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초자연적인 하느님을 맹신하는 유신론적 교회는 사람들의 정체성에 대해 협소함과 편협함의 깊은 수렁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시 말해, 성서문자근본주의 신자(believer)들은 종교, 교회, 전통, 국가, 인종, 지연, 학연, 가문, 등의 작은 그림의 세계 속에 자신들을 감금시킴으로서 부족적인 생존의 두려움과 죽음의 공포와 이기적인 욕심의 노예생활을 자처하고 있다. 따라서 믿음체계가 만든 전지전능한 하느님에게 모든 것을 떠맡기고 그런 신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기 위해서 자신의 새로운 의식과 인간성은 불필요한 장애물이 될뿐이며, 더욱이 인간의 존엄성인 자율성과 창조성과 잠재력과 가능성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거부하며 생기가 없는 따분하고 지루한 삶을 살아간다.
21세기에 현대인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이해를 더 넓게 확장하면 할수록 우리 자신은 광대한 대우주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다. 인류는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야 비로서 우리 자신이 우주이며, 우주는 하나의 생명의 망으로써 모든 개체들이 상호의존관계 속에서 전체를 이루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마치 부모를 잃은 어린 아이가 다른 가정에서 성장하고 성인이 되어 어느 날 자신의 정체성과 고향이 어딘지를 발견한 것과 같다. 인간의 기원은 138억 년 전 빅뱅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우주먼지(star dust)로부터 탄생했다는 우주적 혈통을 인식하면, 우리의 삶과 가치관은 새롭게 변화되며, 생존과 죽음의 두려움과 이기적인 욕심에서 자유할 수 있다.
우주진화 세계관에 따르면, 더 이상 하늘 밖 다른 세계에 초자연적이고 인격적인 하느님은 존재하지 않는다. 고대인들이 믿었던 삼층 세계관 하느님은 지난 2-3백년 동안 과학이 발견한 공개적 계시의 현실에 적합하지 않으며, 더욱이 이분법적이고 부족적인 고대 종교의 하느님은 수천억 개의 별들을 포함하고 있는 은하계와 수천억 개의 은하계를 포함하고 있는 우주와 또다른 우주들로 구성된 대우주(다중우주)를 포용하기에 너무 협소하고 편협하다. 왜냐하면 이러한 하느님은 오직 기독교인만, 회교도인만, 유대교인만, 가톨릭교인만, 개신교인만, 장로교인만 구원하는 차별적이고 우월적인 하느님이기 때문이다. 인류역사상 최초로 지구의 대기권을 벗어나, 우주 공간에서 혹성 지구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우주 비행사들은 우주에서 지구로 돌아온 뒤, 자신들의 세계관과 가치관이 크게 변화하는 체험을 가졌다. 그들이 밝히기를, 인류 역사상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히 빠른 속도(시속 3-5만km)로 멀리 비행한 거리는 우리의 우주에서는 무(無)에 가까울 정도였다. 그리고 그때 무한한 대우주를 눈앞에 마주하고 있었다고는 해도, 그것은 우리가 볼 수 있는 한계를 넘어 무한하게 펼쳐져 있는 대우주의 극히 일부분, 정말 하찮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즉 우리는 무한한 우주 속에 있으면서 아주 미소한 부분에 감금되어 있는 존재인 것이다.
