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설교] 그리스도의 향기

장윤재 목사(이화여대 대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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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DB)
▲장윤재 이화여대 교수 (이화대학교회 담임)

성경본문

호세아 14:4-8, 고린도후서 2:12-17, 마태복음 7:1-5, 12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 노박 조코비치가 2018년 1월 호주오픈 테니스 경기 때의 일입니다. 세계랭킹 1위인 그가 16강 전에서 한국의 정현 선수에게 패했습니다. 세상이 깜짝 놀랐고, 수많은 기자가 인터뷰를 시도했습니다. 질문은 같았습니다. "아픈 몸으로 경기에 나간 이유가 무엇인가요?" "오른쪽 팔꿈치 통증이 경기에 영향을 끼친 건 아닌가요?" 사실 그는 팔꿈치 통증 때문에 반년의 공백기를 가진 후였습니다. 서비스 폼을 바꿨지만 자주 실수했고, 스피드 역시 평균적 수치보다 느렸습니다. 그에게는 할 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조코비치는 기자들에게 이렇게 답했습니다. "내 부상에 관한 이야기는 그만해주세요. 그건 정현의 승리를 깎아내리는 행위일 뿐입니다."

순간 인터뷰장의 공기가 바뀌었습니다. '아, 그래 바로 이거지. 이게 바로 멋진 패자의 모습이지.' 패배를 인정하는 동시에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승자보다 멋진 패자였습니다. 할 말은 있었지만, 조코비치는 가슴에 묻었습니다. 그리고 멋진 경기력을 보여준 상대를 이렇게 칭찬했습니다. "정현을 존경한다. 그는 마치 벽 같았다." 놀랍게도, 한국의 테니스 영웅으로 떠오른 정현이 어릴 때부터 존경하던 사람은 방금 그가 이긴 조코비치였습니다. 조코비치는 그의 우상이었고, 어릴 때부터 정현은 조코비치의 경기 운영방식과 폼을 따라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자신이 우상이 승부에서 졌음에도 불구하고 후배인 자신을 위해 아름다운 말을 남기는 모습을 보며 정현은 얼마나 깊이 감동했을까요.

조코비치는 '향기 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에게도 향기가 있습니다. 꽃은 저마다의 향기가 있습니다. 사람의 향기도 꽃과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도 '백리향', '천리향'이 있습니다. 몸에 뿌리는 향수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람에게서 풍기는 '인격의 향기'를 말합니다. 마음에 담긴 따뜻한 말, 사랑이 가득한 언어는 바람이 불지 않아도 그 향기가 멀리 전달됩니다.

언젠가 어떤 TV 프로에서 진행자가 병든 아버지와 동생을 부양하기 위해 피자 배달을 하는 청년을 인터뷰한 적이 있습니다. 진행자가 꿈이 무엇이냐고 묻자, 청년은 "좋은 냄새가 나는 가정을 갖고 싶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겨울에 오토바이를 타고 피자 배달을 다니면 정말 지독하게 춥습니다. 그런데 피자를 배달하기 위해 현관문을 들어서면 언제나 그 집 특유의 독특한 냄새가 있습니다. 집이 크든 작든, 비싼 가구가 있든 없든, 아늑하고 따뜻한 사랑의 냄새가 나는 집이 있는가 하면, 어딘지 냉랭하고 서먹한 냄새가 나는 집이 있습니다. 아늑한 냄새가 나는 집에서는 정말 추운 바깥으로 나오기가 싫어요. 저도 훗날 그런 가정을 꾸미고 싶습니다."(장영희,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 중에서.) 여러분의 가정에서는 어떤 냄새가 납니까? 사람마다 독특한 '마음의 냄새'를 갖고 있다 하는데, 여러분의 마음에서는 어떤 냄새가 납니까? 이름은 예쁘지 않으나 꽃이 필 때 향기가 좋은 쥐똥나무의 꽃이 이렇게 묻는 것 같습니다. "당신의 속사람에는 어떤 향기가 있나요?"(사진작가 김민수, 「2021 창조절 묵상집」 중에서.)

오늘의 복음서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자매]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마태 7:1-5)

예수님 시대에 유월절이 다가오면 사람들은 들이나 길가의 무덤에 하얀 회를 칠했습니다. 그래야 예루살렘을 찾는 순례자들이 무덤인 줄 알고 피함으로써 부정(不淨) 타는 것을 막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회를 칠한 무덤은 겉으로는 깨끗해 보였지만, 속에는 죽은 사람의 시신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정직의 가면을 쓰고 연기를 하는 것처럼 사는 위선자들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위선(僞善, hypocrisy), 즉 '겉으로만 착한 체함'은 예수께서 가장 역겨워하신 것입니다. 속사람에서 악취가 나는 게 위선입니다. 예수께서는 위선을 신랄하게 꾸짖으셨고 특히 종교적 위선자들에게 불같이 화를 내셨습니다. (한희철, 『지킴 20 버림 20』 중에서.)

