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팬데믹의 위기에서 교회가 믿는 하나님에 대하여

최성철 은퇴목사(캐나다연합교회)·전직 지질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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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pixabay)
▲팬데믹의 위기에서 교회가 믿는 하나님에 대하여

2020년 3월 11일 세계보건기구는 1968년 팬데믹(홍콩독감), 2009년 팬데믹에 이어 세 번째로 코로나바이러스19에 의한 팬데믹을 선언했다. 최근에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와 세계보건기구는 공기 전파를 코로나19의 주요한 전염 경로로 공식 인정했다. 과학자들의 권고에 따르면, 바이러스 감염 확산을 중단시키고 무수한 인명피해를 막을 수 있는 길은 오직 모든 사람들이 방역수칙을 엄수하고, 마스크 착용과 사회적 거리두기 밖에는 없다. 이러한 지구적 위기상황에서 기독교 신자들이 주목해야 할 것은, 그들이 진심으로 예수를 따른다면 예수가 가르치고 살아내었던 하느님의 의미를 예수처럼 살아내어야 한다. 만들어진 하느님 예수를 떠나보내고, 참 사람 예수의 새로운 의식과 인간성을 살아내어야 할 때이다. 하느님에 대한 예배와 기도는 공기전파로 감염되는 바이러스를 막지 못한다. 바이러스는 인간의 뜻과는 상관없이 미래에도 계속해서 존재할 것이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팬데믹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할 것이다. 오늘 교회가 믿는 유신론적 하느님은 내일을 모르는 망상의 하느님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면, 팬데믹 이후에 유신론적 종교체제와 믿음체계는 지각변동의 개혁이 절실히 필요하게 되었다. 유신론적으로 정의된 하느님은 "초자연적 능력을 갖고 있으며, 이 세계 밖에 존재하며, 기적적인 방법으로 이 세계에 개입하여 축복하거나 징벌하고 신적인 의지를 성취하며 기도에 응답하고 또한 연약하고 무력한 인간을 돕기 위해 오는 존재"이다. 과거에 이 유신론적 신관(神觀)이 정립되자 사람들의 두려움과 공포는 감소되는듯했다. 왜냐하면 원초적으로 인간은 두려움과 공포 때문에 유신론적 신(神)을 창조했기 때문이다. 인간들은 자신들보다 더 강한 존재, 자의식적 존재인 인간을 보호하고 방어할 수 있는 초월적인 존재를 상상했다. 이처럼 인간의 자의식에서 비롯된 두려움과 공포에 대처하기 위한 유신론적 안전장치로 제도적 종교가 생겨났으며, 하느님의 진노를 피하고 하느님의 은총을 얻을 수 있는 적절한 예배 형식과 하느님의 인정을 받기 위한 도덕적인 행동 방법이 만들어졌다. 좋은 예로, 히브리인들은 십계명을 창안했고, 교회는 온갖 신조들을 만들었다.

유신론의 특성은 어떤 초월적인 힘이 사물들에게 생명력을 주고 또한 사물들이 고유한 작용을 하도록 만들고 있다고 믿는다. 삼층 세계관의 유신론적 신자들은 초자연적인 힘에 대해 영(spirit)이라고 부른다. 영은 눈으로 볼 수 없었으며, 인간의 육체와 분리된 이원론적이고 객체적 존재이다. 내세지향적인 신자들은 영의 세계와 관계를 맺고 그것의 은총과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맹신한다. 그들은 하늘로부터 천둥, 번개, 바람, 비, 더위, 추위 등이 내려오는 것을 목격한다. 이런 힘들을 통제하는 영이 하늘 위에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 영은 변덕스럽고 이기적이고 부족적이어서 고대인들은 자신들에게 우호적이도록 만들기 위해 희생재물을 바치는 예배형식을 고안했으며, 오늘도 여전히 현대 기독교인들도 예배와 기도를 대단히 중요하게 믿는다. 그들의 예배와 기도의 대상은 인간의 육체와 분리된 초자연적인 영이다. 또한 그들은 그 영이 자연 세계의 만물에 내재하고,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 생명력을 준다는 원시적인 믿음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인간과 분리된 영은 타자로써 외부에 존재하며, 초자연적인 힘을 지닌 존재로서의 하느님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위기상황에서 그들은 방역수칙을 불법적으로 어기더라고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대면예배는 인간의 생명 보다 더 중요하다는 망상에 젖어있으며, 인간의 새로운 의식과 인간성을 폄하한다. 이것이 영의 세계와 관련된 유신론의 본질이며, 코로나19 팬데믹에서 바이러스 감염 확산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주목해야 할것은, 수천년의 인류사에서 그 힘은 인간의 두려움과 공포를 억제하지 못했으며, 수많은 천연재해와 전염병과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에서 인간들을 보호하고 방어하지 못했다.

