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설교] 그의 길만이 영원하다

김기석 목사(청파감리교회)

kimkisuk
(Photo : ⓒ베리타스 DB)
▲청파감리교회 김기석 목사

성경본문

합 3:1-6

[이것은 시기오놋에 맞춘 예언자 하박국의 기도이다. 주님, 내가 주님의 명성을 듣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하신 일을 보고 놀랍니다. 주님의 일을 우리 시대에도 새롭게 하여 주십시오. 우리 시대에도 알려 주십시오. 진노하시더라도, 잊지 마시고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나님이 데만에서 오신다. 거룩하신 분께서 바란 산에서 오신다. (셀라) 하늘은 그의 영광으로 뒤덮이고, 땅에는 찬양 소리가 가득하다. 그에게서 나오는 빛은, 밝기가 햇빛 같다. 두 줄기 불빛이 그의 손에서 뻗어 나온다. 그 불빛 속에 그의 힘이 숨어 있다. 질병을 앞장 세우시고, 전염병을 뒤따라오게 하신다. 그가 멈추시니 땅이 흔들리고, 그가 노려보시니 나라들이 떤다. 언제까지나 버틸 것 같은 산들이 무너지고, 영원히 서 있을 것 같은 언덕들이 주저앉는다. 그의 길만이 영원하다.]
설교문

어두운 시대

자비로우신 주님의 은총이 예배의 자리에 나온 모든 이들과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슬픔과 괴로움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들과도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참 울적한 소식이 많이 들려오는 요즘입니다. LH 공사 직원들이 새롭게 조성되는 신도시 부지에 미리 땅을 구입했다고 합니다. 비밀스런 정보를 다루는 자리에 있으면서 그것을 사적인 이익을 위해 활용한 셈입니다. 지상에 방 한 칸 마련할 길 없어 애태우는 이들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이런 도덕 불감증에 분노를 넘어 허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공공의 것을 사적으로 전유하는 것이야말로 죄의 뿌리입니다. 이런 일은 이번에만 벌어진 일이 아닐 가능성이 더 큽니다.

군 복무 중 트랜스젠더가 되었다가 군대에서 강제 전역 당했던 변희수 씨가 극단의 선택을 했습니다. 그간 우리 사회가 그에게 쏟아낸 잔인한 말과 표독스런 표정, 모멸감을 안겨주는 행동을 그는 더는 견딜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가 한 일 혹은 선택에 대해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고, 비판적일 수도 있고, 낯설게 여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여 그의 설 자리를 박탈하고 벼랑으로 밀어붙이는 일이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요? 세상에는 정말 우리 이해를 뛰어넘는 일들, 합리성이나 효율성 가지고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더 많습니다. 겸손하게 자기 한계를 인정해야 합니다. 나와 다르다고 하여 누군가의 존재를 부정하는 일은 폭력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빠져나갈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사람은 극단을 생각하게 됩니다.

미얀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면 가슴이 아픕니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 군중들에 대한 발포가 진행되었고 상당히 많은 인명피해가 났습니다. 광주민주화항쟁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우리에게 미얀마에서 벌어지는 일은 남의 나라 일로 여겨지지 않습니다. 대의명분이 무엇이건 무고한 민간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체제는 생명의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평화의 주님께서 그 땅에 정의를 비처럼 내려주시기를(호10:12) 빕니다. 무고한 희생자들의 피가 헛되이 허비되지 않기를 빕니다. 날이 갈수록 삶이 어렵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시편 기자의 탄식이 어쩌면 그리 제 마음을 잘 드러내주는지 모르겠습니다.

"괴롭구나! 너희와 함께 사는 것이 메섹 사람의 손에서 나그네로 사는 것이나 다름없구나. 게달 사람의 천막에서 더부살이하는 것이나 다름없구나. 내가 지금까지 너무나도 오랫동안, 평화를 싫어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왔구나. 나는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내가 평화를 말할 때에, 그들은 전쟁을 생각한다."(시120:5-7)

놀람의 회복

우리는 평화를 사랑하지만, 일상적 삶의 자리는 마치 전쟁터와 같습니다. 오늘은 어두운 시대를 살았던 선지자 하박국의 경고와 말씀을 통해 우리가 어디에 희망을 두고 살아야 하는지를 살피려 합니다. 하박국서는 주전 612년에 앗수르가 무너지고 바벨론이 등장한 이후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박국은 '포옹하다', '씨름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는 불의가 일상이 된 세상살이에 지쳤습니다. 약탈과 폭력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다툼과 시비가 그칠 사이 없었습니다. 율법은 해이해졌고, 공의는 시행되지 않았습니다. 악인이 의로운 이를 삼키는 현실을 보며 하박국은 하나님께서 대체 무엇을 하고 계신가 묻습니다. 하나님은 그 질문에 일일이 답하지 않으시지만, 아주 함축적인 대답을 들려주십니다.

