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설교]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

한문덕 목사(생명사랑교회 담임)

hanmoonduck
(Photo : ⓒ생명사랑교회 홈페이지(https://www.agapao-zoe.com))
▲생명사람교회 한문덕 담임목사

잠언 1장 1-7절, 시편 94편 12-15절, 히브리서 5장 12절-6장 3절

[행복하십니까?]

사랑하는 생명사랑 교우 여러분! 지금 전국에서 생명사랑 교회의 예배에 참여하시는 성도 여러분! 지금 행복하십니까? 행복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럭저럭 잘 지내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여러분만의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비결이 있습니까? 하루하루 살아내야 하는 삶을 살아가면서도 순간순간 보람을 느끼며 즐거움을 누리며 감사하고 가슴 뿌듯하게 사는 방법을 알고 계십니까? 일상의 잦은 스트레스는 어떻게 처리하십니까? 예기치 않게 닥쳐오는 고통을 잘 극복하면서 죽음의 그늘 골짜기를 지날 때에도 담대하고 꿋꿋하게 살아내는 삶의 의지가 있습니까?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정말 잘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제가 답을 알고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전에 우리가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것이 있고, 사실 잊을 수 없이 우리 가슴 한 켠을 계속 먹먹하게 만드는 것이 있기에 그것부터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바로 세월호 참사입니다.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며]

지난 주 금요일은 세월호 참사를 겪은 뒤 7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50분 전라남도 진도 앞바다에서 안산의 단원고 학생 등 승객 476명을 태운 세월호가 어떤 원인으로 급선회하면서 옆으로 기울기 시작했고, 이틀 만에 완전히 침몰합니다. 5명은 아직도 시신을 찾지 못했고, 304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172명 생존자들의 절반 이상은 해양경찰이 아닌 어선과 민간선박이 구조했습니다. 해경은 이들보다 일찍 현장에 도착했지만, 세월호와 어떤 교신도 하지 않았고, 승객들에게 퇴선 명령도 하지 않은 채 이준석 선장과 선원들만 태우고 현장을 떠납니다.

7년이 지나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지도 3년이 넘었으나, 세월호 참사의 진상이 무엇인지는 깜깜 무소식입니다. 왜 세월호가 침몰했는지, 왜 그리 희생자가 많아졌는지, 청와대·해경은 뭘 하고 있었는지, 언론의 오보와 정치 공작 속에서 그 무엇 하나 제대로 밝혀진 것이 없습니다. 억울한 국민들의 한은 풀지도 못한 채, 당시 정권은 자신들의 책임을 최소화하는 데만 골몰했고, 그래서 세월호 사건은 정쟁의 먹잇감으로만 이용되었습니다. 지금 정부가 사회적 참사 특별위원회까지 만들어서 재조사하게 했지만, 아직까지도 지지부진 한 것이 현실입니다. 세월호 사건은 단순한 해양 교통사고가 아니라, 이 땅의 기득권자들이 지닌 부패와 부조리, 안전불감증, 허술한 위기대처 능력의 민낯을 보여준 사건이었고, 국가와 정부가 과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를 근원적으로 묻게 하였습니다.

한편 세월호 사건은 신앙인들에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세월호가 가라앉을 때 무엇을 하고 계셨는지에 대한 신정론적 질문을 던졌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고 가르쳐왔던 교회들에게 과연 세월호 참사도 하나님의 뜻이냐고 묻는다면 신앙인들은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요? 또 세월호 사건을 둘러싸고,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려는 일련의 과정들 속에서 교회들은 애통하는 유가족들의 아픔에 충분히 공감하지 못하고, 몇몇 목사들의 막말은 오히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습니다. 세월호 사건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 불의함뿐만 아니라, 자신의 보존과 성장에 매몰된 교회들이 사회문제에 얼마나 무관심했는지도 드러냈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우리사회가 풀어가야 할 과제들과 한국교회가 마땅히 관심을 가졌어야 할 부분도 명확해졌습니다. 남북한이 화해하고 평화롭게 공존할 때 전쟁의 불안 없이 온전하게 우리의 삶을 누릴 수 있듯이, 부패를 척결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권을 창출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리의 삶을 더 안전하게 만들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뜻과 우리들의 삶을 연결하는 깊은 신학적 이해를 도모하고, 신앙의 공공성 회복 및 사회적 선교의 중요성을 더 진지하게 논의해야 합니다. 세월호 참사 7주기를 맞이하면서 우리가 계속 이 사건을 기억하고 얘기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말할 수 없는 아픔과 고통을 당하고서도 깨닫지 못하고, 불거진 문제들과 과제들을 해결하지 못하면, 계속해서 같은 일들이 반복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어제보다 좀 더 나은 삶, 고통은 줄고 행복은 늘어나는 삶을 바랍니다. 모든 생명체는 생명에 위협을 가하는 모든 위험에서 구출되기를 바랍니다.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러나 삶을 산다는 것은 복잡하고 변하는 세계 속에서, 얽히고설킨 관계 속에서 뜻하지 않게 벌어지는 수많은 사건들에 직면하는 것입니다. 그런 삶을 보람 있고, 행복하게 살아가려면 개인적으로는 삶의 지혜가 필요하고, 집단적으로는 전체를 생각하는 좋은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여러분과 잘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 모두가 진정으로 잘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얘기를 나누고 싶은 것입니다. 다시는 우리 사회에 세월호 참사와 같은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지요.