'농단'(壟斷)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국정농단'이니 '사법농단'이니 할 때의 농단입니다. 무슨 뜻일까요? 『맹자(孟子)』에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옛날의 시장이란 남는 것과 부족한 것을 교환하는 장이었으며, 관에서는 분란이 벌어지지 않도록 조정만 했다. 그런데 어떤 천장부(賤丈夫, 천한 장부)가 나타나서는 깎아지른 언덕에 올라가 요모조모 관망한 다음 시장의 이익을 그물질하였다. 사람들이 모두 그를 천하게 여겼다." '농단'이란 시장의 이익을 그물질하기 위해 천장부가 찾아 올라간 '깎아지른 언덕' 혹은 '높이 솟은 언덕'을 뜻합니다. 그곳에서는 시장 상황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습니다. 거기에 앉아서 사적 이익의 검은 시선으로 누군가 애써 생산한 물건을 흔하다는 이유로 헐값에 사들이거나, 누군가 애타게 찾는 물건을 숨겨두었다가 값이 오른 다음에 내놓는 사람을 맹자는 '천장부'라 불렀습니다. 부귀(富貴)를 사사롭게 농단하는 이가 천장부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천장부들은 항상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의 천장부들은 부귀를 농단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도리어 정의로운 척까지 하고 있으니 세상에 악취가 심합니다. (한재훈, "농단하는 천장부" 중에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위선에 불같이 화를 내시고 준엄하게 꾸짖으신 마태복음 23장의 예수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마태 23:27, 33)

오늘의 신약서신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고린도후서 2:15)라고 말합니다. 성서에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의 향기를 말하는 구절은 많아도, '사람'을 향기라고 말하는 구절은 매우 드뭅니다. (참조 : 에스겔 20:41, 호세아 14:6-7)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려고 드로아(Troas)에 갔습니다. 하지만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해 실망하여 마케도니아(Macedonia)로 돌아갔습니다. 그의 마음은 편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개선 행렬에 언제나 우리를 참가시키시고,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향기를 어디에서나 우리를 통하여 풍기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라고 하면서 바울은 "우리는, 구원을 얻는 사람들 가운데서나, 멸망을 당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나, 하나님께 바치는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고린도후서 2:14-15, 새번역)라고 말합니다. 바울의 마음속에는 언젠가 보았던 로마의 화려한 개선 행렬이 떠올라봅니다. 바울은 사랑과 평화의 복음으로 세계를 정복하시는 "그리스도의 개선 행렬"을 마음속에 그리며 우리를 "하나님께 바치는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로마의 장군들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로마의 거리를 지나 주피터 신전까지 행진했습니다. 맨 앞에 원로원 의원들이 서고, 그다음엔 나팔수, 그다음엔 전리품, 그다음엔 제물로 드릴 황소, 그다음엔 잠시 감옥에 넣었다가 곧 처형하게 될 적국의 왕족과 포로들, 그다음엔 병정들, 그다음엔 악사들, 그다음엔 향을 태우며 향로를 흔드는 제사장들, 그다음엔 행진의 주인공인 개선장군과 그의 가족, 그리고 맨 뒤에는 승전한 군인들이 '이오 트리움페!'(Io Triumphe, 만세 승리로다!)를 외치며 뒤따랐습니다. 이것이 바울의 마음속에 있는 개선 행렬의 그림입니다. 우리는 이 가운데 향이 타는 향로를 흔들며 따라가는 제사장들이 있다는 걸 보았습니다. 개선장군과 승리한 병사들에게 이 향기는 기쁨과 생명의 향기였습니다. 하지만 그들보다 약간 앞서 걸어가는 전쟁 포로들에게는 과거의 패배를 상기시키고 앞으로 곧 닥칠 처형을 의미하는 죽음의 냄새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말하며, 이 향기는 "멸망을 당하는 사람에게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죽음의 냄새가 되고, 구원을 얻는 사람에게는, 생명에 이르게 하는 생명의 향기가 됩니다"(고린도후서 2:16, 새번역)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그가 고린도 교회에 앞서 보낸 편지에서 한 말, 곧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린도전서 1:18)와 상통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미련하다'라고, '어리석다'라고 말하는 거기에 하나님 구원의 능력이 있고, 생명에 이르게 하는 생명의 향기가 있다는 바울의 역설입니다.

