 구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지혜롭게 살기를 바랍니다. 태어날 때 부모님을 미리 정할 수는 없겠지만, 스스로 서야 할 나이가 되면 누구나 수많은 갈림길 앞에서 매번 자신의 인생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평탄한 길도 있지만, 험난한 길도 있고, 오르막이 있다면, 내리막도 있습니다. 밝은 태양이 비치기도 하지만, 때때로 비바람이 불며, 어떤 때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기도 합니다. 매 순간마다 어떻게 우리는 지혜로운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과연 지혜란 무엇일까요? 여러분이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누구인가요? 그런 사람들은 어떤 특징이 있나요? 우리는 어떻게 더 지혜로운 삶을 살 수 있을까요?

니버는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을 구별하는 지혜를 달라고 했지만, 우리는 어리석어서 바꿀 수 없는 남을 바꾸려고 하며, 바꿀 수 있는 나를 그냥 내버려 둡니다.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고 바꿀 수 있는 것을 변화시키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의 지혜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어른스러운 신앙에 이르게 하는 지혜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심리조작에 걸려드는 사람들]

제가 오늘 지혜를 주제로 설교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신천지와 같은 이단에 속아 인생을 망치고, 최근에 신앙훈련이라면서 매우 비상식적인 방법으로 물의를 일으킨 한 교회에도 또 많은 젊은이들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종종 다단계에 빠진 사람들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멀쩡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말도 되지 않는 사기를 당하는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많지 않지만, 해외에는 전도유망한 학생이 어느 날 갑자기 테러리스트가 되어 폭탄을 몸에 두르고 불구덩이로 들어가는 일도 있습니다.

1971년 스탠포드 대학의 필립 짐바르도 교수는 왜 선한 인간이 갑자기 악한 행동들을 하는가를 연구하기 위해 한 가지 실험을 합니다. 당시 매우 건전하고 정상적인 대학생들 20명을 모집하여, 10명은 교도관으로 10명은 죄수로 나누고, 대학 안에 임시로 설치한 교도소에서 실험을 한 것입니다. 14일을 예정했는데 이 실험은 5일 만에 중단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평범하고 착하던 대학생들 중 교도관 역할을 한 학생들이 죄수 역할을 한 이들을 너무 폭력적으로 다뤘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죄수들에게 잘해주려고 했던 다른 교도관 역할 대학생조차도 그들의 폭력적 행동을 막지 않고 보고만 있었습니다. 죄수 역할을 한 이들은 대부분 교도관들의 폭력에 저항하지 못하고 순종했으며, 또 오히려 과한 폭력에 문제를 제기하는 동료 죄수를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이 실험을 통하여 어떤 사람의 반인간적, 반사회적 행위는 한 개인의 나쁜 성격 때문만이 아니라, 그 사람이 처한 상황과 그 상황을 작동시키는 사회 전체 시스템이 함께 작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떤 상황이 되면 자신은 원하지 않아도 자신도 모르게 나쁜 행동을 스스럼없이 하게 된다는 것이 이 실험의 결론입니다.

이단에 빠진 사람들을 보면서 왜 저렇게 어리석은가 하면서 혀를 끌끌 찰 수 있지만, 저와 여러분도 어떤 상황이 되면 나도 모르게 그런 사람들과 똑같이 행동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어떤 상황에서 사람들은 세뇌를 당하게 되는 것일까요?

첫 번째는 터널효과라고 해서 인간에게 들어오는 정보를 제한하거나, 과잉되게 하는 것입니다. 터널에 갇히면 깜깜한 어둠 속에서 외부 세계와는 단절되고 오로지 보이는 것은 저 멀리 빛이 스며들어 오는 출구뿐입니다. 시야가 좁아지고, 오로지 출구를 향해 내달리게 되어 있지요. 세뇌의 기본은 사람들을 세상과 격리시켜 고독하고 단절된 상태에 있게 하거나, 반대로 엄청나게 많은 정보를 계속 주입하여 뇌를 지치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을 잃게 만든 다음에 두 번째로 하는 작업은 지금 당신이 겪고 있는 불안과 결핍으로부터 빠져나갈 구멍이 있다고 말해 주고, 확실하게 구해주겠다고 희망을 주는 것입니다. 도저히 빠져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절망의 바닥으로 몰아붙인 다음에 정반대로 부드러운 태도로 따뜻한 손을 내밀면 효과는 더욱 커집니다.

