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눅4 17~18
예수님의 말씀은 왜 복음인가? 복음이란 뜻은 한자어로 보면 복된 소리입니다. 성서적으로 보면 기쁜 소식입니다. 아름다운 소식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통해 무엇을 하시고 싶었던 것일까요? 그리고 우리는 왜 그의 말씀을 복음이라 고백하는 것일까요 오늘 설교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짐으로서 깨달음을 얻고자 합니다.
우리가 복음으로 고백하는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 핵심 키워드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천국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바로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요? 그리고 그 나라가 왜 우리에게 기쁜 소식이 될 수 있을까요?
먼저 우리자신에게 궁극적으로 기쁜 소식이 무엇인지 자문해 봅니다. 아마도 가장 큰 소망은 죽어서도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 그리고 살아생전 잘 먹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즉 유한한 우리에게 영생하는 소망과 살아생전 맘껏 자유와 행복을 누리며 살다 죽는 것이 궁극적으로 우리의 가장 큰 소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말씀도 우리의 소망과 멀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영생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언젠가 시간이 되어 삶을 마감해야하는 우리에게 최고의 기쁜 소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또한 살아생전에도 잘 먹고 건강하게 잘 살고 싶다는 소망도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쁜 소식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또 누구에게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원하는 소원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두 소망이 각각 하나는 하늘 나라(kingdom of heaven)로 또 하나는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라는 표현과 연결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사후의 영생의 소망은 하늘나라(kingdom of heaven)로 표현되며 이 세상에서의 잘살고 싶은 소망은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로 표현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두 나라 중에서 하나님의 나라, 즉 이세상에서 이루어 짐을 말씀하신 나라에 대해서 좀 더 나눠보고자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기쁜 소식으로서 예수님의 복음이 잘 먹고 잘 사는 법으로서 말씀이라면 예수님이 무슨 경제 전문가냐 이렇게 질문할 수 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경제 전문가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돈을 잘 버는 방법을 알려주신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오해부터 풀어야 합니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부자여야 한다는 많이 갖어야 한다는 관념입니다. 이것은 크 오해입니다. 우리가 현실을 잘 들여다보면 물질은 필요한 만큼만 가지면 좋은 것이지 너무 많이 가지게 되면 오히려 우리가 물질에 매몰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너무 많은 물질은 새로운 불안과 걱정, 욕망을 낳게 합니다. 물질은 건강한 삶을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가질수록 더 행복하다는 등식이 성립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서가 전하는 참으로 잘사는 것, 행복하게 사는 것은 어떤 것인지 깊이 들여다 봐야 합니다. 오늘의 본문말씀을 보면 "복음이 가난하고 병들고 억압받는 잘들에게 전파된다" 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선적으로 복음은 이렇게 현실의 삶에서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기쁜 소식으로 다가가고 있습니다. 이 말씀처럼 예수님께서도 병들과 여러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치료하시고 치유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어려움에서 벗어나 같이 행복하게 잘사는 것을 원하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절대 진리를 가지고 오셔서 다음과 같이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 것같이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그와 같이 이웃을 사랑하라 하십니다. 그 이웃은 낯선 타자이며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라고 구체적으로 적시해 주십니다.
이러한 예수님 말씀을 맥락을 따라가다 보면 어렵지 않게 우리는 예수님의 뜻을 알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가난한 자들에게는 부자가 좀 나눠주고 병든자들에게는 병을 치료해주고 억압받는 자들에게는 억압에서의 해방을 통해 더불어 함께 잘 사는 나라 바로 이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러나 이 하나님의 나라가 말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부자는 나눠주기를 싫어해서 낙타가 바늘귀 통과하는것보다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억압받는 자가 있다는 것은 억압하는 자가 있는 것인데 이들은 대체로 권력과 힘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기득권을 갖고 있으며 시스템을 돌리는 키를 쥐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좀처럼 자신의 기득권을 내어 놓으려 하지 않습니다.
정치 권력자들은 민중을 위해 노력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정치적 권력을 유지하고 이를 통한 물질을 쌓는데만 급급할 뿐입니다. 이 와중에 많은 사람들은 억압의 구조에 놓이게 됩니다. 예종교적 지도자들은 종교적 권위를 이용하여 성전에서 장사하는 장사꾼이 되었으며 많은 신앙인들을 억압, 착취합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이들에게 아마도 자신의 밥그릇을 뺏는 것처럼 들렸을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말씀, 이것은 더불어 같이 잘 살자는 말씀이며 이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이룩하자는 복음으로서 말씀입니다. 이러한 나라가 바로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하나님이 주가 되시는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유대인의 정치적 종교적 권력자들에게는 걸림이 되었습니다.
지금의 한국교회는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을 잘 전하고 있는지 자성의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오히려 또 다른 권력이 되고 기존권력과 야합하고 그들이 좋아하는 말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정으로 어려운 이웃의 편이 되고 이웃과 함께 동행하는 교회가 되고 있는지 이 어려운 코로나 시대 한국교회는 뒤를 돌아보고 한국교회의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오늘도 주일을 맞아 주께나와 예배하게 하시고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을 다시 세워주심을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명령합니다.
함께하라고!
그러나 인간은 욕심에 사로잡여 어려운 이웃을 돌보지 못합니다.
우리의 마음까지도 통찰하시고 관여하시는 하나님
예수님의 말씀처럼 하나님이라면 하실수 있다고 하셨으니
하나님의 성령님의 예수님의 능력으로 우리를 이웃에게로 이끌어 주소서
하나님 나라는 혼자가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함께 가는 것임을 깨닫게 하소서
이웃과 함께 손잡고 가는 곳이 천국임을 깨닫게 하소소
실천을 지워버린 한국교회에 다시
실천의 힘을 부어주소서
한주동안도 우리 모두의 건강과 안위를 지켜주시고
말씀으로 사는 한 주 되게 하여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위 글은 지난 2일 사회적교회 담임 정인재 목사의 주일설교 원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