인도의 성자 간디의 일화입니다. 그가 막 출발하려는 기차에 올라탔습니다. 그 순간 신발 한 짝이 벗겨져 플랫폼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기차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고 간디는 그 신발을 주울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간디는 얼른 나머지 신발 한 짝을 벗어 그 옆에 떨어뜨렸습니다. 동행하던 사람들은 간디의 행동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유를 묻자 간디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어떤 가난한 사람이 바닥에 떨어진 신발 한 짝을 주웠다고 상상해보십시오. 그에게 그것은 아무 쓸모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나머지 한 짝도 가지게 되지 않았습니까." 어리석어 보였지만 간디는 '향기 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속사람에서 나오는 인격의 향기는 바람이 불지 않아도 멀리 전달되었습니다.

그리스도교의 성자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언젠가 "주님은 내가 전에 없었던 바보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바보 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나는 내게 이로웠던 것은 무엇이든지 그리스도 때문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빌립보서 3:7, 새번역)라고 말한 바울처럼 프란치스코는 세상의 셈에서 벗어나 주님의 뜻을 따르는 '예수 바보'가 될 수 있었습니다. 십자가의 길이 그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생명에 이르게 하는 생명의 향기가 되었습니다.

사람 중에는 빈틈이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그런 사람입니다. 너무 완벽해서 더는 도움이 필요 없을 것 같은 사람, 찔러도 피 한 방울 날 것 같지 않은 완벽한 사람을 보면 왠지 나도 모르게 거부감이 듭니다. 그런데 어딘가 엉성하고, 빈틈이 많아 보이면 내 마음도 열립니다. 너무 완벽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삼다도(三多島)로 알려진 제주도에는 돌담이 많습니다. 돌만이 아니라 바람도 많은 제주도에서 돌담이 태풍에도 견디는 이유는 '빈틈'이 있기 때문입니다. 틈은 바람의 통로가 됩니다. 레너드 코헨(Leonard Norman Cohen)의 노래 '앤텀'(Anthem) 중에는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모든 것에는 갈라진 틈이 있습니다. 빛이 들어올 수 있는 것은 틈 때문입니다."(There is a crack in everything. That's how the light gets in.) 그렇습니다. 틈이 있기에 그 사이로 빛이 들어옵니다. 틈은 빛의 통로가 됩니다. 틈은 상처입니다. 그 상처를 통해 은혜의 빛이 비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향수는 발칸산맥의 장미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이 향수를 위해 생산업자들은 가장 춥고 어두운 시간인 자정에서 새벽 2시에 장미를 땁니다. 왜 그럴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장미는 한밤중에 가장 짙은 향기를 뿜어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향기도 가장 아픈 고통 중에서 생산되는 것은 아닐까요? 나무에도 상처가 날 때가 있습니다. 나무는 이때 상처를 치유하면서 '옹이'를 만듭니다. 그런데 나무에서 가장 단단하고 향이 깊은 곳은 바로 이 옹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단단해지고 향기가 나는 건 옹이와 같은 상처 때문은 아닐까요?

인류 최고의 향은 '유향'(乳香, frankincense)이라고 합니다. 인간이 신에게 드리는 거룩한 향료가 유향입니다.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께 드린 선물 중 하나이지요. 몰약(沒藥)이 주로 방부제로 쓰였다면, 유향은 신을 부르는 제의용으로 쓰였습니다. 유향은 구약성서에도 14번, 주로 제사와 관련해 출애굽기와 레위기에 집중적으로 등장합니다. 거실 한켠에 유향을 피우면 하얀 연기가 띠를 이루며 위로 올라갑니다. 향은 달콤하고 기분을 좋게 만듭니다. 숯 위에 유향이 타며 지글지글 미세한 소리가 들립니다. 후각만이 아니라 시각과 청각도 자극합니다. 그런데 유향은 나무의 열매가 아닙니다. 유향은 나무가 자신의 줄기에 난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내뿜은 분비물입니다. 나무는 자기의 몸에 난 상처를 치유하느라 끈적끈적한 액체를 분비하는데, 이 분비물의 향과 효능이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아 인간이 신께 드리는 최고의 향료가 되었습니다. (이강근 목사, "인간이 신께 드린 거룩한 향료 '유향'" 중에서.) 마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려진]"(에베소서 5:2)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하나님께 바친 향기로운 희생제물입니다.

