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설교] 주님께서 편드시는 사람

한문덕 목사(생명사랑교회 담임)

hanmoonduck
(Photo : ⓒ생명사랑교회 홈페이지(https://www.agapao-zoe.com))
▲생명사람교회 한문덕 담임목사

성경본문

욥기 36장 22-26절, 시편 118편 1-9절, 누가복음서 18장 9-14절

[용기가 필요한 순간]

저는 어렸을 때 매우 겁이 많은 아이였습니다. 아마 중학교 때까지도 그러했던 것 같은데요. 겁이 많은 이유는 제가 무척 왜소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 두 분 모두 작은 체구이신 데다가 먹는 것도 변변치 못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던 것 같습니다. 옛날 학교에서는 키 순서대로 번호를 매기곤 했는데, 초등학교 시절부터 중학교 3년까지 내내 1번이었고, 중 3의 나이에도 키가 147cm였습니다. 그래서 턱걸이나 넓이 뛰기, 달리기, 공 멀리 던지기와 같은 체력장이라는 것을 할 때마다 좌절감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달리기를 아무리 빨리 하려고 해도 보폭이 워낙 작으니, 체육대회나 운동 경기에서 3위 안에 든 적은 한 번도 없었고, 또 덩치 큰 아이들이 완력을 쓸 때면 저는 여지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길을 가다가도 험한 욕설을 아무 거리낌 없이 하는 아이들을 보면 겁부터 났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의 일인데, 한 번은 체육시간에 짓궂은 체육 선생님이 왈가닥이었던 여학생과 저를 불러 놓고, 아이들이 다 보는 앞에서 팔씨름을 시켰는데, 작고 힘이 없던 저는 단번에 지고야 말았습니다. 정말로 수치스러운 순간이었고,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일입니다. 교회에서 유년부와 초등부를 마치고 중고등부로 올라갔는데, 그 당시 매년 현충일에는 파주 관내 교회 학생부 대항 배구대회가 열렸습니다. 당시 운동을 매우 잘하시던 전도사님과 교사 선생님들은 우리 교회 중고등부도 참석하기로 결정하고, 매주 토요일 저녁 학생회 예배 전에, 그리고 주일 오후에 배구 연습을 시켰습니다. 중학생이 된 저도 참여할 수밖에 없었는데, 몸집이 작은데다가 배구라는 것도 처음 해 보았기 때문에 무척 어려웠습니다. 힘이 없으니 서브 하나도 제대로 넘기지 못했습니다. 어쩌다 서브가 넘어가면 모두 박수를 쳐 주었는데, 그 박수가 기쁘기 보다는 무척 창피하게 느껴졌습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용기가 필요할 때가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성적표의 도장을 받기 위해 부모님께 말씀 드려야 할 때,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발표를 해야 할 때, 정말 하기 싫은 일이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때, 사귀고 싶은 사람을 만났을 때, 썸을 타다가 사랑 고백을 하고 싶을 때, 중요한 시험에서 면접관들 앞에 설 때, 우리에게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내내 주입식 교육만 받다가 대학교에 처음 들어가서 발표와 토론 수업을 하게 되어, 나름 자료도 찾고 준비도 잘했음에도 여전히 떨리는 마음으로 준비한 내용으로 발표를 했는데, 왠지 강의실 분위기는 싸하고, 교수님 표정도 무뚝뚝할 때! 발표를 마치자마자 어떤 한 학생이 손을 번쩍 들고 '그건 아닌 것 같다'면서 매우 조리 있는 말로 내 발표를 조목조목 비판할 때! 그런 일을 당하면 머릿속은 하얗게 되고, 얼굴을 달아오르는데, 그럴 때 우리에게는 정말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럴 때 어떻게 용기를 낼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자신감을 유지고 주눅 들지 않을 수 있을까요? 공부를 잘 하면 용기가 날까요?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미리 준비해서 시험을 치고, 잘 준비했기 때문에 좋은 성적을 받았던 것에 익숙한 학생들은 뜻하지 않은 순간의 거절이나, 자신이 약한 부분에서 공격이 들어오면 더 속절없이 무너지곤 합니다. 지식 정보를 많이 습득하는 것과 낯설고 새로운 상황 앞에 직면해서도 자신감을 가지고 용기를 내는 것과는 매우 다릅니다.

[용기를 찾아서 1.]

