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고서광선목사추모설교] 죽은 사람 같으나, 보십시오. 살아 있습니다

안재웅·(사)기독교민주화운동 이사장

* 본 설교문은 (사)기독교민주화운동 안재웅 이사장이 8일 이화여대 대학교회에서 열린 고 서광선 목사 추모예배에서 전한 설교 전문입니다. 필자의 동의를 얻어 전문을 싣습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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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사진= 이활 기자)
▲(사)한국기독교민주화운동 안재웅 이사장이 8일 이화여대 대학교회에서 열린 고 서광선 목사 추모예배에서 설교를 전하고 있다.

성경본문

고후 6:4-10

오늘 우리는 존경하는 고 서광선 목사님의 추모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이렇게 모였습니다. 목사님은 삶의 대부분을 이곳 이화여자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지내셨습니다. 그리고 많은 후학들을 배출하셨습니다. 그중에는 이름만 대도 알 만한 석‧박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목사님은 평생 이 일을 큰 보람으로 여기면서 사셨습니다.

서광선 목사님의 생애를 회고하면서 목사님이 남기신 몇몇 글들을 다시 읽어보며 저는 목사님의 일관된 사상과 학문의 관심이 '평화'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분단과 전쟁이 낳은 한(恨)은 목사님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 모두가 떠안은 고통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 참된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일해야 한다는 각오를 다지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한국교회와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선교적 사명이라는 사실도 되새겼습니다. 또한 전쟁과 평화는 양립할 수 없으며 평화를 갈망해야 평화로운 사람이 된다는 진실을 마음 깊이 간직해봅니다.

목사님이 평화를 평생의 화두로 삼게 된 근거는 아마도 부친이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순교를 당한 아픔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순교하신 서용문 목사님은 평화를 만드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도록 서광선 목사님을 항상 곁에서 이끌어 주셨을 것이라 믿습니다.

서광선 목사님은 평화통일로 가는 길목에서 남북이 자유롭게 왕래하는 날을 고대하셨습니다. 때가 되면 기차를 타고 평양으로 달려가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평양 봉수교회에서 평화를 주제로 설교를 했으면 하는 말씀도 가끔 하셨습니다.

하지만 목사님의 이런 꿈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지난 2월 26일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나셨습니다. 참으로 마음 아픈 현실입니다. 목사님께서는 빈소도 차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시신을 의대생들에게 해부용으로 기증하셨습니다. 하지만 코로나로 숨을 거두셨기에 부득이 화장을 하였고 현장에서 가족들만 모여 기도를 드린 후 장지로 모셨습니다. 우리에게 새로운 장례문화를 남기셨습니다.

서광선 목사님이 우리에게 남기신 설교의 한 대목을 요약해봅니다.

자유를 위하고 생명을 보호하기 위하여 싸우는 자기방어를 위한 전쟁을 '정당한 전쟁'(just war) 혹은 '거룩한 전쟁'(holy war)이라고 합니다. 중세시대 유럽의 십자군 전쟁 역시 '성전'(聖戰)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러나 '평화를 위해서 전쟁은 불가피하다'는 말은 가당치 않은 논리입니다. 하물며 평화를 위해서 전쟁을 해야 하고 핵폭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핑계일 뿐입니다. 평화의 수단은 전쟁이 아니라 평화입니다.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사나운 사람들이 아니라 평화로운 사람들입니다. 마음이 편안하지 않은 사람들은 평화를 만들 수 없습니다.

평화롭게 사는 한 개인이 나라의 평화를 만들 수 있습니다. 평화롭게 사는 국민들이 평화로운 나라를 만들 수 있습니다. 평화롭게 사는 나라들이 세계 평화를 만들 수 있다고 믿습니다. 평화를 만드는 사람은 정의와 사랑의 사람입니다. 평화는 인간 해방과 구원의 목적이며 동시에 수단입니다.

목사님은 죽은 사람 같으나, 보십시오. 살아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목사님은 논리가 정연하고 필력이 뛰어난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선언문과 에큐메니컬 기구들의 근간이 되는 목적문들을 다듬어 내셨습니다. 저는 세 개의 대표적인 문건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입니다. 일명 '88선언'으로 불리는 이 문건은 1988년 2월 29일에 발표되었습니다. 목사님은 기초위원들과 역사에 길이 남을 88선언문을 다듬어 내셨습니다.

우리는 1972년 7월 4일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발표된 <7·4남북공동성명>을 기억합니다. 이 성명은 남북한이 무력통일을 포기하고 자주적‧평화적인 통일을 다짐하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 통일은 외세에 의존하거나 외세의 간섭 없이 자주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 통일은 서로 상대방을 반대하는 무력행사에 의거하지 않고 평화적 방법으로 실현해야 한다.

- 사상과 이념,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우선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해야 한다.

남북한이 합의한 <7·4남북공동성명>의 정신에 입각하여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이라는 통일의 3대 원칙을 존중하면서, '88선언'은 한국교회의 선교적 방향을 다섯 가지로 제시하였습니다. 첫째는 민족 자주의 원칙이요, 둘째는 인도주의의 원칙, 셋째는 민족대단결의 원칙, 넷째는 민주적 참여의 원칙, 다섯째는 평화의 원칙입니다.

목사님은 죽은 사람 같으나, 보십시오. 한국교회 그리스도인들과 영원히 살아 있습니다.

