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베르메르의 '저울을 든 여인'

김기석 목사(청파감리교회)

kimkisuk
(Photo : ⓒ베리타스 DB)
▲청파감리교회 김기석 목사

고요함으로의 초대 -요한네스 얀 베르메르(Johannes Jan Vermeer)의 '저울을 든 여인'(40*36cm,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세상이 소란스러워서일 것입니다. 고요함에 대한 갈망이 깊어갑니다. 귀 기울여 듣지 않아도 들려오는 소리들이 마음을 어지럽힙니다. 습관처럼 들여다보는 SNS만 차단해도 한결 나으련만, 휴대전화를 손에서 내려놓기 어렵습니다. 악다구니, 설익은 주장, 편 가르기, 저주, 혐오, 냉소가 넘치는 세상에서 우리 마음은 흔들립니다. 회오리바람이 세상 온갖 쓰레기들을 휘저어놓는 것처럼, 반지성적이고 몰상식한 바람이 세상을 들끓게 하고 있습니다. 소사스러운 이들의 목소리가 높아질수록 큰 정신의 목소리는 잦아듭니다. 물레에 찔린 동화 속의 공주가 100년 동안의 잠에 빠지자, 성 전체가 잠에 빠지고, 쥐를 잡으려던 고양이도 그 동작 그대로 멈춰버립니다. 심지어는 아궁이의 불까지도 타던 모습 그대로 멈추었습니다. 그 정지된 시간 속에 잠시 머물고 싶습니다.

활동적 삶(viat activa)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세상입니다. 모든 것을 향해 손을 내밀고, 장애물을 극복하고, 자연을 닦달하여 성과를 거두는 것이 탁월함처럼 보입니다. 끝없는 움직임은 피로를 낳습니다. 몸의 피로, 정신의 피로. 피로에 지치면 주의력이 분산되고, 이웃들을 위한 여백이 사라집니다. 현대인들은 관조적 삶(vita contemplativa)을 낯설게 여깁니다. 속도를 늦추는 순간 경쟁자가 나를 앞지를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이 우리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잠시 멈춰서는 경험이 없다면 어떻게 '변하지 않는 것' 곧 '영원'의 옷자락을 볼 수 있을까요?

세상의 소란에 적응하지 못한 채 마음의 정처를 찾지 못해 바장일 때면 떠오르는 화가가 17세기 네덜란드 화가인 베르메르(1632-1675)입니다. 유럽이 종교개혁과 반종교개혁의 대결로 소란할 때, 네덜란드는 대서양을 지배하는 주도적 해상국가로 발돋움하고 있었습니다. 조선업과 해운업이 발달하면서 교역이 활발해지자 은행업 또한 호황을 맞이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문화가 뒤섞이고 종교적 관용이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분위기 가운데서 자유로운 시민 사회가 형성되었고 화가들의 활동공간도 변화되었습니다. 과거에는 교회나 수도원, 전통적인 귀족 가문이 그림의 주문처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돈을 축적한 시민들이 자기집의 품격을 높여줄 그림을 주문하면서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17세기의 네덜란드에서 풍경화나 정물화가 발달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 그림의 소재로 등장한 것은 시민사회의 형성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베르메르는 그런 시기에 활동한 화가입니다. 그가 남긴 그림은 30여 점 남짓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당대에는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인상파 화가들에 의해 뒤늦게 재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는 슬하에 11남매를 두었다고 합니다. 화가 조합인 루카스 길드에 등록하여 활동한 것은 거기 속해야만 그림을 팔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난했던 베르메르의 집은 11명의 자녀들이 이루는 소음이 그칠 새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시민들이 누리는 일상적 삶의 한 순간을 포착한 그의 그림은 적연부동(寂然不動)의 한 경지를 보여줍니다. 마치 바흐의 푸가를 듣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기묘한 체험입니다.