예수는 인격신론의 노예가 된 유신론적 성전종교와 사람들을 이분법적으로 차별하고 탄압하는 종교가 신봉하는 유신론적 하느님을 철저히 반대했다. 예수가 죽은 후, 그의 정신을 계승한 사람들이 우주적이고 통합적인 삶의 공동체를 이루었다. 이것이 초대 교회가 탄생한 동기와 목적이었다. 성서의 예수 이야기 안에서 유신론적 냄새가 진하게 풍기는 것은, 예수가 죽은 후 반세기가 지난 후 최초로 성서 원본이 기록되었고, 많은 필사가들이 원본을 복사하여 수많은 사본들을 만드는 과정에서 역사적 예수의 정신을 삭제하고 유신론적 하느님 예수를 삽입한 것이다. 현대 기독교인들은 성서비평을 통해서 성서의 문자적 기록에 잘 드러나지 않는 숨겨진 역사적 예수, 참 사람 예수, 그 예수의 우주적이고 통합적이고 무신론적인 하느님의 의미를 밭에서 귀한 진주를 발견하듯이 찾아내어 그 예수가 산 것처럼 살아야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지구적인 위기에서 교회는 예수의 생애를 포장한 유신론적 하느님을 벗겨내어야 한다.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따르는 기독교인으로 살기 원한다면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예수를 이해했던 삼층 세계관적인 원시적 이미지들을 폐기처분해야 한다. 교회에서는 물론 개인적인 삶 속에서 유신론적 언어들은 산산조각 부셔버려야 한다. 예수 이야기는 비기독교인들과 무신론자들에게도 이해가 되어야 한다. 유신론은 더 이상 인류사회에서 전혀 필요하지 않다.

인류사에서 자연-인간-생명에 제멋대로 개입하고 파괴하는 유신론적 하느님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에서 교회가 맹신하는 초자연적인 하느님은 설득력이 없으며,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교회가 사용하는 하느님 언어가 21세기 과학시대에 비상식적이어서 설득력과 효력을 잃었다. 역사적 예수가 가르치고 몸소 살아내었던 하느님의 의미는 오늘 교회가 맹신하는 이분법적이고 부족적인 하느님이 아니다.

예수는 인간의 존엄성이 존중되며 인간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삶은 인간에게 가장 소중하다고 가르쳤다. 따라서 인간을 폄하하고 탄압하고 착취하는 유신론적 종교체제와 믿음체계에 대한 맹신과 수동적인 충성을 철저히 배척했다. 예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의식과 인간성을 깨우쳐주었으며, 제자들에게 절망과 고통에 빠져 암흑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빛과 소금이 되라고 도전했다. 예수가 가르쳤던 하느님이란 말은 지극히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언어이다. 다시 말해 인간의 언어는 인간 체험 밖의 실재를 서술하지 못한다. 예수에게 하느님이란 말은 인간이 사용하는 그 언어 영역 밖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예수는 하느님의 의미를 사람들의 의식과 인간성에서 찾으려고 했다. 예수의 하느님은 내세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망상의 존재가 아니었으며, 하느님은 지금 여기 현세적인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살아내는 삶의 방식이고 비전이다.

지난 5-6백 년 동안의 과학혁명과 더불어 지식혁명과 인식혁명은 전통적인 하느님 개념을 믿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 다시 말해, 하느님이란, 저 하늘 위에 또는 저 밖에, 이 세계와 분리된 다른 세계 즉 영의 세계에 인간의 육체와 분리된 타자로서 존재하는 초자연적인 힘이나 존재가 아니다. 하느님은 거룩한 섭리에 따라 인간 세상에 개입히고 멋대로 조정하고, 사람들의 기도에 응답하고 보상하고 심판하는 존재라고는 더 이상 생각할 수 없다.

오늘날 유신론적 하느님을 떠나보내는 무신론자 기독교인들이 급증하고 있다. 무신론자라는 말은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히 초자연적인 하느님의 존재를 반대하는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에 대한 유신론적인 정의를 거부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따라서 유신론을 부정하면서도 하느님을 부정하지 않는 것은 가능하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비단 신학을 전공한 사람들 조차도 참 사람 예수의 하느님과 내세적인 중보교회의 유신론적 하느님을 분명하게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

21세기 우주진화 세계관의 주류 사회에서 더 이상 하느님에 대한 유신론적 정의는 설득력과 효력이 없다. 니체가 선포했듯이, 전통적인 교회가 신봉하는 유신론적 하느님은 죽었다. 1세기의 초대 교회는 참 사람 예수의 인격에서 하느님의 새로운 의미를 인식했다. 하느님이 인간이 되었다는 성육신과 예수는 하느님이라는 삼위일체 같은 유신론적 정의의 교리들은 예수의 가르침과 그의 삶 곧 참 사람 예수의 정신을 말살하는 것이다. 현대 기독교인들은 역사적 예수가 누구였는지, 그리고 21세기 과학시대에 예수의 의미는 무엇인지 그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 하느님에 대한 전통적인 유신론적 정의를 떠나 보내야 한다.