대우주를 인식하는 우주진화 세계관에서 하느님은 교리적으로 믿어야하는 객체적인 존재가 아니다. 믿으면 기적을 일으키고, 믿지 않으면 징벌을 내리는 것은 하느님이 아니다. 그런 하느님은 사람들이 이기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해 만든 노리개에 불과하다. 하느님이란 말의 의미는 인간이 쌓아 놓은 경계와 장벽들을 넘어서는 우주적이고 통합적인 삶의 방식이고 비전이다. 다시 말해, 하느님은 생명/죽음, 구원/징벌, 거룩한 것/세속적인 것, 흑/백, 더러운 사람/깨끗한 사람, 가진 사람/갖지 못한 사람, 배운 사람/못배운 사람, 힘있는 사람/힘없는 사람, 대우받는 사람/버림받은 사람, 남성/여성, 동성애자/이성애자, 인간/동물, 나의 종교/다른 종교, 우리 인종/다른 인종 등등 인간들이 쌓아놓은 이분법적 경계들과 안전장치의 분리대라는 생존의 장벽들을 넘어 모든 것들을 포용하는 포월적인 삶이다. 우리의 조부모님들이 태어났던 때의 과학자들은 은하계가 우주 전체이고, 태양은 은하계의 중심 즉 우주의 중심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늘 21세기에는 인공위성을 외계에 올려보내 창문 밖으로 지구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오늘 젊은 세대들은 지구에서 610km 상공에 있는 허블 우주망원경에 대해 배운다. 이 망원경 덕분에 우주에 수천억 개의 은하계와 은하계 안에 수천억 개의 별이 있으며, 우리의 우주 이외에 얼마나 많은지 미지수의 다른 우주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또한 2023년에 하와이 섬에 세계 최대 천체 망원경이 설치되면 130억 광년 거리까지 우주를 관측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우주세계는 우연히 자연적으로 출현했다. 이 세계 이외에 다른 세계는 없으며, 전지전능한 하느님도 존재하지 않는다. 인격신론의 초자연적인 하느님이 존재할 장소는 어디에도 없다. 하느님이란 믿어야하는 교리도 아니고, 객체적인 존재도 아니다. 하느님은 단지 삶의 우주적이고 통합적인 방식이다.
허블 우주망원경이 보낸 사진들 중에 뒷배경이 초록색이며 현란한 황금색 가스기둥들을 보여주는 사진이 있다. 이 기둥 모양들을 이글 네블라(Eagle Nebula)라고 하며, 새로운 별이 탄생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과학적 발견은 종교적 또는 영적 의식을 성숙하고 심층적인 단계로 이끌어주는 좋은 계기가 된다. 현대인들은 허블 우주망원경과 다른 우주망원경들이 보여주는 우주의 살아있는 모습들을 통해 태초의 우연성과 자연성과 창조성과 경이로움을 느낀다. 허블 우주망원경의 공개적 계시는 인류역사에서 가장 획기적인 발견이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은 초자연적인 하느님을 무작정 믿는 믿음 때문에 혼돈과 갈등에 빠져있으며, 자율적인 깨달음에 이르기를 갈망하고 있다. 한편으로 수많은 사람들은 허블 우주망원경이 보내주는 사진들을 보고 우주와 친밀함을 느끼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갖는다. 우리 각 사람은 자신의 몸 속에 138억 년의 우주 DNA를 지니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태초의 별들은 우리의 족보의 일부분이다. 이제 우리는 우주천체와 더욱 친밀하게 되었다. 우리의 몸을 이루고 있는 모든 원자들은 태초에 별 속에 있었으며, 별은 오랜 세월동안 살아있다가 폭발하고 다시 새로운 별로 태어나서 은하계를 이루고 우리의 별 지구가 되었다. 우리의 나이는 138억 년이다.
인간은 진화하는 우주가 구체화된 모든 개체들 중에 하나이며, 자아의식을 지닌 특이한 생물종이다. 인간은 과학혁명과 인식혁명을 통해서 자신의 뿌리에 대해서 탐구하기 시작했으며, 자신은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 즉 탄생과 죽음에 대해 심층적으로 깨달아 알기 원한다. 진화의 서사시는 지구에서 최초의 세포의 기원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138억 년 전 빅뱅으로 출현한 우주 전체의 기원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이다. 지난 수십년 동안 우주비행사들과 물리학자들과 천체학자들이 발견한 공개적 계시는 깜짝 놀랄만하다. 예를 들자면, 우주의 은하계 숫자(약 2천 억-3천 억개)와 각각의 은하계의 별의 숫자(약 3천 억개)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우주의 한 개체로 존재하는 블랙홀(Black hole)과 펄사(pulsar 맥동성)와 광자(photon)와 쿽크(quark)를 발견한 것은 경이롭다. 주목해야 할 것은, 우리의 우주는 끊임없이 팽창하고 있으며 언젠가 폭발하여 새로운 우주가 출현할 것이다. 우주의 법칙에 따르면 우주에서 죽음은 새로운 시작의 탄생이다. 이 법칙에 따라서 인간의 생명은 일회적이며, 영원한 존재가 아니다. 우주 이야기는 인간의 이야기이다. 다시 말해, 우주진화 이야기는 모든 인종들과 종교들과 문화들과 사상들을 포용한다. 우주 이야기 안에서 우월주의, 배타주의, 제국주의, 부족적인 민족주의는 모순이고 불가능하다. 우리는 우주와 상호의존관계에 있으며, 우주 전체를 구성하고 있는 개체들이며, 우리는 우주 그 자체이다. 따라서 우주진화 이야기는 온 인류에게 공통의 경전이다.
