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특별기고] 종교인 냄새와 '그리스도의 향기'(고후2:15)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

페르소나, 배우, 그리고 인생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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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사진= 지유석 기자)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본지 자문위원)

4월의 마지막 주일이었던 지난 한주 동안, 언론과 세간의 회제는 미국의 올해 오스카상 시상식에서 여배우 조연상을 받은 윤여정(74)님의 이야기로 꽃피었다. 코로나19로 힘들고 정치경제적으로 짜증나고 피곤하던 국민들에게 한더위 여름날 한줄기 소나기처럼 상쾌함을 안겨주었으니 자랑스럽고 축하할 일이다. 그러나, 오스카상을 받았다는 트로피에 대한 관심보다는 산전수전 겪은 명배우 윤여정씨가 쏟아놓는 입담과 그의 인간성 자체에서 빛을 발하는 어떤 매력이 세계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 그게 무엇일까? 74세 노경에 이른 대선배 영화배우로서 그 권위와 관록이 대단함에도 불구하고 권위적이거나 우월의식과 열등의식에서 완전 해방된 휴머니즘의 진수를 맛볼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중년 노년층만이 아니라 젊은 층에서도 매력을 느끼는 점은 배우 윤여정에게서는 경륜 많은 노년층의 부모, 선생, 교수, 성직자들에서 흔히 공통적으로 냄새풍기는 이른바 "꼰대 기질"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꼰대'라는 어휘는 1960-80년대에 중고등 학생들이 권위적인 부모나 학교선생을 가리키는 은어였다. 점차로 직장에서 상사들이 후배들에게 지난날 자기경험을 보편화하여 설교조로 충고조언 한답시고 잔소리를 늘어놓고, 자기들의 특정 환경에서 겪은 경험을 후배들에게 강요하는 정신적 갑질을 "꼰대질"이라고 한다. 무엇보다도 꼰대들의 특징은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에서 유연성, 유머 감각, 경청하는 자세가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대단히 도덕적이고 모범적이고 심지어 성실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성에 매력이 없고 어딘지 성품이 차갑고 이중인격자 같은 느낌마저 준다는 것이 꼰대기질의 특징이다.

윤여정씨의 오스카상 수상을 계기로 세인의 화제가 된 그분의 영화배우로서 일생여정을 접하면서 필자는 새삼스럽게 "인생이란 한편의 알 수 없는 드라마, 인간은 배우"라는 문호 셰익스피어의 명구가 떠오르면서 크리스천으로서 자기정체성과 참다운 배우 역할을 생각하게되었다. 우리는 배우역할을 생각할 때, 그것은 영화드라마의 대본에 충실하고 연출자의 의중에 맞게 행동하는 "어떤 극중 인물 역할을 하는 연기"라고 생각하고, 그 연기를 하는 진짜 인간 윤여정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좋은 영화나 명배우는 그 연기를 할 때 작품 대본에 올인 즉 '몰입'할 때 좋은 작품이 나온다. 물론 배우의 연기활동은 '밥 먹기 위한 직업'이지만, 진정한 배우는 작품 찰영 시간 동안은 밥벌이를 생각 않고 연기에 몰입한다. 연기하는 배우로서 그 때 그 시간이 진정한 자기 존재의미를 실현하고 드러내는 참 삶이다. 맡은 배역의 촬영이후 일상생활이 도리어 부차적 삶일 수 있다. 참 배우는 연기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지 살기위해서 연기하지 않는다.

희랍사람들은 극중 인물이 얼굴에 쓰고 연기하는 의상()이나 특히 얼굴에 쓰는 마스크(Mask, 탈)를 페르소나(PERSONA)라고 불렀고 그 단어에서 인간의 인격성과 그 성품을 나타내는 영어단어 '퍼슨'(Person)이라는 어휘가 생겼다. 이 말을 진지하게 생각하면, 인간의 삶이란 아버지, 아들, 딸, 임금, 신하, 국회의원, 변호사, 목사, 신부, 교수 등등이 알고보면 '페르소나'이고 각각의 페르소나를 정말 명배우가 연기에 몰입하듯이 제대로 자기 역할을 충실하게, 깊이 있게, 제대로 하는 것이 인생 삶이라는 것이다.

