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설교] 죽음의 냄새, 생명의 향기

한문덕 목사(생명사랑교회 담임)

hanmoonduck
(Photo : ⓒ생명사랑교회 홈페이지(https://www.agapao-zoe.com))
▲생명사람교회 한문덕 담임목사

레위기 27장 30-33절, 시편 141편 1-5절, 고린도후서 2장 12-17절

[성경 읽기를 권함]

올 해부터 우리 생명사랑교회는 3년 동안 성경을 일독하기로 하고, 매일 구약과 시편, 그리고 신약의 말씀을 성서일과표에 따라 읽고 있습니다. 설교의 성서 본문 또한 지난 주에 읽었던 성서 말씀 중에서 선택됩니다. 우리는 지난 몇 주간 레위기의 말씀과 시편, 그리고 고린도 전후서의 말씀을 읽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의 경전임과 동시에 인류의 소중한 자산이기도 합니다. 성경 안에는 수천 년의 역사가 담겨 있고, 하나님을 믿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녹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며, 자신들의 신앙을 성찰하고, 하늘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합니다. 하나님의 비전에 따라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일구며, 불의와 죽음의 세력에 맞서 생명의 씨앗을 뿌리며 사랑의 나무를 길러냅니다.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하더라도, 삶의 근원에 하나님을 두지 않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초월적 존재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자기의 삶은 자신이 꾸려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도, 보람차고 뜻 있는 인생을 살고자 한다면, 저는 진지하게 성경에서 배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다양한 신념과 삶의 방식이 교차하는 오늘날,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신념과 삶의 이야기는 모든 인류에게 하나의 타산지석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껍게 쌓인 역사의 지층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성경의 귀한 한 구절을 통해 인생이 바뀌었고, 새로운 삶의 통찰을 얻었으며, 수많은 문학 작품과 예술 작품들이 탄생했습니다. 과학문명의 진보를 이루어낸 생각들도 그 단초는 성경이었습니다. 성경은 인류의 위대한 문화유산이고, 영원한 지혜의 샘인 것입니다.

[국제도시, 고린도!]

우리는 바울 사도가 고린도에 보낸 편지들을 통해 1세기의 고린도 사람들의 생활 세계를 엿볼 수 있습니다. 고린도는 펠로폰네소스 반도 동북쪽에 자리 잡고 있는 오래 된 도시로, 신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했고, 기원전 8세기에는 25만의 인구가 북적이던 국제 해양 도시이고, 현재에도 3만명의 인구가 거주하여 기능하고 있는 도시입니다. 동쪽의 겐그리아, 서쪽의 레카이움이라는 두 항구도시를 끼고, 교통의 요충지로서 오가는 배들을 통해 얻은 이익으로 경제적으로 매우 부유한 도시였습니다. 유럽에서 한동안 "고린도"라는 말은 성적 쾌락과 유흥과 결부되었는데, 이것은 고린도에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마음껏 쾌락을 누렸기 때문입니다. 성적으로 방탕한 사람을 가리켜 "고린도 사람 같다"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온갖 인종의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상업이 발달했습니다. 나와 다른 남들이 가득했기 때문에 내 권리와 자유를 지키는 것이 매우 큰 관심사였습니다. 다른 이들을 위한 양보나, 공공을 위한 희생은 미덕이 아니었습니다. 우선 내 것을 지키기 위한 방법이 고안되고 발달했습니다. 자신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남들을 설득하는 수사학이 발달했고, 2년마다 열리는 이스트무스 축제를 통해 대규모의 운동경기가 벌어지면서 경쟁과 승자독식의 문화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생존과 번영을 위해 강자에게 굴복하고, 강자에 기대어 권력을 탐하고, 수사학을 동원하여 온갖 이득을 얻어내어 한껏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고린도 사람들의 일반적인 모습이었습니다. 빈부격차가 심했고, 조금이라도 성공하면 성공의 사다리에 드디어 올라탔다는 착각에 빠지거나, 그 사다리에 올라야 한다는 열망에 사로잡힌 도시가 바로 고린도였습니다.

이런 도시가 기원전 146년 로마 군인들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고, 폐허로 남아 있다가, 기원전 46년경 쥴리어스 시저에 의해 재건되고, 로마의 그리스 식민 행정 구역인 아카이아 주의 수도로 제국의 가장 강력한 도시 중 하나로 성장합니다. 바울 사도가 활약하던 당시 고린도는 과거의 명성을 다시 되찾았고, 온갖 도시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각양 각색의 문화와 종교가 몰려들었습니다.