몸이 약했던 제가 용기를 얻기 위해 했던 첫 번째는 반복 훈련이었습니다. 중고등부에서 첫 번째 배구 연습을 하고 서브 하나 제대로 넘기지 못했던 날, 저는 부모님을 졸라서 배구공과 축구공 하나씩 샀습니다. 그리고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면 가까운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가서 홀로 수도 없이 연습을 했습니다. 심지어 집에 돌아와서도 배구공을 깨끗하게 씻어서 자기 전에 누워서 토스 연습을 하곤 했습니다. 달리기에도 콤플렉스가 있었기 때문에 단단히 마음을 먹고, 뛸 수 있을 때면 무조건 뛰어 다녔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운동을 해 보면 잘 되는 것이 있고, 잘 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잘 안 되는 부분은 더 연습을 많이 해야 합니다. 배구 하나만 해도, 리시브와 토스와 같은 기술들을 익혀야 하고, 이것을 잘 해내려면 자신의 몸을 잘 살펴 정확한 동작을 반복적으로 연습해야 합니다. 우선은 기초 체력이 필요하고, 모든 운동은 제대로 된 자세가 무척 중요합니다. 자세를 잘 잡고 반복적으로 하다보면 올바른 동작이 몸에 배고, 그러면 내가 생각한 대로 몸도 움직이고 공도 보낼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면서 살피는 능력이 무척 중요한데, 이를 전문적으로는 메타 인지라고 부릅니다. 메타 인지의 과정은 우선 자신을 살피는 모니터링에서 시작합니다. 자신이 무엇을 잘 하는지, 무엇을 못하는지, 지금 자신의 생각과 감정이 어떠한 지, 왜 나는 이런 실수들을 반복하는지, 어떤 행동들이 남에게 불쾌감을 주는지, 어떤 행동들이 호감을 주는 지 스스로 점검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자신을 객관화해서 본다는 것은 정말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이 양육과 관련된 TV 프로그램을 보면 문제 행동을 하는 아이들의 부모님들이 등장하고, 양육 전문가, 심리상담 전문가들과 함께 그 가족의 일상을 녹화한 영상을 보곤 합니다. 아이들의 문제 행동에는 언제나 그 아이의 행동에 대한 부모의 잘못된 대응이 있기 마련인데요. 상담을 의뢰한 대다수의 부모들은 자신들 가정의 일상을 녹화한 그 영상을 보면서 모두 눈물을 흘리거나 크게 반성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영상을 보고 나서야 자신의 행동이 어떠했는지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에게 말을 하거나 꾸중을 하거나 조언을 할 때, 부모들은 자신의 얼굴을 보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아이가 느꼈을 법한 공포나 수치스러움, 배신감, 무력감과 굴욕감을 부모는 모릅니다.

가정에서는 민주주의를 실천하기가 매우 어려운데, 그 이유는 부모가 대게 모든 면에서 갑의 위치에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덩치도 크고, 경험도 많고, 아는 것도 많고, 심지어 경제권도 쥐고 있고, 아이의 생존에 부모가 절대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아이는 언제나 을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완전하게 불평등한 상황에서 부모가 아이에게 상처를 주었을 때, 아이들의 영혼은 조금씩 용기를 잃어갑니다. 물론 부모도 그런 마음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상황이 되면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어릴 때 받았던 상처가 깊은 내면으로부터 올라옵니다. 그리고 그 아픈 과거는 속상함과 분노와 어둠이 되어 부모의 얼굴에 표현되고 말투와 몸짓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그런데 부모는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아이가 그런 부모 자신의 모습을 보았을 때 어떤 마음이 들지 이해하기 어렵게 되는 것입니다.

그 옛날 소크라테스가 델포이 신전에 쓰여 있던 격언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로 그리스 사람들을 그렇게 열심히 깨우치려 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부모는 자신도 모르게 아이들과 자기를 비교하며 자신은 다 알고 옳다고 생각하게 되는데, 바로 그런 태도와 자세가 아이들에게서 세상을 살아갈 용기와 자신감을 빼앗게 되는 것입니다.

