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설교] 빛의 열매

장윤재 목사(이화여대 대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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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DB)
▲장윤재 이화여대 교수 (이화대학교회 담임)

성경본문

미가 6:6-8, 에베소서 5:8-14, 요한복음 10:11-15

성경은 "형제[자매]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데살로니가후서 3:13)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라디아서 6:9)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선을 행하다 크게 낙심한 시대를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분이 새해를 맞이하면서 덕담을 나누는 글에 요즘 자신이 느끼는 점을 이렇게 솔직히 나누었습니다. "끝까지 참으면 참다가 끝난다!" "편한 사람이 되려고 하다가 편리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안 만나고 싶다. 안 맞는 사람들!" "뭘 해줘도 고마운 줄 모르는 사람이 안 해주면 불만은 또 그렇게 많더라!" "맞춰 주려고 노력하면 막 해도 되는지 알더라!" "나쁜 걸 참다 보면 좋은 걸 잊어 간다!" 선하게 살려 애쓰다가 실망한 기색이 역력합니다. 이 글은 수많은 사람의 '좋아요'를 받았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말했지만, 우리는 많이 지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서는 끊임없이 '선을 행하라'라고 말합니다. 오늘의 교독문 말씀입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영원히 살리[라]."(시편 37편) 요한 3서에 있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요한3서 1:11) 한 구절만 더 보겠습니다. 선을 행함이 곧 예배와 같다는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히브리서 13:16)

성서는 오히려 이 땅에 선을 행하는 자가 없다고 깊이 탄식합니다. 시편 14편의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시편 14:2, 53:2-3) 신약에서 사도 바울도 이 말씀을 받아 이렇게 탄식합니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로마서 3:10-12) 미가 선지자는 오히려 "너희가 선을 미워하고 악을 기뻐[한다]"(미가 3:2)라고 한탄했습니다.

러시아의 문호 레프 톨스토이는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 세 가지를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이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함께 있는 사람'이며,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것'이다." 사실 선은 그리 거창한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지금, 내 앞에 혹은 내 곁에 함께 있는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브라질의 주교 돔 헬더 카마라도 "중요한 것은 언제나 구체적인 인간입니다"라고 말하면서, "영원은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합니다. '지금'을 외면한 영원은 환상이며 착각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선은 지금 여기서 누려서 가지는 것입니다. 선은 향유(享有, enjoy)하는 겁니다. 유대인의 <탈무드>에는 "좋은 단지를 가지고 있다면, 오늘 사용하라. 내일이며 깨져 버릴지도 모른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선은 지금, 내 곁에 혹은 내 앞에 있는 존재를 누려서 가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어느 시인(나태주)의 <아끼지 마세요>입니다.

"좋은 것 아끼지 마세요 / 옷장 속에 들어 있는 새로운 옷 예쁜 옷 / 잔칫날 간다고 결혼식장 간다고 / 아끼지 마세요 / 그러다 그러다가 철 지나면 헌옷 되지요 // 마음 또한 아끼지 마세요 / 마음속에 들어 있는 사랑스런 마음 그리운 마음 / 정말로 좋은 사람 생기면 준다고 / 아끼지 마세요 / 그러다 그러다가 마음의 물기 마르면 노인이 되지요 / ... 마음껏 좋아하고 마음껏 그리워하세요 ... 지금도 그대 앞에 꽃이 있고 / 좋은 사람이 있지 않나요 / 그 꽃을 마음껏 좋아하고 / 그사람을 마음껏 그리워하세요."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이 말하듯이 "중요한 것은 무엇을 믿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행동하느냐"입니다. 항상 모자란 것은 이론(교리)이 아니라 실천입니다. 암스트롱이 성찰한 대로, "종교의 핵심은 깊은 수준에서 자신을 바꾸는 행동을 하는 것"이고 그 핵심은 "자비로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축의 시대 : 종교의 탄생과 철학의 시작』 중에서.) 선종(善終)하신 고 김수환 추기경도 사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실천이라며, "노점상에서 물건을 살 때 깎지 말라. 부르는 대로 주고 사면 희망과 건강을 선물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명동성당 앞에서 오랜 세월 묵주를 팔아온 한 아주머니는 "추기경님께서 내 묵주를 사주셨어요. 묵주가 많을 텐데도요..."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김 추기경은 "머리와 입으로 하는 사랑에는 향기가 없다"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데 70년이 걸렸다"고 솔직히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머리에서 가슴까지가 그렇게 멉니다. 여기서 '머리'란 실천이 없는 관념적인 사랑이고 '가슴'이란 그 관념에서 벗어난 구체적인 행동과 사랑입니다. 작은 사랑이 큰 사랑이고, 실천하는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걸 김수환 추기경은 강조하다 하나님 품으로 갔습니다. (정호승의 새벽편지, 『당신이 없으면 내가 없습니다』 중에서)