[개선 행렬]

바울 사도는 바로 이러한 고린도의 교회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그리스도의 개선 행렬'이라는 말을 언급합니다. 여기서 '개선 행렬'이라는 말은 로마 군대의 개선 행진을 연상 시킵니다. 로마는 다른 지역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거나, 오천명 이상의 적을 죽이거나, 새로운 땅을 정복해 황제에게 귀속시킨 장군에게 영광을 드높이는 개선 행진을 허락했습니다. 이 행진의 가장 앞줄에는 로마 행정 장관과 원로원 의원들이 서고, 승리의 나팔을 부는 나팔수들이 뒤를 따릅니다. 또 그 뒤에는 전쟁에서 얻은 금으로 만들어진 그릇들이나 뱃머리와 같은 전리품들을 실은 수레들과 성전에서 희생제사로 드려지게 되는 흰 소가 따르고, 처형될 적국의 왕족, 장군, 포로들이 사슬에 묶인 채 끌려갑니다. 로마 군인들은 '만세! 승리자여'라고 외쳤고, 로마의 사제들은 행렬을 뒤따르며 향을 피워 신들의 가호를 빌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맨 뒷부분에는 네 마리의 말이 이끄는 전차 위에 그 날의 영웅인 개선장군이 타고 그 뒤에 그의 가족들이 따릅니다. 이 개선 행진은 원형경기장인 키르쿠스 막시무스(Circus Maximus, '큰 원'이라는 뜻)나, 카피톨리누스 언덕에까지 이어졌고, 쥬피터 신에게 제사를 지낸 후, 바로 그곳에서 포로들은 잔인하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로마 장군의 개선 행진을 알리는 팡파레 소리와 온 도시에 풍기는 향기는 로마인들에게는 전쟁의 종식과 평화, 기쁨과 자부심을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끌려 온 포로들의 입장에서 그 향기는 죽음의 냄새였고, 다른 한편으로 잔인한 폭력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이들의 피비린내를 숨기려는 역겨운 냄새였습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 장군의 개선 행렬에 빗대어 예수 그리스도의 개선 행렬을 말합니다. 유월절에, 로마 군대가 치안을 핑계로 군마의 위용을 자랑하며 예루살렘으로 입성한 것에 맞서 참된 평화는 힘과 폭력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주며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오셨던 예수님처럼, 바울 사도 또한 전쟁과 폭력, 경쟁에서의 승리가 아닌 또 다른 개선 행렬을 말하고자 합니다. 죽음을 불러 오는 군대의 행진이 아니라, 생명을 불러 오는 복음의 행진을 말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로마 장군의 개선 행렬에서 피우던 향이 로마 사람들에게는 기쁨을 주고, 포로들에게는 죽음의 냄새였던 것처럼, 놀랍게 복음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참된 평화를 추구하는 이들에게는 구원과 생명의 향기가 되고, 그것을 거부하는 사람에게는 멸망과 죽음의 냄새가 된다고 바울 사도는 힘주어 말하고 있습니다. 위에서 말씀 드렸지만 고린도 사람들은 로마 제국이 추구하던 가치관에 종속되어 경쟁에서 이긴 자만이 모든 권력과 자본을 누리며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믿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 문화가 교회에도 침투하였고, 바울 사도는 거기에 맞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다르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팔아서 먹고 사는 장사꾼이 아니며, 진실한 마음으로 일하고, 하나님이 보시는 앞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고 일한다고 속마음을 털어 놓고 있습니다. 바울은 지금 고민이 많습니다. 바울이 상대하고 있는 이들은 폭력으로 세계를 지배하며 강한 자만이 살아남고 존중받는다는 가치관을 퍼트리는 로마와 율법으로 사람의 자유를 억압하고 기득권을 가지려는 유대인들, 그리고 그리스도 신앙을 지녔지만 세상 가치관에 휘둘리는 고린도 교회 교인들입니다.

경쟁을 통해 능력 있는 자만이 우월한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부를 누리기 때문에 모두가 그것을 추구하는 오늘날의 세상, 하나님과 그리스도교의 신앙을 수단으로 삼아 제 이익을 챙기고 권력을 유지하려는 종교권력들, 불안한 세상에서 참된 신앙을 찾기보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신앙인들을 보며, 저 또한 바울처럼 고민이 깊습니다. 그래도 바울 사도는 자신들을 통해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향기가 풍겨 나오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지만, 오늘날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서 진정으로 생명의 향기가 풍겨 나오는지 의심이 드는 때에 저는 더 괴롭기만 합니다.

