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설교] 능력을 주시는 분 안에서

한문덕 목사(생명사랑교회 담임)

hanmoonduck
(Photo : ⓒ생명사랑교회 홈페이지(https://www.agapao-zoe.com))
▲생명사람교회 한문덕 담임목사

성경본문

사무엘상 23:29-24:7, 시편 51:5-12, 빌립보서 4:8-14

[본회퍼 목사님과 사람의 이중성]

제가 참으로 존경해 마지않는 본회퍼 목사님의 시 중에 "나는 누구인가?"라는 시가 있습니다. 좀 길지만 읽어 드리겠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사람들은 자주 나에게 이렇게 말했지. 영주가 자신의 성채에서 나오는 것처럼 태연하고, 쾌활하며, 확고하게, 감방에서 나온다고.

나는 누구인가? 사람들은 자주 나에게 이렇게 말했지. 내가 명령하는 것처럼, 자유롭고, 친절하며, 분명하게 나를 지키는 간수들과 이야기를 나눈다고.

나는 누구인가? 사람들은 나에게 이렇게도 말했지. 승리에 익숙한 자처럼, 침착하고, 미소를 지으며 자랑스럽게, 불행의 날들을 견디고 있다고.

나는 진정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사람인가? 혹은 내 자신이 알고 있는 자에 지나지 않는가? 새장 속의 새처럼 불안해 하고, 그리움에 지쳐서 병들고, 목을 졸린 것처럼 숨을 쉬려 발버둥치고, 색체들, 꽃들, 새들의 노래를 그리워하며, 따뜻한 말들과 인간의 접근을 갈구하며, 자의성과 사소한 모욕에 분노로 떨고, 위대한 것을 기다리다 낙심하며, 무한히 멀리 있는 친구를 그리워하다 낙담하며, 기도하고 사색하며, 창작하는 데 지치고 공허해 하며, 모든 사람과 작별하는 가운데 허탈해 하고 의기소침해 하지 않는가?

나는 누구인가? 전자일까, 후자일까? 오늘은 이런 인간, 내일은 저런 인간일까? 나는 동시에 양자일까? 사람들 앞에서는 위선자며 자신 앞에서는 경멸해야 할 소심한 자일까? 혹은 아직 내 안에 있는 것은 이미 얻은 승리 앞에서 무질서하게 도망치는, 패배한 군대와 같은 존재일까?

나는 누구인가? 고독한 물음이 나를 비웃는다. 내가 어떤 사람이든 오 하나님, 당신은 나를 아십니다.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본회퍼 목사는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 우리에게 누구인가?'를 진지하게 묻고, 그 물음에 정직하게 고백하며, 고백한 대로 삶을 살았던 그리스도의 증인이었습니다. 천재 신학자였던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새로운 신학을 형성하는데 크게 기여했고, 당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제자의 길과 교회의 참모습에 대해 올바른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기도하는 것과 사람들 사이에 정의를 행하는 것"이라고 말해왔습니다. 그는 정말 기도하는 사람이었으며 나치당에 맞서 정의를 행하다가 옥중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히틀러 암살 계획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23개월 동안 지하형무소에 감금되었던 그는 자신의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는데, 1943년 12월 15일에 친구이자 제자이자 조카 사위가 되는 에버하르트 베트게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런 구절이 등장합니다.

"나는 본래 누구인가? 때로는 이곳에서 무서운 일에 거듭 휘말려 고통을 당하고 울부짖어야 할 비참한 처지에 있는 내가 나의 본래적 모습인가? 아니면 그러면서도 자신을 채찍질하고 밖을 향해서는 그리고 자신을 향해서도 침착하고 명랑하며 냉정하고 숙고하는 자로 존재하고 그것 때문에 감탄의 대상이 되는 내가 나의 본래적 모습인가? 나라는 인간은 도대체 어떤 존재일까라고 스스로 묻는다네."

자기 자신에 대한 이런 실존적 물음이 바로 위에 읽어 드린 시를 탄생시킨 것입니다. 본회퍼 목사님처럼 명철하고 신앙에 투철한 사람도 "새장 속의 새처럼 불안해하고, 그리움에 지쳐서 병이 들고야 말았다는" 자기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구약성서 즉 사무엘상과 시편의 주인공인 다윗 또한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과 늘 넘어지는 현실 사이를 왔다갔다한 사람이었습니다. 야훼 하나님의 이름에 의지하여 골리앗을 물리치고, 나가는 전쟁마다 승리를 이끌어서 백성에서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삼상 18:7, 개역한글판)라는 칭송을 들었던 영웅의 모습이 있는가 하면, 매우 치졸한 방식으로 용감한 부하 우리야의 아내를 빼앗는 졸렬한 모습이 동시에 있습니다.