둘째, <도전21>(Challenge21)이라는 세계YMCA 미션 선언문입니다. YMCA에는 1855년 세계YMCA연맹 창립총회에서 채택한 <파리기준>(The Paris Basis)과 1973년 세계대회에서 채택한 <캄팔라원칙>(The Kampala Principles), 그리고 1998년 독일에서 채택한 <도전21>이라는 세 개의 중요한 문서가 있습니다. 목사님은 새로운 천년을 준비하면서 YMCA가 감당해야 할 방향과 책임과 의무를 제시하는 <도전21>이라는 진전된 문서의 기초위원회 위원장으로 활약하셨습니다. 내용의 일부를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세 번째 천년을 맞이하는 지금, 우리는 1855년에 채택된 파리기준이 YMCA 사명의 근간임을 확인하면서, YMCA가 청년들의 진정한 참여를 강조하는, 여성과 남성 모두를 아우르는 기독교 운동이며, 에큐메니컬 정신에 기초한 자발적인 운동임을 선언한다. 또한 YMCA는 모든 피조물이 충만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정의에 기초한 사랑과 평화 그리고 화해의 인간공동체를 건설하려는 기독교적 이상을 나누기 위해 애쓸 것이다.

1973년에 채택된 <캄팔라원칙>을 발전적으로 계승한 <도전21>은 7대 과제를 실천하기로 결단하면서 다음과 같은 결의문을 채택하였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나누며, 개인의 영.지.체적 안녕과 건강한 공동체 형성을 위해 일한다.

- 모든 사람들, 특별히 청년과 여성들이 더 큰 책임을 맡고 모든 영역에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이들의 역량을 키우고, 형평성 있는 사회를 위해 일한다.

- 여성의 권리를 옹호하고 북돋우며, 아동의 권리를 증진시킨다.

- 신념과 이념이 다른 사람들 간에 대화와 파트너쉽을 증진시키고, 문화적 정체성을 인정하며, 아울러 문화적 갱신을 촉진한다.

- 가난하고 착취당하며,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과, 인종적, 종교적, 민족적으로 억압받는 소수자들과 함께 연대하여 일한다.

- 분쟁이 있는 곳에서 중재자와 화해자의 역할을 추구하며, 모든 이들이 자기결정력을 갖기 위해 의미 있는 참여와 진보를 할 수 있도록 일한다.

- 하나님의 창조물을 파괴하려는 모든 것으로부터 피조물들을 보호하며, 미래세대를 위해 지구의 자원을 보존하고 보호한다.

이러한 도전에 응전하기 위해 YMCA는 모든 단계에서 자기 스스로의 존속과 자결을 가능케 하는 협력의 패턴을 개발할 것이다.

이 역사적인 문서는 서광선 목사님이 기초위원장으로 활약한 덕분입니다. 목사님은 죽은 사람 같으나, 보십시오. 세계YMCA 역사와 더불어 영원히 살아 있습니다.

셋째, <한국YMCA 목적문>입니다. 서광선 목사님은 한국YMCA전국연맹의 목적문 기초위원으로 위촉되어 1976년 당대의 신학자들과 함께 이 문서를 다듬어 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한국YMCA는 젊은이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삶을 따라 함께 배우고 훈련하며, 역사적 책임의식과 생명에 대한 감성을 일구어, 사랑과 정의와 평화의 실현을 위하여 일하며, 민중의 복지 향상과 민족의 통일 그리고 새 문화 창조에 이바지함으로써, 이 땅에 하느님 나라가 이루어지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1976년 제정/2014년 개정)

목사님은 죽은 사람 같으나, 보십시오. 한국YMCA 역사와 함께 영원히 살아 있습니다.

목사님은 신학자요, 교수요, 목회자요, 에큐메니컬 운동의 지도자였습니다. 한국의 1세대 민중신학자로 존경받는 분입니다. 목사님과 관련한 많은 기독교 기구들이 오늘 추모예배를 공동으로 주관하고 있습니다. 목사님의 대표적인 직함만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문리대 학장, 교목실장, 대학원장, 명예교수 / 뉴욕 유니온신학대학원 초빙교수, 드류대학교 초빙교수, 홍콩 중문대학교 초빙교수 / 세계YMCA연맹 회장 / 아시아기독교고등교육연합재단 이사 겸 부회장 / 현대교회 담임목사 /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 회장 /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 이사장 / 남북평화재단 이사장

목사님은 죽은 사람 같으나, 보십시오. 많은 국내외 대학들은 물론 많은 기독교 기관들과 함께 살아 있습니다.

침략의 기차길, 나그네길은 끊어지고, 이제 평화의 기차길이 새 시대와 함께 열리는 날을 꿈꾸시던 목사님은 자신의 마지막 저서가 된 『기차길, 나그네길, 평화의길』이라는 책을 제게 주시며 이런 문구를 담아놓으셨습니다. "인생의 나그네길 종착역에서 다음 평양행 기차를 기다리며 드립니다. 2019년 늦은 가을, 서광선." 목사님은 죽은 사람 같으나, 보십시오. 저의 삶에 영원한 멘토로 살아 있습니다.

우리는 서광선 목사님을 통해, 죽은 사람 같으나 우리와 함께 살아 있음을 깨닫는 귀중한 순간을 경험합니다. 추모예배 현장에 직접 참석하신 분들과 온라인으로 참석하신 모든 분들, 특별히 함선영 교수님을 비롯한 유족들에게 주님의 위로와 복이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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