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암신학연구소(소장 김균진 연세대 명예교수)가 10일 안암동 동연구소 세마나실에서 '마르크스의 물질주의와 기독교 영성'이란 주제로 제2차 세미나를 가졌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진보, 보수 신학자들이 마르크스의 사상을 놓고 열린 대화를 이끌었다는 점에서 실로 그 의의가 컸다.
이날 발제는 마르크스의 실천적 유물론과 유물론적 역사관에 바탕을 두고 유물론적 신학을 전개해 온 강원돈 박사(한신대 은퇴교수)가 맡았다. 강 교수는 발제를 통해 구시대적 잔재나 유물 정도로 평가절하 되고 있는 마르크스의 실천적 유물론과 유물론적 역사관에 대해 "여전히 현실의 문제를 탐색하고 해법을 모색하도록 영감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고 우리 시대에 유물론적 신학을 발전시키는 것은 여전히 의미가 있다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그는 마르크스의 사상이 기독교와 양립 가능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사상을 비판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이기적이며 개인주의적 영성에 빠진 오늘의 한국 기독교에 이타적이며 사회 실천적인 영성의 가치를 일깨워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특히 한국 기독교가 예나 지금이나 극도로 혐오하고 거부하는 공산당의 공식적인 세계관의 바탕을 이루는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에 대해 "그것은 마르크스의 사상이 후대에 이르러 변질된 것"이라며 "마르크스의 현실분석 방법이 그가 그토록 경계하고 기피했던 형이상학적 도식주의로 대체돼 정작 마르크스가 가다듬은 실천적 유물론과 유물론적 역사관을 가리고 말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의 교조주의는 비판되어야 하고 극복되어야 하지만 그것들과 함께 마르크스의 실천적 유물론과 유물론적 역사관을 함께 폐기한다면 그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강 박사는 마르크스 사상의 유익에 대해 먼저 "교회가 제도로서 세상에 현존하면서 빠져드는 허위의식을 자기비판적으로 성찰하는데 실천적 유물론의 시각은 여전히 큰 도움이 되지 않는가"라며 "실천적 유물론과 유물론적 역사관이 제공하는 관점과 방법은 교회가 생산하고 수용하는 지식에 대한 메타비판을 수행하는데 적절한 도국 되지 않는가?"라고 밝혔다.
마르크스의 사회 과학적 현실 분석이 자본주의 현실 속에서 상품 소비, 소유권 등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의 현실 적합성을 높이는데 기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다.
그는 "교회는 사람들이 상품 소비에 중독되는 것이 큰 문제라고 개탄한다. 글나 자본주의 사회의 '상품 관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소비주의 문제에 대한 해법을 어떻게 찾을 수 있겠는가? 상품에 대한 욕망을 분석한다고 해서 '상품 관계'가 분석되지는 않는다"라며 "그것을 제대로 파악하도록 돕는 도구는 (마르크스의)'정치경제학 비판'의 틀에서 기획되는 사회과학적 현실분석"이라고 했다.
또 "소유권과 그 행사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교회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산권과 그 행사가 공동체와 생태계를 걷잡을 수 없는 위기로 치닫게 한다고 걱정한다. 재산권과 그 행사에서 비롯되는 문제를 단지 탐욕에 대한 비판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겠는가? 재산권이 사람의 물건에 대한 관계에 국한 되어서는 안 되고 물건의 귀속 관계를 매개로 해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라는 것을 분석하지 못하고서야 어떻게 그 해법을 모색할 수 있겠는가"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교회가 작은 사람들을 편들고 그들을 해방하는 정의로운 하나님을 따르겠다고 신앙의 결단을 감행한다면 그 교회는 작은 사람들이 처한 현실 관계들을 제대로 분석하고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며 "사람이 '사회적 관계들의 총체'로 현존한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그 사람의 심리와 의식과 영성의 문제를 위시해서 사람들 사이의 문제를 역사적이고 사회과학적인 관점과 방법을 갖고서 살필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전했다.
강 박사의 발제에 이은 박명수 박사(서울신대 명예교수), 홍인식 목사(NCCK 인권센터), 강근환 박사(서울신대 전 총장)의 논찬이 이어졌다. 특히 박 교수는 보수파 신학자로서 마르크스의 사상에 강경한 입장을 피력했다.
특히 박 교수는 마르크스가 종교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며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고 주장한 데에 "종교의 역기능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면서도 "종교가 아편이라는 주장을 다 수용한다면 기독교는 존재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기독교는 내세를 말하면서 인간에게 도덕을 강조했고 절대자를 말하면서 인간의 평등을 언급하고 용서를 말하면서 화해를 시도했고 인간의 죄성을 말하면서 권력에 대한 견제를 말했고 사랑을 말하면서 공동체를 구성하려고 했다"고 반박했다.
또 마르크스의 사회과학적 현실분석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주장도 내놓았다. 그는 "노동을 중시하며 노동가치설을 주장함으로 지적 활동을 경시하며 창의적인 새로운 아이디어를 개발하지 못했고 계급투쟁을 강조해 사회의 다양한 구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프롤레탈리아 전체의 운명을 소주의 지도자들에게 맡겨버림으로서 또 다른 계급을 형성하게 만들었으며 선의의 경쟁을 부정적으로 평가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데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마르크스의 이론을 변하지 않는 과학적 진리로 여기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독선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시했다. 박 교수는 "후대의 스탈린주의자들에게서 더욱 교조화되었지만 이런 요소는 자신들의 이론을 과학적이라는 말로 포장하며 절대적으로 옳다는 관념을 심어 주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마르크스 역사발전 단계는 마르크스의 하나의 가설에 불과한 것"이라며 "역사에는 수많은 변수가 존재함으로 역사발전이 자연의 법칙처럼 불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역사관을 자연법칙으로 설명해 사람들을 호도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