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6장 22-27절, 시편 146편 1-10절, 고린도후서 8장 1-7절
[가난의 추억 1. 찬밥처럼 방에 담겨]
삶을 살다 보면 어느 날 문득, 자기 자신에 대하여, 인생에 대하여 깨닫는 순간이 있습니다. 저는 신학을 공부하기 전에 잠깐 국어교육을 전공하였습니다. 전공과목들은 우리말과 글로 된 다양한 문학작품들을 읽고 분석하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책 읽는 것을 꽤나 좋아하였기에 대체로 전공이 마음에 들었지만, 많은 글들 중에 시는 잘 읽히지도 않고, 이해도 잘 되지 않았습니다. 나름 시의 세계에 빠져 보려고, 시 쓰는 동아리에 가입도 하고, 다양한 시인들의 시집을 읽었지만 어느 것 하나 마음에 와 닿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천재 시인의 단 한권의 유일한 유고시집'이라는 선배의 지나가는 한 마디 말에 나도 모르게 집어 든 시집 한권이 있었는데, 그 안에 있던 시 하나가 내 마음을 깊이 파고들면서 내가 몰랐던 나를 일깨워 주었습니다. 시의 제목은 "엄마 생각"입니다.
엄마 생각 - 기형도(1960∼1989)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이 시에는 외롭고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시인의 삶이 절절이 녹아 있습니다. 이 시를 읽는 순간 나는 울컥했고, 불현듯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너무나도 똑같았기 때문입니다. 시인 기형도는 혼자였고, 나는 두 명의 동생들이 있었지만, 채소를 팔러 시장에 간 엄마를 기다리며 찬밥처럼 방에 담겨 외로움에 지쳐 잠들었던 숱한 나날들이 불쑥 떠올라 나도 모르게 한참을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 또한 외롭고 가난했던 아이였다는 사실을 그 날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시를 만나기 전까지 제 안에 깊이 박혀 있던 외로움을 몰랐고, 특히 내가 어릴 때 참으로 가난했다는 사실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왜일까요? 이 질문의 답은 잠시 후에 드리겠습니다.
[가난의 추억 2. 읽고 또 읽고]
성인이 되고 난 뒤, 우리 집이 가난했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며 떠오르는 또 하나의 장면은 집에 책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교과서를 제외하곤, 엄마가 큰 맘 먹고 사 주신 세계위인전집 10권과 한국위인전집 10권 이렇게 스무권이 전부였는데 저는 이 책들을 읽고 또 읽곤 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인지 3학년인지 어느 여름방학에 서울에 있는 이모 집에 한 달간 머문 적이 있습니다. 이종사촌 큰 누나는 직장인이었고, 대학생, 고등학생 형이 있었는데, 그 집에는 정말 책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 어린 제가 읽을 수 있었던 한권의 만화책이 있었는데, 이원복 교수의 <사랑의 학교>였습니다.
짤막하지만 매우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가득한 이 책을 저는 수도 없이 반복해서 읽었고, 아직도 제 뇌리에 박혀 있는 하나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이야기는 바로 오늘 설교 제목인 "또 하나의 방법"입니다. 이 이야기에는 개발도상국 대한민국 백성들의 삶의 한 자락이 펼쳐집니다. 2020년 대한민국과는 사뭇 다르지만, 그 때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었던 이야기지요.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숙자 씨는 동생의 학비와 부모님의 생계를 돕고자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오게 됩니다. 아는 목사님의 소개로 어느 사장님 댁 가정부로 취직하게 되는데, 아침 5시에 일어나, 밥 짓고, 반찬 만들고 설거지에 자기의 영혼을 갈아 넣듯 헌신적으로 일합니다. 몸 바쳐 일했지만 받는 월급으로는 늘 빠듯한 삶을 살아야했고, 고민에 고민을 더하다가 사장님을 소개시켜준 목사님께 찾아가게 됩니다. 더 나은 보수를 주는 곳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을 하는데, 목사님은 알았다며 일단 자신이 말하는 대로 6개월만 해 보라고 권유합니다.
