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설교] 시므온의 노래(Nunc Dimittis)

장윤재 목사(이화여대대학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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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DB)
▲장윤재 이화여대 교수 (이화대학교회 담임)

성경본문

예레미야 8:18-22, 디모데후서 4:3-8, 누가복음 2:25-33

영국의 작곡가 존 루터(John Milford Rutter)가 지은 찬송가 는 대림절에 외국에서 많이 부르는 찬송가입니다. "1절. 이 땅에 오신 주님께 어떤 노래 드릴까 / 이 낮은 땅에 오신 주 하늘의 왕 내 주님께 / 어두운 밤 다 지나고 영광의 새 날 오나니 / 십이월 추운 겨울도 변하여 봄이 되도다. / 2절. 우리 안에 주 오셔서 따스한 햇빛 되시니 / 얼어붙은 들판도 꽃으로 만발하도다 / 오 귀한 구주 예수 맞이할 방이 있을까 / 내 마음 열어 드리오니 오소서 ... 4절... 이 땅에 오신 주님께 어떤 노래 드릴까 / 이 낮은 땅에 오신 주 하늘의 왕 내 주님께." 성탄의 기쁨과 설렘이 아직 진하게 남아있는 송년(送年) 주일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땅에 오신 주님께 어떤 노래 드릴까"요. 누가복음 2장에 나오는 '시므온의 노래'를 함께 드리면 어떨까요.

아기 예수가 탄생한 지 40일이 지나 부모는 모세의 법대로 정결 예식을 위해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갔습니다. (누가복음 2:22-40) 번제를 위해 어린양 한 마리와 속죄 제물을 위해서 어린 비둘기 한 마리를 바쳐야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부모는 가난했습니다. 비싼 양을 드릴 여유가 없어 대신 비둘기 한 마리를 더 바쳤습니다. 이렇게 양과 비둘기 대신에 두 마리의 비둘기를 제물로 바치는 것을 '가난한 자의 제물'이라 합니다. 예수님의 가정은 조금도 호사할 수 없는 가정이었습니다. 오늘 이 땅의 많은 가정처럼 가난한 가정이었습니다.

성전에는 놀랍게도 아기 예수님을 알아본 사람 둘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시므온(Simeon)이고 다른 한 사람은 안나(Anna)입니다. 히브리어 시므온의 헬라식 이름은 시몬(Simon)입니다. 이름의 뜻은 "하나님께서 들으셨다"입니다. 누가는 그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누가 2:25)라고 했습니다. 나라를 잃고 살기 힘든 로마 치하에서 나이가 다 된 시므온은 자기만의 구원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렸습니다. 실로 놀라운 일입니다. 누가는 성령이 그 위에 계셔서 가능했다고 말합니다. 시므온은 전에 메시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는데, 실제 그 일이 자기 눈앞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너무나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그것이 '시므온의 노래'입니다.

렘브란트의 마지막 그림은 <아기 그리스도를 안고 있는 시므온>입니다. 그가 죽음을 맞이한 1669년에 그린 그림입니다. 끝내 그는 이 그림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죽었고 사후에 제자들이 완성했습니다. 평생 이스라엘이 받을 위로를 기다리던 시므온은 이제 너무 늙었습니다. 사는 날들은 고단했습니다. 마침내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습니다"(누가 2:30)라고 노래했지만, 렘브란트의 시므온은 이미 앞을 보지 못할 정도로 늙어 있습니다. 아기 예수를 품에 안았다고 하지만 가만히 보면 기도하는 시므온의 두 손 위에 아기 예수께서 올려져 있습니다. 반쯤 감긴 시므온의 눈은 이 아기를 보지 못하고 어딘가 허공을 향하고 있습니다. 시므온의 기도하는 두 손 위에 하나님께서 그의 구원을 올려놓았다고 말하는 게 더 적절한 모습입니다. 그때 그가 부른 찬송, '시므온의 노래'입니다.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누가 2:29-32)