여기에 더하여 배신을 두려워하며 사랑받고 싶어 하는 마음을 이용하며 경쟁심을 자극하여 지도자나 공동체에 더 인정받게 만들면 충성심은 더욱 깊어집니다. 정교하게 기획된 체계와 조직 속에서 자신 스스로 하는 판단을 허락하지 않고, 계속 지도자나 공동체의 시스템에 의존하게 만들면 이제는 빠져나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게 됩니다.

현대인들은 매우 많은 정보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TV, 인터넷, 게임, 휴대전화를 통해 들어오는 정보홍수 속에서 어릴 때부터 살아갑니다. 정보가 너무 많으면 사람들은 차분히 그 정보들을 살피고, 깊이 생각하여 신중하게 판단하기 보다는 대충 제목만 보고 어림짐작으로 넘겨짚으며 쉽게 흘려버립니다. 뚜렷한 자의식을 기반으로 한 자신만의 신념 체계를 아직 마련하지도 못했는데, 세상은 너무나 유동적이고 빠르게 변합니다. 1인 가구의 증가에서 알 수 있듯이 개인주의의 발달은 인간을 더욱 고립시키고 외롭게 만듭니다. 경쟁으로 내모는 사회 속에서 위기가 닥치면 불안이 증가하고, 실패의 경험이 반복되면 다시 일어서기 힘들다는 절망감이 작동합니다. 이렇게 현대인들은 언제든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방향으로 세뇌를 당할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입시 위주의 교육 속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도전하는 경험이 적은 한국의 청소년과 청년들은 사회의 현장에 첫발을 내딛었을 때, 스트레스와 불안이 가중되고, 외로움을 느끼며 두려움이 엄습합니다. 이런 상황에 놓인 젊은이들을 초대해서 6개월에서 1년 동안 반갑게 맞아주며 고민을 들어주고, 정서적으로 친밀감을 형성하면서 함께 문제를 해결해 주면 어느새 청년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모든 것을 털어 놓고 그렇게 해 주는 지도자의 심리적 노예가 되거나 그 집단의 추종자가 되어 자신을 완전히 내어 맡기게 됩니다.

특별히 자존감이 낮고 타인에게 의지해야 마음이 편한 의존성 인격 장애를 가지고 있거나, 수동적이어서 남이 하는 말에 무비판적으로 쉽게 흔들리는 사람, 기적이나 치유, 초현실적인 것에 관심이 많고 점이나 예언을 쉽게 믿는 사람들, 잘나고 멋지게 살고 싶은 이상은 높은데 현실은 따르지 않아서 항상 내면에 불만이나 불안이 가득한 사람들의 경우는 사기를 치려고 마음먹고 접근하는 사람이나 집단에게 쉽게 넘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왜곡된 신앙과 어리석음]