한국의 짧은 그리스도교 역사 속에서 한국 교인들은 아직 그리스도교 신앙에 깊이 뿌리내리지 못하고, 아직도 젖을 먹는 어린 아이처럼 얕은 신앙에 머물러 있습니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 19로 인해 더더욱 기존의 의지할 수 있던 신앙의 기둥들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볼 때, 목사인 저는 참담한 마음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때야말로 쇠가 불에 달궈지듯이 참된 신앙인으로 거듭날 때이고, 가라지는 뽑히고 밀과 보리만이 남는 때이며, 거짓 신앙인들은 바람의 겨와 같이 날려 흩어지게 될 때입니다. 지금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저울에 달리게 된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졌을 때, 유대인들의 믿음이 평가된 것처럼, 교회에 모이지 못하기에 이제는 그리스도인들이 제 스스로 신앙을 유지할 수 있는 지 없는지 시험대에 올라 서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단순히 교회 생활을 하는 것으로 축소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우리의 일상 모든 삶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내는 것이기에 교회에 모이지 못해도 다양한 방식을 통해 여전히 우리의 신앙을 키워야 합니다. 비록 교회 공동체 구성원들과 만나지 못해 서로에게 힘을 얻지 못하고, 모여 행하는 예배와 선교활동에서 얻었던 가슴 벅찬 감동을 지속할 순 없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우리의 신앙을 자라게 하는 일은 멈출 수 없습니다. 우리들의 신앙이 실제로 깊어지지 않으면, 우리들의 언어와 행동, 삶의 모습에서 생명의 향기가 아니라 죽음의 냄새가 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늘날은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결국 인간의 겪는 모든 불안과 고통은 오늘날 자본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돈을 어떤 방식으로 벌고 어떤 방식으로 쓰느냐에 따라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향기를 드러낼 수도 있고, 신앙인을 가장한 위선자의 모습을 드러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십일조의 근본 정신]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구약의 말씀은 십일조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동안 한국교회 강단에서 가장 많이 왜곡되어 선포된 가르침이 바로 이 십일조입니다. 십일조에 대한 건전한 신학적 이해와 교회사적 분석이 필요하지만, 그동안 십일조는 교회에서 공포의 하나님을 조장하며 사용하는 무기로, 목사가 자신의 배를 불리기 위한 수단으로, 또 부자가 되고 싶은 교인의 욕망을 부추기는 수단으로 사용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말라기 3장 8절의 말씀, "사람이 하나님의 것을 훔치면 되겠느냐?"는 말씀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목사는 "교회에 십일조를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떼어 먹는 도둑놈"이라는 식의 설교를 했고, 그리고 실제로 십일조를 하지 않으면 교인의 권리를 박탈한다는 내용을 교회 헌법에 넣으려는 교단까지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가 한없이 추락한 것 또한 모두 돈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목회자들에게 청빈을 강요하고 최저 생계비에도 도달하지 못하는 생활비를 지급하면서 헌신 페이를 강조하는 것이 작은 교회의 문제라면, 중대형 교회를 중심으로 목사가 과도한 재산을 소유하고 사치와 향략에 물든 것 또한 큰 문제입니다. 최근 침례교단의 한 대형교회의 목사가 캠핑카를 선교목적으로 샀다고 해서 빈축을 산 적이 있습니다. 은퇴하는 목사들의 처우 문제를 놓고도 교회의 분란이 매우 많이 벌어지는데, 이것 또한 모두 돈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겉으로는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읽고 따른다고 하면서 실제로 만나보면 누구보다 돈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이라는 것이 세상 사람들의 생각이기도 합니다. 과장된 면이 없지 않으나, 그런 빌미를 제공한 것도 사실입니다.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돈에 대한 정확한 자신들의 입장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바로 돈을 대하는 태도에서 죽음의 냄새가 날지, 아니면 생명의 향기가 날 지 결정됩니다.