"누가 주님의 산에 오를 수 있으며, 누가 그 거룩한 곳에 들어설 수 있으냐? 깨끗한 손과 해맑은 마음을 가진 사람, 헛된 우상에게 마음이 팔리지 않고, 거짓 맹세를 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주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고, 그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로부터 의롭다고 인정받을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주님을 찾는 사람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사모하는 사람이다."(시편 24편 3-6절, 다윗의 시) 이렇게 아름다운 시를 지으며 음악으로 사울의 병을 치유하는 다윗의 모습이 있는가 하면, 죽을 때 아들 솔로몬을 불러 자신에게 반기를 든 요압과 자신을 모욕한 시므이를 반드시 죽이라고 유언을 하는 복수의 화신으로서의 다윗의 모습이 존재합니다. 과연 이런 다윗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영원히 변치 않을 계약을 맺을 만한 위대한 왕일까요? 아니면 사리사욕에 밝은 권력자에 불과할까요? 아름다운 시로 늘 하나님을 찬양하는 굳센 신앙의 소유자일까요? 아니면 계속 실수하고 넘어지는 나약한 한 인간일까요? 사실은 둘 다입니다.

본회퍼 목사님께서 나는 누구인가를 물으면서 자신의 이중성에 대해 고민하셨고, 성경이 다윗의 이중적인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것처럼 우리 모두는 이렇게 이중성을 갖고 삽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늘 인간들의 실패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위대한 신앙인으로 칭송 받을 만한 사람들이 전부 한 두 번 씩 무너집니다. 당대의 의인이라 불린 노아는 홍수 후에 술에 취해 아들들에게 추한 꼴을 보이고, 믿음의 조상이라 칭송을 받는 아브라함은 자기 목숨을 빼앗길까 두려워 아내 사라를 누이라 속이고 다른 남성에게 내어 주기까지 합니다.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이방 예언자들 850명과 맞서 싸웠던 엘리야도 이세벨의 추격에 겁이 나 스스로 목숨을 끊고자 하는 나약한 모습을 보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모든 것을 버리고, 말씀에 순종하여 물 위도 걸었던 베드로마저도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합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런 모습은 곧 우리 자신들의 모습입니다. 성경은 결코 인간을 완벽한 존재로 그리지 않습니다. 이렇게 인간은 늘 넘어지는 존재입니다. 무지로 인해 넘어지고, 나약한 의지 때문에 번번이 실패합니다. 게으름으로 인해 반드시 해야 할 일도 뒤로 미루기 일쑤입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우리가 이런 모습이기 때문에 그런 우리들을 품으시고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이 그야말로 진하게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회개할 줄 아는 사람]

그렇습니다. 우리는 잘못을 저지릅니다. 내 인생에서 나는 잘못한 적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인간은 모두 죄인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지구 환경 전체에서 볼 때 우리가 이런 문명을 누리고 사는 것 자체가 죄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별다른 죄의식 없이 햄버거 한 개를 사서 먹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아마존이나 열대 우림의 숲을 파괴하는데 동조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좀 더 죄를 덜 짓고 살려면 소고기는 덜 먹어야 하고,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더 아껴야 합니다. 우리가 편리하게 쓰는 물티슈 한 장도 그것이 썩으려면 100년이나 걸리는 플라스틱 쓰레기입니다. 또 얼마 사용하지 않고 마구 버리는 쓰레기 때문에 지구가 몸살을 앓으면서 이제 그 피해가 곧바로 인간에게 다가 오고 있습니다. 최근 미국의 텍사스에서 벌어진 이상기후 현상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북극의 온난화로 캐나다 상공에 흐르던 제트 기류에 이상이 생겼고, 그것이 막아주던 북극의 한파를 못 막자 미국이 냉해를 입었는데, 텍사스와 같이 더운 지역이 영하 20도까지 떨어지는 일이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시편의 말씀은 다윗이 우리야를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은 다음 나단 예언자의 질책을 들은 뒤 회개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죄 중에 태어났고 자신이 어머니의 태 속에 있을 때부터 죄인이라고 고백합니다. 이 말은 강조 용법이 아닙니다. 실로 우리들은 죄 중에 태어나고 죄악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태어날 때부터 이미 죄를 짓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의 모든 문명 그 자체가 사실은 지구의 다른 생명체들을 파괴하는 방식으로 건설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온 인류가 생태적 회심을 하고 대전환을 하지 않으면, 결국 지구가 견디기 어려운 상태로 빠르게 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인류도 큰 고통과 혼란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실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 상태로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면 인류가 감당할 수 없는 기후 재앙이 닥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국가와 기업, 모든 국민이 나서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친환경 정책에 동의해야 하고,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자연환경을 보존하고 보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주님께 기도합니다. "내 속에 깨끗한 마음을 창조하여 주시고 내 속을 견고한 심령으로 새롭게 하여 주십시오." 다윗의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깨끗한 마음을 지녀야 하고, 주님의 견고한 그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오늘 바울 사도께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권면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무엇이든지 참된 것과, 무엇이든지 경건한 것과, 무엇이든지 옳은 것과, 무엇이든 순결한 것과, 무엇이든 사랑스러운 것과, 무엇이든지 명예로운 것과, 또 덕이 되고 칭찬할 만한 것이면, 이 모든 것을 생각하십시오." 이 권면은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처럼 들려야 할 말씀입니다.

