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소리
존 스토트는 33살에 첫 책을 출간했다. 사역 초기, 그는 기독교 신앙의 기본적인 부분들을 다루는 책들을 썼다. 29살, 올 소울즈 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한 후, 교회 내 기본적인 신앙을 세워가는 사역이 필요했을 것이다. 외부사역도 주로 회심을 목적으로 한 선교집회 설교들이었기 때문에, 신앙의 기본적인 부분을 다루는 책들을 주로 출간했다.
사역 중기, 그는 성경의 메시지가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 적용되어야 할 필요를 느끼며, 성경강해집을 출간하기 시작했고, 오늘 날의 문화 속에 그리스도를 소개하려는 시도들을 했다.
올 소울즈 교회에서 명예사제가 된 후, 그는 굵직한 주제의 책들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성경과 오늘, 두 세계에 다리를 놓는 설교자의 직무에 관한 '존 스토트의 설교론', 현대사회의 다양한 일들 속에서 성경적인 관점을 가지고 산다는 것에 대한 '현대사회 문제와 그리스도의 책임', 십자가에 대한 성경의 소리들을 담은 그의 대표작 '그리스도의 십자가'등이 이 시기에 출간되었다.
그는 정말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썼다. 기독교 신앙의 기초적인 회심과 성장을 다룬 책, 교회 사역에 관한 책, 성경연구에 관한 책, 강해설교집, 리더십에 관한 책, 복음주의 운동에 관한 책, 설교사역에 관한 책, 당시 사회 문제에 응답하는 책, 그리스도를 소개하기 위한 책 등 상당한 문서사역으로 교회와 사회를 섬겼다.
그런 그가 2009년, 88세의 나이에 쓴 마지막 책이 있다. 제자도(Radical Disciple)였다. 그는 그동안 책으로 많은 것은 남긴 사람이었다. 33세부터 88세까지 쉼 없이 출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을 떠나 주님의 품으로 가기 전, 그리스도인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무언가가 있었다. 그 메시지를 담은 것이 제자도였다.
제자로 산다는 것
어린 그리스도인이었던 존 스토트가 들었던 질문이 있었다.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인가?", "우리가 회심했다면, 그 다음에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이 질문은 그의 영혼을 울리고 있었다. 순례의 여정의 끝에 거의 다다른 순간까지 그치지 않았다. 그는 순례의 여정의 마지막에 이르러, 다다른 자신의 생각을 나누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그리스도처럼 되기를 바라신다.",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의 뜻은 선명하다.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그리스도처럼 되는 것이다. 제자는 이 일을 이루어가는 사람이다. 제자는 세상의 다원주의, 상대주의, 물질주의, 나르시즘의 소리들을 뒤로하고, 그리스도의 말씀에 주파수를 맞추고, 그리스도 닮기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나는 제자도를 읽으면서, 두 가지 단어를 떠올렸다. 깊이와 넓이다. 제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깊이와 넓이를 추구하는 자다.
그는 깊이를 이야기했다. 회심 한 후, 제자는 그리스도를 온전히 닮기를 추구해야 한다. 순전한 의존을 배워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죽음에 이르러야 한다. 그는 한없이 그리스도께로 깊어지기를 추구했다.
그는 넓이를 이야기했다. 그의 '제자도'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제자를 개인적 신앙, 예배, 교회의 영역에만 가둬두지 않은 것이다. 그는 다양한 영역에서 제자다움을 추구할 것을 권면하였다. 존 스토트가 말하는 제자는 개인의 신앙과 공동체를 향한 섬김, 예배와 사역, 교회와 사회의 유기적 관계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그는 특별히 지구가 처한 생태적 위기를 거론하면서, 창조세계를 돌보는 일도 제자의 일임을 이야기했다. 더불어 현재 세계 속에 일어나고 있는 불의로 인한 빈곤 문제를 거론하면서,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이를 해결하려 해야 할 책임이 있으며, 이를 위해 개인적으론 단순한 삶과 더불어 사회 속에서의 정의를 위한 섬김이 필요함을 이야기하였다.
제자의 길이란, 그리스도를 깊이 닮아가는 여정, 넓고 다양한 영역에서 그리스도께 속하여 살아가는 여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제자 되기를
그리스도와 어긋난 삶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깨닫고,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살아가기로 결단하는 것은 참으로 귀한 사건이다. 그러나 이는 평생토록 추구해야 할 순례의 여정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그때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다.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갈 길이 멀다.
문제는 시작만 하고 끝나는 경우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그리스도를 깊이 닮아가는 것이고, 넓은 영역 속에서 그리스도께 속하여 살아가는 것인데 말이다. '나는 얼마나 깊이 그리스도께 속하여 살아가는가?', '나의 삶의 다양한 영역 속에 그리스도는 온전히 주인이신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이와 같은 질문을 던지며, 발걸음을 옮기는 일을 통해 우리의 삶에 제자다움의 아름다움이 드러날 것이다.
솔직히 제자도의 소리는 부담스럽다. 이 여정에 들어선 것을 감사하며, 즐거워하면서도, 수시로 부담감과 거부감이 찾아온다.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자가 감당해야할 짐인 것 같다. 그러하기에 이 여정에는 기도가 필요하고, 은총이 필요하다.
때때로 듣고 싶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면에서 계속해서 울려지는 영혼의 소리를 거부할 수 없다. 어긋나 살아가고 싶지만, 다시금 영혼에 울리는 부르심을 외면할 수 없다. 그것이 은총의 흔적이 아닐까. 내려놓고 싶지만, 내려놓을 수 없는 소리가 되도록 이끄시는 은총이 우리를 깊이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모든 영역 속에 그리스도께 속하여 살아가게 하는 힘이겠다.
※ 이 글은 본지의 외부 기고가 정승환 목사가 연재 중인 <책 이야기>입니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