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삶의 프레임을 바꿀 때

김기석 목사(청파감리교회)

kimkisuk
(Photo : ⓒ베리타스 DB)
▲청파감리교회 김기석 목사

"삶에 정말 의미가 있나요?" 한 젊은이가 음울한 목소리로 던진 질문이다. 기성세대로서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 질문 속에는 그가 감내해야 했던 씁쓸한 시간 경험이 응축되어 있다. 열심히, 멋지게 살아보려고 애쓰고 있지만 마치 장벽처럼 그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현실에 그는 절망한 것이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것, 자기 삶을 기획할 수 없다는 것처럼 답답한 일이 또 있을까? 하는 일마다 안 될 때야말로 '의미-물음' 앞에 서는 때이다.

"죽은 자에게 바칠 꽃을 들고 서 있는데/벌이 날아와 앉네". 백무산의 '조문'이라는 시의 첫 연이다. 어떤 형태로든 인연을 맺어왔던 이의 죽음 앞에서 비감함에 사로잡힌 채 조문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데, 엉뚱하게 벌 한 마리가 날아와 꽃향기를 탐한다. 삶과 죽음, 영원과 소멸, 질서와 혼돈 사이의 경계에서 바장이고 있는 참에, 벌은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제 일에 충실할 뿐이다. 그 무심한 현존, 마치 환영처럼 나타났다가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진 그 벌 한 마리가 무거움에 이끌리는 영혼을 잠시 뒤흔든 것이다. 시인은 '앉네'라는 평서형 종결어미를 통해 독자들의 공감을 구하고 있다. 꺾여진 꽃조차 생명을 부르고, 한갓 미물로 여겼던 벌조차 제 삶에 충실한 데, 우리 삶은 어떠냐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떤 이는 삶의 의미란 애당초 없다고 말한다. 그에게 세상은 그저 무심하고 무정한 공간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우연히 이 세상에 와서 시간이 부여한 역할을 감당하다가 떠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에게 삶은 온통 우연의 연속이고, 그 우연을 연결하는 목적의 실 따위는 없기에 일관된 서사를 구성하지 못한다.

그러나 삶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이 있다. 이들은 생명이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라 주어진 선물이라고 본다. 왜 이 세상에 보냄을 받았는지를 명확히 알 수는 없지만 '왜?'라는 물음을 삿대로 삼아 시간의 바다를 헤쳐간다. 방향을 잃기도 하고, 풍랑을 만나기도 하고, 권태로운 시간을 견뎌야 할 때도 있지만 가야 할 곳을 알기에 멈추지 않는다. 삶의 부조리 앞에서 흔들릴 때도 있다. 무의미와 허무감에 확고하게 사로잡히기도 한다. 그러나 잠시 비틀거리다가도 다시 정신을 추스르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바라본다.

어느 경우가 되었건 삶은 누구에게나 막막하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삶의 시간을 구획하고 그 구획된 시간을 구체적인 목적으로 채우라고 충고하기도 한다. 그 충고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이들은 사다리를 오르듯 한 칸 한 칸 올라가면서 자기 망각, 존재 망각에 빠져들기도 한다. 그들은 다른 이들이 만들어놓은 틀 속에서 사유하며 살 뿐이다. 세상 문법에 익숙해진 이들은 스스로 유능하다고 여길지 모르겠지만 사실은 길을 잃은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틀을 바꾼다는 뜻이다. 욕망이 아닌 초월의 눈으로 사람과 사회와 역사를 바라볼 때 세상은 달리 보이게 마련이다. 삶의 의미란 보편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삶을 통해 발견하고 구성해야 하는 과제이다. 인간의 인간됨은 누군가의 부름에 응답함을 통해 형성된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 앞에 있는 사람은 우리를 참 사람됨의 길로 안내하기 위해 보냄을 받은 이들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주변 사람들 모두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야 한다. 앞서 인용한 백무산의 시 마지막 연이다. "벌은 하루치의 삶에 몰두해 있고/죽은 자 앞에서 나는 벌겋게 삶에 취해 있고". 시인은 '-고'라는 어미를 통해 삶이 지속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암담하고 답답한 세월이라 해도 인식과 사유의 틀을 바꾸면 세상이 달리 보인다.

※ 이 글은 청파김리교회 홈페이지의 칼럼란에 게재된 글임을 알려 드립니다.        

좋아할 만한 기사
최신 기사
베리타스
신학아카이브
지성과 영성의 만남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개인 구원만 지나치게 강조해 창조 신앙 무력화돼"

창조 신앙을 고백하는 한국교회가 개인 구원만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신앙이 사사화 되면서 연대 책임을 물어오는 기후 위기라는 시대적 현실 앞에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마가복음 묵상(2): 기독교를 능력 종교로 만들려는 번영복음

"기독교는 도덕 종교, 윤리 종교도 아니지만 능력 종교도 아님을 추론해 볼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자의 실존적 현실이 때때로 젖과 꿀이 흐르는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특별기고] 니체의 시각에서 본 "유대인 문제"에 관하여

""무신론자", "반기독자"(Antichrist)로 알려진 니체는 "유대인 문제"에 관해 놀라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소개함으로써 "유대인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영적인? 무종교인들의 증가는 기성 종교에 또 다른 도전"

최근에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무종교인의 성격을 규명하는 논문이 발표됐습니다. 정재영 박사(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종교와 사회」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신의 섭리 숨어있는 『반지의 제왕』, 현대의 종교적 현실과 닮아"

『반지의 제왕』의 작가 톨킨의 섭리와 『반지의 제왕』을 연구한 논문이 발표돼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숭실대 권연경 교수(성서학)는 「신학과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논문소개] 탈존적 주체, 유목적 주체, 포스트휴먼 주체

이관표 박사의 논문 "미래 시대 새로운 주체 이해의 모색"은 세 명의 현대 및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의 주체 이해를 소개한다. 마르틴 하이데거, 질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교회가 쇠퇴하고 신학생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고 필요하다"

한신대 김경재 명예교수의 신학 여정을 다룬 '한신인터뷰'가 15일 공개됐습니다. 한신인터뷰 플러스(Hanshin-In-Terview +)는 한신과 기장 각 분야에서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진과 선에 쏠려 있는 개신교 전통에서 미(美)는 간과돼"

「기독교사상」 최신호의 '이달의 추천글'에 신사빈 박사(이화여대)의 글이 소개돼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키에르케고어와 리쾨르를 거쳐 찾아가는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사회봉사를 개교회 성장 도구로 삼아온 경우 많았다"

이승열 목사가 「기독교사상」 최근호(3월)에 기고한 '사회복지선교와 디아코니아'란 제목의 글에서 대부분의 교단 총회 직영 신학대학교의 교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