[고통을 줄이는 삶]

대체로 모든 종교와 지혜 전통에서는 인간이 겪는 고통의 원인을 탐욕(貪)과 성냄(嗔), 무지(痴)에서 비롯된다고 말합니다. 세월호 사건도 큰 틀에서 보면 우리 인간들의 탐욕과 무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보다는 돈을 추구하고, 진상을 있는 그대로 밝히지 못하고 숨기며 감추려는 어리석고 악한 자들 때문에 지금까지 풀어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창세기의 선악과 이야기는 유한한 피조물인 인간이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처럼 되려고 했을 때, 자신의 유한성을 깨닫지 못하고, 마치 전능한 하나님처럼 행동할 때, 어떤 고통이 찾아오는지를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 또한 무지의 소치이자, 과한 욕심 즉 탐욕의 한 모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고 사탄의 유혹에 흔들려 버린 마음 또한 고통의 원인입니다.

불행하고 고통스런 삶을 초래하지 않기 위해 첫 번째 해야할 것은 탐욕을 멀리하는 것입니다. 물론 생리적 욕구 자체는 건강한 삶을 위해 반드시 필요합니다. 배고프면 먹어야 하고, 졸리면 자야하고, 지치면 쉬어야 합니다. 욕구는 자연스러운 것이고, 지금보다 더 나아지려고 하는 갈망과 소원은 인류로 하여금 문명을 건설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탐욕, 즉 과한 욕심은 언제나 말썽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런데 우리가 과한 욕심을 부리게 되는 이유는 무한한 상상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한한 몸은 무한한 상상력을 따라 갈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몸을 잘 살펴서 무한히 뻗어나가는 생각을 조절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고 욕망을 부추겨서 무한대로 늘리면서 그것을 따라가려고 한다면 그 사람은 늘 불행한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작은 것에도 자족할 줄 안다면 행복한 삶의 지혜 중 반은 얻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현대 사회의 교통과 통신의 발달, 그리고 매스미디어의 눈부신 발전은 인간의 탐욕을 무한히 증식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다 고만고만한 사람들끼리 모여 살면서 공동체를 이루고 거기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었지만, 오늘날은 세계가 한 촌락이 되고 휘황찬란한 삶의 모습들이 매스미디어를 통해 우리의 눈과 귀를 자극하면서 우리들의 욕망을 부추깁니다. 남들 하는 대로 하고 싶은 욕망, 남들이 갖고 있는 것을 자기도 다 갖고 싶은 욕망이 더 극대화 되는 것입니다. 남들과 비교하면서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는 인간들이 현대인들인데, 이들이 자족할 줄 아는 마음을 얻지 못하는 한 행복한 삶을 살 수는 없을 것입니다.

잠깐의 실수로 인생을 망치는 경우는 대체로 감정 조절에 실패할 때입니다. 감정은 모든 생명체의 생존과 연결되어서 발달된 것입니다. 감정은 태어나면서부터 만들어지는 매우 미묘한 것이고, 주양육자인 부모나 가족들의 관계 속에서 생성되고, 그것을 바탕으로 사회적 관계 속에서 다듬어 지는 것인데, 감정이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문제는 파고들면 들수록 전문가의 조언이 필요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인간의 70-80%는 대체로 자신의 감정을 잘 다룰 줄 안다는 것입니다.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배우지 않아도 성장과정에서 저절로 그렇게 형성되는 것이지요. 특별한 위기나 어려움이 닥쳤을 때는, 감정이 요동치고 계속 우울하거나 무력해지는 매우 힘든 상황들이 지속되기도 하는데, 그럴 때에는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고 치료를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감정의 풍선이 터지기 전에 일상에서 미리미리 준비하는 방법도 물론 있습니다. 시중에 나와 있는 많은 심리학 관련 책들은 다 이런 문제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교에서는 매주 일정하게 드리는 예배와 수시로 주님 앞에 나와서 드리는 기도, 그리고 찬양과 성도들과의 사귐과 대화 속에서 일렁이는 감정들은 순화되고 조절됩니다. 지난 주 목요일에 떼제 기도회를 했습니다만, 특히 그리스도교 기도 전통은 바로 우리들의 감정과 마음을 다스리는 최고의 훈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인간의 마음은 감정과 지성적인 머리가 함께 작동하는데,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머리와 가슴으로 자신을 성찰하며 돌보도록 합니다.