정말 우리는 무엇이든지 참되고 경건하고 옳고 순결한 것을 지향했는지, 사랑스럽게 명예롭게 덕이 되고 칭찬할 만한 행동을 했는지 정말 우리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죄악 가득한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깨끗한 마음을 갖도록 애쓰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의 속된 것들에 오염되고 맙니다. 우리가 최대한 노력을 해서 소금과 빛이 되는 삶을 살지 않으면 세상은 갈수록 더 악해질 것입니다.

"버스 44"(車四十四)라고 하는 중국의 단편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중국의 어느 시골 버스 안에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한 영화입니다. 영화는 각색되어 있기에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알려진 내용은 이러합니다.

중국의 어느 시골 버스에 불량배 3명이 탑승합니다. 이들은 미모의 여성 운전자를 보고 흑심을 품습니다. 그래서 차를 강제로 세우고 여성을 끌어 내리려고 했습니다. 버스 안에는 약 40명의 승객이 타고 있었는데, 대부분 남성이었으나 이런 상황을 그 누구도 저지하려고 하지 않았고, 한 중년 남성이 일어나 그것을 막으려다가 부상을 당합니다. 이 중년 남성은 계속 잔학행위를 하지 말라고 소리쳤지만 그 누구도 돕지 않았습니다. 숲으로 끌려간 여성 운전자는 능욕을 당하고 30분이 지난 후에 불량배들과 함께 다시 돌아옵니다. 그런데 다시 차를 운전하려는 이 여성 운전자가 자신을 도우려고 했다가 부상을 입은 그 중년의 남성에게 내리라고 합니다. 이 남성은 항의했지만, 내리지 않으면 출발하지 않겠다고 하고, 이에 다른 승객들이 불평을 하고 몇몇의 승객은 앞으로 나와 이 중년 남성을 끌어 내립니다. 그리고 버스는 출발했습니다. 몇 시간이 흐른 후 끌어내려진 중년의 남성은 벼랑 아래로 추락한 버스 사고 현장을 발견하게 되는데, 바로 그 버스가 자신이 탔던 버스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성 운전자는 불량배들에게 당한 모욕과 수치를 견딜 수 없었고, 승객들의 방관자적 태도를 개탄하며 모두 함께 죽는 방법을 택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범죄가 벌어지는 현장에서 자신의 목숨의 위협을 감내하며 선뜻 나서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불의를 보고도 방관하며 내 일이 아니라고 무관심한 것이 전체의 타락과 파멸을 가져 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목숨을 내놓을 용기를 지닐 수는 없겠지만, 오늘 바울 사도가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는 할 수 있는 일들은 해야 합니다. 우리는 조금 더 참되고, 순결하려고 노력해야 하고, 어제보다는 오늘 더 옳게 살고 사랑하며 덕이 될 만한 일들에 나서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바울 사도는 자신의 선교 여행의 경비들을 보탠 빌립보 교인들에게 "여러분이 나의 고난에 동참한 것은 잘 한 일"이라고 칭찬합니다. 빌립보 교인들이 바울 사도처럼 직접 온갖 고난을 감내하며 선교여행을 다닌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나서는 바울을 도운 것 또한 훌륭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관심을 조금만 갖는다면 우리는 지금의 상황에서도 여러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금 미얀마의 어려운 상황을 보면서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응원한다"는 메시지를 자신의 SNS에 올릴 수도 있고, 청와대 청원게시판을 통해 우리 사회가 고쳐야 할 것들을 반드시 제안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능력 주시는 분 안에서]

