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성경이 말하는 방언(23)

김승진 침신대 명예교수(역사신학·교회사)

사도 바울과 누가는 두 가지 종류의 방언을 말하고 있는가?

VIII. 고린도전서 14장에서의 방언

f. 14장 33b-38절

김승진
(Photo : ⓒ 침례교신학대학교)
▲김승진 교수 (침례신학대학교 교회사 명예교수)

(고전 14:33b-38) "33b) 모든 성도가 교회에서 함과 같이, 34)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35)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라. 36)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로부터 난 것이냐? 또는 너희에게만 임한 것이냐? 37)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은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는 이 글이 주의 명령인 줄 알라. 38) 만일 누구든지 알지 못하면 그는 알지 못한 자니라."

이 부분에서 사도 바울은 방언에 관해서 직접적인 언급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갑자기 "여자들은 교회에서 잠잠하라"(고전 14:34)로 권면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오늘날의 한국교회들처럼 고린도교회도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더 많았던 것 같고, 특히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여자들이 많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여자들이 UT방언 기도를 많이 하고 있어서 이로 인해서 교회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를 "글로에 집 편으로"(고전 1:11) 전해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전 14:33b-35) "모든 성도가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여자들-필자 주)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만일 (여자들이-필자 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여자들-필자 주)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라."

사실 바울은 여성들의 존재나 인권을 누구보다 존중했던 사도였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이방인과 유대인, 종과 자유인, 여자와 남자 등의 민족적인, 신분적인, 성적인 장벽이 허물어져 버렸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갈 3:27-29) "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뱁티즘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다. 29)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물론 1세기 당시에는 여성들의 사회적인 신분이 남성들에 비해서 낮게 평가되고 있었기 때문에 교회 내에서 여성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을 별로 좋지 않게 여겼던 것 같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사건에 관해 진술할 때에도 성서기자들은 어린 아이들과 여성들은 수(數)에도 계산하지 않았습니다(마 14:21,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그런데 방언과 예언에 관해 말하다가 불쑥 여자들에 관해 이야기를 한 것을 볼 때, 여자들의 열정적인 UT방언 기도로 인해 고린도교회가 적지 않은 혼란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7장("고린도교회의 방언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배경설명")에서 크리스웰(W. L. Criswell) 목사가 고린도 시의 종교적 상황에 대해서 말했듯이, 사도 바울은 교회 내에서 여자들이 UT방언 기도를 하는 모습을 보며 아프로디테 신전에서 여사제들이 환각샹태에서 중얼거리며 유사한 행동을 했던 것을 연상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여자들이 교회에서 언성을 높혀 UT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을 경계하였을 것입니다.

37절에서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은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이라는 표현에서는, 당시 고린도교회에서 스스로 선지자임을 자처하면서 예언을 하거나 특별한 은사를 받았다는 것을 자랑하면서 스스로를 신령한 자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에서 언급되어 있는 "거짓 사도, 속이는 일꾼(궤휼의 역군), 자칭 그리스도의 사도, 광명의 천사, 사탄의 일꾼"(고후 11:13-15) 등으로 묘사된 사람들이, UT방언 기도를 하며 영적인 우월감을 과시하고 교회의 주도권을 장악하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러한 자들을 향해서 사도 바울은 엄중한 경고를 내리고 있습니다:

(고전 14:37)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은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는 이 글이 주의 명령인 줄 알라."

여기서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교인들을 향한 자신의 권면과 충고가 인간 바울 혹은 사도 바울의 교훈이 아니라, "주의 명령"(kuriou 'entole, the commandments of the Lord-KJV, Lord's command-NIV)인 줄을 알라고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비록 바울 자신이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하며 고린도교회를 세우기는 했지만, 교회의 머리(The Head of the Church)는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비록 자신이 고린도교회의 인간적인 창립자이기는 하지만, 그 교회의 주인은 교인들의 구주요 주님(Savior and Lord)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마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따라서 자신의 써서 보내는 글이 인간 바울의 권면이 아니라 "주의 명령"인 줄로 알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고린도교회가 신비스러운 개인적인 체험이 아니라 객관적인 진리의 말씀 위에 굳건히 설 것을 명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38절에서 "만일 누구든지 알지 못하면 그는 알지 못한 자니라"라는 말은, 14장에서 사도 바울이 서신들을 통해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한 권면을 "주의 명령"인 줄로 여기지를 않고 무시를 한다면, 그러한 사람은 그 자신도 스스로 무시를 당하게 될 것이다(If he ignores this, he himself will be ignored-NIV)라고 경고를 발하고 있습니다. 바울 자신이 사도로 부르심을 받고서 고린도교회를 세웠고, 자신의 영적인 자녀들에 대한 사랑과 관심으로 교회의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서 책망도 하고 조언도 하고 교정도 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 모든 가르침들을 "주의 명령"으로 받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입니다. 바울 자신이 가진 사도권(使徒權, apostleship)의 신적인 권위(divine authority)에 근거하여 고린도전·후서를 쓰고 있음을 진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g. 14장 39-40절