미국의 시인 메리 하트먼(Mary. R. Hartman)의 시 <삶은 작은 것들로 이루어졌네>를 읽어보고 싶습니다. "삶은 작은 것들로 이루어졌네 Life's made up of little things, / 위대한 희생이나 의무가 아니라 No great sacrifice of duty, / 미소와 위로의 말 한마디가 But smiles and many a cheerful word / 우리 삶을 아름다움으로 채우네. Fill up our lives with beauty. // 간혹 가슴앓이가 오고 가지만 The heartaches, as they come and go / 다른 얼굴을 한 축복일 뿐 Are but blessings in disguises, / 시간이 책장을 넘기면 For time will turn the pages o'er / 위대한 놀라움을 보여주리 And show us great surprises."

구약성서의 전도서 기자는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전도서 3:12)라고 말했습니다. 선을 행하는 것도 좋지만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신약성서에서 바울 사도도 데살로니가에 있는 교인들이 "모든 선을 기뻐함[으로]"(데살로니가후서 1:11) 이루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선을 행하는 것은 의무입니다. 거룩한 의무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기쁘게 행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선을 행하는 것이 단지 의무만이 아니라 또한 '열매'라고 말합니다. 선은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 하나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갈라디아서 5:22-23)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에 여섯 번째로 '양선', 즉 선함, 선행, 혹은 선(goodness)이 호명되었습니다. 열매는 기쁨입니다. 풍성한 알곡을 추수할 때 우리는 큰 기쁨을 누립니다.