"그러나 제 힘이 곧 하나님이라고 여기는 이 죄인들도 마침내 바람처럼 사라져서 없어질 것이다."(합1:11)

하나님의 정의는 반드시 시행된다는 것입니다. 비록 더디더라도 그 때를 기다리며 살라는 것입니다. 부당한 이익을 탐하는 이들, 피로 마을을 세우고, 불의로 성읍을 건축하는 이들의 수고가 다 헛수고가 될 날이 차곡차곡 다가옵니다. 그 날과 시간을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마치 봄 기운이 일어 잠든 생명을 깨우듯 하나님의 시간은 어김없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온 땅은 내 앞에서 잠잠하라"(합2:20)는 말씀을 명심해야 할 때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합2:4)지 않습니까. 요즘 들어 찬송가 380장 2절 가사가 자꾸 떠오릅니다.

"괴론 세상 지낼 때 나를 인도하여 주소서/주를 믿고 나가면 나의 길을 잃지 않겠네/날마다 날마다 주를 찬송하겠네/주의 사랑 줄로써 나를 굳게 잡아매소서"

그 사랑 줄이 우리를 세파에 떠밀리지 않도록 하는 구명줄이 되면 좋겠습니다. 하박국의 구성은 탄식시의 구조와 매우 유사합니다. 고통스런 현실에 대한 탄식, 악인들에 대한 심판 요구,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기억의 회복, 찬양과 기도가 그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찬양과 기도에 속하는 부분입니다. 하박국은 주님의 명성을 듣고, 주님께서 하신 일을 보고 놀란다고 고백합니다. 놀람은 거룩함 앞에 선 이들이 한결같이 경험하는 현실입니다. 시편 139편 기자는 "내가 이렇게 빚어진 것이 오묘하고 주님께서 하신 일이 놀라워, 이 모든 일로 내가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내 영혼은 이 사실을 너무도 잘 압니다"(시139:14)라고 고백한 바 있습니다. 어느 분은 이 앞부분을 '내가 있다는 놀라움', '하신 일의 놀라움'이라고 함축성 있게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영혼이 굳어진 이들은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입니다. 새싹과 꽃을 보고 경탄하는 사람을 보며 '웬 호들갑이야. 봄이 되었으니 꽃이 피는 게 당연하지'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가엾은 사람입니다.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은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믿으려는 의지가 아니라 놀라려는 의지"(아브라함 요수아 헤셸 선집5, <사람을 찾는 하느님>, 이현주 옮김, 종로서적, p.49)라고 말합니다. 놀람은 저절로 발생하는 영혼의 불꽃 같지만, 그 불꽃에 점화되는 이들은 마음을 열고 세상을 세심하게 살피는 이들입니다. 놀라려는 의지를 품고 살 때 하나님의 무한하고 아름다운 세계에 다가설 수 있습니다.

놀람은 말씀을 통해서도 일어납니다. 유대인들은 가정, 회당, 성전에서 낭송되는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의 역사 속에 동참합니다. 그들은 낭송되는 그 사건들이 과거에 이미 완료된 일이 아니라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일임을 경험합니다. 그런 경험이 있기에 하박국은 "주님의 일을 우리 시대에도 새롭게 하여 주십시오"(합3:2b)라고 기도합니다. '주님의 일'은 이중적 의미를 내포합니다. 이방 압제자들로부터의 해방과, 악인들이 득세하는 세상이 바로잡히는 것입니다. 개역 개정은 이 구절을 '주의 일을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소서'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건축을 앞둔 교회마다 이 구절이 적힌 배너를 내걸곤 합니다. 자의적 성서 인용입니다. 하박국은 불의한 이들과 이방 압제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수행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희망은 위로부터 옵니다. 그러기에 그는 심판 중에라도 잊지 마시고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청합니다. 자비는 인간을 향한 창조주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심판의 급진성