(고전 14:39-40) "39)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40)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4장을 마무리하면서 39절과 40절에서 결론적으로 이렇게 진술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zeloute to propheteuein, covet to prophesy-KJV, be eager to prophesy-NIV),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to lalein me koluete glossais, forbid not to speak with tongues-KJV, do not forbid speaking in tongues-NIV)."

사도 바울은 14장의 서론으로 1절에서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영적인 것들, 거룩한 은사들, 성령의 은사들-필자 주)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고 언급을 했는데, 14장을 결론적으로 마무리하면서도 동일하게 "예언하기를 사모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4장 서론의 명령과 결론의 명령이 서로 맞닿아 있습니다. 예언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권장을 하고 있는 반면에 방언에 대해서는 소극적으로 허용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LT방언에 대해서만 허용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UT방언을 금하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언의 은사"(the gift of prophecy)에 대해서 고려할 점이 있습니다. 54년경 고린도전서가 씌어질 당시에는 신약성경 전체가 아직 완성되기 전이었습니다.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을 쓴 것이 90-95년경이었고 그것이 신약성서에서 맨 마지막으로 기록된 책이었다고 본다면, 고린도전·후서가 씌어진 것은 신약성경의 정경이 제3차 카르타고 종교회의에서 확정되기(397년) 훨씬 전이었을뿐 아니라, 사도들에 의해 27권의 성경사본들이 완필(完筆)되기 전이었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예언이라는 말은 예언의 은사를 가진 자들이 성령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는 계시(revelation)를 받아서 그것을 교회에 말하고 가르치는 은사였습니다. 필자는 이런 의미에서 정동수 목사가 <KJV 흠정역> 한글성경에서 예언을 "대언"(代言)으로 번역한 것은 매우 적절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신약성경이 완성된 이후에는 "예언"이라는 은사의 의미를 다르게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신약성경의 계시(revelation)가 27권으로 종결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는 내용을 "대언"할 수 있는 시기는 마감이 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 하나님께서 27권의 정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사람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에 모두 보여주셨기(has revealed) 때문입니다. 예언을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으로 이해할 때, 성경기록의 완성과 함께 예언도 폐하여졌습니다. "예언도 폐하고"(고전 13:8, eite de propheteiai, katargethesontai, whether there be prophecies, they shall fail-KJV, where there are prophecies, they will cease-NIV)라는 말씀이 성취가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사본들이 완성된 이후에는 "예언"이라는 은사의 의미도 다르게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던대로 이제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계속 말씀하고 있는"(The Written Word of God continues speaking) 시대가 되었기 때문에,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서 알려주고 가르쳐주고 설교해 주는 달란트(talent)가 예언의 은사입니다. 오늘날 성경을 가르치는 교사들이나 성경을 펼쳐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는 목회자들이 "예언" 활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교사들이나 목회자들이 예언의 은사를 활용하고 있는 하나님의 종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예언의 은사를 가진 자들은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고전 4:1-2,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들은 예언의 은사를 충성스럽게 감당하고 활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고전 14:39b)라는 표현에서 사용된 "방언"이라는 낱말은 복수형 LT방언(glossais)입니다. 언어 혹은 외국어로서의 방언 말하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명령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LT방언도 제대로 통역만 된다면 예언의 은사와 유사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언은 "적극적인 권장"의 의미로 말하고 있고 LT방언은 "소극적인 허용"의 의미로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UT방언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고 있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UT방언은 거짓방언이요 가짜방언이요, 조금 심하게 말하면 거짓 교사들이 가르치는 마귀적인 방언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필자가 읽은 책 가운데 「누가 방언을 금하는가?: 잘못된 방언 주장에 대한 반론」이 있습니다[김동찬, 「누가 방언을 금하는가?: 잘못된 방언 주장에 대한 반론」 (서울: 베다니출판사, 2016).]. 저자가 이 책의 제목을 이렇게 정했던 것은 고린도전서 14장 39절에서 사도 바울이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고 명령하고 있는데, 왜 일부 사람들(은사중지론자들)이 방언 말하는 것을 금하는 주장을 하고 있느냐고 반론(反論)을 제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고 사도 바울이 말했던 것은, LT방언 즉 외국어방언, 메시지를 포함하고 있는 언어로서의 방언을 금하지 말라고 한 것이었지, UT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고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교회역사 상 UT방언은 완전히 사라졌던 적이 없었습니다. 일부 극단적인 주관주의자들(extreme subjectivists)이나 신비주의자들(mystics)이나 위기적인 시한부 종말론자들(extreme chiliasts)에 의해 UT방언이나 이와 유사한 이교적인 신앙행습은 시시때때로 등장하곤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방언도 그치고"(고전 12:8, whether there be tongues, they shall cease-KJV, where there are tongues, they will be stilled-NIV)라고 예언했던 것도 UT방언이 아니라 LT방언이 스스로 그치게 되거나 혹은 잠잠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 것이었습니다.