따라서 주님의 말씀으로 양육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뜻에 따라 탐욕에 물들지 않고, 기도와 절제, 경건훈련으로 체득된 마음 조절 능력에 따라 세상 사람들보다 훨씬 더 고통을 줄이며,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잠언(箴言)의 말씀]

이제 남은 것은 어리석음입니다. 사실 이 문제가 가장 풀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알지 못합니다. 칸트라고 하는 위대한 철학자가 순수이성비판이라는 책에서 밝힌 것도 바로 인간의 이성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고, 모르기 때문에 낯설고 새로운 삶의 상황 속에서 우왕좌왕하다가 고통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는 앎이 필요합니다. 제대로 된 앎은 우리를 우리에게 닥치는 많은 고통을 피해갈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래서 앎은 우리에게 매우 소중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앎은 빙산의 일각일 뿐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삶 가운데 앎보다 모름이 훨씬 더 크다는 것을 아는 것, 그것이 바로 지혜의 한 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말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를 알면서 그 모름을 점점 줄여나가면서도 여전히 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마음 속 깊이 새깁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이 모른다는 것도 모르면서 마치 아는 사람처럼 행동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잠언의 말씀에서 어리석은 사람은 지혜와 훈계를 멸시한다고 되어 있는데, 이렇게 하는 이유는 바로 그 어리석은 사람이 자신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잠언 말씀의 5절은 지혜 있는 사람은 이 가르침을 듣고 학식을 더할 것이요, 명철한 사람은 지혜를 더 얻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실제로 그러합니다. 정말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많은 것을 모르는지 알기 때문에 계속 배웁니다. 그래서 점점 학식이 늘어나고 더 지혜롭게 됩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어리석은 사람은 두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자신이 잘 안다고 생각하면서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입니다. 둘째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잘 알면서도 게을러서 배우기를 포기하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교 신학에서는 어리석은 이 두 사람의 죄를 '교만'과 '태만'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둘은 모두 배우려고 들지 않고, 남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에 점점 더 어리석어 집니다. 오늘 저는 제 설교를 듣는 여러분들이 모두 지혜로운 사람이 되시길 진정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귀 있는 자는 잘 들으시길 빕니다.

지혜의 말씀들이 가득 담긴 오늘의 본문을 우리는 잠언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잠(箴)'은 '바늘'을 뜻하는 한자입니다. 즉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깨닫게 해 주는 말들이라는 뜻입니다. 일본어 성경은 이 부분을 지혜의 샘(知惠の泉)이라고 제목을 달았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지혜의 말씀은 우리가 듣기 싫어도 들어야 하는 주님의 말씀이고 가르침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주님의 말씀을 잘 듣는다면 저는 분명 여러분이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서 훨씬 더 행복한 삶을 살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21세기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 지혜롭게 산다는 것은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일까요? 오늘 우리가 읽은 히브리서 기자는 교인들을 책망합니다. 이미 교사가 되어서 단단한 음식물도 섭취할 줄 아는 성숙한 경지에 이르러야 할 사람들이 젖을 먹는 어린 아이처럼 초보적 단계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세례와 안수, 부활과 심판에 대한 기초적인 교리들에 대해서도 올바른 이해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저는 다시 한국 교인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거 시대에 만들어진 교리를 붙들면서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신과 남들을 고통에 몰아넣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는 교인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 명의 목회자로서 이 부분에 대해서 깊은 사명감을 느끼고 있고, 그래서 부족하지만 저를 부르는 곳이면 가능한 달려가서 강의를 하고 설교도 합니다.