그는 여인들의 모습을 많이 그렸습니다. 그림 속에서 여인들은 편지를 읽거나, 창밖을 내다보거나, 우유를 따르거나, 자수를 놓거나, 물 주전자를 들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범용한 일상입니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집들은 소박하지만 남루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가 즐겨 사용하는 노란색과 푸른색이 만들어내는 밝은 느낌 때문입니다. 열린 창문 또한 그가 즐겨 그린 소재입니다. 그 창을 통해 들어오는 밝은 빛과 색채가 어우러져 그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본질을 드러냅니다. 베르메르의 그림에 등장하는 소품들은 여러 나라에서 수입한 물건들입니다. 당시 네덜란드를 사로잡고 있던 활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고요합니다. 격정적인 모습이나 감정적 동요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들은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마치 세상에서 그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인 것처럼 보입니다. 신학자들이 말하는 '영원한 현재'란 그런 순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베르메르의 이름을 대중들에게 알린 것은 역설적으로 그의 그림을 소재로 한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입니다. 그 작품 속에서 소녀는 물끄러미 관람자들을 바라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똑바로 바라보는 것은 아니어서 그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어딘가 신비로운 세상에 당도할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저울질하는 여인'은 베르메르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느 인물들처럼 자기 일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화면 오른쪽 상단의 자그마한 창문을 통해 빚이 비쳐들고 있습니다. 그 빛을 의지하여 천칭으로 무게를 달고 있는 여인의 표정은 평온합니다. 탁자 위에 어지럽게 놓인 진주들이 영롱합니다. 흰색 모피를 덧댄 푸른색 상의를 입고 있는 여인은 흰 두건을 쓰고 있습니다. 맑고 깨끗해 보입니다. 여인의 배가 불룩한 것을 보면 임신중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배 부분의 붉은 색은 새로운 생명을 잉태한 이의 행복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여인은 오른손 세 손가락을 이용하여 천칭의 균형을 맞추려고 집중하고 있습니다. 왼손은 몸의 흔들림을 방지하기 위함인 듯 탁자 위에 가만히 놓여 있습니다. 천칭은 어느 한쪽으로도 기울지 않는 완벽한 평형상태를 보여줍니다. 베르메르는 그림의 좌우 대각선이 교차되는 지점에 천칭의 평형점을 두었습니다. 그림이 평온하게 보이는 것은 좌에서 우로 그은 대각선의 왼쪽은 적당히 어둡고 오른쪽은 밝기 때문입니다. 그 화려하고 아름다운 진주를 보면서도 여인은 흥분감을 내비치지 않습니다.

이 그림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그림의 배경이 되고 있는 액자입니다. 그 액자 속에 담긴 그림은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16세기 후반 플랑드르 화가가 그린 '최후의 심판' 장면처럼 보입니다. 위아래로 분할된 화면의 위쪽에는 진노하신 그리스도가 손을 높이 들고 서 계십니다. 좌우편에는 성모와 성인들이 놀란 듯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화면 아래 장면은 저울을 든 여인을 중심으로 좌우로 갈립니다. 왼쪽은 복 받은 이들이 하늘로 들려올라가는 모습입니다. 오른쪽 사람들은 저주받은 이들입니다. 여인의 머리에 가려진 곳에는 아마도 미가엘 천사가 사람들의 영혼의 무게를 달고 있었을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여인이 미가엘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베르메르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우리를 심판하는 것은 절대적 타자인 하나님이나 대천사가 아니라 우리들 자신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 아닐까요? 어찌 보면 이 여인은 액자 속에 속한 듯 보이기도 합니다. 세상은 온통 화려한 것들로 우리 마음을 훔치려 합니다. 거룩함과 속됨, 빛과 어둠, 영원과 시간, 형식과 내용, 멈춤과 움직임, 이타심과 이기심, 사랑과 미움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며 살아야 하는 것이 인생의 과제입니다. 가끔은 흔들리지만 흔들리면서도 기어이 중심을 잃지 않으려면 위로부터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박해를 피해 호렙산으로 도피했던 엘리야는 지진, 불, 바람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두려움과 절망으로 곱게 갈아엎어져 마음이 고요해졌을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나'로 들끓을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세월이 시끄러울수록 마음의 균형을 이루며 고요함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베르메르는 그 세계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 이 글은 청파김리교회 홈페이지의 칼럼란에 게재된 글임을 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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