고린도교회를 혼란과 무질서에 빠뜨린 UT방언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그것이 성서적인 방언이 아님을 고린도전서 12장, 13장, 14장을 통해서 반복적으로 암시하고 있습니다. 즉 누가가 기록으로 남겼던 것처럼, 오순절날 성령이 강림했을 때 제자들이 말했고 15-16개 지역에서 온 유대인 디아스포라들이 자기들의 언어로 알아 들었던 복음의 메시지로서의 LT방언(행 2:1-13)이 성서가 말하는 참 방언이라고 바울 사도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UT방언은 거짓 방언이요 사탄이 주는 방언이라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사람들과 그 저서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옥성호, 「방언, 정말 하늘의 언어인가?」 (서울: 도서출판 국제제자훈련원, 2012); 이창모, 「방언, 그 불편한 진실」 (서울: 밴드 오브 퓨리탄스, 2014); 김재성, 「개혁주의 성령론」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14); 노우호, 「방언을 검증하자」 (경남 산청: 에스라하우스, 2014); 문효식, 「방언! 무엇이 문제인가?」 (서울: 크리스챤서적, 2008) 등.]. 그런데 이 LT방언도 때가 되면 그치게 된다고 예언한 것입니다.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는 사도 바울의 말을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고 했으니 UT방언의 은사를 간절히 사모하고 중얼거리는 UT방언을 열정적으로 행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사도 바울의 속마음을 전혀 읽지 못한 비성경적인 해석입니다. 다시 말씀 드립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무질서와 혼란에 빠뜨린 UT방언을 성서적인 방언의 은사로조차 인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LT방언이 제대로 통역만 된다면 (예언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LT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그러나 예언하기를 사모하라"고 말한 것이었습니다.

문효식 목사는 고린도전서 14장의 내용을 설명하면서 예언과 방언에 관해서 이렇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4장은 두 가지 문제를 다루고 있다. 하나는 방언과 예언 중 예언이 더 우월하다는 것과 또 하나는 집회에서 방언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올바른 지침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은사는 교회의 덕을 위한 것, 방언과 예언 중 예언이 더 우월하다는 것, 방언이 통역이 되면 예언과 그 기능이 같다는 것, 방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위해 통역하기를 기도할 것, 교회에서 방언을 말할 때는 질서를 지킬 것, 통역이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할 것,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할 것 등이다[문효식, 「방언! 무엇이 문제인가?」, 62-3.].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도 바울은 방언과 예언에 관해 언급한 14장을 마무리하면서 결론적으로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리고 있습니다:

(고전 14:40)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 (panta de euschemonos kai kata taksin ginestho, Let all things be done decently and in order-KJV, But everything should be done in a fitting and orderly way-NIV).

사도 바울은 예언과 LT방언 그리고 LT망언에 대한 통역을,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나누어 주신 성령의 은사들을, 품위 있게 그리고 질서 있게 "남들을 섬기기 위하여" 그리고 "교회공동체를 세우기 위하여" 사용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도 UT방언을 품위 있게 질서 있게 하라는 말씀이 아니었습니다[유기성, "방언을 하되 품위있게 하라!" [Youtube 동영상] https://www.youtube.com /watch?v=dFAoRBtDEWs, 2019년 6월 25일 접속.]. 사도 바울은 UT방언을 성경적인 방언으로 간주조차 하고 있지 않습니다. 바울 사도는 LT방언을 포함하여 모든 성경적인 성령의 은사들을 자기희생적인 아가페 사랑의 마음으로(고전 13:4-7) 교회를 위하여 "품위 있게 그리고 질서 있게" 활용하라는 권면과 명령으로 은사장들(고린도전서 12, 13, 14장)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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