종교적 영성가들과 위대한 종교전통은 겉에 나타난 표층적 인간의 페르소나가 '참 자기'라고 착각하지 말고, 그것(페르소나) 속에 깊이 내장되어 있는 참 인간의 본래성(하나님의 형상, 불성, 신성, 심층자아)을 중요시 하라고 말한다. 지당한 옳은 말씀이지만, 현실적 페르소나 역할 하는 인생드라마에서 자기 배역에 몰입하는 인간배우 역할을 떠나서 '심층적 자아'를 찾는 것은 공허한 일이 될 위험이 다분하다.

종교의 모든 상징들과 종교인은 페르소나이고 그 속에 알짬은 영성이다. 영성 잃은 종교는 껍데기 탈을 쓴 형식들에 불과하고, 종교 없는 영성이란 메마른 땅에 떨어진 씨앗 같아서 싹이 나더라도 토양이 메마르고 흙이 얇아서 나무로서 뿌리내리어 자라지 못한다.

종교 냄새와 그리스도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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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유튜브 영상 화면 갈무리)
▲재치있게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는 배우 윤여정 씨.

1년 365일도 더 넘게 종교인들 특히 매주일 교회당에 모여서 이런저런 종교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그리스도인들은 일생 첨으로 희한한 경험을 하고 있다. 주일날이나 수요일, 금요일등 집회에 함께 모여 얼굴 맞대고 찬송 부르고 기도하고 성경공부하고 성도 교제를 나두던 일이 그렇게 귀중한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는 기회였다. 영상매체를 통해 비대면 형식으로 목사님 설교도 듣고 성경공부도 할 수 있지만, 느끼는 감정이 다르고 받는 은혜체험의 맛이 다르다. 본훼퍼 목사가 좋아했던 시편구절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그리 아름다운고"(시133:1)노래하듯이 교회라고 부르는 신앙 공동체가 귀중함을 깨닫는 기회가 되었다. 집을 떠나 객지에서 고생해본 사람만이 가족이 기다리는 집이, 설혹 가난한 초가집일지라도 얼마나 귀중한가를 절감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잃은 점만 있는게 아니라 얻는 점도 있다. 본의든 본의 아니든 지난 일년 그리스도인들은 "홀로 있음"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커다란 교회당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건물 안에 모이는 성도의 공동체가 중요하다. 성도의 공동체가 흩어지고 허물어져 홀로남는 경우일지라도, 내 맘 깊은 곳에 있는 지성소 같은 '마음의 성전'이 있어 성령께서 내주하시고, 시시 때때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고, 신령한 환한 빛이 비춰오는 '영성이라는 제단'이 있음을 새삼스럽게 재발견하는 기회가 되었다.

철학자 화이트헤드는 "종교란 본질적으로 한 개인이 자신의 고독함을 진지하게 대면하는 일이다"고 갈파했다. 홀로 있음의 고독감이 곧바로 영성은 아니지만,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특히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비록 같은 성도들일지라도 무리 중에 한사람으로 더불어 있을 때, 사람은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기 힘들다. 예의를 차리고, 가정과 교회와 사회가 자기에게 씌여준 역할극의 페르소나 때문에 홀로 정직하고 당당하게 존재할 수 없다.

1990년 이후로 한국 기독교는 사회로부터 외면당하고 비판받아온 표적이 되고있다. 그 근본이유가 무엇일가? 단적으로 말하면, 예외가 있지만, 교회다니는 대부분의 한국 기독교인들에게서 풍겨나오는 종교냄새가 역겹고 싫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향기'(고후2:15)를 기대하건만, 그리스도의 향기는 없고 기독교라는 종교냄새가 너무 강해, 중고등생들이 "꼰데들"을 싫어하듯이 사회사람들은 교회다니는 사람들은 기독교 "종교 꼰데들"로 느낀다는 것이다. 그들은 정직성, 성실성, 타인에 대한 배려와 관용성등에서 한국 평균수준보다는 더 높다는 신뢰를 저버렸다는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라, 그들의 기독교인들에게 대한 염오감정을 깊이 들여다보면, 도무지 교회다니는 사람들에게서는 일반적으로 소탈한 인간미, 위트와 유머, 누구와도 어울리는 멋갈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오스카상을 받은 윤여정이 한국 기독교인들보다 더욱 도덕적이고 사회봉사적이고 자기희생적 인간이어서 매력을 갖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녀에겐 소탈하고 부담없이 가까이 하고싶은 생명의 포용성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도덕적 근엄함과 위선, 자기종교 우월감에 도취한 배타적 독선, 교리적 도그마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이다. '신앙좋다'는 모범적 교회다니는 기독교 신자들의 삶과 언행 안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보다는 '기독교 종교냄새'가 난다는 것은 깊이 반성해볼 일이다.