오늘은 몇 가지만 간략하게 짚어 볼까 합니다. 구약의 지혜전통이 말하는 지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규범적 지혜이고, 다른 하나는 반성적 지혜입니다.(송민원, <지혜란 무엇인가?>, 감은사, 25.) 규범적 지혜란 하나님께서 정하신 세상의 규칙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경험하는 반복적인 패턴이 있고 그것에 따르는 것이 바로 지혜라는 것입니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속담이 잘 대변하고 있는 지혜입니다. 노력하는 자만이 그에 합당한 결실을 맺는 법이지요. 이런 지혜를 잘 익히는 사람은 성실하게 살아갑니다. 성실한 삶은 반드시 보상을 줍니다. 성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 그가 명령하는 길로 좌우로 흔들리지 않고 똑바로 가는 것을 공의요, 정의요, 정직이라고 부르는데, 바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정의로운 삶을 사는 것이 또한 지혜라고 말합니다.

사실 이 부분은 누구나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것 외에 또 다른 지혜를 알려 줍니다. 세상이 뿌린 대로만 거두어지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는 인간의 헤아림을 넘어서 있기 때문에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나와서 물어야 한다." 세상이 하나님의 정하신 규칙대로만 돌아간다면 그 공식을 잘 외우고 따르면 되겠지만 세상은 공식대로만 흐르지 않기에 바로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께 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들에게 드리는 말씀의 강조점은 바로 후자에 있습니다. 현대는 과거와 달리 매우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일정한 규칙이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적용되던 시대가 아닙니다. 저마다 또 다른 상황에서 기준이 다르고 방법이 달라져야 합니다. 따라서 오늘의 시대에 우리가 배워야할 지혜는 늘 하나님 앞에 자신을 세워 놓고 하나님께 질문하면서 시시때때로 삶의 방향을 잡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전에 해오던 것, 진리라고 믿고 있었던 것, 옛날에 성공했던 방식 그 모두를 새롭게 물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과거에는 이미 존재하는 것을 배우는 것에 골몰했다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주어진 것을 다르게 생각하기'입니다. 낯설게 보고, 다르게 생각해 보는 것! 지금 시대 상황을 살피면서 새로운 것에 도전해 보는 것!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입니다. 물론 아무거나 마구 시도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신중하게 판단하고, 현명하게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다르게 생각해 보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필요한 지혜라는 것입니다.

인도의 마주리 섬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마주리 섬은 브라마푸트라라는 강위에 있는 가장 큰 섬으로 아름다운 오아시스가 있고 온갖 동식물들이 살아가던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섬에 밀렵꾼들과 불법 벌목꾼들이 몰려들었고, 나무가 점점 사라지면서 쓸모없는 땅이 되어갔습니다. 나무가 사라지자 홍수가 찾아왔고, 거듭되는 홍수와 가뭄으로 섬은 점점 황폐해지기 시작합니다. 숲이 사라진 섬에 동식물들이 죽어나가고, 사막화 된 섬은 점점 침식되기 시작하여 많은 과학자들은 20년 안에 이 섬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 예측했고, 강물이 범람할 때마다 실제로 이 섬의 면적은 점점 줄었습니다.

그런데 16살 한 청소년이 자연재해로 숲이 사라지고 야생동물이 메말라 죽는(수백마리의 뱀이 말라 죽어 있는 모습) 광경을 보고 큰 충격에 빠집니다. 정부와 마을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사막화 된 땅에는 나무가 자랄 수 없다는 부정적 답변만 들려 왔습니다. 그러나 이 소년은 다르게 생각합니다. 자기라도 무엇인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 소년은 매일 황폐화된 땅으로 가서 나무를 심기 시작합니다. 1979년부터 40년 넘게 지금까지도 이 사람(파옝)은 매일 나무를 심었고, 이 한 사람 덕분에 섬은 여의도 면적의 두 배 이상이 되는 울창한 숲을 가지게 되었고, 뱅갈 호랑이, 코끼리, 인도 코뿔소가 다시 살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다른 생각이 세상을 바꾼 것입니다.