그 주님께서 오늘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태 7:12) '율법과 선지자'란 구약성서를 가리 모든 윤리의 최고봉이라 찬사를 받는 그 유명한 '황금률'입니다. 그런데 황금률이 특별히 기독교적인 건 아닙니다. 유대교의 랍비들도 "너 자신이 싫어하는 것은 아무에게도 행하지 말아라"(토빗서 4:16)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리스인과 로마인들도 "네가 당하기를 피하는 고통은 다른 사람에게도 주지 말아라"라고 가르쳤습니다. 공자님도 "너 자신에게 되어지기를 원치 아니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행하지 않는 것"이 '인'(仁)이라 가르쳤습니다. 이처럼 황금률은 인류의 보편적 격언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많은 사람이 "너 자신이 싫어하는 것은 아무에게도 행하지 말아라"라고 말할 때, 예수께서는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것을 남에게 행하라" 하셨습니다. 인류의 황금률이 '소극적인 금지'를 의미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황금률은 '적극적인 선'을 의미합니다. 누구든 내가 싫어하는 걸 남에게 행하지 말라는 원리는 잘 이해하고 따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남이 나를 도와주고 남이 나에게 친절하기를 원하는 것 같이 자진해서 남을 도와주고 친절하게 행하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 안에 사랑이라는 힘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자동차를 운전할 때 법은 그가 길에 있는 아무도 다치지 않는 방법으로 운전하게끔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법도 길에 있는 지치고 발이 아픈 여행자에게 차편을 제공하라고 하지는 못합니다.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해주는 것은 바로 이 적극적인 태도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도 황금률의 소극적인 형태를 지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품지 않고는 아무도 이 황금률의 적극적인 형태를 실천할 수 없습니다. 오직 내 마음의 영혼의 텃밭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심겨 자라나 꽃을 피울 때 우리는 사랑의 향기가 나는 황금률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경애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길을 걷다 돌부리에 걸리면 그것은 '걸림돌'이 되지만, 냇가를 건널 때 물가에 놓인 돌은 고마운 '디딤돌'이 됩니다. 여러분은 걸림돌과 같은 사람입니까, 아니면 디딤돌과 같은 사람입니까? 꽃에 저마다의 향기가 있듯이, 사람에게도 저마다의 향기가 있습니다. 말과 인격에서 풍기는 향기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속사람으로부터는 어떤 향기가 납니까? 여러분은 백리향입니까, 천리향입니까? 우리 삶에서 조코비치처럼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인간의 향기가 우러나와야 합니다. 포근한 위로의 말로 늘 남의 눈물을 닦아주고 웃음꽃을 선사하는, 인간의 아름다움이 피어나야 합니다.

내 영혼의 깊은 곳에서 아름다운 향기가 나기 위해서는 내 영혼의 마음 밭에 예수 그리스도가 심겨 샤론의 장미처럼 피어나야 합니다. 거룩하고 아름답게 피어나야 합니다. 그래야 내 생명이 "참사랑의 향기로 간 데마다 풍겨나게"(찬송가 89장, 샤론의 꽃 예수) 됩니다. "예수, 샤론의 꽃"이 내 맘에 사랑으로 피어날 때에 우리는 "구원을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로 살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영혼의 화단을 가꾸십시오. 화단은 아무 수고도 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면 잡초만 무성해질 겁니다. 올해 내 영혼의 꽃밭에 샤론의 장미, 예수 꽃을 심으십시오. 그래서 여러분의 속사람으로부터 그리스도의 향기가 피어나 춥고 어둡고 악취 나는 세상을 밝고 따뜻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만약 지금 고통과 아픔을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발칸의 장미를 기억하십시오. 나무의 옹이를 기억하십시오. 인생의 향기도 가장 극심한 고통 중에서 생산됩니다. 절망과 고통의 밤에 우리는 비로소 삶의 의미와 가치를 배웁니다. 눈물로 베개를 적시며 우리는 인생의 아름다움을 깨우칩니다. 고난 중에 영혼의 향기가 피어납니다. 그러므로 만약 지금 고통과 아픔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그 시간은 자신의 몸에 난 상처를 치유하며 만들어 낸 인류 최고의 향 유향같이 우리가 하나님께 바치는 거룩한 향기가 될 것입니다. 올 한해 여러분의 삶이 그렇게 하나님께 드리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참사랑의 향기가 여러분의 속사람과, 여러분의 가정과, 이 세계에 가득 피어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내가 이스라엘 위에 이슬처럼 내릴 것이니, 이스라엘이 나리꽃처럼 피고, 레바논의 백향목처럼 뿌리를 내릴 것"이라 약속하신 하나님, 당신의 은혜와 사랑으로 내가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레바논의 포두주 같이 향기로운 존재가 되게 하소서. (호세아 14:4-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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