그런데 제가 매우 심각하게 생각하고 또 안타깝고 화가 나기도 하는 것은 이런 모든 심리 조작과 어리석음, 인간을 망치는 행위들에 교회가 연관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은 인간을 자유롭게 하고, 주체적으로 더 풍성한 삶을 살게 하는 것인데, 그 반대의 모습이 교회 내에서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레위기의 말씀을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오늘 본문은 산모를 깨끗하게 하는 예식을 다루고 있습니다. 여성이 임신하여 자녀를 낳으면 일정 기간 동안 부정하며, 또 그 부정한 몸을 깨끗하게 하기 위하여 일정한 기간이 필요하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 기간을 지나고 나면 산모는 양이나 비둘기로 번제를 드려야 하고, 그렇게 해서 피로 더럽게 된 몸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 규례이며,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이해하기 힘든 이런 규정은 아마도 고대에 아이를 낳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생겨났을 것입니다. 자칫하면 아이와 산모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기에 매우 조심하면서 안전한 출산을 위해 사람들이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방편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아들을 낳을 때와 딸을 낳을 때의 규정이 다릅니다. 산모가 부정하다는 것 자체도 오늘날 이해하기 힘든데, 딸을 낳은 경우는 부정한 기간이 배로 늘어납니다. 명백한 여성 차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성서구절들을 문자 그대로 읽고, 남성과 여성을 차별하는 근거로 삼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문자 그대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으로 생각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실제로 최근에 문제가 된 한 교회의 신앙훈련은 고린도후서 6장 4-5절 말씀, 바울 사도가 전도를 하면서 겪은 고난들을 문자 그대로 체험한다면서 온갖 비상식적인 일들을 한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복음을 전하다가 불의한 정권에 의해 때로 매를 맞아야했고, 잠도 자지 못하고, 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구절들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고 신앙 훈련을 한다면서 실제로 무덤에 가서 서로 때리게 하고, 일주일 동안 하루 두 시간씩만 자고 버티며, 겨울에 얼음물에 한 시간 들어가고, 소형차 트렁크나 교회 하수구에 갇혀 있는 등 학대에 가까운 일들을 했습니다. 객관적으로 볼 때 말이 되지 않지만, 심리 조작에 걸려들면 그 단체의 분위기와 특수한 상황 속에서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언제나 발생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지도자에 대한 우상 숭배입니다. 고린도교회에서도 이런 일이 발생했습니다. 교인들이 저마다 '자신은 바울편이다', '자신은 아볼로편이다' 하면서 서로 시기하고 다투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진정한 스승은 하나님이시며 우리 모두는 동역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 그 하나님의 손길에 모두가 함께 동참하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 사도는 고린도교인들에게 아직까지도 단단한 음식을 먹이지 못하고 어린 아이와 같이 젖을 먹였다는 말을 합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아직도 어른스러운 신앙을 지니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세상은 코로나 19와 같은 위기가 닥쳐왔고, 이런 상황에서 많은 이들은 구원자가 나타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왜곡된 신앙은 구원을 바라는 이들을 모아다가 오히려 삶을 망치고 더 큰 고통의 구덩이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정말로 지혜가 필요하고, 성숙한 신앙이 요청되고 있는 것입니다.

잠잠해 지려던 코로나 19가 한 번은 신천지를 통해, 또 한 번은 이태원 클럽으로부터 집단감염의 확산이 일어났다는 것이 제게는 하나님의 계시처럼 느껴졌고, 매우 큰 시사점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올바로 서지 못하고, 세상의 스트레스와 상처들을 치유하지 못하고, 잘못된 신념들을 교정해 주지 못했기에 사람들은 이단 아니면 클럽에 가서 삶의 의미와 즐거움, 소명을 찾은 것입니다.

[성숙한 삶에 이르는 지혜]

모든 피조물들이 탄식하며 구원자를 기다린다는 바울 사도의 말씀처럼,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삶의 의미와 행복을 찾고 있습니다. 교회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응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대의 위기를 극복하라고 우리에게 부여하신 소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런 소명을 감당하기 위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우리 모두를 성숙에 이르게 하는 지혜입니다.

흔히 지혜를 지식과 구분하며, 노년에 이르러서야 얻게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충분한 근거가 있습니다. 지혜는 지식이 쌓여야 싹트는 것이며, 축적된 지식의 바탕에서 삶의 경험을 통해 실패와 성공의 체험이 수반되어야 지혜가 자라나기 때문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의 특성 중 하나는 바로 자신의 한계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것인데, 자신의 한계는 나이가 들수록 더 뚜렷이 드러납니다. 라인홀드 니버의 기도 또한 바로 자신이 바꿀 수 없는 것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럼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이며 어떤 특징을 지니고 있을까요? 베를린 막스 플랑크 연구소에서 지혜의 심리학을 연구한 유디트 글뤼크는 <지혜를 읽는 시간>이라는 책에서 우리의 삶을 궁극적인 성공으로 이끄는 '지혜'의 다섯 가지 원천들을 제시합니다. 누구나 사람은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이 특징들을 강화함으로써 더 나은 지혜에 도달하고, 그 지혜를 이용해서 더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합니다.

첫째 지혜로운 사람은 '열린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열린 마음의 소유자는 자신에게 닥치는 새로운 상황, 자신과 다른 타인의 생각을 유연하게 받아들여 언제든 변화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지혜는 언제나 경험을 통해서 체득되는데, 개방성을 지닌 사람들은 자신에게 닥치는 모든 경험들, 그것이 때로 위험하고, 모험이 필요하며, 실패의 경험이라 할지라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런 기회들을 통하여 지난 삶에 대해, 자기 스스로에 대해,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이 세계에 대해 새로운 이해들을 넓혀 나가게 됩니다.