이 때 목사님이 제안한 내용은 이것입니다. "밥을 하되 끼니 때마다 누룽지가 생기지 않게 하고, 찬밥도 생기지 않게 알맞은 양을 짓고, 질지도 되지도 않게 신경 쓸 것, 밥을 풀 때 맨 위의 밥은 아이들 그릇에, 맨 아랫밥은 주인어른 그릇에 담을 것, 아침저녁에는 주인의 이불을 깔고 개고, 주인이 잠자리에 들기 전 이불 속에 손을 넣어보고 따뜻하지 않으면 불을 더 땔 것, 주인이 출근하기 전 신을 닦아 놓고, 겨울이면 신을 방 아랫목에 두고 이불로 덮어 따뜻하게 해서 내 드리고, 주인의 가방을 들고 대문 밖까지 나가 공손히 인사할 것, 주인집에서 과일을 사다 먹거든 껍질을 버리지 말고 잘 모았다가 사과나 귤 차를 만들어 겨울이나 여름에 주인 내외에게 드릴 것, 폐지를 버리지 말고 모아서 판 뒤에, 그것으로 화장지를 사서 주인께 드릴 것, 생선이나 찬거리를 살 때는 좋은 것으로 구입하고 1원이라도 남으면 반드시 주인에게 돌려 드릴 것, 주인집 아이들을 친동생처럼 사랑하고, 주인 아주머니 대신 엄마 노릇을 잘 할 것, 월급봉투를 받을 때 공손히 두 손으로 받고 늘 감사하다는 소리를 잊지 말 것."
목사님은 숙자씨에게 이 모두를 6개월 동안 군말 없이 하다가, 6개월이 지난 후 월급을 주거든 역시 두 손으로 공손히 받고 이렇게 말하라고 당부합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고 그만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숙자씨는 목사님이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났습니다. 역시 목사님이 시키는 대로 그만 두겠다는 말을 하자, 주인 내외는 화들짝 놀라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숙자 씨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은 주인내외는 숙자 씨의 모든 필요를 채워 주었고, 자신의 회사의 좋은 직원까지 소개해 줘서 결혼도 잘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정말 옛날 이야기이지요.
구닥다리 느낌도 있습니다만 이 이야기는 당시 어린 저에게 큰 깨달음을 하나 주었는데,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그 환경을 대하는 내 자신의 태도가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 하더라도 그 과제 상황을 헤쳐 갈 "또 하나의 방법"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Covid 19, 6개월을 보내며]
지금 우리 사회는 코로나 19라고 하는 전대미문의 사태 앞에서 불편함과 답답함,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힘들어 합니다. 중국 우한에서 처음 이 전염병이 발생했을 때만해도 남의 나라 이야기였고, 한국에서 확진자들이 생길 초기에만 해도, 이렇게까지 되리라고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전 세계는 천만에 가까운 인구가 감염되었고, 계속 확산일로에 있으며, 많은 전문가들은 2차 3차 유행이 계속 될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최근 중국 베이징에서 다시 감염이 확산되고 있는데, 처음 발병했던 바이러스와는 다른 것이라고 합니다.
코로나가 몰고 온 엄청난 변화 속에서 교회는 더 더욱 큰 어려움 속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함께 모여 하나님께 찬양하고 예배하는 것을 모든 신앙생활의 토대로 삼았기에, 모이는 것 자체를 금기시하는 바이러스의 창궐은 기존 교회의 신앙을 뿌리로부터 허물어뜨리고 있습니다.
아직도 많은 교인들과 목회자들이 코로나 19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다시 예전처럼 회복될 것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지난 4개월간 제가 찾아보고 살펴보고 고민한 바로는 코로나가 지나가기를 기대하기 보다는 변화된 상황에 맞는 새로운 탈바꿈을 시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는 유대교로부터 떨어져 나와 새로운 종교의 길을 모색하였고, 지난 2000년 동안 세계의 보편종교로 성장하였습니다. 유대교가 민족의 종교이고, 작은 지역에 국한된 종교라면, 그리스도교는 세계시민적 종교입니다. 유대교와 그리스도교가 이렇게 갈리게 된 정점에는 바로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있었습니다. 모든 신앙과 문화와 사회정치의 중심이었던 성전이 무너지자, 유대인들은 삶의 토대가 사라진 듯 엄청난 혼란과 극심한 불안을 겪게 되었습니다. 성전이라는 공간 중심의 유대교에서 벗어난 새로운 믿음, 기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소통, 용서를 통한 많은 사람의 수용의 길을 제시하며 탄생한 그리스도교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고, 오늘날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막 11:12-25 참조).
14세기 중반 유럽 인구의 60퍼센트를 죽음으로 몰아갔던 전염병 페스트는 중세의 가톨릭 사회를 뒤흔들었고, 그 뒤로 중세는 허물어지고 새로운 근대 사회가 열리며, 그런 물결 속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개신교가 탄생하게 됩니다.