오늘 바울 사도의 말씀 중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라는 고백은 우리 한국 교인들이 무척이나 좋아하는 구절입니다. 개역한글판 성경 버전으로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입니다. 그런데 이 구절을 생각하면서 우리가 바라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능력을 주시는 분 안에서 여러분은 무엇을 하고자 했었나요?

바울 사도가 능력 주시는 분 안에서 자신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고백할 때 그가 생각했던 것은 첫째로 어떤 처지에서도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배운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덕분에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알게 된 것이고, 배부르거나, 굶주리거나, 풍족하거나 궁핍하거나 그 어떤 경우에도 적응할 수 있는 비결을 배웠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실 바울은 배운 사람이요, 가진 사람이요, 권력을 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예수를 만나기 전 그는 로마시민으로, 베냐민 지파의 열성 있는 바리새파로 얼마든지 떵떵거리며 살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를 믿고 이방인 선교를 위한 사도로 자신의 정체성을 삼은 이후로 그는 고생길로 접어듭니다. 고린도 교인들에게 보낸 두 번째 편지에서 그는 자신이 겪은 고난을 열거합니다. "나는 수고도 더 많이 하고, 감옥살이도 더 많이 하고, 매도 더 많이 맞고, 여러번 죽을 뻔 하였습니다. 유대 사람들에게서 마흔에서 하나를 뺀 매를 맞은 것이 다섯 번이요. 채찍으로 맞은 것이 세 번이요. 돌로 맞은 것이 한 번이요,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이요. 밤낮 꼬박 하루를 망망한 바다를 떠다녔습니다. 자주 여행하는 동안에는, 강물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 사람의 위험과 도시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의 위험을 당하였습니다. 수고와 고역에 시달리고, 여러번 밤을 지새우고, 주리고,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추위에 떨고 헐벗었습니다." (고후 11:23b-27)

바울은 바로 이런 고생을 감내하면서 내게 능력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신앙고백이 바울의 신앙고백과 일치하길 빕니다. 우리가 능력 주시는 분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할 때, 주님의 영광의 면류관을 받는 일만이 아니라 십자가의 죽음의 길을 걸어가는 일이길 빕니다. 영어 속담에 "No cross, No crown"이란 말이 있듯이, 십자가 없이는 면류관도 없는 것입니다.

