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재 교수(이화여대 인문과학대학 기독교학과, 이화여대 대학교회 담임목사)
성경본문
시편 102:24-28, 디모데전서 4:7-10. 마태복음 7:24-27
설교문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이 말을 믿고 살았습니다. 사람은 거짓말을 해도 사진은 거짓말하지 않는다고 믿었습니다. 영상은 가장 객관적인 증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사건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늘 이렇게 물었습니다. "증거가 있습니까?" "사진이 있습니까?" "영상이 있습니까?" 눈으로 확인하면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보는 것이 믿는 것'이던 시대는 끝난 것 같습니다. 인공지능(AI) 시대는 우리의 오랜 상식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이제는 존재하지도 않는 사람이 인터뷰하고, 내가 실제로 한 적 없는 말이 영상으로 유포되고,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의 목소리가 되살아납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사진만 보여 주면 모두 믿었는데, 요즘은 사진을 보여 주면 오히려 이렇게 묻습니다. "이거 진짜예요? 아니면 AI가 만든 거예요?"
기술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수준까지 발전했습니다. 특히 딥페이크(deepfake) 기술은 가짜를 진짜처럼 보이게 만들 뿐 아니라, 진짜마저 의심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제로 트러스트(Zero Trust)' 세상을 살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믿고 살아야 하겠습니까? 인공지능 시대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단지 기술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무엇을 믿을 것인가'라는 신뢰의 문제입니다. 아니, 더 근본적으로는 '내 삶을 무엇 위에 세울 것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놀랍게도 성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성서는 인간을 지나치게 낙관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절망적으로 바라보지도 않습니다. 성서는 인간을 있는 그대로 바라봅니다. 인간은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연약합니다. 인간은 위대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영원한 존재는 아닙니다. 사람의 감정은 흔들립니다. 기쁨과 슬픔은 하루에도 몇 번씩 자리를 바꿉니다. 확신은 두려움으로 변하고, 용기는 낙심으로 수직 낙하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의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새해 첫날 세웠던 결심을 오늘까지 실천하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있지만, 요즘에는 작심삼일도 길다고 합니다. 작심하루 반나절인 경우도 있습니다. 평생 함께하겠다고 약속했던 사랑도 시련을 만납니다. 글쎄, 사랑도 흔들립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쉽게 흔들릴까요? 그것은 우리가 특별히 악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서는 이 사실을 숨기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서에서 "그 무엇보다도 거짓되고 부패한 것은 사람의 마음이다"(예레미야 17:9)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단순히 인간의 도덕성을 비난하는 말이 아닙니다. 인간 존재의 불안정함과 한계를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마음조차 끝까지 신뢰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나는 나를 안다고 믿지만, 그 믿음이야말로 가장 깊은 오해일지도 모릅니다.
성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성서는 단지 사람만이 흔들린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딛고 서 있는 땅 자체가 흔들린다고 말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외칩니다. "땅이 깨지고 깨지고, 땅이 갈라지고 갈라지며, 땅이 흔들리고 흔들리며."(이사야 24:19) 매우 강렬한 표현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시적 과장이 아닙니다. 인간의 조건을 가리키는 선언입니다. 우리는 흔들리는 땅 위에 살고 있습니다. 삶의 터전이 흔들립니다. 가정이라는 터전이 흔들리고, 경제라는 터전이 흔들리고, 사회라는 터전이 흔들립니다. 나라와 세계라는 터전도 흔들립니다.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려고 애쓰지만, 솔직히 말하면, 아침부터 밤까지 한 번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 분이 계시다면 오늘 설교 후에 꼭 저에게 비결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바로 그런 사람과 세상을 향하여 이사야가 놀라운 선포를 합니다.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이사야 40:6-8) 참 아름다운 대비입니다. 우리는 모두 풀과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꽃과 같습니다. 풀은 살아 있습니다. 꽃은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오래 머물지는 못합니다. 계절이 바뀌면 시들고, 바람이 불면 마르고, 시간이 지나면 사라집니다. 우리의 젊음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건강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명예도, 성공도, 감정도, 사랑도, 의지도 모두 계절을 따라 피었다가 시듭니다.
이사야는 인간을 비난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덧없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한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서의 리얼리즘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자리에서 이사야는 선포합니다.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이 말은 단순히 성서의 글자가 오래 남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변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철회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흔들려도, 세상은 흔들려도, 하나님은 흔들리지 않으신다는 선언입니다.
이것은 단지 이사야 한 사람의 말이 아닙니다. 성서 전체가 한목소리로 같은 사실을 증언합니다. 어느 시편 기자가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께서 옛적에 땅의 기초를 놓으셨사오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니이다.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그것들은 다 옷 같이 낡으리니 의복 같이 바꾸시면 바뀌려니와 주는 한결같으시고 주의 연대는 무궁하리이다."(시편 102:25-27)
얼마나 웅장한 고백입니까? 우리가 딛고 있는 이 땅도 시작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저 하늘도 시작이 있었습니다. 피조물인 하늘과 땅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옷처럼 낡아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변화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천지는 없어질 수 있습니다. 역사가 바뀔 수 있습니다. 문명도 무너집니다. 우리가 가장 견고하다고 생각했던 것들도 다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소멸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신실하시기 때문입니다.
어느 시편 시자가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여 주의 말씀은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사오며 주의 성실하심은 대대에 이르나이다."(시편 119:89-90) 여기에서 '말씀'과 '성실하심'이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흔들리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의 성실하심이 흔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이유는 그 문장이 아름답기 때문이 아니라, 그 말씀을 하신 하나님께서 신실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말이 믿음을 얻는 것은 그 말이 달콤해서가 아니라, 그 말을 건네는 사람의 삶이 신실하기 때문이 아닙니까.
