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국내 첫 여성 조직신학 박사 박순경의 신학과 인생(1)

대담자 서광선 이화여대 명예교수·원초 박순경 박사

편집자주- 국내 첫 여성 조직신학 박사 원초 박순경 박사(98)가 지난 24일 오전 자택에서 노환으로 소천했습니다. 본지는 서광선 이화여대 명예교수(본지 회장)와 고 박순경 박사가 생전 진행한 특집 대담을 대담자와 해당 대담 전문이 실린 혜암신학연구소(『신학과교회』 2016년 겨울호) 의 허락을 받아 게재하며 고 박순경 박사가 한국교회에 남긴 신학 유산을 기리고자 합니다. 대담은 총 3편에 걸쳐 싣습니다.  [신학과교회 서광선-박순경 박사 대담 편집자 이민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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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혜암신학연구소 제공)
▲본지 회장 서광선 이화여대 명예교수(좌)와 故 원초 박순경 박사(우)

[편집자 주]

박순경 박사는 1923년 제국주의 억압아래 태어나 '민족'을 고민했다. 피억압 민족으로서 마냥 미국의 자본주의를 따라가는 것은 용납이 되지 않아 주체사상을 파고들다가 67세의 나이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106일 동안 투옥되며 세간의 오해를 사기도 했다. 칼 바르트를 흠모하며 우리 민족이 처한 컨텍스트에서 제3의 길을 찾으려고도 해보았다. 박순경이 걸은 길이 오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의미한 점은 그에게 공산주의 세계가 성경이 제시하는 세계와 '쌍둥이'같다 해도 그가 생각하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형이상학이 아닌 역사적 하나님이었고, 그 하나님은 인간과 '관계'하시는 하나님이었다는 데에 있다.

서광선: 박순경 선생님, 바쁘시고 이 세월 돌아가는 것도 정치도 그렇고 나라의 꼴이 형편없는데 이렇게, 시간을 내 주셔서 우리 『신학과 교회』를 위한 대담을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순경: 예, 서광선 박사님은 그 누구보다도 제 생애에 많이 개입을 하셨어요. 그렇지 않아도 내가 죽기 전에 서 박사님한테 할 얘기가 많은데 어떻게 다 전하나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이런 기회를 마련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하구요. 제가 오늘 서 박사님께 드릴 말씀 다 할게요.

서광선: 네, 좋습니다. 선생님 뵈러 오면서 얘기를 어디에서부터 시작을 할까 하면서 고민을 참 많이 했습니다. 제가 6.25 때 이북에서 3.8선을 넘어 부산에 가서 대한민국 해군이 되어 세일러복을 입고 처음으로 선생님을 부산에서 뵈었지요.

박순경: 미실회에서!

서광선: 네, 거기서 뵈었는데, 그 이후에 정말 여러 번 선생님의 중요한 인생 가운데 제가 선생님께서 하시는 일, 공부하시고 책 쓰시고 또 가르치시는 일 등을 보며 이화대학 여러 곳에서 선생님을 가깝게 모시고 그래왔지요. 그리고 이제 이렇게 제가 『신학과 교회』 편집위원장으로 선생님을 인터뷰하면서 선생님의 인생, 선생님의 신학, 선생님의 해오신 일들을 듣는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우리 독자들은 선생님께서 한국 최초로 1960년대에 여성으로서 조직신학 박사학위(Ph. D.)를 받으신 분으로 알고 있고, 많은 분들, 학생들, 제자들이 선생님의 책을 읽고 가르침을 받고 선생님을 존경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이야기의 시작은 어디에서부터 할 것인가를 생각해보았는데, 제가 제일 인상 깊고 또 정말 고통스러웠던 것은 여성신학자2)로서 어떻게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는가라는 문제에 대한 것입니다. 정치범으로 양심범으로 감옥에 가서 재판을 받으신 그 얘기가 선생님을 생각할 때 제일 제 가슴이 아프고 화도 나고 그렇습니다.

박순경: 감사합니다.

67세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투옥되다

서광선: 거기에서부터 얘기를 들으면 어떨까 생각을 했습니다. 선생님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으시고 감옥에서 고생하신 경력이 있습니다. 오늘 그 이야기부터 시작하면 어떨까요? 선생님의 사상이 무엇이었나요? 그리고 선생님은 아직도 김정일의 "주체사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계신지요?