인간은 빅뱅의 우주먼지에서 왔다. 우리는 6천 년 전 초자연적인 하느님이 미리 설계한대로 하루 만에 완벽하게 창조한 완성품이 아니다. 창조주 하느님을 문자적으로 맹신하는 믿음은 21세기 주류 사회에서 설득력과 신뢰를 잃고, 페기처분의 상태에서 교회 안에 버려졌다. 오늘 일반적으로 현대인들은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처럼 자신은 우주먼지로부터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다.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화학원소들은 138억년 전 빅뱅에서 시작되었다. 우주먼지인 원자들이 생겨난 것은 단순히 과거에 일시적으로 발생한 일이 아니며, 지금도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과학자들은 분광계와 다른 측정기구들을 사용하여 별에서 발하는 빛의 스팩트럼(분광)에서 화학적인 특징을 식별하여 물질의 구성요소를 검출한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작업을 통해 별이 새로운 원자핵을 탄생시키는 것을 발견했다. 다시 말해, 지금 이 순간에도 은하계들에 퍼져있는 수많은 별들에서 창조적인 일이 일어나고 있다. 뉴톤에서 아인슈타인에 이르기까지 과학자들이 발견하기를 빛은 입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따라서 별에서 떠나 지구에 도달하는 광자의 흐름으로부터 별이 지니고 있던 화학원소들을 측정할 수 있다. 1957년에 최초로 과학자들은 수학과 핵화학과 열역학을 이용하여 빅뱅에서 탄생한 수소원자들이 엄청난 압력으로 계속해서 복합적인 원자들과 융합해가는 단계들을 계산할 수 있었다.
138억년 전 빅뱅 이후에 시작된 핵융합이 없었더라면 복합적인 원자들과 분자들과 세포들과 지구상의 지층들과 생물들은 불가능했다. 이러한 과학의 공개적 계시 없이, 별들은 아주 멀리 떨어진 태양들이며, 유한하며, 오래 전에 죽은 별들은 우리 자신들의 조상들이라는 사실을 인식할 수 없다.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는 우주먼지에서 만들어졌다는 우리의 혈통적인 뿌리에 대한 과학적인 이야기를 이해한다. 우리는 우리의 족보가 138억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의 과학적인 기원의 서사시는 온 인류에게 성스러운 이야기이다. 과학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우주와 생명의 출현은 단순히 과거에 일어난 사건이 아니다. 우주 이야기는 개인적으로, 민족적으로, 세계적으로 인류 공통의 창조 이야기이다.
결론적으로, 인간은 우연히 자연적으로 우주먼지에서 왔고, 우주먼지로 돌아간다는 과학의 공개적 계시는 온 인류에게 공통의 경전이며, 인간의 생명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 우주적으로 이해하도록 요청한다. 종교는 과학의 발견을 변형시키거나 거부할 수 없다. 인간의 생명은 일회적이다. 지금 여기 지구에서 우리는 각자 다양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 어떤 사람은 고통과 절망 속에서 어떤 사람은 좀 더 안전하고 편안하게 살아간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우리는 오늘 하루, 순간순간에 담대하게 만족하며 생기가 넘치게 살 수 있다. 다만 인간의 존엄성과 우주의 법칙에 솔직하고 겸손해야 한다. 인간의 존엄성이 자율성과 창조성과 잠재력과 가능성이듯이 나의 삶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나의 삶은 내가 100% 책임지고 이것은 온전히 나의 삶이라고 인식하면 어떠한 상황에 처해있더라도 행복할 수 있다. 현대 종교의 기능은 사람들이 과학의 기초 위에서 초자연적인 신에게 의존하지 않고, 부족적인 생존의 두려움과 죽음의 공포로부터 자유하고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탐구하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참된 인간으로 사람답게 살아가는 삶과 세계를 건설하도록 격려해야 한다.
※ 이 글은 전 지질학자인 최성철 은퇴목사(캐나다연합교회)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필자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외부필자의 기고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