인류사에서 유신론이 등장한 때는 인간의 자의식으로 생존의 두려움과 죽음의 공포가 엄습해 왔던 때이다. 고대 삼층천의 세계를 폐기처분하고 근대 세계를 만들어낸 과학혁명과 인식혁명으로 인해서, 현대인들은 두려움과 공포를 극복하는 방식을 더 이상 유신론적 하느님에게 의존할 수 없게 되었으며, 하느님에 대한 유신론적 정의는 완전히 파괴되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내세적인 종교인들은 비합리적이고 비상식적인 고집으로 유신론에 계속해서 집착하는 기이한 현상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의 위기상황에서 방역수칙을 무시하면서 오직 하느님의 영광을 찾는 이기적이고 몰상식한 행태를 서슴치 않는다.

오늘날 신자들은 인공호흡기에 의지해서 마지막 숨을 헐떡이는 유신론을 굳게 붙잡으려는 모순 속에서 생존의 두려움과 죽음의 공포를 떨쳐버리려고 안간 힘을 다하고 있다. 그래서 교회에 다니면서 십일조를 바치는 것은 마치 무당집에 가서 복채를 올려놓고 복을 비는 것과 다를바가 없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교회의 미래는 무엇인가? 계속해서 무당집처럼 남아있을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의식과 인간성을 추구하는 참 사람 예수의 초자연적인 하느님 없는 교회가 될 것인가?

유신론은 생존의 두려움과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고 이기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한 수단일뿐이다. 그러므로 유신론은 죽어도 하느님은 죽지 않을 수 있다. 유신론 없는 하느님 즉 무신론적 하느님이 가능하다. 참 사람 예수는 하느님에 대해서 우주적이고 통합적인 무신론적 삶의 방식을 가르쳤다. 지난 수세기 동안의 과학혁명과 인식혁명을 통해서 현대인들은 인간의 본성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며, 현대과학이 발견하고 발표한 공개적 계시 즉 138억 년의 우주진화 이야기는 무신론적인 종교적 내지는 정신적 삶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다시 말해 과학의 공개적 계시는 현대인들에게 유신론 없는 사회, 초자연적 하느님 없는 종교, 무신론적인 우주적이고 통합적인 삶의 방식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도전한다.

유신론과 관련하여 예수에 관한 질문은 새롭고 혁신적인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이 참 사람 예수 안에서 새로운 의미의 하느님을 체험한 것은 무엇이었나? 21세기에 하느님 체험이란 무엇이며, 이것이 무엇을 위해서 필요한가? 하느님 이해에서 유신론적 하느님 개념을 제거하고도 계속 예배드릴 수 있는가? 예배의 참된 의미는 인간과 생명을 존중하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참 사람 예수의 삶 위에 더덕더덕 회칠한 유신론적 하느님을 벗겨내고도 기독교인일 수 있는가? 무신론자 기독교인은 가능하다. 21세기 과학시대에 기독교인으로 살기 바란다면 다른 대안은 없다. 역사적 예수로부터 예수의 신적인 신화를 분리시키는 작업은 필수적이다.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이해했던 과거의 패러다임을 폐기해야 한다. 예수 안에서의 하느님 체험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유신론적으로 이해된 하느님으로부터 분리시켜야 한다. 예수에게 솔직해야 한다. 예수를 포장했던 유신론적 언어, 이제는 무용지물이된 언어가 된 유신론적 언어를 산산조각 내어야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지구적 위기상황에서 유신론적 하느님은 개인과 가정과 사회와 국가의 건강과 안정을 해치는 대단히 위험한 망상이다.

결론적으로, 현대 기독교인들은 예수의 의미와 하느님의 의미에 대해서 무엇보다 먼저 솔직해야 하며, 21세기 과학시대에 1세기 사람 예수에 관한 질문은 새롭고 혁신적인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예수의 첫 제자들은 예수의 가르침과 그의 삶에서 하느님의 의미를 새롭게 인식했다. 그들은 성전종교의 유신론적 하느님 개념을 떠나보내고, 참 사람 예수의 하느님 곧 우주적이고 통합적인 삶의 방식을 살아내었다. 참 사람 예수의 정신은 인종과 종교의 경계 넘어, 비종교인들과 무신론자들과 비기독교인들에게도 통용될 수 있다. 역사적 예수의 정신에 인간 존재에 대한 새로운 의미가 있다.

※ 이 글은 전 지질학자인 최성철 은퇴목사(캐나다연합교회)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필자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외부필자의 기고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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