시므온의 노래는 '마리아의 노래'(누가 1:46-55, Magnificat), 스가랴의 노래(누가 1:67-79 Benedictus)와 더불어 누가에 나오는 3대 찬미가라 불립니다. 우리는 이 시므온의 노래를 '눈크 디미티스'(Nunc Dimittis)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라틴어로 된 불가타(Vulgate) 성서에서 이 노래가 '눈크 디미티스'라는 두 단어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Nunc dimittis servum tuum, Domine, secundum verbum tuum, in pace."(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눈크는 '이제'(now)라는 뜻입니다. 이제, 즉 '지금'이 문장 맨 앞에 강조되었습니다. 현재가 구원의 때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디미티스는 '허락하신다'(lettest)라는 뜻입니다. 무엇을 허락하십니까? 종이 맡은 바 임무에서 놓임을, 맡았던 일에서 물러남을 허락하신다는 말입니다. 시므온의 임무는 무엇이었습니까?

시므온의 임무는 '주의 그리스도'(Lord's Christ), 곧 참 메시아를 증언하는 것이었습니다. 시므온이 살았던 시기, 유대 땅에는 메시아에 대한 기대가 팽배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위대한 전사(戰士)가 지상에 임하리라 믿었고, 또 어떤 이들은 다윗의 혈통에서 또 다른 왕이 일어나 옛날의 영광을 재현하리라 믿었으며, 또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서 친히 초자연적 방법으로 직접 역사에 개입해 들어오시리라 믿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이 모든 사람과 대조적으로 '땅의 침묵자'(the Quiet in the land)로 알려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칼과 창에 기대를 걸지 않고 전 생애를 통하여 정의롭게 거룩하게 살며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로하시는 날을 묵묵히 기다렸습니다. 시므온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누가는 그를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고 했습니다. 그의 임무는 참된 이스라엘의 위로, 즉 '주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누가 2:26-27) 그는 거기서 평생을 기다린 자신의 임무를 완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에는 또 한 사람의 증언자가 있었습니다. 안나입니다. 성경은 놀랍게도 시므온보다 안나를 더 자세히 소개합니다.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가 매우 많았더라. 그가 결혼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아기 예수]에 대하여 말하니라."(누가 2:36-38) 안나도 시므온처럼 평생 의롭고 경건하게 살면서 메시아를 기다리다가 예수의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아기 예수를 데리고 성전에 왔을 때 그 아기에 대해 모든 사람에게 증언할 수 있었습니다.

안나(Anna)는 히브리어로 한나(Hanna)입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와 같은 이름입니다. 한나와 안나 둘 다 '은혜'라는 뜻입니다. 한나는 이스라엘의 일곱 여선지자의 하나입니다. 이스라엘에는 사라, 미리암, 드보라, 한나, 아비갈, 훌다 그리고 에스더 등 모두 일곱 여선지자가 있었습니다. 안나는 이 한나와 똑같은 이름을 가진 여선지자였습니다. 일찍 남편을 여의고 혼자가 된 그는 84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아기 메시아를 보았습니다. "과부가 되고 팔십 사 세가 되었더라"는 구절은 "과부가 된 지 팔십 사 년이 되었더라"로도 읽힐 수 있습니다. 그렇게 긴 세월을 안나는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로 섬기[며]" 무언가를 간절히 기다리며 살았습니다. 무엇을 그리 간절히 기다렸기에 안나는 성전에 온 아기 예수 메시아를 단번에 알아보고 "모든 사람에게" 그 아기에 대해 증언했을까요?