박순경: 90년 봄에 미국 롱아일랜드에서 북미 기독학자대회가 열렸는데 거기에 남한의 신학자들과 북한의 신학자들이 초청이 되었어요. 거기 대단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는데, 선우학원 교수를 비롯해서 홍동근 목사, 김동수 교수도 있었고, 한시해 UN주재 북한대사, 북한의 박승덕 박사 등등이 있었어요. 내가 거기서 북쪽 인사들을 처음 만나보았어요.

북한에서는 아홉 분이 왔는데, 학자가 몇 분 있었고, 목사님들이 두 세분 쯤 계시고, 그리고 여자 통역관들과 여자 목사후보생도 참석하였어요. 거기서 처음 그들을 만났는데, 신학적으로나 사상적으로 날 휘어 잡을 수 있었던 사람이 박승덕 박사에요. 그때 나는 그를 몰랐는데 그이는 나를 이미 다 알고 있었어요. 어떻게 알았냐 하면은 1980년대 말경인가, 독일과 미국에 살고 있는 기독자 동포학자들이 비엔나, 헬싱키 등에서 모이고 했는데, 그들의 모임에서 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었나 봐요. 나는 이제 박승덕 박사가 기독교에 있어서는 초보생이겠거니 생각했는데, 그 행사가 끝나고 뉴욕에 있는 한국 서점에 갔어요. 그 서점에서 내가 신약 입문 같은 책을 골라서 "이것 어떠세요?" 하고 물었더니 입문 같은 것은 그만두라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아이고 잘못 봤구나 싶었어요. 그리고 내가 칼빈의 『기독교강요』 우리말 번역본과 다른 전문 신학서적들 세 권을 사 드렸어요.

서광선: 우리말로 번역된 것이 있었어요?

박순경: 네, 그걸 드렸더니 박승덕 박사가 "칼빈의 신학이 깊더군요"라고 하잖아요? 그 다음에 내가 불트만의 『공관복음 연구서』를 제공했어요. 그런데 그 양반이 뭐라고 하냐면, "박 교수님께서 북한에 한번 오시면 삼천 명이 모이는 홀에서 강의를 하시겠습니까?" 그러는 겁니다.

갑자기 너무 벼락같이 들은 이야기죠. 그런데 그들이 빈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아니거든요. 그들은 그런 것을 할 수 있어요. 그런데 나는 그때 그렇게까지 비약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어서 대답을 못하고 우두커니 서 있었어요. 그래서 내가 한국에 돌아와서 이제 내가 주체사상을 공부 안하면 안 되겠다 싶었어요. 나는 좀 오만이 있어서 '주체사상이 뭐 사상이겠니' 이랬거든요? 그런데 전혀 준비가 안 된 상태였기에 나도 이제 주체사상을 좀 연구해야겠다 싶었어요. 내가 박승덕 박사한테 지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나는 나대로 공부를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때 한국에는 이미 김영환의 「강철서신」이라 팜플렛 형태의 문건이 유포되어서 주체사상이 통일운동권에서는 아주 일반화되고, 김정일의 주체사상 연구 프로그램의 줄거리를 따라 하기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측면이 아니라, 사상적으로 '주체'라는 개념을 다루어야 신학을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주체라는 개념에서 절대 주체는 인간이 될 수 없다는 게 내 입장인데, 북한에서는 김일성 주석이 한국전쟁때 그 초토화된 북녘 땅에서 인민의 생존권을 일으켜 세웠으니 그가 사상의 주체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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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혜암신학연구소 제공)
▲故 원초 박순경 박사

그래서 나는 주체사상에 대해 나만의 태도로 한정했습니다. 저 김일성 주석은 우상도 아니고 독재자도 아니고, 인민들을 살린 사람일 뿐이라고. 그리고 내가 90년 여름에 일본에서 이 내용을 "교회와 신학의 역할"이라는 제목으로 강의하면서 이야기했는데, 거기에 남한에서 간 보수 기독교 목사와 장로들이 다 모여 있었거든요? 거기서 내가 김일성 주석이 우상도 아니고 독재자도 아니다, 이런 말을 하니까 거기서부터 소요가 일어나는 거예요. 나는 소요가 일어나든 말든 내 할 말을 다 했어요.

서광선: 허허허허.