오늘의 신약서신에서 바울은 선을 또한 '빛의 열매'라고도 표현합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입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에베소서 5:8-9) 빛은 열매를 맺습니다. 과학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지구상 모든 생명은 빛을 통한 광합성 때문에 존재합니다. 빛이 열매를 맺게 합니다. 바울은 빛이 맺는 열매가 세 가지라 말했습니다. '착함'(그리스어 아가토수네 - agathosune), '의로움'(디카이오수네 - dikaiosune), 그리고 '진실함'(알레테이아 - aletheia)입니다. 이 삼중주의 덕 가운데 첫째가 바로 착함, 즉 선입니다. 선은 빛이 만드는 첫 번째의 열매입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이 빛이 우리의 "열매 없는 어둠의 일"을, 우리가 "은밀히 행하는 것들"을, 우리 입ㅇ로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을, 그리고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을 드러낸다고 말합니다.(에베소서 5:11-13a) 그래서 "드러나는 것마다 빛이니라"(에베소서 5:13b), 즉 드러나는 것마다 빛이 되게 한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빛 안에 모든 것을 깨끗하게 하는 치유의 힘이 있다는 걸 믿고 있습니다. 사실 많은 질병이 단지 햇빛을 쏘이는 것만으로도 나을 수 있음을 우리는 압니다. 바울도 햇빛이 가지고 있는 치유의 힘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말하는 빛은 '그리스도의 빛'입니다. 이 세상의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는 우리의 어둡고 은밀한 것들과 부끄럽고 책망받는 것들을 드러내 고발하지만, 그것들을 깨끗이 치유하여 우리 삶에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의 열매를 맺게 하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어디선가 시 구절 하나를 인용함으로 그의 말을 끝맺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에베소서 5:14) 바울은 이 인용구를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것 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확히 이 인용구가 어디서부터 온 것인지 모르지만, 그것이 시라는 점에서 아마도 초대교회가 부르던 찬송가의 한 구절일 것으로 추측합니다. 필시 세례식에서 부르던 찬송가의 한 구절이었을 겁니다. 세례(침례)를 받은 자들이 물에서부터 나올 때 이 찬송을 불렀을 것입니다. "일어나라, 잠자는 자여,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 위에 비취시리라." 이전의 어두운 잠에서 깨어나 이제 눈부시게 빛나는 그리스도인의 새 삶으로 탄생하는 기쁨을 이렇게 노래했을 겁니다. 빛이신 그리스도가 새 생명이 기쁨을 주시는 겁니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는 평생 224개의 칸타타를 작곡했는데, 그중 147번 칸타타의 맨 마지막 곡인 <인류의 기쁨이 되시는 예수 Jesus Bleibet Meine Freude>가 오늘 우리가 드린 공동의 기도문입니다. 여기서 바흐는 "예수는 내 기쁨의 원천이고 / 내 마음의 본질이며 희망... 내 생명의 힘의 근원이 되고 / 내 눈의 태양과 기쁨이 되며 / 내 영혼의 기쁨이며 보물"이라고 말합니다. 그의 입에서 '기쁨'이라는 단어가 반복됩니다. 빛이신 예수가 내 기쁨의 원천이고 내 영혼의 기쁨이기에 나는 그의 '빛의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기쁨으로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의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주현절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주현절(主顯節, Epiphany)은 '그리스도 출현의 축일' 혹은 '빛의 축일'로도 불립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빛으로 오셔서 이 세상을 비추셨기 때문입니다.(요한복음 1:9) 이 빛이 우리에게 비춥니다. 그래서 주현절에 가장 적합한 성경구절은 아마도 이사야 60장일 것입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이사야 60:1) '빛을 발하라'는 말은 '빛이 되어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빛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빛이 되고, 빛을 발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온 땅이 아직 어둠에 덮여있기 때문입니다.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이사야 60:2-3) 우리를 빛이 되게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캄캄한 세상을 비추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에베소서 5:8)라는 권면하는 것입니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로도 알려져 있으나, 이 세상에 작은 등불 하나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려준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는 필라델피아에 살았습니다. 당시 밤이 되면 온 세상은 캄캄했습니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작은 등을 하나 사서 집 앞 등 받침대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해가 지고 어둠이 거리를 덮자 그 등에 불을 밝혔습니다. 그러자 동네 사람들이 프랭클린 집 앞에서 길을 비추고 있는 따스한 등불을 보았습니다. 그 집에서 조금 멀리 사는 사람들도 그 불빛에 호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집 앞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길바닥에 솟아오른 돌멩이에 걸려 넘어지지 않고 피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사람들도 하나씩 자기 집 앞에 등을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조만간 필라델피아는 가로등으로 밤거리를 환하게 밝힌 미국의 첫 번째 도시가 되었고, 이것은 가로등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세상이 너무 어둡다고 불평합니다. 그러나 작은 등잔 하나씩 밝히면 온 세상이 밝아지고 기쁨이 넘칩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는 다리가 많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시내에 직장을 둔 사람은 차를 타고 다리를 건널 때마다 1달러가량의 통행료를 내야 합니다. 가끔, 크리스마스나 추수감사절 같은 명절날, 어떤 때는 무슨 특별한 날이 아닌데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곤 합니다. 톨 게이트에서 어떤 기분 좋은 운전자가 2달러를 내면서 "내 뒷사람 것까지요"라고 가면 징수원이 뒤차 운전자에게 "앞차가 내고 갔어요"라고 말합니다. 뒤차 운전자는 자신이 준비했던 1달러를 내면서 "그럼 이건 내 뒷사람 겁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하루 종일 "내 뒷사람 겁니다"가 이어진다는 겁니다. 한 사람이 시작한 선의가 릴레이식으로 다음 사람에게 전달되고, 똑같이 1달러를 내면서도 꼭 내야 하는 통행세가 아니라 내가 주는 선의의 표시가 되고, 그래서 "내 뒷사람 겁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마다 밝은 미소를 짓는다는 겁니다. 작은 선행이라도 이 세상을 응원하는 데 보내면 '선의의 릴레이'가 이어지면서 지치고 삭막한 세상에 희망과 용기를 주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장영희,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 중에서.) 하늘에 닿을 듯 높이 솟은 마천루(摩天樓)도 처음에는 벽돌 한 장에서 시작합니다. 어마어마한 건물도 주춧돌의 벽돌 한 장 빼면 무너질 수 있습니다. 하루하루 선하게, 의롭게, 그리고 진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어 세상은 아직도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선한 일을 위해 지으심을 받은 존재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에베소서 2:10) 바울은 또 예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자신을 내어주신 이유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디도서 2:14)이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우리의 지으심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를 부르심에는 섭리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이라는 선물을 주신 이유도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으로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디모데후서 3:16-17) 우리는 선한 일을 행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저 선을 행하라고 다그치지 않으셨습니다. 선이 무엇인지 자세하고 친절하게 일러주셨습니다. 오늘의 구약성서 본문처럼 미가 선지자가 그것을 아주 또렷하게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일 년 된 송아지"도 "천천(千千)의 숫양이나 만만(萬萬)의 강물 같은 기름"도 기뻐하지 않으신다고 말하면서,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가 6:8)라고 말합니다. 정의(正義), 곧 옳은 일을 행하고, 인자(仁慈), 곧 자비를 사랑하며(보이며),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겸손(謙遜)히 인생길을 걷는 것(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선입니다.