2019년에 발생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코로나 19 바이러스 상황은 또 한 번의 전 세계적 변화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기존의 모든 것이 새롭게 재편될 것이고 그리스도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는 바울 사도의 외침을 할 수 있는 사람만이 새 시대에 새로운 종교를 열어갈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 생명사랑교회 교우들이 이 때에 또 하나의 방법을 생각해낸다면 우리는 이런 상황을 능히 이겨내고 비상한 시국에 비상한 방법으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도약의 계기로 삼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는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신앙이 필요하고, 새로운 토대를 만들어야 합니다. 쉽지 않을 수 있지만, 반드시 성공할 수 있습니다. 우리 전 교우들 모두가 스스로 어떻게 새롭게 자신의 신앙을 가꾸어 갈지 고민하고 생각하고 만들어내는 일에 합심한다면 주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능력으로 새로운 길을 낼 수 있을 것입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말하듯이 코로나 19 이전 세상은 다시 오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전처럼 모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설사 모일 수 있다 해도 또 언제든지 다시 흩어질 수 있고, 온라인으로 전환할 수 있는 가벼움이 있어야 합니다. 주체적 신앙을 가진 이들이 게릴라식으로 사역에 따라 모이고 흩어지기를 자유롭게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전 교회 차원에서는 오늘 목회운영위원회 회의를 통해, 그리고 올해 하반기의 준비를 통해 뉴 노멀 시대에 적응하는 교회로 탈바꿈하려고 합니다. 지난 3-4개월의 시간 동안 저는 새로운 목회에 대해서 다양한 측면에서 고민하고 연구했습니다. 그래서 저 나름대로는 몇 가지 원칙과 방향을 정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앞으로 교인들과 계속 만남을 통해, 각종 중요한 회의를 통해 밝혀 나가고, 여러분들과 의논해 가겠습니다.
코로나 19시대에 우선적으로 가장 큰 변화가 요청되는 교회의 활동분야는 '친교'와 '선교'입니다. 모임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만나서 해왔던 모든 활동이 차질을 빚게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부분을 어떻게 타개해 나갈지 여러분도 진지하게 고민해 주시기 바랍니다.
[코로나 19의 강을 건너기 위해]
오늘 바울사도는 고린도교회에게 편지를 쓰면서 마케도니아의 여러 교회들을 칭찬하고 그들을 하나의 모범으로 삼으라고 합니다. 그들은 큰 환난의 시련을 겪으면서도 기쁨이 넘치고, 극심한 가난에 쪼들리면서도 넉넉한 마음으로 남에게 베풀었습니다. 마케도니아 교회의 교인들은 힘이 닿는 대로 구제하였고, 역량을 넘어서는 일에도 자원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런 마케도니아 교회의 구제사업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베푸신 은혜이며, 모든 일에서 뛰어난 고린도 교회에 이 은혜의 사업에 동참하라고 권면합니다. 믿음과 말솜씨와 지식과 열성, 그리고 사랑에 충만한 고린도 교회 교인이라면 예루살렘 교회의 형제들을 돕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코로나 19라는 풍랑을 헤쳐 나가는 첫 번째 방향은 함께 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위기가 닥칠수록 움츠려들며 자신만을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게 할수록 더 곤궁에 처하게 됩니다. 오히려 가난속에서도 넉넉하게 베풀려는 마음을 지녀야 하고, 시련 가운데에서도 기쁨을 찾는 일에 나서야 합니다. 우리교회도 그러해야 합니다.
제가 이런 저런 방식으로 설교에서 말씀 드렸지만, 우리 생명사랑 교회는 우선 장기적인 경제 불황에 대비해서 우리 공동체 식구들에게 닥칠 어려움을 구제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거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가 맨붕에 빠져 있는 한국교회들, 위기로 믿음이 흔들리는 신앙인들, 난관에 부딪힌 목회자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준비해 나가야 합니다. 비록 우리는 월세를 내는 지하의 작은 상가교회이지만, 우리는 다른 태도와 믿음을 생성해 냄으로써 주님께 크게 쓰임 받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내적인 역량은 이미 충분합니다. 문제는 그런 역량들을 새롭게 담아낼 조직과 그릇을 새롭게 구비하는 것입니다. 이 또한 모두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좋은 안들을 도출해야 합니다.
온라인 선교는 새로운 시대에 하나님께서 주신 매우 소중한 도구입니다. 우리는 예산과 아이디어와 인력을 여기에 좀 더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박해받던 소수의 종교가 하루아침에 로마제국의 종교로 바뀌었을 때, 변질되는 신앙과 복음을 회복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수도원으로 들어갔습니다. 지금 시대에 요청되는 신앙은 고요히 머물러 차분히 자신을 성찰하는 신앙입니다. 내적인 힘을 키우고, 골방에 들어가 하나님과 깊게 만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훌륭한 지도자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2000년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교회의 타락은 언제나 부패한 사제, 예언자들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따라서 훌륭한 목회자를 키우는 일에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을 부지런히 찾아야 합니다.
제가 아까 질문한 것을 다시 여러분께 물어 보려고 합니다. 저의 어린 시절 땅을 파고 십원 하나 나오지 않던 그 시절, 왜 저는 가난한 줄 모르고 살았을까요? 그것은 바로 나의 엄마, 온전히 자식에게 베풀 줄만 아는 나의 엄마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헌신적인 사랑이 어린 나의 삶을 충분히 감싸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 오늘날 우리는 코로나 19를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요? 이것이 위기인 것은 분명하지만, 오히려 기회로 삼고 즐거움과 기쁨으로 넘어설 수 있을까요?