예수의 전인적 삶과 언행을 '페르소나' 관점에서 이해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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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영화 <미나리> 스틸컷)
▲영화 <미나리>의 한 장면.

예수님의 공생에 3년 동안 민중들과 당시 도덕적이고 지극히 모범적인 종교인들에게 각인된 인상은 무엇인가?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마11:19)라는 세평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복음서가 전하는 예수의 이러한 이미지는 교회가 꾸며낸 선교적 동기가 아니라 지극히 사실일 가능성이 거의 100%에 가까운 성경구절이다. 그렇다면 요즘 말로하면, 예수는 시장바닥에 허름한 막걸리 파는 주막집에 쉽게 들어가 서민들과 스스럼 없이 "순대국과 막걸리 잔을 기울이는 괴짜 랍비"였을 가능성이 크다. 그의 파격적인 언사의 촌철살인 같은 말씀은 무엇인가? 필자 생각으로서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있는 것이 아니다"(막2:27)는 폭탄 같은 말씀이셨다고 생각한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위에서 필자가 인용한 성경구절을 잘 알고 있고, 교회 설교강단에서 수 백번 들었을 터이고, 신학자들을 초청하여 심오한 성경주석 강의도 들었을 것이다. 예수의 삶과 언행을 드러내는 위에서 인용한 두 군데 성경구절만 보아도 예수님 인격과 인품에서 "꼰대냄새"는 털끝만치도 나지 않는다. 근엄하지도 않았다. 예수를 올무에 빠뜨리려고 난해해한 질문을 해오는 종교 무리배들에게 기상천외한 위트와 재치 있는 예화로 도리어 그들을 당혹하도록 하였다. 예수가 제일 싫어하신 부류사람들은 위선적이고, 거드럭거리며, 권위적이고, 자신들이 하나님을 지켜드리는 호위병이나 되는 것처럼 행세하는 사람들이었다.

예수는 하나님과 천군천사들 앞에서 '인자', '사람의 아들', 곧 인간 즉 사람이란 이런 피조물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탁월한 인류의 "대표배우"였다. 동시에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란 이런 분"이라고 천부하나님을 투명하게 보여주는 하나님과 찬사들의 "대표배우"였다. 헬라교부들은 헬라 철학적 본질개념을 학문적으로 구사하여 예수의 "인성과 신성"이라는 어려운 교리적 언어를 만들어 냈다. 거듭 말하거니와, 여기에서 '배우역할'이라는 필자의 말을 가볍게 여기는 독자들은 필자의 말에 분노를 느끼고 경망한 신학자의 무책임한 소리라고 여길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단지 한 가지만 기억하고 명심하면 된다. 진정한 명배우는 맡은 배역을 스스로 몰입하여 연기할 땐, 그 연기가 진짜 배우의 참 생명이요, 살아가는 존재의미요, 가장 행복하고 가치 있는 존재방식이라는 점이다.

복음서는 다음같이 전한다: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 처형 집행을 총책임지고 감독했던 로마군대 백부장이 혼자 중얼거리기를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숨지심을 보고 이르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막15:39). 오늘 말씀 묵상의 성경본문 고린도후서 2장 15-16절은 다음같다: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고후2:15-16)

참다운 크리스천들에게서는 '그리스도의 냄새'가 그들의 인격과 삶과 언행에서 풍겨 나오는데, 그 냄새가 멸망 받을 자들에게는 역겨운 죽음의 냄새 곧 독이 되고, 구원받을 자들에게는 향기로운 '생명의 냄새' 곧 생기가 된다는 것이다. 핵심적 단어는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했지 '기독교인 냄새'라고 성경은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는 윤여정(74) 여배우의 오스카 상 수상식을 전후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으면서 필자 김경재(81) 나에게서는 무슨 냄새가 나는가 맡아본다. 기독교 신학자 냄새와 성직자 목사 냄새 난다는 소리는 들었어도 '그리스도의 향기'가 난다는 소릴 들어보지 못해 스스로 움찔 놀랬다. 독자 여러분의 신앙생활에서는 어떠한가 몹시 궁금해 하면서 봄의 꽃들이 피고지는 4월의 마지막 주간을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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