박순경: 다 했는데, 그냥 그날 저녁에 나는 3층 어느 방에 있었는데 1층에서 소동이 일어났어요. 거기 남한에서 간 기자들과 정보원들이 다 있었죠. 그래서 내가 귀국하면 체포당한다는 이야기가 들렸습니다. 누군가가 말렸어요. 특히 조승혁 목사님이 중재를 하시면서 그래도 좀 말을 들어보고 해야 한다고 해서 일단 공항에서는 체포를 안 당했습니다.

그 다음에 소환장을 보내와서 90년 여름에 소환을 당했지요. 소환을 당해서 형사들로부터 수사를 받는데, 청와대 궁정동 어디 근처 안가일 겁니다. 거기서 내가 한 형사와 엄청 싸우다가 거기서 자고 그랬는데, 나를 풀어주자는 말이 돌았는가 봐요. 그때 그들이 나에게 마지막 질문을 했지요. 범민족 대회가 8.15에 열리면 참석을 하겠냐 안하겠냐고 물은 겁니다. 나는 "내 건강이 허락한다면 참석 하겠다"라고 한거예요. 나와 같이 소환돼서 조사받는 사람은 안하겠다고 했고요. 그래서 그이는 풀려나고 나는 구속되었습니다. 내가 좀 어리석었지... 허허허. 내가 생각이 조금 고지식하잖아요? 고지식한 거 빼면 나 아니잖아요?

서광선: 정말이에요.

박순경: 그러니까 그때 나는 잡혀 들어간 겁니다. 검찰에서는 나를 구속시켜놓고 이제 큰 사상범 하나 잡아들였다 했어요. 국정원 종교 담당부서가 이제 큰 물고기 하나를 잡았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리고 거기 협조한 기독교 단체가 아마도 종로5가에 있었는데, 이들이 누구인지 나는 모릅니다.

왜 그렇게 됐는지 이야기가 필요하면 이따가 할게요. 내가 나중에 박형규 목사님을 만나서 "내가 구속되도록 한 데가 종로5가가 아니냐"라고 물었는데 가만히 계시더군요. 어쨌든, 서울 구치소에 갇히게 되었지요. 거기서 검찰 조사에 불려 다녔습니다. 조사를 받는데, 그 일본 강연회에 참석했던 사람들 열대여섯 명이 증언하기를 모두가 이 사람은 감옥에 가야 한다, 감옥에 집어넣으라고 했어요. 이런 처사는 바로 사람들이 예수를 잡아 죽인 거나 마찬가지라고 내가 형사와 검사 앞에서 토로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일본에서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서 나하고 같은 버스를 타고 회의장으로 갔었습니다. 그이들이 내 뒷좌석에 앉아서 "지금 북한이 꼭 무너져야 되는데 왜 안 무너지냐"라고 이야기하는 것예요. 내가 속으로 저 사람들이 내 사상을 들으면 뭐라고 할까 그런 생각을 하기는 했습니다. 사실 그때 나는 막 주체사상을 공부하기 시작했을 때였어요. 김정일이 정리를 했다는 것도 몰랐고, 나는 그냥 나대로 주체라는 개념이 마르크스주의의 어디에서 나왔는지부터 공부하기 시작한 것이 었습니다.

마르크스 초기에 역사의 주체라는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그리고 김일성 주석이 역사의 주체이기도 한 것은 모든 인간이 주체적으로 역사를 살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그도 상대적인 주체이며, 무엇보다도 정말 신학적으로 말하자면 역사의 주체는 삼위일체 하나님뿐이거든요?

나는 검사 앞에서 이렇게 말했어요. 그런데 검사가 이것을 이해 못하더군요. 그리고 검사가 들으면 들을수록 이 사람은 잡아들일 사람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 보였어요. 나도 나중에야 나의 주체사상의 출발이 통일운동권 사람들의 주체사상과는 달랐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지금은 내가 주체사상을 민족이론으로 대체해서 통일신학을 구성해 냈습니다. 그리고 북한의 주체사상이나 주체 김일성 주석의 역할 등은 북한에나 해당하고 거기에서나 타당하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그것을 우리 식으로 부정할 수가 없고 그건 거기서 전개되고 또 어떻게 발전할지 모르니까 그건 북한에 맡겨두고, 나는 나대로 민족이론으로 대체하여 논하는 것이 내 입장입니다. 내가 민족의 시원을 찾느라고 그렇게 애를 쓰곤 했는데도 우리 역사학자들에게서 안 나와요. 그래서 내가 이름 있는 학자들 역사책을 모두 읽었습니다.