용기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자신을 살펴서 객관화시켜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장단점을 살피고, 자신의 가능성을 믿어 주고, 자신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할 줄 알아야 합니다. 부모도 그래야 하고 아이도 그래야 합니다. 자신은 실수하는 존재이고, 그러나 그렇다고 실수로만 가득한 존재는 아니라는 것, 좋아하는 것이 있고 그 좋아하는 부분에서는 남들보다 더 잘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스스로를 믿어 주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세 걸음 이상이면 무조건 뛰어 다니고, 매일매일 배구공과 축구공을 가지고 연습을 했던 저는 조금씩 공들과 친해졌고, 달리기도 향상 되었습니다. 게다가 고등학교 1-2학년 때, 무려 키가 24cm나 자랐기 때문에 저의 운동 신경은 급속하게 성장하게 됩니다. 당시 저는 누구보다 빨랐고, 중학교 3학년 100미터 달리기에서 17초 38을 뛰었던 제가 고등학교 3학년 체력장에서는 12초 3. 만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용기를 얻은 것이지요. 장점을 강화하고 단점을 보완하는 반복훈련은 성장을 가져오고, 낯선 것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줍니다. 한 번에 큰 것을 꿈꾸지 말고 작은 일상에서부터 한 걸음 한 걸음 시작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꽤 먼 길을 잘 걸어온 자신을 발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 인정받은 세리]

오늘 우리가 읽은 누가복음서에는 두 명의 등장인물이 있습니다. 한 명은 바리새파이고, 다른 한 명은 세리입니다. 바리새파는 불의한 일을 저지르지 않았고, 남의 물건을 빼앗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숭배하거나 율법이 금하는 것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며,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정확하게 드립니다. 바리새파는 자신의 삶 전체를 하나님의 율법에 어긋나지 않도록 철저하게 노력했던 사람들입니다. 노력한 만큼 경건한 유대인이 되었고, 종교적인 면에서나 윤리적인 면에서 흠 잡을 것이 없는 사람이 되어 갔습니다.

한편 세리는 바리새파와는 격이 다른 인간입니다. 로마에 빌붙어서 민족을 배신하고 자신이 먹고 살기 위해 어떤 짓이라고 했고, 그래서 세상 사람들로부터 "죄인"이라는 낙인이 찍힌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로마황제를 신으로 숭배하는 이들의 앞잡이가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이들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아니 어쩌면 자신의 욕망을 위해 서슴지 않고 그 일을 합니다.

오늘 누가복음서에는 이런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한 쪽은 존경받아 마땅하고, 다른 한 쪽은 멸시받아 마땅합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의 기도를 보시고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의롭다는 인정을 받고서 자기 집으로 내려간 사람은, 저 바리새파 사람이 아니라 이 세리다."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 받은 사람이 세리라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바로 기도의 내용과 태도 때문입니다. 제가 위에서 말씀 드린 대로 오늘 기도를 보면 자신을 객관화해서 솔직하게 털어 놓은 사람은 바로 세리입니다. 지금 두 사람은 하나님 앞에 나왔습니다. 기도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는 일입니다. 겉모양뿐만 아니라 속까지 탈탈 털어놓는 것입니다. 자신의 부끄러움조차 모두 드러내고, 아프고 상처받고, 힘들고 억울했던 그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낱낱이 아뢰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리새파는 자신의 어두운 그늘은 모두 숨기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세리를 의식하면서 자신은 저런 인간들과는 다르다면서 자신을 내세우고 앞세우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누구나 겸손한 인간이 될 수밖에 없는데, 오늘 바리새파의 기도는 오만과 우월감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객관화해서 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욥기에서 젊은 엘리후는 욥과 욥의 친구들의 말을 다 듣고 또 다른 맥락의 논쟁에 뛰어듭니다. 욥기의 결말 부분에서 하나님은 욥의 친구들의 말은 틀렸다고 하고, 욥이 옳았다고 판결하시는데, 그 때에도 엘리후에 대한 판단은 없습니다. 그리고 가만히 읽어 보면 엘리후의 말과 야훼 하나님이 욥에게 하신 질문들이 상통하는 바가 있습니다.