둘째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잘 조절합니다. 감정은 매우 복잡하고, 우리의 기억에서 찾을 수 없는 한두 살 갓난아기 시절 부모와의 애착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기에 때때로 다루기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감정을 잘 살피고 돌보는 일은 누구나 도전할 수 있고, 평소의 훈련을 통해 얼마든지 감정조절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감정이 올라올 때 자신의 바깥에 서서 자신을 살펴볼 줄 압니다. 감정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모습들을 꾸준히 관찰하고, 기록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잘 이해하고, 그렇게 올라오는 감정들을 무시하거나 회피하지 않습니다. 감정 조절 훈련을 위해 미리 상황을 설정해서 어떤 기분이 드는지 떠올려보는 것도 좋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했을 때, 시험에 떨어졌을 때, 로또에 당첨되었을 때, 비 오는 날 지나가다가 미끄러졌을 때, 차가 지나가면서 빗물이 온 몸에 튀었을 때, 다양한 상황을 미리 생각해 보면서 그럴 때 어떤 감정들이 올라오는지 살펴보는 훈련은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데 도움이 됩니다.

셋째 지혜로운 사람은 공감 능력이 뛰어납니다. 자신의 감정 조절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타인의 마음까지 읽어내고 그의 감정을 잘 수용해 주는 것입니다. 공감을 세 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신생아실에서 한 아이가 울면 다른 아이도 따라 울 듯이, 심리적인 전염이 일어나는 경우입니다. 부정적 소식을 들으면 우울한 마음이 들고, 화난 목소리를 들으면 내게 화를 낸 것도 아닌데 기분이 나빠지는 현상이 그러합니다. 두 번째는 마음으로 서로 통해서 그냥 느껴지는 것이 있습니다. 아이가 울면 누구나 그 아이를 달래 주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드는 것을 말합니다. 원숭이들조차도 그들과 가까운 개체가 다치거나 우두머리로부터 나무람을 당하면 가서 위로해 줍니다. 셋째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마음으로 위로할 뿐만 아니라 문제의 해결을 위해 생각하며 건설적인 도움을 주는 능력입니다. 이것은 인간만이 가진 공감능력입니다. 심리적 전염에서 아픔의 원인을 이해하고 대안까지 모색할 수 있는 공감능력은 우리를 지혜로 이끕니다.

넷째 지혜로운 사람은 좋은 성찰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복잡한 것을 단순화 하지 않고 복잡한 그대로 알아보고, 장기적인 문제에 단기적인 해답을 내놓지 않습니다. 자신의 단점과 약점, 장점과 특징들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습니다. 부족한 점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도움을 요청할 줄 압니다. 자신의 한계를 부끄러워하거나 무시하지 않습니다. 객관적이고 넓은 관점을 가지고 다각도로 세상을 보려고 합니다. 한 면만을 고집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믿음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합니다. 사람들은 모두 어느 정도 환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매우 똑똑하다고 믿고, 자신을 꽤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영향력을 과신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술을 먹고도 운전하면서 자신에게는 아무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은 운전을 잘 할 수 있다고 믿기도 합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학습된 무기력에 의해 자신을 비하하고 자존감이 매우 낮은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두는 다 왜곡된 믿음일 뿐, 실제는 그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리스도교 신앙 전통은 이런 지혜의 다섯 가지 원천을 늘 훈련해 왔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말씀의 묵상과 기도를 통해 늘 자신을 성찰하였고,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열어 두었으며,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이웃과 함께 아파하고 기뻐하고 살아가는 연습을 해 왔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임과 동시에 땅의 흙으로 지어졌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균형을 잡았고, 주님의 말씀과 규례를 지키며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이 모두가 성숙에 이르는 지혜였다는 사실을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시편의 저자는 자신의 생명이 언제나 위기에 처해 있을 때에라도 주님의 법을 잊지 않았고, 악인들이 올무를 놓았을 때에도 주님의 법도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지혜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배워 몸에 체득할 수 있다면, 주님의 말씀은 언제나 우리 발의 등불이요, 우리 길에 빛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생명사랑 교우 여러분! 여러분의 신앙이 여러분의 인격을 성숙시키고, 여러분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기를 바랍니다. 성숙에 이르는 하나님의 지혜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생명의 하나님! 지혜를 구하는 자에게 아낌없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우리들에게 밝은 눈을 주셔서 세상의 지혜가 아닌 주님의 지혜를 구하게 하시고, 위기의 순간에서도 언제나 주님의 법을 기억하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소서. 거짓으로 속이는 자를 물리쳐 주시고, 헛된 욕망의 불을 끄게 하여 주소서. 세상이 소란스러울수록 주님의 은총 안에서 참 평화와 평안을 누리게 하시고, 주님을 바라보며 오직 한길로 가게 하여 주소서.