시므온은 "이스라엘의 위로"(누가 2:25)를 기다렸습니다. 안나는 "예루살렘의 속량"(누가 2:38)을 기다렸습니다. 이 둘이 누가복음 2장에서 평행으로 나란히 달립니다. 이 둘은 하나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렸습니다. "위로의 하나님"(고린도후서 1:3)을 기다렸습니다. 오래전 예레미야의 탄식입니다. "슬프다 나의 근심이여 어떻게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딸 내 백성이 상하였으므로 나도 상하여 슬퍼하며 놀라움에 잡혔도다.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지 아니한가. 그 곳에는 의사가 있지 아니한가. 딸 내 백성이 치료를 받지 못함은 어찌 됨인고."(예레미야 8:18-22) 이 깊은 슬픔 속에서 이사야는 메시아가 오실 것을 예언하는데 그분은 위로하시는 분입니다.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이사야 40:1-5)

오늘 시므온이 바로 이 영광을 보았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영광, 곧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요한 1:14)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가 노래합니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누가 2:30-32)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다는 말은 더는 그것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더는 위로가 필요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필요한 모든 것이 해결되었기 때문입니다.

시므온은 이스라엘의 '위로'(파랄칼레시스)를 기다렸습니다. 그것은 '노역에서의 해방'입니다. 안나는 예루살렘의 '속량'(뤼트로시스)을 기다렸습니다. 속량(贖良)이란 종으로 팔린 자를 값을 치르고 풀어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격의 회복입니다. 주권의 회복입니다. 위로와 속량은 개인에게만이 아니라 국가와 민족에게도 필요합니다. 누가가 전하는 시므온과 안나의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신다는 것입니다. 평생을 의롭고 경건하게 살며 이스라엘의 위로와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린 시므온과 안나가 마침내 그날이 시작되었음을 증언한 이야기입니다.

미국의 '재즈의 성인'이라 불리는 색소폰 연주자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 1926-1967)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는 그의 이름을 딴 교회까지 있습니다. 1926년 태어난 콜트레인은 40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지만. 짧은 삶이었지만 정말로 많은 작품 남겼습니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명작으로 손꼽힙니다. 그중에서도 최고로 뽑히는 작품이 입니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그는 지독한 헤로인 중독자였습니다. 알코올 중독자이기도 했습니다. 거의 죽음에 이르렀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마약과 알코올 중독을 극복했습니다. 그때 자신을 구원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사를 담은 곡이 바로 (1965)입니다. 그가 이곡을 처음 연주할 때의 일입니다. 무려 32분간이나 그는 온 힘과 정열을 다 바쳐 이 곡을 연주하고 무대를 내려왔습니다.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소감을 묻는 사람들 앞에서 이 한마디 고백을 했습니다. "눈크 디미티스!"(Nunc Dimittis!) 시므온이 구원자 아기 예수를 안고 드린 그 축복의 노래 바로 그 앞 두 단어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전 생애가 그 32분을 위해 살았다고 해도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의 입에서는 시므온의 노래가 울려 나왔던 것입니다.

"Nunc Dimittis!"(주여, 이제는 종을 평안히 놓아주시는군요!) 참으로 멋진 말입니다. 온 영혼을 다 바쳐 인생을 산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마지막 한마디입니다. 최선을 다했기에, 모든 걸 다 쏟아부었기에 아무 후회가 없는 말입니다. 존재를 다 불태웠기에 재가 돼도 후회하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눈크 디미티스', 이 말은 온 생명을 바쳐 자신의 임무를 다한 사람만이 드릴 수 있는 영광스러운 고백입니다. 2천 년 전의 시므온, 그는 아마도 한평생 사람들로부터 변변한 대접이나 화려한 주목도 받지 못하고 그저 하나님 앞에서 의롭고 경건하게 살았을 한 노인입니다. 주변에서 스타처럼 떠오르는 선지자들을 지켜보았을 것입니다. 그의 삶은 때론 무료하고 지극한 평범함 속에 갇혔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늙은 사람에게 한가지 특권이 주어졌습니다. 인류를 구원하시는 메시아는 처음으로 대면하고 증언하는 특권입니다. 그것으로 그의 인생을 다 보답받았습니다. "눈크 디미티스!" "주님, 이제는 종을 평안히 놓아주시는군요!" "Paid-off!" 완전히 보답받았다는 말입니다. 기나긴 빚쟁이 생활을 마치고 마지막 수표를 보내는 사람의 후련한 마음이 이와 비길 수 있겠습니까. 오랜 분단의 아픔 속에서 꿈에도 기다렸던 가족을 상봉하는 이산가족의 마음이 이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