오늘 다윗에게는 자신의 형편을 뒤집을 절호의 기회가 옵니다. 대다수 이스라엘 자손들이 지지하고 있고(삼상 18:6-7), 이제 사울만 없애면 자신의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 가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도 자신의 편이요(삼상 18:1-4), 하나님께서도 이제는 분명히 다윗과 함께 하십니다(삼상 16:13, 18:13-14, 28). 시기심과 질투심에 불타 있는 사울만 없애면 명실공히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이끌어갈 지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사울을 죽이지 않습니다. 이후에 또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지만 그 때에도 다윗은 사울을 없애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다윗에게는 자신의 원칙과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상 24장 10절 이하에는 다윗이 사울에게 하는 말이 나옵니다. 다윗의 말을 들어 보겠습니다. "보십시오, 주님께서 오늘 저 굴 속에서 임금님을 나의 손에 넘겨 주셨다는 사실을, 이제 여기에서 직접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임금님을 살려 보내지 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는 임금님을 아꼈습니다. 절대로, 손을 들어 우리의 임금님을 치지 않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임금님은 바로 주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지금 내가 들고 있는 임금님의 겉옷자락을 보십시오. 내가 이 겉옷자락만 자르고, 임금님께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보시면, 나의 손에 악이나 죄가 없으며, 임금님께 반역하거나 잘못한 일이 없다는 것도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도 임금님은 나를 죽이려고, 찾아다니십니다. 이제는 주님께서, 나와 임금님 사이에서 재판관이 되시고, 나의 억울한 것을 주님께서 직접 풀어 주시기 바라겠습니다. 나의 손으로는 직접 임금님께 해를 끼치지 않겠습니다. 옛날 속담에 '악인에게서 악이 나온다' 하였으니, 나의 손으로는 임금님을 해치지 않겠습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은 누구를 잡으려고 이렇게 나오셨습니까? 임금님이 누구를 잡으려고 쫓아다니십니까? 한 마리 죽은 개를 쫓아다니십니까? 한 마리 벼룩을 쫓아다니십니까? 그러므로 주님께서 재판관이 되셔서, 나와 임금님 사이를 판결하여 주시기를 빌겠습니다. 주님께서 굽어보시고 나의 억울함을 판결하여 주시며, 나를 임금님의 손에서 건져 주시기를 빌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다윗은 하나님만이 재판관이라는 원칙을 기억합니다. 악을 징벌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실 것이기에 자신은 선으로 악을 갚으리라는 것이지요. 물론 이런 다윗이 설교 처음에 말씀 드렸듯이 여전히 복수의 화신이 되어 자신의 아들 압살롬을 죽여 버린 요압을 처단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인간은 이상과 현실 사이를 오가며 늘 선택의 기로에 서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생명사랑 교우 여러분! 시계추처럼 마땅히 해야 할 일과 게으르고 교만하고 넘어지는 일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우리라 할지라도 능력 주시는 분 안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갑시다. 주님의 은총을 입었다면 주님과 함께 고난의 잔도 받아 마실 용기를 가집시다. 그 어느 것이든지 더욱 참되고 옳고 순결하고 경건한 것들을 추구해 나갑시다. 여러분이 하시는 그 많은 일들이 가능하면 덕이 되고, 칭찬할 만한 것들이 되길 바랍니다. 바로 그런 일에 주님의 능력을 사용하시고, 능력 주시는 분 안에서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고백하는 저와 여러분이 됩시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다 보면 어느 새 저와 여러분도 그 어떤 경우에도 적응할 수 있는 비결을 익히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길어지는 코로나로 지쳐가는 우리 영혼을 위로해 주소서. 이 환란의 시간이 속히 지나가게 하여 주소서. 그러나 절망 속에서 헤매지 말고 인내하면서 단련된 인격이 되도록 더 노력하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나약하여 부서지기 쉽고 넘어지기 쉬우나 주님의 능력을 힘입어 그 어떤 경우에도 적응하는 비결을 얻게 하여 주소서. 코로나 상황이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은 해 내게 하시고, 밝은 미래를 지금 여기에서 준비하고 만들어가는 생명사랑 교우들이 되게 하여 주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감사기도

우리의 창조자, 아버지이자 친구이신 하나님! 우리에게 허락하신 삶의 놀라운 선물에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일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들과 기회들을 만나게 하시고, 거기에서 기쁨을 누리며 책임을 질 수 있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건강과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안식처와 따뜻한 집을 주시며,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을 만나게 하신 것 감사드립니다. 길을 잃고 헤맬 때에도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주님께 반항할 때에도 우리 손을 꼭 잡아 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의 전에 나올 때에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예물을 가지고 나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한 없는 사랑에 감사하여 우리의 전 삶과 모든 것을 바친다는 의미로 당신께 예물을 드립니다. 이 예물을 받아주소서. 코로나 상황이지만 이 예물이 생명사랑교회의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일구어 가는 데에 올바로 쓰이게 하소서. 무엇이든지 참되며, 무엇이든지 경건하며 무엇이든지 사랑스러운 일들을 찾아 나서게 하시고, 그 모든 상황에서도 자족하는 비결을 얻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파송사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어깨를 쭉 펴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당당하게 그리고 힘차게 걸어 나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주님의 능력을 힘입어 우리 모두 함께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합시다. 능력을 주시는 분 안에서 우리는 그 어떤 일도 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 축도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성령의 거룩한 친교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주님의 나라를 위해 그 모든 것을 해내려는 생명사랑교우들과 이 시간 전국에서 함께 예배하는 모든 성도들 위에, 아픈 세상에서 구원을 갈망하는 모든 존재들에게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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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과 선에 쏠려 있는 개신교 전통에서 미(美)는 간과돼"

「기독교사상」 최신호의 '이달의 추천글'에 신사빈 박사(이화여대)의 글이 소개돼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키에르케고어와 리쾨르를 거쳐 찾아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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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봉사를 개교회 성장 도구로 삼아온 경우 많았다"

이승열 목사가 「기독교사상」 최근호(3월)에 기고한 '사회복지선교와 디아코니아'란 제목의 글에서 대부분의 교단 총회 직영 신학대학교의 교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