오늘 시편 기자는 우리에게 조언합니다. "너희는 힘 있는 고관을 의지하지 말며, 구원할 능력이 없는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고 합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주님을 찬양하고, 평생토록 살아 있는 한 주님을 찬양하라고 합니다. "목사님! 이런 판국에 무슨 찬양입니까?" 이렇게 말하는 교인들이 계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찬양받으실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주의 창조주이시며, 모든 것의 근원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은 숨 한 번 끊어지면 그저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이고, 하루아침에 모든 계획이 사라져 버리고 마는 존재이지만, 하나님은 다릅니다. 그런데 바로 그 하나님이 우리의 아빠이고 우리의 엄마입니다. 그 하나님께 의지할 때만 우리는 참되고 영원한 삶의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생명사랑 교우 여러분! 오로지 하나님께만 희망을 걸고 무엇이든 시도해 봅시다. 하나님께서 지혜의 빛으로 우리를 비추실 것입니다. 하늘과 땅과 바다 속에 있는 모든 것을 지으시며, 영원히 신의를 지키시며, 억눌린 사람을 위해 공의로 재판하시며,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시며, 감옥에 갇힌 죄수를 석방시켜 주시며 눈먼 사람에게 눈을 뜨게 해 주시고,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을 일으켜 세우시는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의인을 사랑하시니, 우리가 올바른 길을 택하여 전진한다면 우리는 능력의 하나님으로부터 도움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코로나 19로 세상이 벌벌 떠는 이 시대에 저는 여러분에게 아론의 축복기도를 드리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택하여 불러 세운 종이 축복할 때, 바로 자신께서 축복해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약속의 말씀에 의지하여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야훼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복을 주시고, 여러분들을 지켜 주시며, 야훼 하나님께서 따뜻하고 부드럽게 비추는 태양처럼 밝은 얼굴로 여러분들을 대하시고, 여러분들에게 크신 은혜를 베푸시며, 야훼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고이 보시어서, 여러분들에게 참된 평화를 주시길 빕니다."
저주의 말이 존재를 파괴하는 효력을 지닌다면 축복의 언어는 삶을 증진시키고 보존하는 힘을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택하셔서 축복하는 존재로 부르셨습니다. 지금은 불안보다는 믿음이, 분노보다는 위로가 필요할 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을 듬뿍 받은 우리들은 저 세상으로 나아가 세상을 축복하는 존재로 거듭나야 합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은 생명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분만을 믿고 담대히 나갑시다. 축복의 사제로 하루를 살아가는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의 능력이 함께 하시길 빕니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자비와 사랑으로 온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나님! 우리 모두가 코로나 19의 풍랑을 건너게 하소서. 믿음을 굳게 하고 주님의 말씀에 희망을 걸게 하소서. 주님만을 믿고 담대히 나아가게 하소서. 비상한 시국에 비상한 마음으로 도전하게 하여 주소서. 생명사랑교회를 택하신 주님! 우리가 주님의 백성으로 축복의 사제가 되게 하여 주소서. 또 하나의 방법을 찾게 하시고, 밭에 감추인 보화들을 발견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가 가려는 그 헌신의 길에서 십자가를 지셨던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국을 보게 하여 주소서. 그 발자국만 따라가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감사기도
자비하신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주님을 송축하고, 우리의 입술로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방황을 이겨내게 하시고, 우리가 반항할 때에도 우리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사랑할 사람들을 주시고, 아름다움은 누리게 하시며, 고요히 머물 장소를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삶의 놀라운 선물들, 우리가 배운 진리와 성취할 수 있던 선한 일들에 감사하며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 시간 주님께 우리 자신을 드립니다. 받아 주소서. 오늘 예배를 통해 받은 천국의 기쁨을 간직하며 살아가겠습니다. 바쁜 세상에서도 주님께서 허락하신 평안을 누리며, 주님께서 감당하라 명하신 소명을 이어나가겠습니다. 모든 것에 감사하는 삶으로 주님께 찬양을 드리며,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파송사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어깨를 쭉 펴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당당하게 그리고 힘차게 걸어 나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우리 앞에는 주님께서 열어 주신 새로운 길이 있습니다. 그 길로 가는 열차에 모두 함께 탑시다. 아니 그 열차를 만들어 내는 우리가 됩시다.
* 축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바람이 되어 여러분을 주님 곁으로 데려가게 하시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여러분의 힘이 되어 주님을 섬기게 하시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기쁨이 생명이 되어 여러분의 영혼을 넘치도록 채워 주시기를 빕니다. 전능하신 주님, 성부 성자 성령 성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영원히 여러분 곁에 계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