신약성서 히브리서 기자가 말합니다.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을지어다."(히브리서 10:23) '미쁘다'라는 말은 '미덥다', '신실하다', '진실하다'와 가까운 말입니다. 왜 우리가 소망을 굳게 붙들 수 있습니까? 그것은 우리의 믿음이 강해서가 아닙니다. 약속하신 분이 미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막연한 낙관주의가 아닙니다. 막연한 낙관주의는 희망의 얼굴을 한 현실 회피입니다. 우리가 소망하는 이유는 약속하신 이가 미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모든 일이 잘될 것이다'라고 스스로 위안을 주는 것이 아니라,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하나님은 신실하시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우리를 흔들리지 않도록 붙들어 줍니다. 신앙은 세상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약속이 아닙니다. 내 감정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약속도 아닙니다.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은 흔들리지 않으신다는 약속입니다.
일본 도쿄에 임페리얼 호텔(Imperial Hotel)이 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가 설계했습니다. 이 호텔은 두 가지 이유로 유명합니다. 하나는 너무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지었다는 점입니다. 기초공사에만 무려 2년을 사용했습니다. 당연히 큰 비용이 들었고, 주변에서는 그렇게 많은 시간과 돈을 기초공사에 투자할 필요가 있느냐고 비아냥거렸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로 이 호텔이 유명해진 이유가 있습니다. 호텔이 지어진 지 무려 52년 후에 일어난 한 사건 때문입니다. 도쿄, 곧 관동 지역에 대지진이 발생했는데, 이 건물은 제자리에 굳건히 서 있었습니다. 호텔 안에 있던 물건들도 거의 손상되지 않았습니다. 1923년의 도쿄, 곧 관동대지진은 규모 7.9로 기록되었고, 10만 명 이상이 사망했습니다. 이 지진 속에서도 건물이 버틸 수 있었던 까닭은 깊고 견고하게 세워진 기초에 있었습니다.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자기 인생의 집을 어디에 짓고 있습니까? 우리는 집을 지을 때 기초가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런데 인생을 지을 때는 자꾸 인테리어부터 걱정합니다. 겉모습은 멋지게 꾸미는데, 정작 기초가 무엇인지는 나중에 생각합니다. 하지만 폭풍이 오면 중요한 것은 집의 겉모습이 아니라 그 집이 서 있는 기초입니다. 예수께서 산상수훈의 마지막에서 한 편의 아름다운 비유를 들려주셨습니다.(마태복음 7:24-25) 집을 짓는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둘 다 집을 짓습니다. 둘 다 같은 비를 맞습니다. 둘 다 홍수를 만납니다. 둘 다 거센 바람을 맞습니다. 반석 위에 지은 집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모래 위에 지은 집은 무너졌습니다. 차이는 폭풍이 아니었습니다. 차이는 기초였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태복음 24:35) 하늘과 땅이 사라질지라도 그 말씀 위에 집을 지은 사람은 폭풍이 몰아쳐도 무너지지 않을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신앙은 폭풍을 피하는 기술이 아닙니다. 비를 막아 내는 비법도 아닙니다. 신앙은 폭풍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기초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상황이 흔들리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상황이 흔들릴 때에도 우리를 붙드시는 영원한 반석 위에 서는 것입니다. 이사야가 이렇게 외쳤습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신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이사야 26:4) 반석은 흔들리지 않는 큰 바위입니다. 세상의 형편은 변하고 사람의 마음은 흔들리지만, 하나님은 흔들리지 않는 반석입니다. 우리는 이 반석 위에 우리 인생의 집을 지어야 합니다.
오늘의 교독문인 시편 146편 기자의 노래입니다.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편 146:5) 성서가 말하는 복(福, blessing)은 원하는 것을 많이 얻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것이 복입니다. 나무가 메마른 땅이 아니라 푸르른 물가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 복이듯이, 흔들리는 인생이 흔들리지 않는 반석 위에 삶의 뿌리를 내리는 것 바로 그것이 성서가 말하는 복입니다. 그런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이전에는 "백문이 불여일견"이었습니다. 보는 것이 믿는 것이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보는 것을 믿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에 사도 바울이 말합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로마서 8:24) 그리고 또 말합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린도후서 4:18) 아직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이 아닙니다. 밤이 깊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새벽이 오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눈앞에 열매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땅속에 심긴 씨앗이 죽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잠시뿐인 '보이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이는 것들에 현혹되지 마십시오. 변하는 감정에 휘둘리지 마십시오. 변하는 여론에 쫓기지 마십시오. 변하는 재물에 붙들리지 마십시오. 흔들리는 땅 위에 인생의 집을 짓지 마십시오. 우리를 위해 더 좋은 것을 예비하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십시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말한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다"(히브리서 11:1, 40)라고 확언합니다. 바울도 "우리가 수고하고 힘쓰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디모데전서 4:10),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디모데전서 6:17)라고 권면합니다.
경애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흔들리는 세상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흔들리는 세상 때문에 절망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흔들리지 않는 터전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변하는 세상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변하는 세상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영원하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그분의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분의 자비는 떠나지 않습니다. 그분의 언약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은 보이는 것을 붙드는 믿음이 아니라, 보이지 않으나 영원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터전 위에 삶을 세우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우리를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산들이 떠나며 언덕들이 옮겨질지라도 나의 자비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나의 화평의 언약은 흔들리지 아니하리라."(이사야 54:10) 이 약속 위에 오늘도 서십시오. 이 반석 위에 여러분 삶의 집을 지으십시오. 그리고 이 소망을 붙들고 오늘도 한 걸음씩 걸어가십시오. 그 길 끝에서 우리도 이사야와 같이 이 놀라운 고백을 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