하나님은 노아를 시켜서 세상을 재창조하였고, 아브라함을 불러서 믿음의 백성들을 양육했으며, 모세를 불러서 애굽 제국에서 자신의 백성들을 탈출 시키셨습니다. 이들 모두 당시 세상 사람들의 눈에서 볼 때는 매우 무모한 사람들로 여겨졌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무모한 사람들이 아니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르게 생각해 보기를 권하십니다. 인간의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에서, 인간들만의 생각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들, 생명체들의 관점에서 지구도 다시보고, 문명도 다시보고, 우리들의 삶도 다시 보라고 그렇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오늘 설교 제목은 스티븐 잡스의 유명한 마켓팅 연설(https://www.youtube.com/watch?v=FbCUYaNb-pQ)에서 따온 것입니다. 스티븐 잡스는 자신의 회사를 알리는 유명한 연설에서 나이키를 예로 듭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나이키는 신발 및 스포츠 용품을 판매하는 회사입니다. 그러나 나이키의 광고를 보면 그 어떤 상품도 소개하지 않습니다. 상품의 질이 좋으냐 나쁘냐를 말하거나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른 스포츠 상품들보다 자신의 상품들이 얼마나 더 좋은지를 자랑하지도 않습니다. 대신 나이키는 다른 것을 말합니다. 위대한 운동선수에 대해 경의를 표하고, 위대한 경기에 찬사를 보냅니다. 나이키는 바로 스포츠의 향상을 위해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스티븐 잡스는 나이키를 예로 들면서 자신의 회사 애플은 이것 이상을 위해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단순히 컴퓨터를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열정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을 신뢰한다고 말합니다. 나이키 광고를 만드는 사람들이나, 스티븐 잡스는 똑같이 상품을 만들어 팔면서도 다르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들은 상품을 팔면서도 자신들이 얼마나 위대한 가치에 헌신하고 있는지를 말했고, 그것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려서 그들의 제품을 사게 만듭니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에서 위대한 가치를 줄곧 말해 왔던 것은 바로 우리 그리스도교였습니다.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여 인류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핵심 가치를 옳게 말하고 그대로 살아야 하는 것은 바로 저와 여러분들인 신앙인들입니다.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전국에 계신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한 사람의 신앙인으로서 오늘 무엇이 진정 잘 사는 삶이라 생각하십니까? 세상 사람들과 어떤 다른 점을 보여 줄 수 있습니까?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다르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 주님께서는 매 시대마다 새로운 인물들을 부르셨습니다. 주님께 헌신된 사람들을 통하여 역사를 이끌어 가시고, 주님의 구원사역을 펼치셨습니다. 어둠과 악이 창궐하여 소망이 없다하는 시대에서도 주님은 어김없이 구원과 생명의 빛으로 우리를 찾아 주셨습니다. 오늘 이 시대에도 여전히 주님은 우리를 부르신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비전을 품게 하시고,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안목을 가지고 다시 한 번 이 세상을 옳게 변혁하는데 사용하여 주소서. 특별히 우리 생명사랑교회가 주님의 사역을 감당하는데 부족함이 없게 하여 주소서. 우리의 주님이시며 참된 구원자 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감사기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쁨의 소식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자비하신 하나님! 부활절 셋째주일을 보냅니다. 4.16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며, 4.19 혁명을 되새기며, 사회적 약자로 늘 소외당하는 장애인들을 생각하며 예배하고 기도합니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픔과 고난을 당하는 이들 곁에 주님께서 늘 함께 해 주시기를 빕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삶이 영생과 평화와 소망과 기쁨으로 넘치길 바라며,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을 찬양하며 우리의 가진 것을 드립니다. 몸과 영혼, 시간과 재능을 드립니다. 우리의 마음과 예물을 받아 주옵소서. 우리가 물질을 드림으로써 물질로부터 자유하고, 물질의 종이 되지 않게 하소서. 세상에 나아가 선교할 때에 우리를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여 주소서. 우리의 삶과 기도를 통해 주의 나라가 임하게 하소서. 모든 것이 주님께로부터 온 것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파송사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어깨를 쭉 펴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당당하게 그리고 힘차게 걸어 나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십시오. 예수님의 비전을 품으십시오. 성령님과 함께 세상을 바꾸어 가십시오.

* 축도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성령의 거룩한 친교가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관점으로 온 세상을 바라보는 생명사랑교우들과 이 시간 전국에서 함께 예배하는 모든 성도들 위에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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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소개] 탈존적 주체, 유목적 주체, 포스트휴먼 주체

이관표 박사의 논문 "미래 시대 새로운 주체 이해의 모색"은 세 명의 현대 및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의 주체 이해를 소개한다. 마르틴 하이데거, 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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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쇠퇴하고 신학생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고 필요하다"

한신대 김경재 명예교수의 신학 여정을 다룬 '한신인터뷰'가 15일 공개됐습니다. 한신인터뷰 플러스(Hanshin-In-Terview +)는 한신과 기장 각 분야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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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과 선에 쏠려 있는 개신교 전통에서 미(美)는 간과돼"

「기독교사상」 최신호의 '이달의 추천글'에 신사빈 박사(이화여대)의 글이 소개돼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키에르케고어와 리쾨르를 거쳐 찾아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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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봉사를 개교회 성장 도구로 삼아온 경우 많았다"

이승열 목사가 「기독교사상」 최근호(3월)에 기고한 '사회복지선교와 디아코니아'란 제목의 글에서 대부분의 교단 총회 직영 신학대학교의 교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