우선 십일조는 구약의 율법에서 제정하고 있고, 신약시대로 넘어오면 교회 공동체를 함께 만들어 가는 헌금으로 대체되었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아시면 좋겠습니다. 구약의 십일조 정신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본문은 신명기 14장 22-29절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레위기의 말씀처럼 신명기의 말씀에서도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장 먼저 깨달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은 돈이 필요한 분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먹을 것이 필요하거나 입을 것이 필요하거나 머물 곳이 필요한 분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십일조는 무엇인가요? 신명기 14장 2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들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처음 난 소와 양의 새끼와 함께,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자기의 이름을 두려고 택하신 곳으로 가지고 가서, 주님 앞에서 먹어야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당신들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이 말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십일조를 통해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것, 즉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배우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발터 벤야민이라는 학자는, 돈이, 많은 사람들에게 "유사 전능성"을 부여한다고 말합니다. 즉 돈이 있으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돈만 있으면 자신이 하나님이 될 수 있고, 되지 않는 것이 없다고 느끼게 되는데, 바로 성경은 그 지점으로부터 인간은 타락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자신의 노동력으로 벌어들인 것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바치는 행위는 자신은 하나님이 아니며, 이 모든 것이 내 힘으로만 된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도움과 주변 사람과 이웃과 모든 환경의 도움으로 되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행위입니다. 동시에 자신의 노동의 일부를 떼어서 바침으로써 돈의 집착에서 자유하게 됩니다. 돈의 노예가 아니라 돈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십일조 정신의 두 번째는 하나님 앞에서 온 가족과 함께 화목을 이루는 것입니다. 신명기 14장 25-26절까지는 십일조로 바치는 소든지 양이든지 포도주이든지 독한 술이든지 어떤 것이든지 먹고 싶은 것을 사서 하나님 앞에서 온 가족들과 함께 먹으면서 즐거워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십일조가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지만, 그것의 사용은 결국 온 식구가 골고루 먹고 하나님 앞에서 즐거움을 누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부활절에 하나님께 바친 헌금을 생명사랑 교우들에게 생활지원금 명목으로 나눴습니다. 이것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분들도 있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너무나 좋은 공동체라고 부러워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십일조의 정신은 한 가족을 이루어 서로 모두가 풍성함을 누리며 어느 누구하나 가난함을 느끼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십일조의 정신은 이제 레위 지파에게로 이어집니다. 이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 올 때 유산도 없고, 차지할 몫의 땅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들을 저버리지 말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교회에서는 목회가 직업인 사람들, 교역자들에게 해당될 수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는 공동체를 위해 삶을 바쳐 헌신하는 교역자의 생활비를 책임져야 합니다. 우리 교회도 저를 비롯해서 세 분의 전도사님이 계십니다. 저는 교회의 대표로서 우리 세 분 전도사님들의 삶이 너무 곤궁하지 않도록 늘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장 목회자 양성 후원금 통장도 개설한 것이고, 제가 외부 강의를 통해 버는 수입으로 최대한 도우려고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십일조는 사회복지 차원에서 사용됩니다. 매 삼년째 되는 해의 십일조는 성안에 저장했다가, 레위 사람 뿐만 아니라 떠돌이,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배불리 먹을 수 있도록 합니다. 이렇게 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경영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실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생명사랑 교우 여러분! 만약 우리 신앙공동체가 서로 합심하여 공동체 구성원의 안전한 삶을 보장할 수 있다면, 우리 모두는 생계의 불안과 걱정, 근심에서 해방되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며 일할 수 있을 것입니다. 든든한 마음으로 신나게 일하는 사람에게 복이 굴러 들어오는 것입니다.

구약의 십일조는 궁극적으로 신앙 공동체인 이스라엘 국가를 유지하기 위한 세금이었고, 신앙과 종교, 정치와 문화의 모든 중심에 있었던 예루살렘 성전을 유지하며 하나님 백성으로 하나님을 기억하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신약 시대에 와서 유대교에서 탄생한 그리스도교는 이제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완전한 경제적 자립 공동체를 만듭니다. 누구나 능력에 따라 벌고 필요에 따라 쓰는 공동체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도 아직 그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서로 돕는 가운데 가족처럼 모두를 생각하는 정신만큼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유럽처럼 그리스도교가 국가 종교였던 나라들에서 목사들은 종교공무원이었습니다. 국민 전체가 종교세를 내고 목사들은 나라로부터 월급을 받았지요. 교회의 운영도 국가에서 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들어오는 헌금들은 모두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 개발도상국들, 난민들, 정의를 위해 싸우다가 고통 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쓰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국가와 종교가 하나였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점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정교분리 원칙에 따라 한국의 교회들은 국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 교회가 자립공동체가 되고자 했습니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교회는 십일조를 헌금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강조했던 것입니다. 실제로 많은 교인들은 국가보다 교회를 더 신뢰하며, 성심껏 십일조를 했고, 그것은 교회 공동체를 유지하는 가장 큰 힘이 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지금도 많은 한국의 참된 신앙인들은 자신의 노동의 결과를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와 능력, 선물에 감사하며 하나님을 기억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노동의 열매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그것으로서 움켜 쥔 손이 아니라 베푸는 손이 되게 하고, 물질에 집착하는 사람, 욕망에 사로잡힌 노예의 삶에서 벗어납니다. 동시에 교회는 그렇게 드린 헌금으로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감당합니다. 어려운 교인들을 구제하고, 목회자들의 생계를 지원하며, 이웃을 위해, 하나님 나라의 선교를 위해 사용합니다. 이 모두는 죽음의 냄새 가득한 세상에 생명의 향기를 퍼뜨리게 될 것입니다.