눈크 디미티스! 주님, 이제는 나를 놓아주시는군요! 이 기도는 오직 최선을 다해 삶을 산 사람만이 신 앞에서 드릴 수 있는 기도입니다. 눈크 디미티스! 이제는 주님이 나를 놓아주시는군요! 이 노래는 올 한해도 뜨겁게 사랑하며 산 사람마니 하나님 앞에서 부를 수 있는 찬송입니다. 올 한 해 어떻게 사셨습니까? 이렇게 사셨습니까? "나 죽어갈 때 말해주소서. / 채찍처럼 삭 속을 파고들어도 / 나 휘날리는 눈 사랑했다고. / 모든 아름다운 걸 사랑했노라고. / 그 아픔을 기쁘고 착한 / 미소로 받아들이려 애썼다고. / 심장이 찢어진다 해도 / 내 영혼 닿는 데까지 깊숙이 / 혼신을 다 바쳐 사랑했노라고. / 삶을 삶 자체로 사랑하며 / 모든 것에 곡조 붙여 / 아이들처럼 노래했노라고." 사라 티스데일(Sara Teasdale)의 <기도 A Prayer>입니다. <사랑의 노래 Love Songs>로 퓰리처상을 받은 미국의 작가이지요.

시인은 기도합니다. 지상에서의 삶을 마감하고 죽을 때 혼신을 다 바쳐 사랑하고 떠난다고 말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삶을 그 자체로 사랑하며 기쁘게 살아가야 한다고 기도합니다. 나도 시인처럼 '심장이 찢어지는' 아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랑하고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돌아봅니다. 사실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한다는 것은 매우 무서운 일입니다. 휘날리는 눈을 맞으면 차가울까 사랑하지 못하고, 아름다운 장미는 가시에 찔릴까 사랑하지 못합니다. 버림받을까 봐 사랑하지 못했고, 상처받을까 봐 다가가지 못했니다. 그렇게 어영부영 살다가 정작 떠나야 할 날이 올 때 사랑 한번 제대로 못 하고 떠난다는 회한으로 우리의 마음이 너무 아프면 어떡합니까. (장영희의 영미시산책, <생일> 중에서) 우리는 시인처럼 지상에서의 삶을 마감하고 죽을 때 혼신을 다 바쳐 사랑하고 떠난다고 말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시므온과 같은 기도를 바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언제 떠나도 시므온의 노래를 부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2천 년 전 많은 거짓 예언자들이 일어난 것처럼 오늘도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마태 24:11)합니다. 바울은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라고 경고하면서,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디모데후서 4:3-6)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바울이 말합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디모데후서 4:7-8)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 마쳤다"라는 바울의 기도는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라는 시므온의 기도와 똑 닮았습니다. 두 사람의 기도는 한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평생을 하나님에게 사로잡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산 사람들의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오늘 우리가 드려야 할 기도입니다. 오늘 우리가 시므온처럼 품에 아기 예수님을 안고 불러야 할 찬송시입니다. "눈크 디미티스!" '퇴거 허가', '출발', '고별'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맡겨진 삶과 사명을 다했기에, 온몸과 영혼을 불살라 뜨겁게 사랑하며 임무를 완수했기에 우리는 이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 위로를 받고 다시 일어나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오늘 여러분의 입에서 바로 이 시므온의 노래가 울려 퍼지길 바랍니다. 32분간의 열정적인 인생 연주를 마치고 내려온 콜트레인이 내뱉었던 이 한마디가 오늘 여러분의 고백이 되길 바랍니다.

"눈크 디미티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 마쳤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후로는 여러분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의의 면류관이 여러분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시므온과 바울에게만이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애하는 교우 여러분, 온 힘을 다해 살며 사랑하며 버틴 올 한해 뒤돌아보며, 한시도 우리를 떠나지 않고 동행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앞으로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십시오]. 이는 [여러분]의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알기 때문입니다]."(고린도전서 15:5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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