서광선: 통일 문제를 이야기하려면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을 거론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박순경: 7.4 공동성명이 나오자마자 아이쿠 내가 민족통일 문제를 진작 취급했어야 했는데 내가 지금까지 못했구나 싶었지요. 내가 지금까지 안하고 보류해 둔 것, 그러니까 내가 본래 1940년부터 마르크스주의와 민족과 기독교 등 셋을 어떻게 접목, 결부시키나 하는 문제를 생각했는데, 이게 이제 추구되어야 한다는 결정을 했습니다.

서광선: 네, 잠깐만요. 그러면 감옥에는 얼마나 계셨어요?

박순경: 106일 동안.

서광선: 106일. 감옥 안에서는 재밌었어요? 감옥에 갔다 온 사람들이 다 재미있었다고 그러는데 믿기지가 않아요.

박순경: 아 그것은, 기결수가 돼서 지방으로 이감을 가면 재소자들끼리 서로 소통을 해요. 서로 대화하고 음식을 나눠먹기도 하고 그래요. 그런데 미결수는 구치소에 있는데 구치소에서는 그런 소통이 없어요. 서울 구치소에 있었을 때 1층에 갇힌 여자 애들이 있었는데 간수가 이들과 내가 섞이면 안 된다고 나를 2층에 배치했어요. 이들과 섞이면 내가 한 패거리가 되어 검찰에 보고하기 어렵다는 거죠.

서광선: 여자애들이요?

박순경: 여자애들이죠. 젊은 여자 운동권 활동가들이지요. 그리고 그네들이 아침마다 "선생님 안녕히 주무셨어요!" 하고 인사를 하고 저녁이면 "선생님 안녕히 주무세요"라고 소리쳐요. 그러니까 그들의 인사말에 내가 응답하는 게 재미가 있었어요. 그리고 운동장에 운동하러 나갈 때는 내가 그들의 감방들을 통과하는데, 그럴 때면 그네들이 고개를 내밀어 내다보고 손을 잡곤 했지요. 그것도 재밌었고, 운동할 때 걔네들과 만나는 수가 가끔 있었는데 그게 또 재밌었고, 그런 거지요. 그 외에는 엄청 괴롭습니다. 철문! 그 철문 소리가 그렇게 사람의 신경을 건드리면서 진저리가 나요!

서광선: 그렇죠. 많이 울리지요?

박순경: 맞아요, 철컥! 철컥! 몸서리가 쳐집니다. 그리고 처음 들어갔을 땐 몸을 조사하면서 옷을 몽땅 다 벗겼는데, 조사하고 난 뒤 수의로 갈아입혔지요. 그게 그렇게 괴롭고 죽겠더라고요.... 처음에 들어간 감방은 0.75평, 숨 막히지요.

서광선: 선생님 죄수 번호가 몇 번이이었는지 기억하세요?

박순경: 72번이었어요.

서광선: 그리고 독방 쓰셨어요?

박순경: 독방 달라고 그랬지 내가, 하하하. 본래 사상범은 독방을 쓴대요. 1.5평인데 창문도 두 개이니 0.75평에 비하면 호텔 같더군요.

서광선: 그때 그 병을 얻으셨어요? 지금 그 병으로 고생하시는 것이 그때 이후가 아닌가요?

박순경: 아니에요. 그때는 멀쩡했어요. 나와서 살다가 뼈가 다섯 번 부러지고 다섯 번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 때문에 손해 본 시일을 계산하자면, 15년 쯤 될 걸요.

서광선: 감옥 안에서는 무슨 책 보셨어요?

박순경: 책은 성서를 주로 봤죠. 그리고 외부에 편지도 쓰고요. 그런데 면회 오는 사람들 만나느라고 책 볼 사이도 없었어요. 그러니까 오히려 면회 오는 게 귀찮았습니다. 일반 사람들에게 편지가 많이 왔고 내가 쓰기도 했구요.

서광선: 옥중서한을 출판하실 생각은 없어요?

박순경: 모든 자료들이 준비되어 있어서 출옥하자마자 출판했습니다. 그것이 『신학의 고통과 승리』라는 책이지요.

이민애 theworld@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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