오늘 시편의 저자는 부르짖습니다.

"주님, 내가 주님을 부르니, 내게로 어서 와 주십시오. 주님께 부르짖는 내 음성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내 기도를 주님께 드리는 분향으로 받아 주시고, 손을 위로 들고서 드리는 기도는 저녁 제물로 받아 주십시오. 주님, 내 입술 언저리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 앞에는 문지기를 세워 주십시오. 내 마음이 악한 일에 기울어지지 않게 해 주십시오. 악한 일을 하는 자들과 어울려서, 악한 일을 하지 않게 도와주십시오. 그들의 진수성찬을 먹지 않게 해 주십시오. 의인이 사랑의 매로 나를 쳐서, 나를 꾸짖게 해 주시고, 악인들에게 대접을 받는 일이 없게 해 주십시오. 나는 언제나 그들의 악행을 고발하는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십일조를 드리고, 헌금을 하는 이유는 이 시편의 기자의 고백과 다르지 않습니다. '나는 세상의 가치에 물들지 않겠습니다. 돈을 추구하며 악한 일을 하거나, 악한 일을 하는 이들과 진수성찬을 먹지 않겠습니다. 차라리 의인이 드는 사랑의 매를 맞고 과감하게 자본주의적 가치관에 도전하며 그들의 악행을 고발하며, 온전히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삶을 살겠습니다.' 이런 고백으로 우리는 우리의 물질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봉헌이 죽음의 냄새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향기를 풍겨내길 바랍니다. 그 모든 활동에 우리 생명사랑 교회 여러분 전부가 함께 참여해 주시길 빕니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 우리가 이 세상의 참된 주인인 누구인지를 깨닫고 늘 주님 앞에서 진실한 마음으로 일하게 하여 주소서. 주님! 우리 입술의 언저리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우리 입 앞에는 문지기를 세워 주소서. 우리 마음이 악한 일에 기울어지지 않게 하시고, 악한 일을 하는 자들과 어울리거나, 그들의 진수성찬에 마음을 뺏기지 않게 하여 주소서. 의인이 드는 사랑의 매로 우리 자신을 단련하고, 언제나 진리와 함께 걷게 하여 주소서. 우리의 행위가 구원을 받을 이들에게 생명의 향기가 되게 하여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감사기도

자비하신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주님을 송축하고, 우리의 입술로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방황을 이겨내게 하시고, 우리가 반항할 때에도 우리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사랑할 사람들을 주시고, 아름다움은 누리게 하시며, 고요히 머물 장소를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삶의 놀라운 선물들, 우리가 배운 진리와 성취할 수 있던 선한 일들에 감사하며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 시간 주님께 우리 자신을 드립니다. 받아 주소서. 오늘 예배를 통해 받은 천국의 기쁨을 간직하며 살아가겠습니다. 바쁜 세상에서도 주님께서 허락하신 평안을 누리며, 주님께서 감당하라 명하신 소명을 이어나가겠습니다. 모든 것에 감사하는 삶으로 주님께 찬양을 드리며,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파송사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어깨를 쭉 펴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당당하게 그리고 힘차게 걸어 나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우리 입술의 모든 말과 우리 마음의 생각과 우리 손발의 모든 행위가 생명의 향기가 되도록 온전히 주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아가십시오.

* 축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바람이 되어 여러분을 주님 곁으로 데려가게 하시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여러분의 힘이 되어 주님을 섬기게 하시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기쁨이 생명이 되어 여러분의 영혼을 넘치도록 채워 주시기를 빕니다. 전능하신 주님, 성부 성자 성령 성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영원히 여러분 곁에 계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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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쇠퇴하고 신학생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고 필요하다"

한신대 김경재 명예교수의 신학 여정을 다룬 '한신인터뷰'가 15일 공개됐습니다. 한신인터뷰 플러스(Hanshin-In-Terview +)는 한신과 기장 각 분야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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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과 선에 쏠려 있는 개신교 전통에서 미(美)는 간과돼"

「기독교사상」 최신호의 '이달의 추천글'에 신사빈 박사(이화여대)의 글이 소개돼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키에르케고어와 리쾨르를 거쳐 찾아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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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봉사를 개교회 성장 도구로 삼아온 경우 많았다"

이승열 목사가 「기독교사상」 최근호(3월)에 기고한 '사회복지선교와 디아코니아'란 제목의 글에서 대부분의 교단 총회 직영 신학대학교의 교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