언제 어디서나 사랑과 지혜로 우리를 이끄시는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감사기도

자비하신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시원한 비를 주시고, 맑은 하늘, 상쾌한 바람을 보내 주시니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우리 삶의 구석구석을 살펴 주시고, 우리의 아픔과 고통과 슬픔과 어려움들을 어루만져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 앞에 빈손으로 나오지 아니하고, 작은 예물을 준비하여 우리의 정성을 바칩니다. 주님 주신 생명과 능력을 다하여 열심히 땀 흘린 삶의 결실을 드립니다. 우리의 예물을 받아 주시옵소서. 주님께 물질을 드림으로써 온 세상의 주인이 돈이 아님을 기억하게 하시고, 주님께 마음을 드림으로써 우리가 온전히 주님만 바라보게 하소서. 드려진 예물들이 하나님 나라 선교 사역에 널리 널리 쓰여서,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새 희망을 전하게 하여 주소서. 모든 하나님의 일에 우리를 써 주소서. 다시 한 번 모든 것이 주님께로부터 온 것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파송사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어깨를 쭉 펴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당당하게 그리고 힘차게 걸어 나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주님의 말씀을 단단히 붙드십시오. 거기에서 지혜를 얻고, 어른다운 신앙을 소유하십시오.

* 축도

지금은 산 자에게 사랑을, 죽은 이에게는 평화를 내리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은혜와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과 성령의 거룩한 사귐, 애틋한 위로가 하나님의 지혜로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아가는 생명사랑 교우들 위에, 코로나 19로 애쓰고 수고하는 모든 이들 위에 지금으로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좋아할 만한 기사
최신 기사
베리타스
신학아카이브
지성과 영성의 만남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개인 구원만 지나치게 강조해 창조 신앙 무력화돼"

창조 신앙을 고백하는 한국교회가 개인 구원만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신앙이 사사화 되면서 연대 책임을 물어오는 기후 위기라는 시대적 현실 앞에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마가복음 묵상(2): 기독교를 능력 종교로 만들려는 번영복음

"기독교는 도덕 종교, 윤리 종교도 아니지만 능력 종교도 아님을 추론해 볼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자의 실존적 현실이 때때로 젖과 꿀이 흐르는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특별기고] 니체의 시각에서 본 "유대인 문제"에 관하여

""무신론자", "반기독자"(Antichrist)로 알려진 니체는 "유대인 문제"에 관해 놀라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소개함으로써 "유대인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영적인? 무종교인들의 증가는 기성 종교에 또 다른 도전"

최근에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무종교인의 성격을 규명하는 논문이 발표됐습니다. 정재영 박사(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종교와 사회」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신의 섭리 숨어있는 『반지의 제왕』, 현대의 종교적 현실과 닮아"

『반지의 제왕』의 작가 톨킨의 섭리와 『반지의 제왕』을 연구한 논문이 발표돼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숭실대 권연경 교수(성서학)는 「신학과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논문소개] 탈존적 주체, 유목적 주체, 포스트휴먼 주체

이관표 박사의 논문 "미래 시대 새로운 주체 이해의 모색"은 세 명의 현대 및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의 주체 이해를 소개한다. 마르틴 하이데거, 질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교회가 쇠퇴하고 신학생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고 필요하다"

한신대 김경재 명예교수의 신학 여정을 다룬 '한신인터뷰'가 15일 공개됐습니다. 한신인터뷰 플러스(Hanshin-In-Terview +)는 한신과 기장 각 분야에서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진과 선에 쏠려 있는 개신교 전통에서 미(美)는 간과돼"

「기독교사상」 최신호의 '이달의 추천글'에 신사빈 박사(이화여대)의 글이 소개돼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키에르케고어와 리쾨르를 거쳐 찾아가는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사회봉사를 개교회 성장 도구로 삼아온 경우 많았다"

이승열 목사가 「기독교사상」 최근호(3월)에 기고한 '사회복지선교와 디아코니아'란 제목의 글에서 대부분의 교단 총회 직영 신학대학교의 교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