오늘 엘리후는 말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큰 지를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위대한 스승이십니다. 하나님께 이래라 저래라 할 사람도 없고, '주님께서 옳지 못한 일을 하셨습니다.' 하고 하나님을 꾸짖을 사람도 없습니다. ~ 중략 ~ 하나님은 위대하셔서, 우리의 지식으로는 그분을 알 수 없고, 그분의 햇수가 얼마인지도 감히 헤아려 알 길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욥은 잘못이 없다고 말하고, 욥의 친구들은 네가 분명 죄를 지었을 것이라 말하지만, 엘리후는 다른 입장에서 말합니다. 왜 우리에게 고난이 닥치는 것인지 알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하나님이 하시는 그 모든 일을 다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큰 지를 상상조차 못합니다. 우리의 지식으로는 그 분을 알 수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유한성을 철저하게 인식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모든 것을 알 수 없으며, 모든 것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자신의 판단이 언제나 옳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의 힘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남들의 도움으로 사는 것이며, 그래서 우리는 귀를 열고 남의 이야기를 들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더더욱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하나님의 은총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자신이 잘 나서 성공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기회를 주셨기 때문이며, 우리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길을 열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자신의 능력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실수하는 순간, 위기의 순간이 와도 용기를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내가 다 감당해야 한다면 우리는 좌절하고 낙망할 수 없지만 우리 곁에는 주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오늘 예수께서 바리새인을 책망하시고 세리를 높게 평가하신 것은, 세리의 평소 행동이 옳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세리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알았고, 솔직하게 눈물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내어 놓았으며, 자신의 부족함과 나약함, 유한성을 깨닫고 주님께 자비를 구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들은 하나님께 구해야 할 때에도 머리를 꼿꼿이 듭니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자신을 높이고 추켜세우는데 더 열심을 냅니다. 심지어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도 그런 모습을 보이고 맙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이란 자신을 늘 하나님 앞에 세워 놓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자꾸 자신을 남들과 비교하며 우월감에 사로잡히거나 열등감에 빠지곤 합니다. 우리들의 눈을 사람이 아니라 주님께로 돌려야 합니다. 우리의 시선은 언제나 주님의 눈길에 고정되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난 월요일부터 새 예배 처소의 인테리어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기존의 건물 내부를 철거하다보니 뜯기 전에는 볼 수 없었던 것들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옆 사무실들과 구분되는 벽은 가벽이었고, 천정은 하나로 이어져 있는데다가, 가벽이 천정까지 올라가지도 않은 채, 위쪽에는 뻥 뚫린 공간들이 있었습니다. 마루바닥을 뜯어 보니 방음공사는 되어 있지 않고, 테라스 쪽도 말이 아닙니다. 이 밖에도 몇 가지 어려움이 더 있지만 다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려는 것은 무엇이든지 시도해보기 전까지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것이고, 반드시 시도해야만 아는 것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마다 적절한 대응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그 모든 과정을 통해서만이 배움이 일어나고 그 경험과 훈련은 우리에게 지혜와 용기를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어떤 어려움도 능히 극복해 나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사람을 보지 않고 주님 앞에서 주님께 물으며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하면 주님께서 나머지는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편드시는 사람]

제가 어릴 때 또 하나의 컴플랙스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말을 심하게 더듬는다는 것입니다. 성격이 급해서 그랬던 것인지, 아니면 발표할 때 겁이 나서 그랬던 것인지 모르지만, 초등학교에 들어간 저는 선생님과 급우들 앞에서 말할 때마다 심하게 말을 더듬었습니다. 그런데 저의 초등학교 2-3학년 담임 선생님이셨던 장순조 선생님께서는 그런 저를 나무라지 않았습니다. 문덕이의 말 더듬는 것을 참아 주시면서 그것을 고쳐 주기 위해 오히려 자주 발표하도록 격려해 주셨습니다. 선생님이 내 편이 되어 준 것입니다. 선생님의 지지와 격려 속에 초등학교 3학년 말이 되었을 때, 저의 말 더듬는 버릇은 상당히 사라졌습니다. 지금도 종종 말을 더듬긴 하지만 그 때보다는 아주 좋아진 것입니다.

누군가 내 편을 들어 주는 사람이 있을 때 우리는 용기를 얻습니다. 힘들고 외로울 때면 더더욱 그러합니다. 용기를 얻는 두 번째 방법은 내 편을 많이 만드는 것입니다. 오늘 시편 저자는 연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은 영원하다고 노래합니다. 그가 이렇게 찬양하는 이유는 바로 그가 고난 받을 때 주님께 부르짖었고, 주님께서 그의 편이 되어 주셔서 그에게 응답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또 고백합니다. "주님은 내 편이시므로, 나는 두렵지 않다. 사람이 나에게 무슨 해를 끼칠 수 있으랴?"

사랑하는 생명사랑 교우 여러분! 오늘 저와 여러분은 주님께서 편드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편드시는 사람은 자신의 부족함을 있는 그대로 주님께 내 보이는 사람입니다. 사람 눈치 보지 않고, 주님만을 향하는 사람입니다.