우리는 악의 기원에 관해서는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선하신 하나님(시편 100:5)께서 창조하신 선한 세계(창세기 1:10-25)에 왜 악이 존재하는지 합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악의 극복은 가능합니다. 그리스도교는 악을 선과 동일한 실체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악은 다만 '선의 결핍'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와 아퀴나스가 명확하게 설명했듯이, 세상을 선과 악의 대립으로 설명하는 건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악은 선의 부재(不在), 선의 결핍(缺乏)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그의 동생 아벨의 제물을 받으셨을 때 가인의 안색이 변함을 보시고,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를 죄를 다스릴지니라"(창세기 4: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을 행하지 않으면 죄가, 즉 악이 문밖에 도사리고 있다가 즉시 너를 덮쳐 지배하게 될 것이니 꾸준히 선을 행하고 잠시라도 틈을 주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악은 선이 없어지거나 모자랄 때 내 영혼의 뜨락에 순간 독버섯처럼 자랍니다.

그러므로 성서는 이런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로마서 12:21)라고 말합니다.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로마서 12:17)라고 권고합니다.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항상 선을 따르라"(데살로니가전서 5:15)라고 강력히 권면합니다.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우니라"(베드로전서 2:20)라고 말합니다. 내 죄로 인한 고난이 아니라 옳은 일을 행하고, 자비를 보여주며, 하나님과 겸손히 동행하다 받는 고난과 인내는 하나님 앞에서 아름답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로마서 2:6-7)라고 약속하십니다. 예수께서는 친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한복음 5:2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경애하는 교우 여러분, 사도 바울의 기도처럼 여러분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로마서 16:19) 바랍니다. 요한의 기도처럼 여러분은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기를]"(요한3서 1:11) 바랍니다. 바울의 기도처럼 여러분은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기를]"(디모데전서 6:18) 바랍니다.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푸기를 아끼지 말[라]"(잠언 3:2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잠언 11:25)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잠언 19:17) 약속하셨습니다. 세상에! 나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빚진 자인 줄로만 알았는데, 하나님께서 내게 빚을 지는 방법도 있다니요! 하나님이 나에게 채무자가 되고 내가 하나님에게 채권자가 되는 신비한 길이 있다고 성서가 이야기합니다.

그러므로, 경애하는 교우 여러분, 대가를 기대하지 말고 베푸십시오. 무언가를 기대하고 베푸는 선행이라면 그건 오히려 근심의 씨앗을 뿌리는 행위입니다. 참된 기쁨을 누리기 원한다면 그저 베푸십시오. 하나님께서 주시는 자유와 기쁨이 찾아들 것입니다. 또 선을 행하되 너무 완벽하게 하려 하지 말고, 의를 행하되 너무 철저하게 하려 하지 마십시오. 다만 자신을 비우고 주님께 의지하십시오. (이주연, 『성령을 따라 걷습니다』 중에서)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시편 37:3) 했습니다. 그렇게 주를 의지하고 주를 신뢰하며 성실히 선을 행하십시오. "형제[자매]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데살로니가후서 3:13) 하셨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라디아서 6:9) 약속하셨습니다. 저는 믿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로마서 8:28)는 말씀을 믿습니다. 이 문장에서 생략된 주어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끝까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고야 말 것입니다. 자기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시는]"(요한복음 10:11-15) 선한 목자 예수께서 여러분을 선한 길로, 선한 길로 인도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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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과 선에 쏠려 있는 개신교 전통에서 미(美)는 간과돼"

「기독교사상」 최신호의 '이달의 추천글'에 신사빈 박사(이화여대)의 글이 소개돼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키에르케고어와 리쾨르를 거쳐 찾아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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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봉사를 개교회 성장 도구로 삼아온 경우 많았다"

이승열 목사가 「기독교사상」 최근호(3월)에 기고한 '사회복지선교와 디아코니아'란 제목의 글에서 대부분의 교단 총회 직영 신학대학교의 교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