이제 하박국은 하나님의 심판의 날을 내다보며 노래합니다. "하나님이 데만에서 오신다. 거룩하신 분께서 바란 산에서 오신다. (셀라) 하늘은 그의 영광으로 뒤덮이고, 땅에는 찬양 소리가 가득하다"(합3:3). 뭔가 휘몰아치는 기세가 느껴집니다. 마치 판소리의 한 대목을 듣는 것 같지 않습니까? 데만은 에돔의 중심 도시이고 바란 산은 이스라엘 남쪽 지역으로 가데스 바네아 근처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데만을 언급한 것은 하나님의 통치가 이스라엘에만 국한되지 않음을 나타내기 위한 것입니다. 고대인들은 하나님의 현현을 실감나게 설명하기 위해서 특정한 장소를 거명하곤 했습니다. 하박국도 그런 전통어법에 따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빛은, 그 밝기가 햇빛 같고, 두 줄기 불빛이 그의 손에서 뻗어 나옵니다. 이 대목을 보면서 마블 영화를 연상하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을 빛으로 표상하는 것은 정말 오랜 전통입니다. 이사야는 "주님께서 백성의 상처를 싸매어 주시고, 매 맞아 생긴 그들의 상처를 고치시는 날에, 달빛은 마치 햇빛처럼 밝아지고, 햇빛은 일곱 배나 밝아져서 마치 일곱 날을 한데 모아 놓은 것 같이 밝아질 것"(사30:26)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하나님은 폭력이 난무하는 암흑 세상을 밝히는 빛으로 마치 진군하듯 다가오십니다. 하늘은 그분의 영광으로 뒤덮이고, 땅에는 찬양 소리가 가득합니다. 하박국은 그 장대한 광경을 그리기 위해 시각적, 청각적 이미지를 다 동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또한 질병을 앞장 세우시고, 전염병을 뒤따라오게 하십니다. 이 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세상의 모든 병이 하나님의 심판이라도 말하지 마십시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두려움을 나타내기 위한 표현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인간이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욥기는 하나님께서 혼돈의 괴물인 베헤못과 리워야단도 다스리신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자비로운 분이시지만, 불의를 적당히 넘어가시는 분은 아닙니다. 사자가 포효하면 온 숲 속 짐승들이 떨듯이,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면 오만한 인간의 자부심은 속절없이 무너지게 마련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전령

하나님의 심판을 말하는 하박국의 표현은 매우 시적입니다. "그가 멈추시니 땅이 흔들리고, 그가 노려보시니 나라들이 떤다. 언제까지나 버틸 것 같은 산들이 무너지고, 영원히 서 있을 것 같은 언덕들이 주저앉는다. 그의 길만이 영원하다"(합3:6). 아무리 굳건해 보이는 산이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장대한 역사의식입니다. 천하를 호령하는 제국은 영원히 존속될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역사 속에 등장했던 모든 제국은 다 무너졌습니다. 약자들에 대한 폭력과 착취를 용인하는 체제는 자기 속에 시한폭탄 하나를 품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제국은 전체주의를 지향합니다. 다름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미워합니다. 국가나 집단의 이해를 개인보다 우위에 두면서, 전체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개인의 자유를 유보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탈리아의 독재자인 무솔리니는 "국가 안에 모두가 있고, 국가 밖에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으며, 국가에 반대하는 그 누구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국가가 제시한 목표에 따르지 않는 이들은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전체주의는 하나님 나라와 무관합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들이 더욱 존중받는 나라입니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 나라의 구성 원리를 설명하면서 모든 지체가 다 소중하지만 특히 연약한 지체가 소중하다고 말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몸의 지체 가운데서 비교적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들이 오히려 더 요긴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덜 명예스러운 것으로 여기는 지체들에게 더욱 풍성한 명예를 덧입히고, 볼품 없는 지체들을 더욱더 아름답게 꾸며 줍니다."(고전12:22-23)

우생학적으로 보면 어리석어 보입니다. 효율적이지도 못한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효율성을 따지지 않습니다. 포도원에 맨 마지막에 온 사람에게도 한 데나리온을 주는 게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둘째 아들을 품에 안는 게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런 질서 가운데도 초대받았습니다. 그것은 사랑의 길이고, 진리의 길이고, 십자가의 길입니다. 바로 이 길만이 영원합니다. 노자는 길답지 않으면 일찍 끝나버린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길이신 주님을 따라 걸어야 합니다. 바로 그런 삶이 곧 영생입니다. 제 힘을 하나님처럼 여기는 이들은, 바람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는 이 믿음을 가슴에 품고 삽니다. 모질고 험한 세상이지만 어떤 경우에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 친절함과 온유함으로 이웃들을 돌보는 이들이 곧 하나님 나라의 전령입니다. 하루하루 그 길을 걷는 기쁨을 누리실 수 있기를 빕니다. 아멘.

※ 위 설교문은 청파감리교회 홈페이지에 게재된 글임을 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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