유명한 피아노 연주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날마다 유명세를 탔고 그가 공연하는 곳이면 언제나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그 날은 왕실이 그의 연주에 참여하는 날이었습니다. 객석은 여느때처럼 가득 메워졌고, 연주자가 무대에 올랐습니다. 숨죽이듯 고요한 순간, 연주가 시작되고 멋진 연주에 모두가 황홀함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손가락은 건반 위를 훑으며 자유자재로 움직였습니다. 때때로 나비가 꽃 위에 앉듯 부드러웠고, 어떤 때는 세찬 비바람이 몰아치듯 강렬했습니다. 모든 관중은 그의 연주에 흠뻑 젖어 들었습니다. 연주가 끝났습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연주자는 객석에 인사도 하지 않고 불안한 눈으로 누군가를 찾고 있었습니다. 바로 거기에는 자신의 스승이 와 있었던 것입니다. 한 구석에 조용히 앉아서 제자의 연주를 경청하던 그 노스승은 제자가 자신을 바라보자, 지긋한 눈으로 그를 보며 웃어 주었습니다. 그 때서야 이 연주자는 만면에 미소를 가득 띠고 객석의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생명사랑 교우 여러분! 우리는 주님 한 분 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세상 눈치 보지 말고, 높은 사람, 가진 사람, 힘 센 사람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주님 앞에 서야 합니다. 제가 파송사를 하면서 어깨를 쭉 펴고 똑바로 서시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어깨를 펴고 똑바로 서야하는 그 자리는 바로 하나님 앞입니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 스스로 설 수 있는 사람만이 이 험한 세상에서 용기를 지닐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용기가 만용이나 교만, 허세가 아니라 겸손으로 현실을 품어 내면서 일을 이루고 창조하는 용기가 될 것입니다.

아직도 코로나는 계속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합니다. 내년에 새로운 공간으로 옮겨서 어떤 목회를 하는 것이 좋을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를 편들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나와 자비를 구하고 주님만 의지할 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고, 용기를 주시며, 주님의 그 위대하신 능력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이 사실을 확실하게 믿는 여러분 되시길 빕니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사랑과 은총의 하나님! 주의 선하심은 끝이 없고, 주님의 인자하심은 영원하십니다. 주님을 높이고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가 온전히 주님만 의지하는 하나님의 참된 백성이 되게 하여 주소서. 다른 이들과의 비교 속에서 상대적 박탈감으로 허탈해 하거나 우월감을 느끼며 교만하지 않게 하여 주소서. 주님을 따르는 이들로 마땅히 가야할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게 하여 주소서. 코로나 19 상황이 우리의 삶에 많은 변화를 가져 왔습니다. 이 변화를 통해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시고, 우리 생명사랑 신앙공동체가 2021년에도 충실한 종, 신실한 제자가 되게 하여 주소서. 주님의 뜻 안에서 계획하고 실행하는 일들을 통해 주님 영광 받으시옵소서. 영원한 사랑으로 우리를 자유로 이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감사기도

자비하신 하나님! 우리가 주님을 송축하고, 우리의 입술로 주님을 찬양합니다. 10월 마지막 주를 보내며 올 한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한없는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겪는 어려움들을 이겨내게 하시고, 우리가 때로 주님께 소홀할 때에도 여전히 우리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새 시대에 적응하며 또 다른 내일을 다시 꿈꾸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예배 공간을 이전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새 공간을 허락해 주심에 감사하고, 그곳에도 하나님 나라 선교를 잘 감당하게 하여 주소서. 이 시간 주님께 예물과 함께 우리 자신을 드립니다. 받아 주소서. 오늘 예배를 통해 천국의 기쁨을 누리고 저 세상으로 나아가 주님께서 감당하라 명하신 소명을 이어나가겠습니다. 모든 것에 감사하며,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파송사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어깨를 쭉 펴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당당하게 그리고 힘차게 걸어 나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주님께서 우리 편이 되어 주셨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주님 편이 되십시오.

* 축도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성령님의 거룩한 친교가 온전히 주님만을 의지하여 새 시대를 열어가는 생명사랑 교우들과 지금 이 시간 함께 예배하는 모든 성도들 위에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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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과 선에 쏠려 있는 개신교 전통에서 미(美)는 간과돼"

「기독교사상」 최신호의 '이달의 추천글'에 신사빈 박사(이화여대)의 글이 소개돼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키에르케고어와 리쾨르를 거쳐 찾아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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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봉사를 개교회 성장 도구로 삼아온 경우 많았다"

이승열 목사가 「기독교사상」 최근호(3월)에 기고한 '사회복지선교와 디아코니아'란 제목의 글에서 대부분의 교단 총회 직영 신학대학교의 교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